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화(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07화
7화. 나랑 같이 가자(2)
* * *
안대를 착용한 남자가 본인의 이마를 툭툭 치며 삐딱한 시선으로 서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뭐라고?”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자 증인의 의견에 따라 흑견은 다시 보호종이 되었습니다.”
“……하.”
남자는 조용히 일어나 부하에게 걸어갔다.
“우리가 누구지?”
“환수 관리인… 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지?”
“환수 보호 구역에 있는 환수를 관리하며 관찰합니… 다.”
“아니지. 다시 말해 봐.”
안대를 착용한 남자는 부하의 어깨에 손을 올려 손가락을 움직였다.
피아노를 치듯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부하의 목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환수 보호 구역에 있는… 환수를 관찰하며 관리하고, 인류의 위험을 배제… 합니다.”
“그래. 인류의 위험이 될 존재인 환수를 관리하기 위해 우리 조직이 만들어졌지.”
안대를 착용한 남자는 부하의 왼쪽 팔에 붙여진 사자 얼굴 문장을 가리켰다.
“그 괴수들이 보호 구역을 벗어나 이 도시까지 침범했어. 그놈의 환수 보호법 때문에 피해자가 생겨도 웬만한 사건에는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해.”
말도 통하지 않는 짐승들.
그 괴생물체가 도시까지 침범한 건 너무도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 빌어먹을 환수 보호법 때문에!”
꽈악.
남자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부하는 비명 대신 고개를 숙였다.
“죄… 송합니다!”
“그 피해자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남자는 긴 숨을 내쉰 채 남은 한쪽 눈으로 고갯짓했다.
“나가봐.”
“…네.”
부하가 고개를 숙인 뒤 문을 열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니, 왜 이렇게 놀라? 귀신이라도 봤나?”
그녀는 활짝 웃었다.
“아, 아닙니다, 국장님.”
“그래. 오늘도 활기찬 하루 보내자고.”
그녀는 부하를 다독이며 남자에게 걸어갔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오해입니다. 그것보다 무슨 일입니까?”
남자가 세운 경계의 눈빛에도 그녀는 대수롭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흑견 소식 들었지?”
“들었습니다.”
“네가 아니꼬워하는 건 아는데, 조만간 발표가 날 거야.”
“어떤 발표입니까?”
“멸종된 줄 알았던 흑견이 10년 만에 돌아왔다고. 윗분들도 반기는 눈치더라. 환수를 보호한 성과가 모처럼 드러났잖아? 그러니까, 권석현. 이번 피해자 건들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야.”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지혜 국장님. 너무 안일한 말 같은데요?”
“안일하다니?”
“흑견이 돌아왔습니다. 자그마치 10년 만에요. 그 괴물이 돌아온 겁니다.”
석현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채 숨기지 못한 증오마저 나타났다.
“10년 전 사건은 명백히 우리 쪽 실수야. 어떤 말로도 덮을 수 없는 실수. 그 사건을 누가 덮었는지 몰라서 그래?”
“국장님은 정말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래. 그게 실수가 아니면 뭐겠어? 흑견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어. 이미 범인이 다 자백했잖아.”
“그 자식은…….”
“그 사람은 이미 죽었어, 권석현. 흑견이 죄없이 사살당하는 모습에 죄책감을 느껴 자살했잖아.”
석현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알려진 사건은 그랬다.
진짜 범인이 죽어버린 이상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 분명히 말했어, 권석현 부국장.”
지혜는 웃음을 지우며 날카로이 석현을 바라보았다.
석현의 눈빛이 여전히 매서워 보이자 그에게 다가갔다.
“권석현 부국장. 우리는 환수만 보면 쳐 죽이려는 정화자도 아니고, 환수만 보면 침 질질 흘리는 환수 밀렵꾼도 아닌 환수 관리인이야. 환수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킬 책무가 있지만, 동시에 환수를 지켜야 하는 책무도 함께 있다는 걸 잊지 마.”
지혜는 단호히 말하며 석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가 흑견이라는 환수에 예민한 건 알지만, 평소처럼 잘하자. 알겠지?”
“……노력하겠습니다.”
석현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빛은 죽지 않았다.
* * *
“……10년 전.”
10년.
그 긴 시간이 가슴을 짓눌렀기에 태호는 숨을 잠깐 멈췄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거기부터였다.
“흑견이 아이를 죽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거짓말이죠?”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려던 은호는 이내 일어나는 통증에 다시 병실 침실에 몸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흑견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입 냄새가 좀 나지만, 굉장히 정의감이 넘친다고요.”
입 냄새라는 말에 태호는 한껏 잡았던 분위기를 놓아주어야 했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따로 샐까 봐,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어쨌든, 다행히도 범인은 따로 있었어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흑견이 그럴 리가 없죠. 멍멍이 형님은 실수로 얼굴을 찔러도 사람을 죽일 존재는 아니니까요.”
태호는 물끄러미 은호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는 그러려니 했는데, 두 번째까지 오니까, 욕이 아닌가 싶었다.
“…혹시, 흑견이 뭐 잘못했나요?”
“아닌데요? 저 흑견 좋아해요. 어서 말해주시죠.”
은호는 흑견에게 찔려 피가 철철 흘렀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슬쩍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흑견은 병원이라는 장소 자체가 불편해 근처 숲에 있겠다고 했다. 아무리 귀가 좋아도 이건 들리지 않겠지.
“……범인은 사살 작전이 끝난 후에 알게 되었죠. 흑견이 대부분 죽은 뒤예요.”
태호가 다시 분위기를 잡으려 하지 않아도 ‘사살’이라는 단어가 은호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입을 다물며 조용히 흑견이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너희가 죽였다.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흑견 무리가 죽었습니다. 애초에 원래 숫자가 적어 타격이 너무도 컸죠.”
“초능력자가 그랬나요?”
“정확히 환수 관리인들이요.”
“썩을 놈들 아니에요? 하! 환수를 관리하라고 만들었는데 그게 무슨 개같은 꼴이에요?”
“물론, 흑견 사건 뒤에 정화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환수를 증오하는데, 의도적으로 환수 관리인들이 흑견을 죽이도록 아이를 이용한 사건이에요.”
“……왜 사람 취급을 안 하나 했는데, 그럴 만했는데요?”
“맞습니다. 상종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입니다.”
태호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그런데 대체 초능력자가 얼마나 강한 거예요? 흑견도 강하잖아요.”
적어도 은호가 아는 흑견은 강했다.
주변에서 흑견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치사할 만큼 사기적인 힘도 있지 않은가.
“흑견의 새끼를 인질로 잡았어요. 새끼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숨을 한 번 내쉰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 죽었나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태호는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잠깐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까서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밀려오는 감정에 생수병을 손아귀로 찌그러트리다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아뇨. 충분히 이해됩니다.”
은호는 태호를 재촉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요약했을 뿐, 그때의 심정이 얼마나 좋지 않았을까.
“…다만, 구한 새끼들을 그대로 자연으로 보내야 했어요.”
“……네?”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지만, 환수는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아요. 새끼임에도 길들여지길 거부합니다. 본능에 가깝죠. 환수는 절대로 길들일 수 없어요. 그게 동물과 다른 점이죠.”
“하지만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환수에 무지해도 새끼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맞아요. 부모가 없는 새끼의 생존은 제로에 가깝죠. 그럼에도 자연으로 돌려보는 게 살 확률이 더 높았어요.”
무거운 표정 너머로 천천히 기쁨이 보이자 은호는 설마 하며 물었다.
“설마, 멍멍이 형님이 생존자인가요?”
“일단, 막 성체가 된 흑견으로 보였어요.”
막 성체가 됐다는 말에 은호는 잠깐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10살이라는 거죠? 사람으로 따지자면 20살이고요?”
“굳이 그렇게 하면 그렇죠?”
‘…멍멍이 형님이 10살? 초등학교 3학년?’
은호는 아주 잠깐 흑견이 책가방을 둘러멘 상상을 하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혼자 웃는 은호의 모습에 태호는 괜히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머리를 다쳤다더니, 좀 크게 다친 모양이네.’
분명 엄청 중요한 이야기였는데, 대체 어느 부분에 웃는 건지.
“……크흠. 어쨌든, 서은호 씨. 흑견을 다시 만나보고 싶은데, 퇴원 후에 가능하겠죠?”
“지금 만나죠. 저도 만나보고 싶거든요. 혹시 흑견용 책가방은 없죠?”
은호는 당당하게 질문하며 태블릿을 건드렸다.
“그 태블릿, 배터리 충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은호는 태블릿을 조작하다 말고 들려오는 물음에 태호를 보았다.
“이거 화면 안 보여요? 지금 여기 햄피아 얼굴이 보이잖아요?”
“…아뇨.”
“여기 이렇게 크게 있는데요?”
밀려오는 답답함에 은호는 화면을 연타했다.
“……?”
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쯤 되면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 아닐까 싶었다.
까만 화면을 보며 터치하다니.
“그… 잠시만요. 간호사 좀 불러와야겠습니다.”
태호는 양해를 구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앗!”
은호가 내뱉는 소리에 뒷걸음질 하던 태호 역시 놀랐다.
“실수했어요.”
은호의 표정이 무거워지자 덩달아 태호 역시 이상하게 입안이 바짝 말랐다.
예부터 미친놈은 가까이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실수요?”
“잘못 눌렀어요.”
“음, 충분히 잘못 누른 것 같긴 하네요.”
태호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방전된 태블릿을 계속 누르는 것부터가 몹시 무섭게 보였다.
“……햄피아를 불러버렸어요.”
은호는 놀란 그 표정으로 태블릿을 빤히 바라보았다.
‘환수를 부른 뒤 바로 다음 환수도 부를 수 있나?’
밀려드는 호기심에 은호는 흑견의 이름을 누르며 불러보았다.
“흑견?”
그 말에 태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하지만 주변은 잠잠했다.
‘그럼 그렇지.’
태호는 아쉬운 마음으로 움직이자 은호는 다급히 태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잠깐만 참아주세요.”
3분쯤 흘렀을까, 창문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웃었다.
“봤죠?”
“……햄피아다.”
태호는 창문을 보더니 입가를 쓸었다.
햄스터를 닮은 외모에 푸른 털을 가졌으며 공작깃을 닮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햄피아였다.
진짜 햄피아가 나올 줄이야.
“……어, 그 인간이다!”
햄피아가 창문에 붙어 코를 벌름거렸다.
오동통하게 오른 볼살을 보며 웃다가 은호는 방금 자신이 호기심에 흑견을 부른 사실을 떠올렸다.
미안함이 금방 소용돌이쳤다.
“저기, 미안한데. 내가… 실수로 불러 가지고. 뒤에 흑견이 올 수 있거든?”
“나 그 뒤로 좀 고민해 봤다? 진짜 많이 고민했어. 정말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또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큰 존재한테서 나를 구해준 거 맞지?”
햄피아는 수줍게 말을 꺼냈다.
“저기, 친구야. 내 말 좀 들어 봐봐. 뒤에 흑견이 오면 너 놀랄 수 있…….”
은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주변에 어두워지자 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미 늦어버렸다.
“불렀나?”
햄피아는 천둥과도 같은 소리에 온몸을 파르르 떨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굳어졌다.
“이거 왜 또 여기에 있는가? 인간이 불러냈나?”
흑견의 샛노란 눈동자가 햄피아의 까만 눈동자가 마주쳤다.
“……피아아악!”
햄피아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흑견이 앞발을 뻗어 햄피아를 받아냈다.
하찮다는 표정을 하며 창문을 아주 살짝 건드렸다.
와장창.
창문이 또 부서지는 소리에 은호는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게 약한 거다. 얘만 던져주려고 했다.”
흑견은 햄피아를 던졌다.
바닥에 나뒹굴기 전에 얼어붙었던 태호가 급히 햄피아를 잡았다.
“……자, 잡았다! 잡았다!”
“햄피아는 괜찮나요?”
“기절한 거 말고는 괜찮습니다.”
햄피아를 잡은 태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맨손으로 환수를 잡다니.
“그러면 다행인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우리 멍멍이 형님이 또 창문을 부쉈는데… 괜찮죠?”
“괘, 괜찮습니다! 무조건 괜찮죠!”
태호는 점점 올라온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그만 소리쳤다.
미친 일이 벌어졌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또 미쳤다고 판단했겠지만, 아니, 미쳐도 괜찮았다.
환수 두 마리를 은호가 불렀으니까.
“……서, 서, 서은호 씨!”
태호가 더 소리쳤다.
굉장히 흥분한 게 눈에 보였다.
“진정하세요. 제가 맞고 있는 진정제, 태호 씨가 맞아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 우리 연구소에 오실래요?”
“아뇨, 절대 싫어요.”
은호는 깨진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회사가 싫어서 나왔는데, 또 소속된다니.
듣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오는 소리였다.
* * *
“…피아아악!”
부르지도 않았는데, 햄피아가 병원으로 찾아와 짧은 앞발로 이불을 팍팍 쳤다.
은호는 아직 잠이 덜 빠진 얼굴로 햄피아를 바라보았다.
타격감은 둘째치고, 이불을 때리는 모습에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뒷모습이 아주 통통했고, 공작 깃털을 닮은 날개는 예뻤다.
은호는 옆에 둔 헤드폰을 착용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쁜 인간이야! 날, 날 팔았어!”
‘멍멍이 형님이라면 그림자에 있는데.’
은호는 딱히 말하지 않았다.
흑견도 뭐라 하지 않는 걸 보면 타격은 없는 모양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햄피아는 그대로 굳었다.
“…서은호 씨? 혹시 내가 잠을 방해했을까요?”
태호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연구소 자리를 권하는 거라면 그 과일바구니 들고 가셔도 돼요.”
은호의 단호함에 태호는 슬쩍 뒷걸음질 치다 무언가를 놔두고는 들고 왔다. 잠깐 실실 웃던 은호는 고개를 돌려 햄피아를 찾았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서는 뒷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다음 날.
팍팍!
오늘도 햄피아는 은호를 찾아와 이불을 열심히 쳤다.
‘부지런하긴 한데, 왜 자꾸 찾아오는 거지? 내가 그렇게 좋나?’
은호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내밀자 햄피아는 털을 세웠다.
“날 건들지 마! 나 이빨이 뾰족하다고!”
네모처럼 생긴 이빨이 네 개 보였다. 윗니 2개, 아랫니 2개.
“이빨이 뾰족하긴 하네?”
“그렇지?”
딱딱.
햄피아는 자랑스럽게 이를 맞부딪쳤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햄피아가 또 서은호 씨를 찾아왔는데요?”
“그리고 설태호 씨는 나를 설득하려고 할 거고요. 맞나요?”
“…찔리긴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태호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은호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알죠. 물러설 수가 없는 이유는 누구든지 존재하니까요. 그러니까 저도 버텨야죠. 어딘가에 소속되는 건 싫거든요.”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햄피아가 병원으로 찾아와 이불을 치러 왔으며 태호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흑견은 한 명과 한 마리의 행동에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은호는 꽤 즐거웠다.
일주일이 흘렀고, 또 2주가 흐르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평소와 같은 어느 날, 햄피아가 찾아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렇게 퇴원 날짜가 다 되어갔기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찾아보지.”
그간 정이 들었을까, 잠자코 있던 흑견이 움직였다.
드르르륵.
어김없이 태호가 찾아왔고, 그는 목발을 짚고 일어난 은호와 빈 이불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환수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그들을 소유하려는 자들도 있고, 박제하려는 이들도 있고, 그냥 죽이는 이들도…….”
“그냥 심심해서요?”
은호는 웃었다. 화가 섞인 표정이었다.
“아뇨. 증오스러워서요.”
“환수들이 뭘 했다고 죽이고 박제하려들 정도로 증오하는데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네. 어차피 말 같지도 않은 이유가 나오겠죠.”
“서은호 씨. 제가 계속 당신을 귀찮게 군 이유는… 당신의 힘이라면 한 마리의 환수라도 더 보호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네요. 그럴 힘이 있었네요.”
은호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태블릿을 손에 쥐었다.
힘을 놔두고 왜 바보같이 기다렸을까.
“햄피아.”
기다렸다.
이미 만났던 그 햄피아를 계속 기다렸다.
1초가 1시간 같던 그때, 무언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쁜 인간! 또 날 불렀어?”
자신이 알던 햄피아이기에 은호는 활짝 웃었다.
목발을 짚으며 창문을 열었다.
“갑자기 왜 안 왔어?”
“멀리 간다며.”
“퇴원한다고 했지.”
“그게 그거지. …나쁜 인간이지만, 난 너 싫지 않아. 그래서 선물을 주고 싶었어.”
햄피아는 짧은 앞발로 가져온 꽃을 내밀었다. 아주 잠깐, 은호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더 많이 가져오려고 했는데, 나쁜 인간이 갑자기 나 불렀잖아. 풍성하게 주려고 했는데.”
햄피아는 볼을 부풀리며 앞발을 내밀었고, 은호는 건넨 노란 꽃을 손에 쥐었다.
그 꽃을 보니, 조금 전 태호가 꺼낸 말이 생각이 났다.
그들을 노리는 이들이 많다고.
“……그럼, 나 간다. 잘살아.”
“안 무서워? 사람들이 너희를 노린다며.”
“나는 여기가 좋아. 도망칠 곳이 많고, 가족도 있어.”
햄피아는 대답한 뒤에 짧은 날개로 날아와 은호를 바라보았다.
앞발을 내밀어 은호의 볼을 만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너도 있고.”
“…….”
“내 이름은 ‘론’이야. 다음에 내 이름 불러줘. 넌 나쁘지만, 그래도 허락할게.”
론은 처음으로 활짝 웃다 다시 창문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은호 역시 웃었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부터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달랐다.
‘……아. 이거구나.’
이게 누구도 느낄 수 없는, 환수와의 교감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어쩌면 드루이드의 힘을 가진 자신만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왜 그토록 태호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 사실을 더욱 알아버렸다.
이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오래, 오래 그들을 보고 싶었다.
까만 바람이 갑자기 몰아쳤다.
흑견은 창문 사이로 흘러오며 은호의 뒤에 섰다.
저번과 똑같이 낮은 천장 때문에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햄피아가 왔나?”
“왔더라. 나한테 꽃을 줬어. 퇴원 선물인가 봐.”
은호는 몸을 뒤로 돌리며 노란 꽃을 흔들었다.
“노란 꽃이군.”
“멍멍이 형님도 내 퇴원 선물 줘야지.”
“나는 줄 게 없다.”
“…그럼, 나랑 같이 갈래?”
“……?”
“멍멍이 형님. 나, 하고 싶은 일이 갑자기 생겼어.”
“하고 싶은 일?”
“임시 보호소.”
“그게 뭔가?”
“환수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또 같이 놀아주는 거지. 그거 내가 하려고.”
“인간은 환수를 지킬 이유가 없다.”
차갑게 내뱉어진 흑견의 말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아는데, 내 마음이 움직여. 누군가는 환수 옆에 머물러도 되는 게 아닐까. 그게 내가 됐으면 좋겠어. 난 그럴 힘도 있잖아?”
저들이 사랑스러워졌다.
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을 기록한 노트는 이세계로 오면서 사라졌다.
뭘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쉽게 잊힐 만큼 시시한 거라면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는 일을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지금은 그 이유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멍멍이 형님은 계속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멍멍이 형님까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좀 많이 마음이 아프더라.”
햄피아가 떠났을 때, 알아버렸다.
누구보다 가장 자신의 옆을 지켰던 존재는 흑견이라는 걸.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놀란 감정이 또렷하게 보였기에 은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나랑 같이 가자.”
은호는 활짝 웃으며 노란 꽃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