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3화(6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3화
63화. 마트는 위험하다(4)
권석현을 쓰러트렸다고 환수 관리국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놈을 쓰러트리면 분명 많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오늘이 바로 그 기회였다.
이 기회에 법 체제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고 바꾼다면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일은 버니멀이었다.
은호는 유모차를 꽉 쥐었다.
그 위로 폭시가 성큼 올라서는 은호에게 목소리를 냈다.
“친구를 도우러 가는 거야?”
“그래, 폭시야. 다 내 추측일 수 있는데, 그래도 정말 오해가 생긴 거라면 풀어줘야지. 그게 맞잖아?”
“응응. 오해는 풀어야 해. 나도 친구하고 오해를 풀고 싶어. 그때, 도망간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은호도 저 친구 대신에 꼭 말해줘.”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너희들의 임시 보호소니까.”
은호가 힘껏 꺼내는 저 말에 서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시 보호소라뇨?”
“환수와 사람의 중간 다리라고 생각해줘요. 저는 그 누구보다 환수와 사람들의 공존을 바라니까요.”
“……정말입니까?”
“네. 제 목표이자 행복이거든요.”
화사하게 웃는 은호의 눈웃음이 어떻게 거짓일까.
서율은 문득 지혜가 조금 전에 떠올린 그 말을 기억했다.
―……이게 우리의 미래야.
그 소리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환수를 위해 만들어진, 환수 관리국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 * *
이곳 마트의 사장을 만나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환수 관리국의 국장, 이지혜가 만나러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 말 한마디에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열려버렸으니까.
‘권력이 좋긴 좋아. 진짜 취할 것 같네.’
은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톡톡.
발을 건드리는 느낌에 은호는 고개를 내렸다.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멍멍이 형님?’
슬쩍 앞발 모양으로 바꿔 천장을 가리키자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천장에 뭔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버니멀이 물건을 매달아 놓았을 때와 비슷했다.
‘아니, 그냥 버니멀이 만들어준 거잖아?’
은호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그, 그건 제가 매달아 놓은 겁니다. 장식이죠.”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허둥지둥하며 말을 꺼냈다. 갑자기 천장을 바라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예쁜 장식이네요. 어디에서 샀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인, 인터넷 쇼핑으로 샀습니다.”
어색하게 웃는 모양새와 긴장한 모습이 강하게 보였기에 은호는 지혜와 서율을 힐끔 보았다.
‘환수 관리국이 왔다고 저러는 거지? 이건 좀 눈여겨 볼만 한데?’
버니멀이 만들어준 저 물건을 뺀다면 대부분 추측이고,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반응을 알아보려면 조금 더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가지 물어보러 이렇게 찾아왔으니까요.”
지혜가 사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뭘 물으러 오셨습니까?”
“여기에 환수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없습니다!”
사장이 발끈하며 바로 언성을 올렸다.
그 반응에 은호는 눈썹을 살짝 올린 채 입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런 일이 이번에 처음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뭘 듣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다 내쫓았습니다!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환수를 핑계 삼아 여길 압박하러 오셨습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조금 더 들어보신 뒤에 대답해주시는 건 어떠십니까?”
지혜는 사장을 달래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다시 돌려버렸다.
그 말에 사장은 눈을 꽉 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곳에 여러 번이나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경고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릅니다.”
“네. 살펴본 결과, 총 23번의 신고가 접수가 됐습니다.”
지혜는 손깍지를 꼈다.
접수된 횟수가 23번이라는 소리는 접수가 되지 않은 신고는 이것보다 최소 5배는 더 많다는 소리였다.
“흔히 이런 경우는 관리 대상이 되지만, 이곳은 유동이 많다는 부분을 고려해 관리 대상까지는 되지 않았습니다.”
지혜가 꺼내는 말에 사장은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그럼,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이곳에 출현한 환수와 관련해 여러 가지 묻고 왔습니다.”
“…제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사장은 두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그 짧은 말에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은호가 느낀 감정은 절망이었다.
버니멀이 느끼던 그 감정과 결이 몹시 비슷했다.
“제가 대체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또다시 이어진 사장의 말에 지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은호가 말한 버니멀과 사장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그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버니멀을 학대한 적도 없고, 납치한 적도 없으며 폭언마저 하지 않았다.
그저 소통하며 살갑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지.
무섭고, 괴상하고, 이상한 존재로 보였을까.
“이곳에 환수가 들어온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세코 그 아이들을 때리거나 어딘가에 팔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지혜는 저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법의 허점을 이토록 생생하게 느낄 줄은 몰랐다. 미간마저 살며시 찌푸려지며 부끄러움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런데 신고가 접수됐다는 이유 하나로 허구한 날 찾아와 저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장은 감정을 억누르지만, 얼굴에서 피어나는 원망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저 간절히, 꽉꽉 억눌러 담은 감정을 목소리에 실었다.
“오늘만은 제발, 그런 의도로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
은호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사장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장님한테 일어난 일은 몹시 유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로 오지 않았어요.”
“그러면 대체 어떤 일로 왔단 말입니까?”
사장은 입술을 핥았다.
저쪽에서 뜸을 들이면 들일수록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저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할 수 있는 건 죄다 했다. 결코 불똥이 튀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환수 친구들 말이에요.”
“더는 저랑 관련이 없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장은 목소리를 키웠다. 다급한 표정과 그것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다행이에요. 그 친구들을 배신한 게 아니라서요.”
은호가 꺼낸 그 말에 사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이 묘했다.
꼭 자신과 그 환수의 관계를 알고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번에 저희가 온 건 정말로 경고를 드리기 위함도 아니고, 사장님을 곤란하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압니다. 그 사실이 아주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압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혜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자 사장은 그제야 어깨에 힘을 뺐다.
이내 깊은 한숨이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그 친구들의 진짜 이름은 몰라요. 하지만 버니멀이라는 종이에요.”
은호가 미소를 품은 채 입을 놀렸다.
버니멀.
그 이름을 사장은 무의식적으로 따라 했다.
환수의 종류가 많고, 생각보다 비슷하게 생긴 종도 많고, 혹여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환수 관리인에게 잡혀갈까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그리던 이름이었다.
“혹시 최근 버니멀 친구들이 머무는 장소에 가본 적이 있나요?”
“저는… 모릅니다.”
사장은 다시금 침묵을 선택했다.
“괜찮아요. 저는 사장님과 버니멀 친구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이렇게 왔으니까요.”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오해가…….”
“버니멀 친구가 말해줬어요.”
“……?”
사장의 눈이 커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눈매가 살짝 가늘어지자 조금 전과 인상이 바뀌었다. 상당히 차가웠다.
“지금 중요한 버니멀 친구와 같이 왔다는 점이죠. 오늘 이 친구의 입과 귀가 될 생각이니까요.”
은호는 버니멀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일부러 가장 작은 버니멀을 데려왔다.
주머니에서 나와 책상에 올려진 버니멀은 고개를 들어 사장을 보았다.
‘어떻게…….’
환수는 만지고 싶다고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사장과 버니멀은 눈을 마주쳤다.
금세 책상 밑으로 버니멀의 눈물이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은호는 크게 당황했다.
“치, 친구야?”
“……왜 우리를 버렸어?”
버니멀의 구슬픈 소리에 사장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내 화들짝 놀라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혜와 서율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환수와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체포 안 합니다.”
서율이 부드럽게 사장을 다독이지만, 그런 말은 귀에 닿지 않았다.
“이 친구가 왜 버렸냐고 물어봤어요.”
잔잔하게 울린 은호의 목소리에 사장은 당장 입을 열었다.
“저도,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이 친구가 알아듣게요.”
은호는 조금 냉정하게 반응했다.
이 순간부터 모든 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으니까.
사장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인 뒤, 겨우 숨을 삼켰다.
“…이 친구들과 교류를 이어 나가던 어느 날,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이라 생각했죠. 평소에도 고객님의 항의가 많이 오니까요.”
대수롭지 않은 일.
그렇게 이 모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판단하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고객님들 중 이 친구를 본 모양인데, 단체로 항의하는 숫자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환수 관리국에서 사람이 오고, 조사도 받고, 벌금도 내고,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죠.”
사장은 손을 올려 이마를 꽈악 잡았다.
하루하루 조여오는 압박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벌금, 낼 수 있습니다. 경고, 저 친구를 학대한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연행되겠습니까?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지만, 더 큰 걱정이 눈앞에 닥쳐왔다.
두 발치에서 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들이 밟혔다.
그 작은 아이들이 왜 내쫓겨야만 하는가.
“……하지만 보통 이런 사건과 얽힌 환수를 환수 관리국에서 데려간다죠? 환수법에 적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 친구들이 가진 모든 걸 뺏기게 둘 수 없었습니다.”
익숙했던 일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자 지혜와 서율은 입을 열지 못했다.
환수를 위해 그들을 데려가는 일이 환수의 목을 졸라버릴 줄이야.
“……다시는 마트로 오지 못하게 단호하게 정을 끊어야 했습니다. 저 아이들이 상처받을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했습니다. 그래야 환수 관리국에서 저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 아이들이 모든 걸 잃지 않을 테니까요.”
사장은 가슴이 썩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저 아이가 어떤 표정을 하는지 보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마트에 온다는 사실을. 물건을 들고 간다는 일도, …몰래몰래 이전처럼 저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요.”
사장은 버니멀과 다시금 눈을 마주쳤다. 사르르 번지는 미소를 막을 수가 없었다.
“다 알지만, 더는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촉촉이 젖어버린 사장의 눈동자를 보자 털 속에 숨겨졌던 버니멀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이어 은호가 들려주는 말에 버니멀은 입을 꽉 다물었다.
혼란으로 가득 찬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말했는데, 우리가 못 알아들은 거야? 그런 거야?”
버니멀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마지막에 저 인간이 놓고 간 상자.
그 상자 안을 가득 채운 건 화려한 색을 뽐내는 젤리도 아니고,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빵 봉지도 아니었고, 입을 홀리는 과자도 아니었다.
모두가 느낀 건 저 인간의 사랑이었다.
“너는… 우리한테 작별을 고했는데, 우리가 바보처럼 알아듣지를 못한 거야?”
버니멀은 가슴을 조여오는 아픔에 앞발로 가슴을 힘껏 쥐었다.
작별을 고한 거라면.
마지막으로 사랑을 남겨주고 떠난 거라면.
멍청하게 그걸 알아듣지 못한 게 자신들이라면.
그 원망마저 미안해서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너를 많이 아프게 한 거야?”
버니멀은 고개를 떨구었다.
책상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번지고, 또 번졌다.
그 눈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한 마리와 한 명으로 이뤄졌다.
“…아니. 아니. 나는 아직 너희와 작별을 고하지 않았어.”
은호가 알려준 그 말에 사장은 치솟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별을 고할 차례였다.
사람과 환수.
이 관계는 결코, 이어갈 수 없으니까.
“……오늘, 너희와 작별을 고하려고.”
“아니요.”
은호는 그 말에 주저하다 단호하게 사장에게 말했다.
“하지 마세요. 하지 않아도 돼요.”
“…….”
“괜찮아요. 오늘은 슬픔을 나누지 않아도 돼요.”
은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갔다.
손을 들어 지혜와 서율을 가리켰다.
“왜 데리고 왔겠어요?”
“하지만…….”
“압니다. 현재 현행법상, 이 모든 걸 예외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환수와 사람이 어울렸다고 내려진 이 결과는 부당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환수 관리국의 국장으로서 더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어 서율 역시 머리를 내렸다.
“반드시 법을 개정하도록 힘을 쓰겠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고개를 든 지혜는 사장을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렇죠. 환수와 사람이 만나는 게 뭐가 잘못됐겠어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뿐이에요. 무엇보다 그 법에 환수와 만나면 안 된다는 건 없으니까요.”
신고한 사람은 잘못하지 않았다. 환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니까.
신고를 접수한 사람 역시 잘못되지 않았다. 만약에 환수가 정말로 사람을 공격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잘못된 건, 현실을 반영해 예외 상황을 두지 못한 법이었다.
“앞으로 여기가 아니라 버니멀들의 집에서 만나는 게 어떨까요?”
은호가 꺼내는 제안에 사장은 바보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말 말고, 인사해주세요. 미안하다고 사과해주세요. 더 많이 아껴주세요.”
“제가……. 제가 감히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꺼냈다.
저 아이들을 단호하게 내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제와서 용서를 빌어도 될지 몰랐다.
상처받은 그 마음에 소금을 뿌리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두려워졌다.
은호는 버니멀을 조심스럽게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까요?”
“…어딜 말입니까?”
사장이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친구들한테 사과하러요.”
* * *
사장은 들기도 벅찰 만큼 큰 상자를 들고 달렸다.
버니멀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담았다.
강물에 신발이 젖고, 옷이 젖어도 상관하지 않고 달렸다.
무릎에 붙인 파스가 떼어진 느낌이 들어도 괜찮았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도 행복했으니까.
하지만 사장은 버니멀들을 보자마자 상자를 놓아버렸다.
바라보는 눈빛이 기억 속과 달라져 있었으니까.
사장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미안해!”
목이 터지라 외쳤다. 은호가 뒤따라온다는 걸 알지만, 핏줄이 곤두설 만큼 소리쳤다.
“나는 너희를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 매 순간, 보고 싶었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치고, 소리치다 목이 갈라질 무렵,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은 눈을 천천히 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버니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감정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뚝뚝 흘리는 눈물을 보자 사장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