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6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69화(69/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69화
69화. 정상의 경치는 멋지다(2)
“안녕.”
은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 널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날 만나러 왔어?”
기대를 가득 담아 부울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냥 밖으로 나왔어.”
부울은 여전히 날개에 두꺼운 붕대를 맨 상태였다.
“답답했어?”
은호가 묻자 부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밖으로 나갈까?”
“…그래도 돼?”
“왜 안 돼? 나도 나왔는데.”
은호는 당당하게 본인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링거가 달린 손도 살짝살짝 흔들었다.
흑견이 고개를 돌려 은호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지만, 그는 더 신나게 외쳤다.
“가자!”
* * *
파지지직.
“……와.”
부울은 고개를 올려 빛이 나는 전기 나무를 바라보았다.
꼭 달을 삼킨 것처럼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런 나무가 있는지 몰랐어.”
부울이 하는 말과 행동에 일렉트가 심기 불편하게 쳐다봤지만, 은호가 있어 입을 삐죽 내밀뿐이었다.
“삐죽아. 저 친구는 전기가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하니까, 입 집어넣는 게 어때?”
“은호, 나 삐죽이 아니야.”
일렉트가 꼬리로 나뭇가지를 쳤다.
파직.
전기가 일어나자 꽤 볼만 했다.
“그건, 별명이지. 삐죽아.”
맨날 입을 삐죽 내밀거나 뒤트니 딱 맞는 별명이 아닐까 했다.
무엇보다 이름도 아직 몰랐다.
어떤 이름인지 알고 싶었지만,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인간.”
부울이 부르자 은호는 땅에 궁둥이를 붙였다.
“응.”
“……고마워.”
부울은 인형을 꼭 안으며 말했다.
부엉이와 올빼미를 섞은 듯한 외형 때문인지 몰라도 밤에 더 초롱초롱해 보였다.
“내가 너한테 그 말을 하지 못했어. 네가 나한테 해준 그 말.”
―네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 마음껏 미워해도 괜찮아.
“인간을 미워해도 된다고 했던 그 말이 나한테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몰라.”
“…….”
은호는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 천천히 미소를 흘렸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져 꼭 이불을 뒤덮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정말… 기뻐.”
은호는 무릎을 꽉 쥐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참 감정이 잘도 움직인다 싶었다.
“…혹시, 나 다 낫고 나서도 널 찾아가도 될까?”
부울은 인형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줍고, 망설임이 가득한 그 말을 들으며 은호는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사람한테 배신당했는데, 또 사람을 믿으려는 저 용기가 왜 이렇게 기특한지 몰랐다.
“얼마든지 돼! 네가 온다면 언제든지 두 팔을 벌려 환영할게!”
은호는 부울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은호는 집에 가는데?”
슬그머니 밀려온 일렉트의 말에 은호는 그대로 행동을 멈췄고, 불만을 담아 바라보던 흑견은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내 집이 어딘지도 알려줘야 하는구나.”
하도 연구소에 들락날락하니 여기가 집같이 참 편안했다.
“그럼, 다 나으면 내 집부터 갈래? 삐죽이도 올래?”
“내 집은 여기인데?”
일렉트는 전기가 피어난 나뭇가지를 두 앞발로 껴안았다.
언제 보아도 아늑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였다.
“그냥 잠깐 놀러 오는 거지.”
“…은호 집에 전기 많아?”
일렉트는 나무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기대를 담아 바라보았다.
“전기야 많은데, 먹으면 안 돼.”
“아, 안 먹어. 그냥 구경할 거야.”
“약속하는 거다? 나도 전기에 예민하다고.”
“…은호도?”
단춧구멍 같던 일렉트의 눈이 금세 커졌다.
“당연하지. 전기가 없으면 난 죽어.”
현대인에게 전기란 목숨이었다. 이세계에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갑자기 일렉트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가 기뻤는지 몰라도 꼬리 끝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럼, 갈래!”
일렉트의 대답을 듣고 나서 은호는 부울을 바라보았다.
“넌 어때? 물론, 강요하는 거 아니야. 싫으면 거절해도 돼. 그런 걸로 화낼 만큼 쪼잔하지 않아.”
“아니야. 나도… 갈래. 가고 싶어.”
부울마저 허락하자 은호는 흑견을 바라보았다. 최종 결정권은 흑견한테 있었다.
“허락해줘.”
“…마음대로 해라.”
흑견의 허락마저 떨어진 뒤에야 은호는 주먹을 가슴팍으로 당겼다.
“좋았어! 우리 나중에 집으로 다 같이 오는 거야.”
은호는 실실 웃으며 땅에 머리를 뉘었다.
하늘에 뜬 달을 보니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했다.
살다 보니 자잘하게 다른 부분도 꽤 있긴 하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네.’
은호는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을 바라보았다.
* * *
《디어네.》
《.》
《무리로 행동하며 다른 종의 무리 역시 받아들일 만큼 포용력이 매우 높습니다. 진취적이기에 다른 종의 장점을 수용하여 진화하는 종족입니다. 오직 무리의 우두머리만이 얼굴에 문신을 새길 수 있어 우두머리 확인이 쉽습니다.》
《진취적인 만큼 내부에 갈등이 다른 종족과 비교하면 더욱 많습니다. 디어네끼리 무리가 갈리기도 합니다. 주로 산을 터전으로 잡아 살아가며 산 하나에는 한 디어네 무리 하나만 허락하기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땅을 다룰 수 있으며 개개인의 힘은 약하지만, 무리의 힘은 무척 강합니다.》
‘…색다른 설명이네?’
링거 거치대를 끈 채로 태블릿에 적힌 설명을 읽으며 걸어가던 은호는 입을 살짝 벌렸다.
다른 환수 같으면 ‘무리로 행동한다’라고 짤막하게 되어 있을 텐데, 디어네는 주로 ‘무리’라는 사실에 설명이 쏠려 있었다.
그만큼 무리가 중요한 걸까.
그건 이제 앞으로 만날 사람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인간.”
은호가 태호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을 두드리려다 흑견을 바라보았다.
“응?”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는데, 정말 움직이려는 건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걸 못 하는가?”
“멍멍이 형님.”
“말해라.”
“가령 멍멍이 형님한테 어떤 일이 생겼어. 나한테 부탁할 거야?”
“하지 않을 거다.”
“그거 봐. 얼마나 간절하면 이제 두 번째 보는 나한테 부탁을 하겠어? 누가 봐도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데, 자꾸 떠안으려 하니까, 내가 먼저 나서는 거지. …아,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
도와달라는 말을 했음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 느낌을 알기에 자신도 모르게 발이 먼저 나갔다.
그동안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그 행동 자체가 어떻게 보면 무척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다.
“내가 이러면 다른 친구들이 싫어하려나. 그걸 생각 못 했…….”
꾹.
볼을 향해 흑견이 내민 앞 발가락의 촉감이 느껴졌다.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해보거라. 인간한테 고맙다는 말을 한 존재들이 더 많지 않았는가.”
“그랬지…?”
“그랬다. 그러니 다른 것도 신경 쓰지 마라. 나도 물어보고 올 테니 얌전히 있거라.”
“정말?”
“그래.”
흑견은 그 말을 남기고 주저 없이 그림자로 들어갔다.
뒤늦게 은호는 웃었다.
환수들이 자신에게 돌멩이를 던진 일이 혹여나 상처로 남았을까 넌지시 신경 쓰고 있었다.
‘말로 하기에는 많이 부끄러운가?’
똑똑.
은호는 기분 좋게 문을 두드린 뒤, 태호를 불렀다.
“형.”
“……은호야, 아니 은호 씨.”
태호는 당장 한숨부터 나왔다.
또 병실 벗어나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참 착실하게도 링거 거치대를 끌고 다닌다 싶었다.
은호가 워낙 특이 체질이라 자신이 이곳으로 들어오길 요청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빨리 은호를 이곳으로 불러들여 진짜 다행이었다.
“또 보니 반갑죠? 그런데 형. 어제랑 옷이 똑같은데요…?”
“환수 관리국이랑 연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살피느라 일이 좀 늘어나서 그래.”
“어쩐지 어제 새벽에도 연구소에 불이 반짝이더라니. …잘 살아 있어요?”
은호는 태호의 책상에 가득 쌓인 에너지 음료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이런 걸 보면 원래 세상과 비슷한 점이 참 많아서 신기하긴 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걸까.
“그런데 은호 씨. 새벽에… 밖을 나왔어?”
태호가 조금 무섭게 물어보았지만, 은호는 당당했다.
“부울이 날 찾아왔어요.”
“왜? 어디가 답답하대? 어떤 문제가 있어? 당장 바꿀게!”
태호는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불안했나 봐요. 같이 달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어요.”
“……하.”
태호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안도하다 말고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같이……? 은호 씨도?”
“부울을 만나기 전에 디어네를 만났는데, 나한테 부탁을 하더라고요.”
꿀꺽.
어떤 부탁인지 모르기에 태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디어네가 무리를 부탁했는데, 이게 뭔지 알아요? 아, 본인은 세 개의 바위를 이끈다고 했어요.”
“아아. 그거네.”
“그거요?”
“산 쟁탈전.”
은호는 저 말에 물음표를 띄우다 빠르게 눈이 커졌다.
방금 봤던 디어네와 관련된 내용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주로 산을 터전으로 잡아 살아가며 산 하나에는 한 디어네 무리 하나만 허락하기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산 하나당 디어네 무리 하나라서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 가끔 보면 누가 연구소 직원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우리 태블릿 씨를 보고 알았죠.”
은호는 태블릿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태호의 눈이 반 이상 감겼다.
아무리 봐도 고장 난 태블릿인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던 태호는 화제를 돌려버렸다.
“어쨌든, 디어네가 은호 씨한테 무리를 맡긴 거네?”
“그렇게 되네요?”
“혹시 뭐라고 말하면서 제안했어?”
태호는 얼른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이름을 말했어요. 세 개의 바위도 말한 거 보니까, 산을 상징하는 장식품 같은 게 아닐까요?”
“세 개의 바위라……. 일단, 환수 관리국에도 물어볼게. 무리가 움직였으니까, 꽤 큰 흐름을 감지해서 관찰을 나갔을 거야.”
“거기가 만약에 환수 보호 구역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일단 기본적으로 숫자가 많으면 감찰 상태가 될 테고, 디어네 특성상 사람이 사는 곳과 먼 곳으로 위치할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이제 세 개의 바위가 있는 곳만 찾으면 되겠네요?”
“같이 갈까?”
태호가 바로 제안하자 은호는 태호의 눈에 깃든 사심을 엿보았다.
“솔직히 가을 씨가 허락할지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이건,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야! 디어네가 산을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는 건 알지만, 자료가 없어. 그때가 제일 예민해서 죄다 공격한단 말이야.”
태호는 괴로운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쥐었다.
디어네가 산 쟁탈전을 벌인다는데 자신은 대체 왜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심서율 씨 보니까 모습을 감추는 초능력을 쓰던데요? 그렇게 해서 동영상이라도 찍으면 안 돼요?”
“냄새와 소리까진 지울 수 없잖아? 무엇보다 당연히 해 봤지.”
“실패했어요? 막, 쫓아왔어요?”
“이게 참, 안되더라고. 애초에 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
태호는 말을 멈추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큼 반짝거렸기에 은호는 등받이에 깊게 기댔다.
“나보고 찍으라는 건 아니겠죠?”
“은호 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하나만 달고 가줘. 잠깐만, 기다려봐.”
태호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뛰어가려다 다시 돌아와 주저앉았다.
“아니다, 환수 관리국하고 연락하는 게 먼저지? 가을 씨한테도 세 개의 바위가 있는 곳이 어딘지 물어볼게.”
열심히 연락을 돌린 뒤, 태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 어딘가에서 동그란 물체를 꺼냈다.
“진작에 줬어야 했는데. 이건 초소형 카메라야. 부착형이고, 쉽게 안 떨어질 거야. 빠르게 세 번 누르면 전원 꺼지는 거고, 빠르게 두 번 누르면 음소거 모드로 전환돼.”
“아아, 내 마음대로 작동하라고요?”
“맞아. 은호 씨가 원하면 작동하고, 싫으면 작동하지 않아도 돼. 사실 이게 어떻게 보면 은호 씨의 사생활을 드러낼 수도 있어서 불쾌하게 다가온다는 거 알아.”
“잘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이걸 왜 건네는 거죠?”
은호는 태호가 쥔 카메라에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 환수 관리국 사태를 보니까, 필요하겠더라고. 은호 씨를 보호할 용도로. 물증이 있으면 내가 그놈을 더 조져놓기에 딱 좋지 않겠어? 겸사겸사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면 내 사심 좀 해결하고. 이런 용도로 주는 거야. 어때?”
정말 사심을 담은 표정이라 은호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차니까.
“그런 거라면 너무 좋죠. 잘 쓸게요. 그런데 실수로 부서지면 어떡해요? 이거 비싸요?”
“…부서트리려고?”
“아뇨, 그냥… 음, 혹시나 싶은 거죠.”
“또 만들면 되니까. 그런데 은호 씨, 왜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갈 건 아니지?”
태호가 두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맞는데요? 그러니까 형. 아윤 씨의 시선을 돌릴 수 있게 사알짝 도와주면 좋겠는데요.”
저 대답에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태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손을 뻗었다.
“잘 찍어줘, 은호 씨. 여긴 나한테 맡기고.”
“그럼요. 역시 형하고 말이 너무 잘 통하는데요?”
은호 역시 기쁘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든든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 * *
은호는 아득하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멍멍이 형님, 날씨가 진짜 좋다. 그렇지?”
“앞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은가.”
“보이긴 한데, 이럴 때는 원래 아무 말이나 던져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은호가 흑견에게 작게 속삭였다.
디어네들이 끝이 뾰족한 돌을 묶은 나무 작대기로 자신들을 찌를 듯 내밀고 있었고, 당장 죽여버리겠다는 시선이 맹렬했다.
이런 상황이니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데 멍멍이 형님, 뭔가 색이 다르지 않아?”
은호가 속닥거렸다. 디어네들의 털 색이 검은색이었다.
분명히 병원에 있는 디어네의 털 색은 흰색일 텐데.
은호는 위를 힐끔 바라보았다.
‘바위가 세 개인 건 확실하단 말이지.’
상당히 찝찝했지만, 은호는 바위를 믿었고, 위치를 알려준 흑견과 가을을 믿었다.
“나는 세 개의 바위를 이끄는 자인 라흐다의 대리!”
은호는 용맹하게 외쳤다.
이 정도면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싶었다.
잠깐 침묵이 흐르다 갑자기 저들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붙잡아!”
“…그래, 오해가… 어?”
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