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8화(68/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8화
68화. 정상의 경치는 멋지다
태호는 그 말에 잠깐 머리가 정지된 듯한 반응을 내보였다.
분명히 조금 전에 오염된 땅을 보게 된다면 샘플 좀 가져다 달라고 말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가져오다니.
“…이거 진짜 샘플이라고?”
태호는 믿기지 않아 다시금 물었다.
“네, 샘플이에요. 이런 걸로 장난치진 않아요.”
“아니, 이걸…….”
태호는 봐도 봐도 엉망인 은호의 꼴에 말을 멈췄다.
누가 봐도 어딘가에 열심히 구른 듯한 꼴이었다.
눈동자를 굴려 은호 옆에 있는 흑견을 보았다.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해 보였다.
바로 상황을 이해한 태호는 샘플을 아주 조심스럽게 책상에 내려놓은 뒤에 은호를 데리고 소파에 앉혔다.
은호가 눈을 깜박거릴 무렵, 태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했다.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아아, 고생이 많아. 아니, 다른 일이 아니라 사람 좀 보내줄래? 어어. 맞아. 와, 어떻게 알았어? 어어. 알겠어.”
“누구한테 연락한 거예요?”
“곧 알 수 있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은호는 그 말에 눈이 스르르 감기는 걸 억지로 참았다.
저 샘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무척 궁금했다.
‘보통 얼마나 걸리는 거지?’
??.
뭔가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책에 매달린 헤인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 헤인아. 인사가 늦었네.”
은호의 말에 헤인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거리며 호선을 그린 입꼬리를 내보였다.
“별로 늦지 않았어. 네 상태가 좀 이상해서 나도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이야. 그런데 왜 아플 걸 참고 있어?”
이것도 인간의 특징일까, 헤인은 호기심을 담아 바라보았다.
“인간. 이대로 엉뚱한 걸 알려주게 될 텐데, 자꾸 버티고 있을 건가?”
흑견이 대놓고 은호를 찔렀다.
“버티는 게 아니라, 그래야 하니까. 삐약이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삐약이한테 전해 들은 말을 얼른 태호 형한테 전달해줘야 하잖아?”
은호는 오히려 억울했다.
그 환수는 땅에 본인의 힘을 심어 터트릴 수 있었다.
이게 그 환수가 가진 힘의 전부인지, 일부인지도 알지 못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힘을 심어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니다.’
은호는 밀려드는 통증과 어지러움에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다.
지금 눈앞에 환수 전문가가 있지 않은가.
은호가 제법 깊게 바라보자 태호는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왜 그렇게 보는 걸까…?”
“형. 있잖아요?”
저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태호는 얼른 주제를 돌려버렸다.
“바, 방금 디어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준다는 걸 잊을 뻔했네!”
디어네라는 말에 은호의 눈빛이 확 살아났다.
일렉트한테 전기 나무를 만들어 준 후유증으로 쭉 병원 생활을 했을 때.
그때, 흑견과 자신을 감시하던 이를 쫓다가 정화자한테 공격당한 환수를 구한 적이 있었다.
그 환수가 바로 디어네였다.
“진짜요?”
은호는 활짝 웃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고, 그 뒤로 쭉 의식이 없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차려주다니.
“아마 오래 정신을 차리지는…….”
“형. 일단 갔다 올게요.”
“어……?”
은호는 태호가 얼이 빠진 사이에 방을 벗어났다.
“잠시만, 은호 씨!”
뒤늦게 뒤에서 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디어네한테요.”
씨익 웃던 은호는 어디선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까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환수 친구 중에 아픈 얘가 생겼어요?”
“아니. 눈앞에 있잖아.”
태호가 연구소 가운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승리의 찬 미소를 지었다.
“누구요?”
은호는 말을 끝내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팔을 덥석 잡는 손길을 느꼈다.
“……?”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동용 병원 침대에 누웠다.
은호는 천장이 보이자 황당함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기가 찬 듯이 웃었다.
침대가 움직였다.
“서은호 씨, 우리 또 보내요? 며칠 전에 자주 보지 말자고 말씀드렸는데요.”
아윤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은호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꺼냈다.
이곳에서 입원할 때도, 오늘 피를 뽑을 때도 뭔가 자연스럽게 그녀가 자신을 담당하게 되었기에 지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으니까, 잘 부탁할게, 아윤 씨.”
태호가 옆에서 같이 뛰다시피 하며 아윤에게 부탁했다.
“네네. 잠깐, 열부터 잴게요.”
자연스럽게 걸음을 맞춰가며 아윤은 열을 쟀다.
“…40도네요?”
빠각.
아윤이 손에 든 체온기가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자 태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심하라고, 은호 씨.”
“…아, 실수했어요. 여기에 아무 의미도 담지 마세요, 서은호 씨.”
아윤이 웃었지만, 그 미소가 꽤 살벌하게 보였다.
환수를 담당하는 의사이기에 그녀 역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초능력이 순수한 힘과 관련된 일일 줄이야.
‘……뼈도 못 추리겠네.’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 * *
디어네.
병실에 붙여진 이름을 확인한 뒤, 은호는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잠든 밤이었다.
상태가 어떤가 싶어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숨을 짧게 내쉰 뒤, 문을 열려다 말고 갑자기 나온 거대한 검은 발에 은호는 화들짝 놀랐다.
“……까, 깜짝이야.”
“인간.”
날카로워진 흑견의 눈꼬리를 보자 은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니, 잠깐 나올 수 있지. 나 회복 속도가 진짜 빠르다니까? 잠깐 자고 났더니 가뿐해.”
“진짜 왜 이렇게 손이 가는가?”
병실이 비어 있기에 냄새를 쫓아왔다. 이렇게 일부러 찾아다녀야 한다니.
‘가만히 있는다’라는 걸 모르는 저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
흑견이 은호의 옷자락을 쥐며 허공에 대롱대롱 띄웠다.
갑작스러운 일에 은호는 발을 바둥거렸다.
“아니, 아니, 멍멍이 형님. 내 말 좀 들어봐.”
“듣고 있다.”
“디어네의 병실이 진짜 나랑 너무 가깝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참아?”
걸어서 5분 안에 도착할 정도로 코앞이었다.
그 말에 흑견은 잠깐 걸음을 멈춰 코웃음을 쳤다.
은호를 내린 뒤 앞발로 은호의 얼굴이 파묻히다시피 눌렀다.
그가 힘에 이기지 못하고 벽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직… 뜨겁다.”
흑견은 놀란 눈으로 본인의 앞발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바보냐고 했어. 은호는 인간이야. 인간은 우리랑 다르게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죽어. 멍멍이 형님은 왜 그걸 몰라?
평소라면 떠올리지도 않을, 폭시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흑견의 귀가 천천히 내려갔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흑견에게 손을 뻗으며 다가가는 척하다 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성큼 들어가 버린 은호를 보며 흑견은 입을 살짝 벌렸다.
“쉬이잇. 병실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는 거 알지?”
저 뻔뻔한 얼굴에 흑견은 눈가가 다 일그러졌다.
은호는 링거 거치대를 끌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걸어갔다.
해열제를 꽤 맞은 것 같은데, 아직도 땅이 일렁거리는 듯 보였다.
‘힘을 너무 많이 쓰면 이렇게 된다는 건가?’
자신이 드루이드가 된 후로 이렇게 길게 힘을 유지한 적이 없었다.
지금 몸은 철야와 야근을 연이어 한 뒤에 또 야근한 것처럼 좋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저번에 윈디드와 흑견의 싸움을 말린다고 힘을 쓰고 바로 기절하지 않았는가.
열이 꽤 높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성장한 셈이었다.
은호는 그걸로 만족하며 디어네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앉으며 디어네를 찬찬히 살폈다.
묘하게 고양잇과인 서벌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에 귀가 좀 더 옆으로 벌려진 상태였다. 왼쪽 눈에서 마름모 모양으로 된 문신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족 보행을 할 것처럼 기다란 다리는 쭉 뻗어 있었고, 사슴 다리와 닮아 있었다.
하얀 털 위로 붕대와 여러 의료 기계가 가득했다.
상태가 꽤 안정적인지 호흡기도 뺀 상태였다.
은호의 미소가 가득 번졌다.
“이제 아프지 말고. 어서 나아.”
작게 속삭인 그 말에 반응한 듯 디어네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미, 미안해. 나 때문에 깼어?”
“…널, 봤다.”
디어네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다소 투박한 목소리였지만, 눈동자에 어린 감정은 깊은 고마움이었다.
달빛이 병실 안으로 들어와 디어네의 얼굴을 비쳤다.
“……고맙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의식이 흐려지던 와중에 저 인간을 보았다.
자신을 공격한 게 인간인데, 인간이 자신을 구했다.
이 웃긴 사실 너머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아니, 내가 더 고마운데? 이렇게 살아줬잖아? 이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은호는 디어네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며 이미 짓고 있는 미소 너머로 깊은 안도감마저 내보였다.
디어네를 품에서 안았을 때, 번져가던 피와 느려지는 심장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숨소리가 느려지고, 창백하다 못해 핏빛이 하나씩 지워져 가는 얼굴이 차가워지자 죽음을 떠올렸다.
두려웠다. 손아귀에 생명이 꺼지는 그 감각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질 않기에 디어네를 태호에게 넘긴 뒤로 솔직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살아만 주길 바랐는데, 이렇게 의식도 회복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절대로 널 잡지 않아. 네가 회복되면 언제든지 네가 살던 곳으로 보내줄 테니까 무서워하지도 않아도 돼.”
은호는 조금 전 집과 터전을 잃어버린 환수들의 분노를 본 뒤라 여러 가지를 말하고 싶었다.
오해가 깊어질수록 환수와 사람을 뒤덮은 한 꺼풀. 그 한 꺼풀을 벗기기가 너무도 어려워졌으니까.
“이곳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인간들이 어쩌면 두려울 수도 있는데, 널 치료하기 위해서 온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만약에 무섭다면 내가…….”
“……인간.”
“응. 말해 봐.”
“은인한…테 이 말이 얼마나. 얼마나 염치… 없다는 걸 안다.”
디어네는 말을 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은호의 물음에 디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통함과 미안함이 섞인 눈동자를 보자 은호는 어루만진 디어네의 앞발을 쓰다듬었다.
환수와 지내다 보니 알게 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었다.
환수는 부탁이란 말을 쉽사리 올리지 않았다.
자신이 멋대로 그들의 걱정과 고민에 끼어들었을 뿐, 아마도 끼어들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을 테지.
은호는 이번에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말해도 돼.”
“……우리 무리를 이끌어줘.”
“……?”
은호의 눈이 커졌다.
‘무리……?’
갑자기 흘러나오는 말이 뭔가 이상했다. 예상을 너무 벗어난 말이었다.
“나는… 라흐다. 세 개의 바위를 이끄는 자. 네가, 나 대신 무리를 끌고…….”
디어네는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건지 숨소리가 깊어졌다.
“…자, 잠시만.”
은호는 뒤늦게 어깨를 바짝 올렸다.
농담 아니라 식은땀 뒤로 진땀마저 흘러내렸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흑견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이제는 무리까지 이끄는 우두머리가 될 셈인가?”
“아니, 아니. 멍멍이 형님도 들었잖아. 이거… 이거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운데?”
은호는 헛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애초에 디어네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뭘… 해달라고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아?”
일단 이름은 알았다.
라흐다.
세 개의 바위를 이끈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모른다.”
흑견은 꼬리를 흔들었다.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꼴 좋다는 걸까.
은호는 콧잔등을 잠깐 치켜올리다 고개를 돌렸다.
‘저, 저, 나쁜 표정 봐라.’
짧게 한숨을 내쉬다 은호는 라흐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네가 무슨 부탁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볼게. 나중에 또 올 테니까, 잘 자고 있어.”
자리에서 일어난 은호는 걸으며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형한테 물어봐야겠지?’
태호 찬스가 필요했다.
‘아니면 이지혜 국장한테도 물어볼까?’
환수 관리국 내부에 디어네 사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돌아가는가?”
“병실에서 나온 김에 부울 친구도, 형도 보고 자야겠어. 바로 근처잖아?”
은호가 실실 웃자 흑견은 그를 어둠으로 들어 본인의 등에 태웠다.
은호는 엎드려서는 흑견의 털 같은 어둠을 매만졌다.
복도가 흑견의 덩치에 비해 좀 좁아 천장이 바로 코앞에 보였다.
“멍멍이 형님. 부울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안다.”
“지금 진짜 편한 거 알아?”
“모른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 사람 없어?”
“있다.”
“……?”
쾅.
은호가 몸을 일으키다 머리를 천장에 박았다.
“…아으윽.”
너무 아팠다.
은호가 머리를 문지르며 아픔을 호소하는 사이 갑자기 흑견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진짜 사람이 있어? 농담 아니었어?”
“인간.”
환수의 목소리이기에 은호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부엉이를 닮은, 본인과 거의 흡사한 인형을 든 채 서 있는 부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