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0화(6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0화
60화. 마트는 위험하다
마트라니.
은호는 얼굴을 돌려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마트에 가기로 했다고? ……언제?’
은호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폭시가 집으로 오는 날, 그 전에 장을 싹 다 보고 돌아왔다.
‘…어제 자기 전에 술이라도 먹었나?’
은호는 슬쩍 눈동자를 굴리다 폭시와 마주쳤다. 그대로 모든 행동을 멈췄다.
왜 가야 하냐고 묻는 것조차 미안할 만큼 기대하고 있기에 차마 입이 떼어지질 않았다.
지금 모습만 보면 놀이동산을 외치는 어린아이 같았다.
“어제 친구들이랑 헤어질 때, 헤인이 나한테 슬쩍 말했는데, 마트는 환상적인 공간이래.”
폭시는 천장을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반짝 빛을 냈다.
―잘 들어. 마트라는 곳이 있어. 여긴 인간들이 느끼는 모든 환상을 담은 곳이야. 만약에 갔다 오면 말해줘. 너라면 은호가 데려다줄지도 모르잖아?
어떤 환상이 가득한지 너무 기대되어 아침이 되자마자 은호에게 달려왔다.
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오자 폭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의 이마에 앞발을 올렸다.
“안 뜨거운데? 뭔가 몸이 이상해?”
“아무것도 아니야.”
은호는 그제야 안심하며 웃었다.
“헤인이가 마트는 어떤 곳이라고 말했어?”
은호는 눈을 감은 채로 폭시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헤인이 마트는 인간들이 가지는 모든 환상을 다 품는 곳이라고 했어!”
‘…헤인이 너무 똑똑한데?’
은호는 속으로 놀랐다. 실제로도 사람들이 사고 싶은 대부분이 마트에 존재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별로지만, 마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분위기를 자신도, 흑견도 무척 좋아했다.
행복하다.
즐겁다.
어린아이를 빼면 표정 변화는 그렇게 없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은 저기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
돈을 버는 건 어려워도 쓰는 건 언제나 즐겁지 않은가.
‘마트를 가는 건 문제 없는데, 어떻게 폭시를 데리고 가지?’
은호는 다시 눈을 떠서 폭시를 바라보았다.
기대 위에 설렘까지 얹어진 폭시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깊어졌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폭시야 잠시만.”
이럴 때 물어봐야 하는 곳은 하나였다.
바로 환수 관리국.
은호는 상체를 일으켜 옆에 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권석현을 묻어버린 뒤로 환수 관리국의 국장인 이지혜에게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그 뒤로 며칠이 흘렀는지 새어 보지 않았지만, 아직도 사건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권석현이 죽이려고 했던 ‘A’에 관심이 쏠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싹 사라져 몹시 만족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이지혜 국장님. 저 서은호입니다.] [저번 일은 무척 감사드립니다. 그간 평온한 밤을 보내셨습니까? 아직도 그날의 전율과 떨림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네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압니다. 이런 와중에 정말 죄송하지만,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생겨 이렇게 문자를 남깁니다.]상대가 높든 낮든 간에 원래 문자는 공손하게 시작해야 했다.
그게 예의였으니까.
은호는 뒤이어 문자를 보내려다 갑자기 손아귀에서 울리는 진동에 놀랐다.
환수 관리국 국장 이지혜.
화면에 이름이 딱 뜨자 은호는 기침을 몇 번이나 한 뒤로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서은호 씨.>
“안녕하세요. 바쁘지 않으세요?”
<바쁘죠. 같이 권석현을 쓰러트렸는데, 이상할 정도로 잠잠해서 휴대전화를 얼마나 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거리낌 없이 연락할 걸 그랬네요. 하지만 국장님이라는 직책이 가져다주는 묵직함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지혜는 가볍게 웃었다.
<서은호 씨는 예외로 둔 거 잊으셨습니까? 언제든지 저한테 협력을 요청하셔도 됩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제가 지니까요. 이 중요한 걸 잊으신 건 아니죠?>
“당연히 기억해야죠.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그때, 서은호 씨가 제게 가치를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셨죠?>
“그랬죠. 실제로 저 꽤 비싸잖아요?”
<신문에서 A라고 떠드는 기사, 다시는 올라오지 않을 겁니다. 권석현, 절대로 못 나옵니다. 초능력 관리국에서도 권석현을 압박하지만, 그 새끼를 묻어버릴 증거는 제가 더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점점 묵직해지는 지혜의 말에 갑자기 잠이 확 깼다.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떤 꼴인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 은호 지금 뭔가 못된 입 됐어.”
폭시가 넌지시 말을 걸었지만, 은호의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럼, 권석현이 교도소에 들어갈 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직접 가서 보려고요.”
<그때,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권석현, 절 되게 싫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싫어하는 둘이 간다면 권석현의 일그러진 표정을 얼마나 더 잘 볼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나요?>
“이건 좀 마음이 맞는데요?”
<마침, 또 다른 걸 확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연락을 주신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용건을 말해봐라.
설렘이 섞인 듯한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당당히 물었다.
“환수를 마트에 데려가도 되나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뒤, 느닷없는 웃음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혹시, 지금 뭐 보고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국장이 된 뒤로 이런 질문은 처음 들어봐서요.>
“그래요? 이거 되게 중요한 문제라 연락드렸어요.”
<확실히 중요합니다. 원칙적으로 환수 관리국과 환수 연구소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환수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내용 자체가 되게 애매했기에 은호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강제성이 포함된 말이죠?”
<대부분 강제성이 포함되어 있긴 하나, 환수를 애완동물로써 취급할 수 없기에 기준점이 상당히 애매합니다. 고로,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같이 가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기준점을 다시 마련해 개정안이 나온다면 서은호 씨가 더 자유로워질 테니까요.>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환수 관리국으로 오라고 꼬드기는 건 아니겠지? 소속되는 건 싫은데.’
은호가 미간을 찌푸리자 폭시가 휴대전화로 귀를 댔다.
<설태호 연구소장님께서 훌륭한 분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쪽은 제 말을 더 신뢰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괜히 국장이 아니니까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태호가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도 환수 관리국의 국장은 아니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환수 관리국으로 들어오라고 꼬드기는 일만 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약속 장소를 잡아주십시오. 제가 일정을 조정하겠…….>
“아뇨. 바쁘시겠지만, 그나마 한가한 시간이 언제인지 알려주세요. 가뜩이나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주르륵 밀려버리면 차후에 문제가 크게 터지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었다.
환수와 관련된 사람이기에 좋든 나쁘든 그 여파가 고스란히 환수들에게 돌아갈 테니까.
무엇보다 굳이 적으로 돌릴 이유가 있을까.
<배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려요.”
은호는 휴대전화를 끊고서 폭시의 두 볼을 잡았다.
무어라 말하기 전에 갑자기 그림자가 졌다.
은호와 폭시가 고개를 동시에 올렸다.
묘한 시선에 흑견은 고개를 뒤로 뺐다. 아주 수상했다.
“멍멍이 형님, 마트 가자.”
“맞아! 같이 가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흑견은 그대로 굳어졌다.
* * *
“…여기가.”
폭시는 침을 삼켰다.
푹 눌러쓴 모자 위로 눈동자가 도르르 움직였다.
“마트!”
폭시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앞발을 길게 뻗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끝이 없었다.
이게 마트라니.
“그런데 은호 연구소가 더 커.”
“쉬이이잇.”
은호가 동물 유모차에 앉은 폭시를 향해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아, 쉬이잇.”
폭시가 앞발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를 처음 보는 게 아닐 텐데?”
“멍멍이 형님도 쉬잇.”
은호가 그림자를 보며 말하자 잠깐 흔들렸다.
“멍멍이 형님도 작아지면 옆에 같이 타는 건데.”
폭시 옆에 작은 흑견이라니. 생각만으로 꽤 괜찮았다.
잠깐 눈동자를 굴리던 은호는 넌지시 물었다.
“몸집을 키우는 게 가능하다면 그 반대도 되는 거 아니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침묵에 은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되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가능하긴 하단 말이지?’
불리한 말에 흑견은 입을 다무는 습관이 있었다.
꼭 오늘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언젠가는 작은 흑견을 볼 수도 있을 테니까.
은호는 고개를 들어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아 있기에 폭시한테 먼저 마트의 맛을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물 유모차를 몰며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폭시는 환수였지만, 어쨌든, 동물 출입이 허락된 곳이었다.
폭시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다 입이 쩍 하니 벌어졌다.
코에 와닿는 여러 냄새에 제일 먼저 놀랐다.
천장은 높았고, 불빛은 많았으며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그러나 묘하게 들뜨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딱 하나를 뺀다면.
“은호, 은호. 인간들이 우리를 바라봐.”
폭시가 유모차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을 꺼내자 은호는 볼을 콕 찔렀다.
“아무래도 널 보는 것 같은데? 이것 좀 내려줄까?”
비가 올 때를 대비해 가림막 같은 게 있었기에 은호는 잡고 물었다.
“응. 내려줘.”
폭시가 귀를 내린 채 어쩔 줄 몰라하자 은호는 바로 내려줬다.
안정을 찾은 듯 가만히 있던 폭시는 갑자기 유모차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우릴 봐. 은호”
평범한 동물 유모차로 보이지만, 이건 태호가 준 거였다.
―이 가림막을 내리면 밖에서 안이 안 보여. 이걸 쓰게 될 줄이야. 폭시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중에 꼭 말해줘.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은데, 일이 나를 놓아주질 않네.
‘안 보인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뭔가 시선이 이어지자 은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내 머리카락 색 때문인가 봐. 좀 튀긴 하잖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염색이라도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은호는 진동이 느껴지자 휴대전화를 보았다.
[이지혜 국장님 : 뒤를 봐봐요.]그 말에 은호가 몸을 돌리자 지혜가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지혜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제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딱 눈에 띄는 사람이니까요.”
지혜는 은호 옆에 서서 유모차를 가리켰다.
“여기에 환수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어 지혜는 은호의 주변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한 마리 더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맞췄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은호는 일어나는 소름에 팔을 문질렀다. 환수 주변에 어떤 힘이 느껴지는 걸까.
“평소라면 솔직히 잘 모르죠. 다만, 저를 향한 노골적인 경계가 드러나서 알았습니다. 제법, 날카롭네요.”
지혜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그 눈초리가 묘하게 날카로운 건 둘째치고, 그녀의 주변, 그리고 자신의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천천히 바람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기에 은호는 폭시와 흑견이 왜 경계하는지 알았다.
“…지금, 힘을 썼습니까?”
은호가 무겁게 묻는 그 물음에 지혜의 미소가 살짝 지워졌다.
어떻게 알았을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환수에 예민해 말이 새어나지 않게 주변 공기를 살짝 누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힘을 느끼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하는 내내 갈증이 느껴졌다.
환수 관리국으로 오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약속했기에 겨우 참을 수 있었다.
초능력을 느낄 수 있다니, 탐이 났다.
“오늘 어떤 환수와 함께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지혜는 감정을 죽인 채 태연하게 물었다.
“폭시하고 흑견이요.”
“…상당히 마음이 무겁고, 동시에 설레네요.”
둘 다 위험도로 따지면 상당했다.
“은호. 나 인사할래.”
폭시가 앞발로 가림막을 긁자 은호는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진짜?”
“응! 저 인간, 그때 나를 꼭 안아줬어.”
폭시의 반응에 은호는 긴장을 풀고는 가림막을 살짝 올렸다.
얼른 폭시의 앞발이 나왔다. 그 모습에 지혜가 은호에게 눈치를 줬지만, 나오는 말은 예상 밖의 소리였다.
“폭시가 인사하고 싶대요.”
“…정말입니까?”
“네.”
“안녕. 이지혜라고 해.”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녕!”
폭시의 입도 가림막 밖으로 살짝 나왔다.
끼우웅.
기분 좋은 폭시의 울음소리를 듣던 지혜가 빠르게 일어났다.
“이제 앞장서겠습니다. 최적의 코스를 미리 알아뒀으니까요.”
지혜는 당당하게 앞장섰다.
쿵쾅쿵쾅.
그녀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표정마저 다잡았다. 흐트러질 수 없었다.
‘…뭐지?’
묘한 반응에 은호는 잠깐 의문을 품다 그녀를 따라 유모차를 밀고 나아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건을 탐스럽게 눈에 담다 말고 갑자기 크게 재채기했다.
“에취!”
이쪽으로 동물이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몇 번 더 재채기하며 잠깐 마스크를 올리던 사이, 어디선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가판대가 보였다.
소리는 그쪽에서 들렸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올리자 물건을 품에 안은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환수들이 보였다.
은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더 위로 올렸고, 천장에 붙어 있는 환수들을 보자 입이 살짝 벌어졌다.
보호색을 띠고 있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물건을 끌어올리는 속도가 상당했다.
‘……환수 친구들이 물건을 훔치고 있어?’
은호는 처음으로 충격적인 상황에 잠깐 얼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