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1화(6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1화
61화. 마트는 위험하다(2)
왜?
당장 그 생각부터 들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칠 이유라고 한다면 생존 혹은 재미가 아닐까.
은호는 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우선 억눌렀다.
안경을 쓰고 맹금류의 눈을 발동시킨 뒤 다시 고개를 위로 올렸다.
천장 색과 같은 보호색 너머로 복슬복슬한 털 뭉치가 제일 먼저 보였다.
크기는 멀어 가늠되질 않았지만, 작은 생수병 크기보다 작았다.
끝이 볼록한 더듬이가 달려 있었으며 몸통이 애벌레처럼 길고, 발이 6개로 무언가를 잡기에 아주 효율적으로 보였다. 꼬리는 동그래 움직일 때마다 씰룩씰룩 움직였다.
조금 전에 보지 못했던 실이 환수의 머리에서 나오자 당장 밀려오는 궁금증에 태블릿을 보았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
《버니멀.》
《나무나 높은 건물에 무리 지은 채 매달려 사는 환수입니다. 몸을 뒤덮은 복슬복슬한 털은 다른 털과 달리 탄성은 물론 강도 또한 높아 얼마든지 늘였다가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옵니다. 그 점을 이용해 공격도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이타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며 주변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번 정착하면 오랜 시간 머뭅니다. 털갈이 시즌 때, 나오는 털을 이용해 집을 짓습니다.》
‘……?’
은호는 설명을 읽다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웠다.
설명과 지금 버니멀이 하는 행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대체 어디가 이타적일까.
‘……의적?’
은호는 눈가를 좁혔다.
‘그래도 도둑질은 안 되는데.’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따끔하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서은호 씨?”
지혜가 가다 말고 뒤따라오지 않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태블릿을 몹시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태블릿이 갑자기 고장 났나?’
생각은 멈추고, 다가가 은호에게 말을 걸었다.
“태블릿이 고장 났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꽤 진지한 표정이 그려지자 지혜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렸다. 뭔가 있는 걸까.
“위를 보세요.”
은호가 주변을 살피며 넌지시 목소리를 냈다.
‘위?’
지혜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린 채 위를 바라보았다.
그대로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환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곳에도 올 줄이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각지대에 들어갔기에 당장 걱정부터 들었다.
환수는 원칙적으로 환수 보호 구역에 존재해야만 했다.
환수 보호 구역 밖으로 벗어난 환수는 보호가 무척이나 어려워지기에 지혜는 덩달아 표정이 굳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주변부터 통제하겠습니다.”
“아니에요. 통제할 필요 없어요.”
은호는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고장 난 태블릿을 들고 신나게 흔들었다.
“일단 구경부터 할까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혜는 무언가 말려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 바로 눈치챘습니다, 국장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지혜는 어깨를 내렸고, 은호는 고개를 돌리다 미간을 찌푸렸다.
“심서율, 임무 마치고 지금 돌아왔습니다.”
누가 봐도 ‘나 환수 관리국 소속입니다’라는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심서율이 보폭을 넓게 한 상태로 걸어왔다.
귀에 단 피어싱이 빛에 반사되어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다.
“서은호 씨가 계획이 다 있다는 말…….”
“당장, 그 옷 가려.”
지혜는 서율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다가오던 그는 뒤로 물러나서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니, 국장님. 누구보다 환수 관리국의 자부심과 당당함을 드러내라고 하신 건 바로 국장…….”
“가리라고 했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넵.”
서율은 입을 꽉 다물며 상의를 벗었다.
잠깐 은호와 눈이 마주치자 살갑게 웃었다.
“병원에서 본 뒤로 오랜만이죠?”
“그렇네요.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별로 반가워하지 않은 은호의 표정에 서율은 조용히 눈동자를 굴렸다.
“…저 좀 미움받는 타입인가 봅니다. 사실 안 웃고 있으면 사납다고 뭐라고 하고, 웃으면 간사하다고 하고.”
“둘 다 가졌다는 건 축복이죠.”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일단 만만하게 볼 사람은 없잖아요?”
은호는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만요, 서은호 씨.”
“네?”
지혜가 부르자 은호는 걸음을 멈췄다.
“왜 통제를 멈춰야 합니까? 환수가 위에 있습니다. 환수를 사람이 공격할 수도 있고, 환수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라도…….”
“그래도 되니까요. 절 믿어주세요.”
은호는 유모차를 꽉 쥐었다. 버니멀이 저 물건을 가지고 멀리 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쇼핑 시간이라는 소리였고.
“이제 진짜 간다, 폭시야.”
마트에서 제일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은 시식 코너였다.
“…폭시요? 전 심서율입니다.”
서율은 멋쩍은 듯 자신을 소개했다.
“아, 깜박했네요. 죄송합니다.”
달려가던 은호가 급히 걸음을 멈춰 방향을 다시 틀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살짝 가림막을 열었다.
폭시가 설렌 얼굴로 웃고 있었다.
“……?”
서율은 눈을 크게 뜨다 이내 비볐다.
환수라니.
환수가 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폭시가 유모차에 내려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멍한 눈으로 마트 근처 공터를 바라보았다.
유모자 옆에는 터질 듯한 박스 여러 개와 종량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은호는 폭시 옆에 앉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유모자 안이다 보니 답답할까 무리하게 돌지 않았다.
“오늘은 반 정도 돌아봤네. 어땠어?”
은호의 물음에 폭시는 잠깐 생각했다.
―어때? 맛있어?
은호가 슬쩍슬쩍 넘겨준 고기는 이상하게도 연구소에서 먹던 맛과 달랐다.
짭짤하면서도 너무도 고소했다.
―이게 시식 코너에서밖에 못 먹는 고기야. 집에 가서 구우면 이런 맛이 안 나더라니까?
그 말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마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일까.
―이거 봐봐. 과자 이렇게나 많다? 색깔별로 되어 있지?
은호가 먹는 과자를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었다. 이상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맛이었다.
그런 과자들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이 일렁거렸다.
―여긴 유제품 코너인데, 여기 봐봐. 네가 좋아하는 우유가 가득해.
실내임에도 다른 세상처럼 바람도 튀어나오고, 싸늘함이 감돌았다.
동시에 우유가 저렇게 많이 쌓여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다.
인간은 우유를 먹지도 않을 텐데, 대체 왜 이렇게 쌓아두는지 몰랐다.
유모차 안에서 갇혀 있어 괴로웠다는 사실 위로 좋았던 기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높이 쌓아 올라가면 갈수록 바짝 올라간 폭시의 볼이 크게 흔들렸다.
“좋았어! 재미있었어! 또 오고 싶어! 다음번에는 다른 친구들도 같이 올래!”
유모차 옆에 다른 친구들도 함께라면 가림막이 내려와도 행복할 테지.
“다행이네. 그럼, 멍멍이 형님은 어땠어?”
은호는 그림자를 건드리며 물었다.
“…똑같았다.”
좋았다는 말이었다.
“나도 좋았어. 역시 사람을 뭐든 질러야 한다니까.”
은호는 한가득 쌓인 물건을 바라보며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즐겁습니까?”
지혜가 넌지시 물었다.
“즐겁죠. 다 사주셨잖아요.”
“별거 아닙니다. 전부 다 환수들이 좋아하는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사이에 서은호 씨가 좋아하는 걸 넣으셔도 됐을 텐데요.”
“즐거웠나요?”
은호의 물음에 지혜는 잠깐 머뭇거리다 이내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서율이 고개를 휙 돌렸다.
“즐거워하는 거 다 티가 납니다, 국장님.”
서율을 향해 다가가려던 지혜는 그 자리에서 멈춰 숨을 내쉬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등을 돌린 서율을 보다 지혜는 조금 편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신기합니다. 환수와 이렇게 뭘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지혜는 눈꺼풀을 살며시 내리며 폭시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살며시 웃어주었다.
“네, 즐거웠습니다.”
깔끔한 대답에 은호 역시 웃었다.
“즐거웠다니 다행인데요? 사실 저는 마트를 좋아하는데, 다른 분들은 아닐 수 있으니 살짝 떨렸어요.”
“아니요. 정말 색다른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일단 서은호 씨가 제시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짐부터 옮길까요?”
지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율로 향했지만,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멍멍이 형님. 이거 잠깐만 맡아줘.”
은호는 물건을 가리켰다. 평소라면 그냥 가방에 집어넣을 텐데, 지혜와 서율이 있었다.
“아, 잠깐만.”
물건 중 바나나를 꺼내 가방에 넣었다.
이건 가방의 요정 코코가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물건들이 모조리 어둠으로 빨려들어 가는 걸 보며 은호는 태블릿을 꺼냈다.
버니멀을 추적한 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제 갈까요?”
“뭘 보고 가는 겁니까?”
서율이 묻자 은호는 씩 웃었다.
“마술을 보여줄 테니까, 따라와요.”
* * *
“…….”
서율은 말을 아꼈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그 많은 것을 내뱉기에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도 기가 찼다.
은호가 어떤 망설임도 없이 환수들의 집을 찾아왔다.
애초에 환수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들도 환수를 추적하기 위해서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저 고장 난 태블릿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대체 어떻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 눈동자를 자꾸만 움직였다.
조금 전 은호가 말한 대로 정말 마술에 가까웠다.
‘고장 난 태블릿이 힘을 사용하는 데 있어 매개체라도 되는 건가?’
서율이 꽤 진지하게 생각할 무렵, 지혜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은호를 따라온 이유는 법의 개정을 위해서였다.
은호처럼 환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환수와 어울려 사는 이들이 왜 없을까.
지금 기준은 너무도 딱딱했다.
‘잘 봐야 해. 그래야 제대로 된 기준점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친구들아.”
은호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은 싸늘한 눈빛을 하자 옆에 웅크려 있던 폭시 마저 은호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인간과 낯선 환수의 등장에 버니멀들은 나무에 꼭 붙어서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놀랐겠지만, 조금 전 나랑 눈이 마주친 친구가 있지?”
은호는 나무 꼭대기에 티가 나지 않게 매달린 물건들을 보았다. 그 개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처음… 훔친 게 아니구나.’
버니멀들이 머무는 이곳은 마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다. 마트 뒤에 있는 숲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추적하는 동안 느낀 이상한 점이라고 한다면 쓰지 않는 하수구 통로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조해 버니멀들이 사는 이곳까지 최적의 경로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그 경로를 만들 존재는 사람뿐이었고, 버니멀이 사람하고 얽혔다는 것 역시 알아챘다.
“너희 혹시, 누군가로부터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라는 협박을 받고 있어?”
은호가 조용히 묻자 버니멀은 갑자기 발끈했다.
“훔친 거 아니야! 훔친 거 아니라고! 이건 우리 거야!”
“맞아! 우리 거야! 우리가 얻어야 하는 정당한 대가라고!”
“정당한 대가라니?”
“왜 모르는 척해? 너도 알잖아! 다 알고 온 거잖아!”
대화가 통한다.
이 사실이 놀라웠지만, 버니멀들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인간이 왔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불쾌했다.
“친구들아, 잠깐 진정해봐. 내가 대체 뭘 알고 왔다는 거야? 나는 너희가 물건을 가지고 가는 모습밖에 못 봤어.”
은호가 버니멀들을 진정시켜보지만, 이미 바짝 날이 선 그들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를 찾아올 수도 없어! 가!”
“맞아! 가! 우리는 나가지 않을 거야! 우리는 계속 정당한 대가를 가져갈 거라고!”
버니멀 중 일부가 땅에 내려와 은호를 향해 머리를 흔들었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실로 땅을 내려치자 ‘팡’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바닥에 선이 사납게 그어졌다.
그 순간, 검은 바람이 몰아치며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고, 옆에 있던 폭시가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지혜와 서율까지 본 뒤에 은호는 눈을 깜빡거렸다.
슬그머니 은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든든하네.’
은호는 그들 사이로 걸어가 버니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서은호 씨!”
지혜가 다급히 부르자 은호는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괜찮아요.”
다시 앞을 바라본 은호는 손가락을 매만진 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우선, 놀라게 해서 미안해. 나는 너희가 걱정돼서 찾아온 거야. 다른 의도는 없었어. 정말이야.”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버니멀은 흑견에게서 느낀 공포에 서로 뭉쳐 있다가 고개를 올렸다.
조금 전과 다른 따스한 눈빛은 꼭 햇살 같았기에 버니멀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만약에 그 자리에서 사람들한테 들키면 너희가 위험해질 수 있어서 걱정했고,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걱정됐고, 만약에 정말로 물건을 훔친 거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려고 했어.”
하나씩, 하나씩 짚어가며 꺼내는 말에 버니멀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착각이었어. 너희는 물건을 훔친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가져갔으니까. 그렇지?”
가려운 부분을 긁듯, 듣고 싶었던 말을 꺼내는 저 소리에 버니멀들은 긴장을 풀며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맞아! 우리 몫이야!”
“우리는 당당하게 받아야 했는데, 대가를 주지 않은 건 인간들이야!”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소리에 은호는 싱긋 웃었다.
꽤 오래 쌓인 불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억울함이 깊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어떤 일이 있는지 말해줄래? 내가 다 들어줄게. 어쩌면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있잖아?”
콕콕 찌르는 듯한 부탁에 버니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