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4화(64/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4화
64화. 범인이라니
똑똑.
“들어와.”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은호는 연구소에 있는 태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싱글벙글한 태호의 표정을 보자 은호는 바로 궁금증을 느꼈다.
“아, 왔어, 은호 씨? 피는 잘 뽑았어?”
“뽑긴 했는데, 아파요. 특히 주사기가 좀 무섭죠.”
은호가 팔을 문지르자 태호는 미소를 뚝 멈추며 눈을 가늘게 떠 바라보았다.
“은호 씨. 양심이 없는 건 내가 진작에 알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내가 왜 양심이 없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저 말에 흑견이 그림자에서 나와 가늘어진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멍멍이 형님은 왜 또 그렇게 봐? 그거 나쁜 눈인데?”
“……허.”
흑견이 내뱉는 허탈한 소리에 태호가 꺼내는 코웃음 소리가 자연스럽게 묻혔다.
흑견과 태호의 눈이 맞았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게 느껴졌다.
말없이 병원에서 뛰쳐나가고.
말없이 권석현을 쫓고.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에 태호는 입이 다 간지러웠다.
―서은호 씨 말입니다. 사실 박사님 동생이 아닙니까? 사고 치는 게 똑같거나 더합니다.
느닷없이 가을이 던진 그 말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어 더 기가 찰지도 몰랐다.
어떻게 저 사고뭉치랑 자신이랑 같이 볼 수 있는지.
‘진정하자. 은호 씨는 연구원이 아니잖아?’
그 간격이 간신히 이성을 유지해주자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형? 지금 왜 양심이 없는지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죠?”
“…뭐, 어쨌든, 아윤 씨가 피를 뽑는 게 직접 상처를 내는 것보다 덜 아프지 않아?”
“주사기가 무섭잖아요.”
“칼은 안 무섭고?”
“친숙하죠.”
살을 파고드는 느낌은 별로인데, 칼이 손아귀에 착 하고 감기는 그 느낌이 좋았다.
은호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웃었다.
“은호 씨는 기준이 참 이상, 아니, 독특해.”
태호는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웃는 모양새에도 어색함이 공존했다.
“그냥 이상하다고 말을……. 아, 오늘 들어보니까 아윤 씨가 내 피 일부를 가져간다고 들었는데, 그거 형 생각이에요?”
“맞아. 저번에 조사해도 된다고 허락받았잖아. 혹시 잊었어?”
태호가 묻자 은호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그렇죠.”
“은호 씨, 술 약했던 거야?”
“아뇨. 강한데, 필름이 좀 끊기는 편이에요.”
“아아, 그 뒤에 은호 씨는, 은호 씨가 아니었어?”
권석현 퇴치 파티를 당연히 잊지 않고 했다. 실컷 마시고, 또 마시지 않았는가.
“네……? 그때 뭐 어땠길래 그래요?”
―인간은 술을 마시지 마라. 절대로.
흑견도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은호의 시선이 흑견에게 향했다. 그때처럼 가늘어진 눈 그대로 입을 열었다.
“상상하지 마라. 손이 많이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흑견이 말을 하다 멈췄다. 그 반응에 은호는 눈썹을 슬쩍 올렸고, 태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궁금하면 보여줄게. 동영상도 있는데?”
“그, 그런데 뭐 보고 있길래 그렇게 웃고 있어요? 너무 궁금한데요?”
“아아, 이거 보여줄게.”
태호는 서류를 가져와 넘겼다.
“읽어 봐, 은호 씨.”
“읽어도 돼요?”
“솔직히 나한테 보내는 게 아니라 은호 씨한테 보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저 말에 은호는 소파로 걸어가 앉은 뒤에 서류를 읽었다.
“…이거 환수 관리국에서 온 거예요?”
“공식 문서야.”
태호가 씨익 웃자 은호는 서류를 찬찬히 읽어나갔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환수와 관련된 일에 환수 연구소와 연계를 했으면 좋겠다.
환수와 관련된 여러 법 조항 개선을 위해 도움을 달라.
이런 내용이기에 은호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그래. 사실 환수 연구소만큼 힘이 되어줄 곳도 없지.’
은호는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멈췄다.
「…이러한 이유로 그분의 협력이 앞으로도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날 빌려달라고 하는 거 맞죠?”
은호는 마지막 문장이 기가 찼다. 잘 포장했지만, 결국, 그 말이었다.
“맞지. 은호 씨가 가진 힘은 이쪽 업계에서 충분히 홀릴 만한 힘이니까.”
“형. 봤나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어요?”
“알고 있는데, 버니멀을 봤다며?”
치사하게 혼자서.
그 말이 미묘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은호는 눈동자를 굴려 흑견을 바라보았다.
“왜 날 보는가?”
“그냥? 습관적으로?”
“내 말이 저 인간에게 들리겠는가.”
흑견은 앞발을 뻗어 은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낄낄.
흑견은 만족해하며 웃자 은호는 머리카락을 향해 바람을 불어넣었다.
“왜 흑견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이지혜 국장한테서 연락이 왔지. 거기서 우리 은호 씨가, 환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며?”
태호가 꺼낸 말에 은호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입을 놀렸다.
“그건 상황이 그랬어요. 제가 그러지 않았다면 사장님하고 버니멀이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걸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알리듯 은호는 눈을 좁혔다.
“은호 씨가 했던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버니멀의 미소를 혼자만 본 건 치사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줬어야지.”
“뒤를 수습해야 하니까요? 그런 거라면 이지혜 국장님의 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런 종류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러면요?”
전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저 표정에 태호는 딱밤이라도 때리고 싶었다.
“환수 관리국에서 은호 씨를 노리고 있는 거 잊었어? 그리고 말을 해줘야 내가 바로 도와줄 수 있잖아?”
잠깐 침묵하던 은호가 가볍게 웃었다.
“이럴 줄 알고, 형한테 보여주려고 버니멀 사진과 동영상을 가지고 왔죠.”
“뭐? 진짜?”
태호가 기뻐하며 바로 달려왔다.
똑똑.
노크 뒤에 문이 열렸지만, 두 사람은 버니멀의 사진에 푹 빠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흑견은 자리에 웅크려 길게 하품했고, 이 모든 걸 바라본 가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분명히 태호에게 따끔히 혼내라고 말했는데, 아주 박자가 잘 맞았다.
“서은호 씨.”
날카롭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은호는 어깨를 떨었다.
이어 본능적으로 태호 역시 몸을 떨며 침을 꼴딱 삼켰다.
“내, 내가. 어? 이런 큰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달라고 했잖아?”
“…그랬죠! 깜박하고 말았어요!”
“너무 연기 티가 너무 나니까, 두 분 다 앉아보십시오.”
가을의 지시에 은호와 태호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서은호 씨.”
“…네!”
“이런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말씀해주십시오. 뭐든 얼른 입을 막아버려야 후처리도 편합니다. 환수 관리국이 하는 것보다 제가 더 확실하고요.”
꽤 살벌하게 들려오는 말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대로 말해야죠.”
“그렇게 잘 아시니 앞으로 사고는 안 치시리라 믿습니다.”
가을이 웃자 은호는 뻣뻣하게 굳어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미소가 이렇게나 살벌할 줄이야.
“해당 사건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했으니까요.”
“…고마워요, 가을 씨.”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가을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태블릿을 이리저리 살폈다.
“저번에 부탁하셨던, 환수 반응과 초능력 반응, 그 결과가 나와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플라빗 형제를 돕기 위해 연구소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땅이 원인 모를 이유로 썩었고, 나무 역시 시들어버려 땅과 나무 둘 다 살려내 검은 꽃과 하얀 꽃을 피우지 않았는가.
왜 땅이 썩어버렸는지. 왜 주변에 죽음의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나는지.
그 주변을 맴돌며 범인을 찾던 윈디드를 돕고자 태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시간이 걸린 건 우선 다른 일과 겹쳤고, 해당 장소의 수색이 지체됐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꺼낸 말에 은호는 아차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 부분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피를 떨어트려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대에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풀들의 모습만 떠올랐다.
“…오염된 땅의 샘플, 찾았나요?”
“아뇨. 연이은 수색에도 땅이 썩었다는 은호 씨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은호가 머쓱해하자 가을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더 큰 발견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더 큰 발견이요?”
“그곳에서 서은호 씨가 힘을 사용하셨죠?”
“그렇죠.”
은호는 대답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괜히 눈을 깜박거렸다.
“검은 꽃과 흰 꽃이 피어 있는 그 일대 주변의 오염 농도는 0입니다.”
“…뭐라고?”
대답은 태호에게서 들려왔다.
“0입니다, 박사님.”
“그, 그게 가능하다고?”
“그렇습니다. 저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건 그냥 땅이 새로 만들어진 수준이 아닙니까?”
태호도 그렇고 가을도 뭔가 새로운 발견에 들뜬 게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은호의 표정이 밝진 않았다.
능력이 좋다는 건, 굉장한 시너지를 일으켜 사회에서 엄청난 위치에 서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효율이 좋은 부속품이 될 가능성 역시 컸다.
“이 모든 일은 내 허락을 받고 이루어지는 거 맞죠?”
은호가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물론이지. 은호 씨가 하기 싫으면 안 해. 가끔, 안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뒤통수치는 쓰레기들이 있다는 거 알아. 그런데 나는 아니야.”
태호가 확고함이 꽉 담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은호는 여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저런 느낌으로, 저런 목소리로 말을 꺼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은호 씨가 가진 힘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그 위험도를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최대한 은호 씨를 보호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은 알고 있어요.”
“은호 씨. 나는 은호 씨를 이용, 아니, 사회적 부속품으로 보지 않아. 제아무리 위대한 발견일지라도 누군가를 짓밟고 만들어지는 거라면 오히려 내가 사양할 거야.”
은호의 시선은 흑견으로 향했다.
이 와중에도 크게 하품하는 모습에 구역질처럼 올라오던 감정이 싹 날아갔다.
이곳은 다른 세계였다.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초기화된 세계이기도 했다.
그제야 은호는 미소를 얼굴에 걸었다.
“내 피로 무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을 씨가 꺼낸 말을 들어보면 땅의 오염도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어.”
“환경 오염? 그런 거예요?”
“맞아. 그거랑 연관되어 있지. 결국, 모두가 다 자연 속에 살고 있잖아? 자연의 근간은 땅인데 당연히 중요하지 않겠어?”
“환경 오염이 심해요?”
“심해.”
태호는 주저 없이 말을 던진 뒤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별로 안 심해 보이지?”
“네. 잘 모르겠던데요?”
“얼마 전까지, 아니다, 환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난리도 아니었다고 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몰라 은호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환수의 등장으로 초능력자가 나타난 거 저번에 말해서 알고 있지?”
“네.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요.”
“아직도 그 힘이 뭔지 확립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환수 주변에 특이한 힘이 흘러. 그 힘이 사람한테 노출이 되어 초능력이 발현되었다. 이게 정론이야.”
태호의 말을 듣던 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나도 멍멍이 형님이랑 계속 가까이 있으면 초능력자가 될 수 있어요?”
“아니, 그건 불가능해. 초능력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이 되니까. 왜? 아쉬워?”
그제야 은호는 안도하며 몸을 옆으로 누워 웅크려 있던 흑견의 품에 기댔다.
“아뇨. 되게 놀랐어요. 정부든 뭐든 소속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음…….”
은호는 잠깐 헤드셋을 벗었다.
이 말을 흑견이 듣는 와중에 하고 싶진 않았다.
“그 힘, 어떻게 보면 부정적일 수 있잖아요? 정화자나 환수 밀렵꾼들이 환수들을 싫어하는 게 그 이유라면서요?”
“그렇지. 그 힘만 가졌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환수가 내뿜는 그 힘이 자연을 정화하는 힘이 있었어.”
“……네?”
은호가 상체를 일으켰다.
“완벽하게, 확실히 이런 건 아니지만, 환경 오염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몇십 년으로 후퇴시킬 힘이 있었어. 그 사실을 밝혀지고 나서 세계에서는 환수를 보호종으로 지정한 거야.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오니까.”
그제야 은호는 환수가 왜 보호종인지를 이해했다.
솔직히 특별하기에 보호종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건 비밀이야, 은호 씨.”
“어째서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과학을 믿지 않아. 환수의 존재로 미뤄진 미래의 재앙이 결국 닥친다고 생각하면 누굴 먼저 죽일 것 같아?”
“……환수요.”
믿음이 배신이 되는 순간, 응징해야 할 대상은 너무도 분명했으니까.
“어쨌든, 설명이 길었지만, 은호 씨가 가진 잠재력이…….”
“솔직히, 그건 너무 기대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은호도 자신의 피가 어떤지 궁금했다.
하지만 드루이드의 힘에게 선택되었지,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과연 타인의 손아귀에도 피가 이용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알아. 살펴봐도 나쁘지 않다는 거지, 은호 씨한테 막 부담스럽게 미래를 구할 영웅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태호가 손사래를 치자 그제야 은호가 더 활짝 웃었다.
“그럼, 됐어요.”
이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조금 전에 미처 하지 못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가을은 대화가 끝난 걸 알고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조금 전 태호가 꺼낸 말 못지않게 몹시 중요했으니까.
“맞네요. 결과를 듣지 못했죠?”
은호의 물음에 가을은 고개를 끄덕인 뒤 흘러내린 안경을 올렸다.
은호와 태호의 시선이 쏠리자 가을은 결과를 알렸다.
“그 주변에 초능력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은호와 태호는 둘 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범인은… 환수입니다.”
뒷말을 꺼내는 가을은 깊은 쓴맛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