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7화(6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7화
67화. 범인이라니(4)
왜 그렇게 말하는 걸까.
환수들은 눈동자에 의문을 담았다.
“그동안 많이 슬펐지?”
은호의 물음에 환수들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코를 벌름거렸다.
한 마리씩 몸에 힘이 쭉 빠진 기분을 느꼈다.
슬쩍 시선을 옮겨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수많은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울퉁불퉁하고 뾰족했다.
이걸 맞아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체 무슨 짓을 해버린 걸까.
당황함에 그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제 다 괜찮을 거야.”
잘못도 토닥거리는 듯한 저 표정과 미소에 한 마리씩 가슴에 꽂히는 죄책감에 통증을 느꼈다.
죄도 없는 인간한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모두가 굳어버렸다.
작아지고, 작아지는 느낌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미… 안해.”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흑견의 앞에서 몸을 덜덜 떨던 족제비를 닮은 환수로 시선이 쏠렸다.
“…미안해.”
해당 환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까만 밤이 내려온 그 날. 땅도, 나무도 알 수 없는 힘에 죽어가던 그 날. 숨을 참고 숨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길고 매서운 발톱이 등을 찔렀다.
아팠다. 피가 흘러내렸다.
―인간이 했다, 그렇게 퍼트려라. 나중에 찾아오지.
몸속을 긁어내리는 듯한 목소리도, 나중을 기약하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온몸을 타고 흐르는 그 두려움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도망쳐도 찾아와 죽일까 싶어 떠나지도 못했다.
“……미안해.”
환수는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꽈악 참으며 몸을 웅크렸다.
자신은 울 자격도 없었다.
집을 잃었고, 목숨마저 잃고 싶지 않은 비겁함에 입을 놀려버렸다.
“내가… 미안해. 모두를 속였어. …너를 비난했어. 날, 날… 원하는 대로 해.”
환수는 앞발로 얼굴을 가리며 모든 힘을 풀었다.
집과 숲이 돌아오는 걸 보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 존재보다 저 인간이 나았다. 적어도 아프지 않게 죽여줄 것만 같았다.
풀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환수의 몸이 달달 떨렸다.
“친구야.”
상냥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귀를 간질거리자 환수는 그대로 굳어졌다.
“지금 나한테 사과한 거야?”
은호의 물음에 환수는 눈을 천천히 떴다. 하지만 차마 마주하지 못했다.
“……응. 내가 겁쟁이라서 궁지에 빠지도록 널 밀어버렸으니까.”
“왜 그랬을까? 인간인 내가 그렇게 싫었어?”
“……아니, 무서웠어. 그 존재한테 죽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어.”
은호는 쪼그려 앉아 환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팔보다 훨씬 작은 환수가 온몸으로 사과하고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눈으로 저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악!
은호는 환수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쓸데없는 생각에는 이게 최고이지 않을까.
“이거… 벌이야?”
환수는 놀란 눈을 했다. 인간이 실실 웃고 있었다.
“아니. 이게 벌이기에는 네가 한 일이 너무 크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줄 일이 있어.”
“내가 해줄 일……?”
환수는 상체를 일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든 할게. 뭐든 하게 해줘! 제발… 내가 할게!”
은인이었다.
인간을 떠나 집을 되찾아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사실을 바로 잡아줘. 이 이상, 왜곡된 사실이 퍼지지 않게 도와줘.”
“…….”
환수는 그 존재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앞발을 꾹 쥔 채로 목에 힘을 주었다.
“내가 책임질게! 내가 했으니까, 내가. 내가 열심히 사실을 바로 잡을게! 이 일은 우리가 했다고!”
환수가 내던진 말에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커졌다. 은호는 그 웅성거림에 손을 뻗다 말고 덩달아 시선을 돌렸다.
“우, 우리가 했다고?”
“우리 중에 약속을 깬 존재가 있다고?”
“…말도 안 돼. 약속을 어떻게 깼다는 거야?”
약속이 그들 입에서 튀어나오며 혼란이 가득 드러났다.
‘아까 멍멍이 형님이 말했던 그 약속이지?’
은호는 조금 전 흑견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태어나면서부터 각인된 약속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며 우리를 받아준 인간과 그들이 생활하는 이 땅을 헤치지 않기로. 하지만 지금 그 약속이 깨져버렸다.
사람과 사람끼리 하는 약속과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저들의 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봤어.”
다른 환수가 떨면서 목소리를 흘렸다.
“나도… 너처럼 협박당했어.”
환수는 족제비를 닮은 환수를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괜찮아?”
은호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환수의 표정에 상태부터 물었다.
집과 터전을 잃었다.
그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당했다면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나도 너한테 돌멩이를 던졌어. 나도 너를 비난했어. 그러니까 해야 해.”
환수는 울먹거리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함이 눈가에 걸려 있었다.
“어떤 환수인지 봤어? 나한테 알려줄 수 있겠어?”
“…눈이 빨갰어.”
“덩치가 커. 엄청 커. 힘을 사용하자마자 나무가 녹았어.”
족제비를 닮은 환수 역시 뒷말을 이었다.
“언제 이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친구 있어?”
“……밤이 두 번 지났어. 저쪽으로 갔어.”
어디선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무 뒤에서 앞발이 쓱 나와 방향을 가리켰다.
‘이틀 전.’
은호는 머리를 굴렸다.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쫓을 이유가 생겼다.
“친구들아.”
은호는 움직이기 전에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인간들이 너희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너희 옆에 같이 서고 싶어.”
겨우 한 꺼풀.
이 한 꺼풀을 벗겨내기가 어려워 인간과 환수 사이에 오해와 불신과 여러 부정적 감정이 가득 쌓이지 않았을까.
“나는 서은호야. 내가 더 많이 너희들에게 다가갈 테니까, 날 기억해줘.”
은호는 소박한 바람을 저들에게 꺼냈다.
환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마구마구 기억해줬으면 했다.
그래도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줬으면 했다.
“더는 울지 말고, 오늘은 기쁨으로 가득 찼으면 해.”
은호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봄바람처럼 살랑살랑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타고 숲의 냄새가 깊게 났다.
하지만 이곳의 냄새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환수들은 이 냄새가 저 인간의 냄새라는 걸 눈치챘다.
은호는 흑견을 타고 움직였다.
점차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환수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숲을 되살렸음에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집을 찾아줬음에도 기뻐하라는 게 전부라니.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었어.”
한 환수가 돌멩이를 주웠다.
몸에 상처가 없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나쁜 건 우리들이었어.”
미안함에 눈물을 흘러내렸다.
“다음에 만나면 꼭… 안아줄래.”
저 상냥한 인간을.
* * *
“…냄새를 쫓을 수 있겠어?”
은호가 흑견의 머리 쪽에 바짝 붙어 물었다.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았다.
“솔직히 모르겠다. 냄새가 너무도 흐릿하다.”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윈디드가 하늘에서 아래를 보고 있었다.
상대는 흔적을 숨기는데 아주 익숙했다. 보지 못한 환수였기에 추적은 불가능했다.
“잠시만 멈춰봐, 멍멍이 형님.”
은호는 숨을 들이켜며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흔적을 지운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눈이 있는데 누군가는 보지 않았을까.
“혹시, 방법을 찾았는가?”
“그건 모르는데, 일단 그냥 해보려고.”
은호는 땅으로 내려왔다.
가방에서 피가 담긴 병을 꺼내 살짝 부은 뒤, 교감의 힘을 끌어왔다.
그의 손에서 빛이 맺혔다. 제아무리 환수가 흔적을 지웠더라도 수많은 눈이 되어주는 식물이 있는데, 이것까지 어떻게 치울 수 있을까.
빛이 맺힌 그 손으로 나무를 붙잡았다.
“식물들아, 나한테 저 땅을 죽여버린 환수가 어디로 갔는지 보여줘.”
식물들이 땅을 통해 이미지를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은호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를 받아들이다 말고 코피를 주르륵 흘렸다.
망치로 몇 번이나 머리를 때리는 듯한 통증에 휘청거리다 못해 아예 땅에 주저앉았다.
흑견이 붙잡아 머리를 땅에 박지 않았지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와. 이거 머리가 상당히 깨지는 일이었네?’
이미지가 하나씩 들어오던 때와 달리 한꺼번에 밀어닥치니 달랐다.
모여든 이미지가 동영상처럼 머릿속에 재생이 되었다.
어두운 밤,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은호는 손등으로 코피를 닦으며 웃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았다.
“말썽꾸러기! 갑자기 왜 그래? 아까 돌멩이라도 맞은 거야?”
윈디드가 내려와 묻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가자. 방향을 알았어.”
고개를 흔드는 것만으로 속이 좋지 않았다. 입을 틀어막고 흑견을 바라보았다.
어둠으로 은호를 등에 태운 흑견은 가려던 방향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달릴 테니, 방향만 말하거라.”
“직진.”
은호의 말에 흑견은 그 어떤 순간보다 부드럽게 달렸다.
은호는 교감의 힘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퍼지는 빛이 나무에 닿자 계속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 환수가 움직였던 그 방향대로 은호는 지시했고, 흑견은 달렸다.
피가 퍼졌던 범위를 벗어나면 귀신같이 이미지가 전달되지 않았기에 은호는 다시금 피를 뿌리며 추적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은호가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흑견이 알아서 걸음을 멈췄다.
은호는 가빠진 숨을 진정시켰다. 눈에 핏대가 서고,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기에 교감의 힘을 멈췄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덤불로 들어가는 게 마지막 이미지였다.
“…내려라, 인간.”
흑견이 몸을 낮추며 은호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꽤나 사나웠다.
“앞에 뭔가 있다.”
흑견은 잠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날다 땅으로 내려오는 윈디드의 날갯짓을 바라본 뒤, 조심스럽게 앞을 바라보았다.
은호는 피를 떨어트렸다. 그의 주변으로 식물들이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맞아. 여기 앞에 있어.”
“더는 오지 마라. 역겨운 냄새가 숨어 있다.”
희미하지만, 땅을 썩게 한 바로 그 냄새가 비정상적으로 사방에 퍼져 있었다.
흑견은 어둠을 부풀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어둠으로 시야를 가리는 수풀을 한 번에 잘라버렸다.
“이거 약속 위반 아니야?”
윈디드의 착륙과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자 흑견은 귀를 흔들며 낮게 말했다.
“위에서는 볼 수 없었나?”
“나무가 너무 빼곡해. 일부러 이곳을 정한 모양인데?”
“그래? 저 썩을 놈이 아주 영리하다는 말이네?”
뒤에서 은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흑견의 눈이 커졌다.
“인간……?”
은호는 또 흐르는 코피를 닦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
“식물 친구들아, 잠깐만 비켜줄래?”
은호의 피를 머금은 그의 말을 따라 숲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방향이 이상하게 달랐다.
은호의 피부로 스쳐오는 자연의 경고가 싸늘하다 못해 따가웠다.
의문도 잠시 식물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는 걸 알자 은호는 반사적으로 교감의 힘을 끌어왔다.
빠르게 자라난 나무가 흑견과 윈디드를 감싸는 그때,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무언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과 함께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몰랐다.
숲이 썩어버렸을 때 나던 냄새가 머리를 찌르자 은호는 그 냄새를 감당하지 못했다.
“……우웩!”
감았던 눈을 뜨자 코앞에 풀과 가지, 그리고 나뭇잎이 가득한 상황과 마주했다.
은호는 자신을 감싼 나무를 헤치고 밖으로 나오자 무언가 자신을 물고 달렸다.
까만 털 같은 어둠이 흔들렸다.
은호는 뒤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용암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액체 닿는 모든 게 녹아내렸다.
‘……저 힘이야.’
땅과 식물들을 죽인 그 힘.
“나중에 봐. 찾아갈게.”
윈디드가 빠르게 말을 하며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깐…….”
은호는 말을 꺼내다 말고 속에 든 무언가를 쏟아냈다. 비릿한 피 맛이 진하게 났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 은호는 바닥으로 고개도, 두 팔도 축 내렸다.
“잠깐 숨을 참거라.”
흑견의 목소리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꽤 멀리 달린 뒤에야 은호를 내려주었다.
그를 바라보는 흑견의 시선마저 조급함이 보였다.
“…봤어?”
은호는 땅에 누운 채로 물었다. 입가를 따라 피가 흘렀다.
“봤고, 병아리가 쫓고 있다.”
“다행인데?”
“기대는 하지 마라. 상당히 멀리 있었으니까.”
흑견은 앞 발가락으로 은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조금 전에 퍼진 그 힘은 땅에 숨겨져 있었다.”
“땅속에……?”
“그래. 꽤 오랫동안 준비한 모양이었다.”
“일으켜줘, 멍멍이 형님.”
“뭘 하려고 그러는가?”
“…숲을 되돌려야지.”
은호는 고개를 돌리다 말고 눈이 커졌다.
“오면서 인간이 피를 뿌리지 않았는가. 나는 냄새를 피해 달렸을 뿐이다. 그 냄새라면 인간의 폐를 썩게 할 테니까.”
흑견은 입꼬리를 올렸다.
숲은 썩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은호에게 인사하고 있었으니까.
“우연이든 뭐든 인간이 비극 하나를 저지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오면서 숲이, 여러 존재들을 보호하는 걸 보았다.”
“냄새는… 괜찮아?”
“영향이야 조금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괜찮은가?”
“그래.”
은호는 눈을 감으며 웃었다.
흑견 말대로 우연이든 뭐든 자신의 피를 머금은 숲이 비극을 막아버렸다.
그 사실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괜찮지 않을까.
* * *
“…형. 여기요.”
은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밖으로 나가려던 태호와 마주했다.
“은호 씨. 얼굴이 좀… 이상한데? 열이라도 있어? 왜 이렇게 식은땀을 많이 흘려? …이거 피야? 지금 피… 흘린 거야?”
걱정이 뒤따르자 은호는 바로 오염된 흙의 샘플을 넘겼다.
토템에 묻은 흙을 보더니 태호는 입을 다물고는 숨을 들이켰다. 곧 천천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설마.”
“맞아요. 오염된 흙 샘플이에요.”
은호가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