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0화(7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0화
70화. 정상의 경치는 멋지다(3)
“우, 우리 같은 편 아니었어?”
은호는 다가오는 디어네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채 1m도 되지 않는 크기라 그렇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라흐다의 대리를 잡아라!”
어디선가 내지른 목소리에 은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여긴 라흐다와 반대 세력이었고, 자신은 적의 입속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걸어와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셈이었다.
너무 황당해 웃음이 났다.
‘뭐야. 바위가 분명 세 개였는데……?’
눈으로 아무리 세어 봐도 세 개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 디어네 무리들이 이상하다는 거지?’
처음 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저들 모두 무장하고 있지 않은가.
보통 자신의 집에서 무장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습격을 한 거네.’
은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라흐다는 흰 털을 가졌고, 저들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만약에 저들이 흰 털 무리의 디어네가 지도자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꺼져라.”
흑견이 달려오던 디어네들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목소리를 내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목소리에 담긴 힘으로 가뜩이나 거대한 흑견이 하늘을 가린 듯 보였기에 모든 디어네들이 몸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섰다.
“얘들아. 너희 여기 습격하러 온 거야?”
은호는 저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쉽사리 대답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은호는 주변을 살피며 여러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집을 위해 다져놓았던 지반이 뒤엎어 있었고,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낼 정도로 뽑혀 있거나,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만들어진 집이 와르르 무너진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 이미 습격이 끝난 뒤였네. 마무리 중인데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든 거고. 그렇지?”
은호는 상황 파악을 한 뒤 활짝 웃었다.
라흐다가 부상을 입고 연구소에 있을 시간에 저 다른 무리의 디어네가 이곳을 습격한 게 맞았다.
‘산 쟁탈전이 벌어지기 전에 이런 짓을 벌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은호는 입술을 엄지로 쓸었다.
―산을 차지하려는 무리의 우두머리와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반드시 만나야 해. 그때 말을 하는지, 의식을 치르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산 쟁탈전이 두 우두머리가 만난 뒤에 진행된다는 건 분명해. 산 쟁탈전에 대한 정보가 아직 별로 없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산 쟁탈전은 반드시 두 우두머리가 만나야 한다고 태호가 가기 전에 알려주지 않았던가.
라흐다가 없는 와중에 이런 일을 벌인 건 공평하지 않았다.
저들이 규칙을 깬 이유가 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야 했다.
어쨌든, 라흐다가 자신에게 대리자를 임명했으니까.
은호는 가방에서 피를 담은 통을 꺼내 떨어트렸다.
“친구들아.”
뒤엎어진 땅에서 식물들이 자라나자 은호는 디어네를 가리켰다.
저들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니, 대화하려면 일단 붙잡아 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치사하게 규칙을 어긴 이유를 좀 알고 싶은데.”
흑견의 위압으로 저들이 꼼짝도 못 할 사이, 굵직한 줄기가 저들을 휘감아버렸다.
아프지 않게, 하지만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둔 뒤 은호는 눈꼬리를 올렸다.
“말해줄 수 있겠지?”
“…….”
디어네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식물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라나며 인간 뒤에 있는 흑견의 힘이 너무도 맹렬해 귀가 점점 내려갔다.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 디어네들은 슬슬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은호의 살결을 스치고 가는 자연의 경고에 주변을 살폈다.
땅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해일처럼 몰려왔다.
‘여기가 뒤집힌 이유가 저 공격 때문이었네.’
디어네는 땅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개개인의 힘은 약하지만, 무리로 뭉치면 매우 강하다고 했고.
이곳을 휩쓴 힘이 바로 저거였다.
“하.”
흑견은 코웃음을 치며 발을 굴렸다.
숲에 내려앉아 있던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며 위로 떴다 아래로 떨어졌다.
콰아앙!
솟아오른 땅을 그대로 삼켜 버리며 모든 걸 침묵으로 만들어버렸다.
흑견은 거대한 어둠이 된 것처럼 고고하게 선 채로 습격해온 디어네들을 노려보았다.
“또 해봐도 된다. 몇 번이고 삼켜 버릴 테니까.”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한 디어네들은 주춤거리다 못해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아무리 무리가 지금 쪼개졌어도 저 힘을 삼켜 버리다니.
차원이 다른 공포가 밀려왔다.
“퇴, 퇴각. 퇴각하라!”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은호는 얼른 안경을 쓰고 맹금류의 눈을 발동했다.
라흐다처럼 얼굴에 문신이 있었다.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잠시만, 친구야. 너희 얘들을 버리고 가는…….”
은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빠르게 산에서 내려가자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가버렸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대장이라면 부하들을 확실히 책임져야지.”
“겁쟁이는 내버려 둬라. 이미 말할 입은 충분하다.”
“그렇지. 대장이 떠나버렸는데, 너희는 어쩔래?”
은호는 말을 하며 뒤를 돌았다.
대장이 버렸기에 좌절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손에 쥔 무기를 꽉 쥐며 오히려 전사처럼 맹렬한 눈빛을 뽐냈다.
“이겼다고… 오만해하지 마라.”
“지금 오만한 건 누구인가?”
살벌함이 깃든 흑견의 눈빛에 디어데들은 흠칫거리며 밀려드는 공포에 저절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아.”
은호는 덜덜 떠는 디어네들의 모습을 보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일단, 오해가 있어.”
은호는 자신과 흑견을 가리켰다.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라. 둘, 첫 번째 이유로 너희와 싸울 이유가 없어. 셋, 두 번째 이유로 너희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거지. 그러니까 날 좀 그만 세웠으면 좋겠는데. 이러면 대화가 되질 않잖아.”
“…인간인 너와 할 이야기는 없다.”
“나는 많아. 멍멍이 형님.”
“말해라.”
“주변에 저 친구들 말고, 다른 디어네의 냄새가 나?”
“난다.”
그 대답에 은호는 붙잡힌 디어네를 보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흰 털을 지닌 디어네의 우두머리인 라흐다가 없는 사이에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 무리가 쳐들어왔다.
지금 가까이에 다른 디어네의 냄새가 난다는 걸 뭘 의미하겠는가.
저들이 묶은 흰 털을 지닌 디어네 무리라는 소리였다.
“안내해줘. 다른 무리가 있으면 싫어도 이야기할 테니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규칙을 어긴 검은 털 디어네 무리가 잘못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 *
흰 털 무리의 디어네는 나무줄기에 묶인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개개인은 약하다는 특성을 본인들도 알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한 마리씩 떨어트린 상태였다.
뒷다리가 뻣뻣해질 만큼 힘을 열심히 사용하고 있지만, 나무 밑에 흙더미가 들썩거리는 정도라 풀려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습격의 여파로 피가 흐르는 환수들이 있긴 해도 중상을 입은 얘들은 없어 보였다.
자신들이 오면서 낸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다 같이 이빨을 드러내며 짙은 경계심을 세우자 은호는 본인을 당당하게 소개했다.
“안녕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좀 그렇네. 일단, 나는 세 개의 바위를 이끄는 자, 라흐다의 대리야.”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기대 역시 살며시 품었다.
“…라흐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
“대장은 살아 있어? 살아 있었어?”
“말해줘. 얼른 말해줘!”
은호는 밀려오는 디어네의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했다.
역시 이쪽의 우두머리였다.
“일단 풀어줄게. 자세한 이야기는 저쪽 가서 같이 해.”
은호는 손을 들었다.
디어네를 둘러싼 나무줄기를 향해 나무들이 가지를 내렸다.
“아, 그 전에 말할 게 있어. 저기에 그, 검은 털을 가진 다른 무리도 잡아…….”
“그 썩을 것들을?”
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튀어온 목소리는 뭔가를 긁는 듯한 소리처럼 꽤 살벌하게 들려왔다.
이어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아 은호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싸우는 건 안 돼.”
“어째서? 그것들이 먼저 규칙을 어겼다! 우리의 신성한 규칙을 저버렸다!”
으르르릉.
디어네는 귀를 뒤로 움직이며 이빨을 내보였다.
조금 전에 그렇고 지금도 화를 내도 은호는 왠지 미소가 실실 나올 뿐이었다.
“그래서야. 너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대체 왜 그 규칙을 저버렸는지 알고 싶지 않아?”
은호는 흰 털 디어네 무리를 말로 찌르며 설득했다.
“그것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존재들이다! 이 땅에 그 더러운 발을 내디디게 할 수 없다!”
“대장을 불러와. 우리 일이니까, 우리가 해결할 거라고!”
디어네들은 한 번 세운 날을 억누르지 않았다.
규칙을 저버린 이들하고 이 땅을 두고 싸우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라흐다가 음, 지금 좀 아파.”
은호가 머뭇거리며 꺼낸 말에 디어네들은 몸에 힘을 풀었다.
마치 나라가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다.
“……대장, 죽어?”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두 손을 내밀며 크게 흔들었다.
“아, 아니, 아니. 회복 중인데, 오늘 오지 못할 정도이긴 해.”
은호는 말을 내뱉고 난 뒤 슬쩍 디어네들의 눈치를 살폈다.
금세 동그랗게 커진 눈망울이 촉촉했다.
얼마나 라흐다를 좋아하면 저럴까.
“그래서 라흐다가 날 대리로 임명했으니까, 잠깐이지만, 날 믿어줄래? 너희도 어쨌든, 쟁탈전에 오점이 묻은 게 화가 나잖아?”
“맞아. 대장이 괜찮다면… 대장이 널 임명했다면 나는 따를래.”
“나도 그럴래. 대장은 아무한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넌 인간이… 인간이, 어떻게 우리 말을 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기에 디어네는 깜짝 놀랐다.
그 놀람은 순식간에 번졌다. 호기심이 깊게 어린 눈동자는 묘하게 장난감을 발견한 강아지 같기도 했다.
“나라서?”
은호는 당당하게 본인을 가리켰고, 옆에서 흑견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곳에 온 이유에 집중해라, 인간.”
“방금 말 굉장히 중요한 건데? 어쨌든…….”
은호는 손을 까닥거렸다.
나뭇가지가 디어네를 묶은 줄기를 끊어내자 그들은 가뿐하게 땅으로 착지했다.
모두 전투 의지를 드러내듯 고양이 같은 꼬리가 빳빳하게 올라갔다.
“우선, 친구들. 아픈 친구들 치료부터 하자.”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 * *
은호와 그의 뒤에 엎드려 있는 흑견을 중심으로 검은 털을 한 디어네 무리와 흰 털을 한, 라흐다 무리로 갈렸다.
서로를 사납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은호는 애써 올라오는 웃음을 참았다.
생긴 게 서벗하고 비슷했지만, 좀 더 둥글둥글해 싸우는 게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 그랬어?”
은호는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검은 털을 한 디어네 무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라흐다 무리가 꺼내는 말에 호응할 뿐이었다.
“맞아. 분명히 밤이 두 번 지난 후에 하자고 해놓고, 예고도 없이 밀어닥쳤어. 우리를 가두고, 우리 집을 부수고, 이곳을 차지하려고 했어. 대장 대리가 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대장도 없어서 꼼짝없이 쫓겨났을 거야.”
“우리 친구들이 참 치졸하고, 치사하고, 비열하고, 못됐고, 옹졸한 행동을 했네?”
은호는 대놓고 검은 털 디어네 무리를 장난스레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했다.
원래 전쟁이란 치사한 거라는 걸 알지만, 저들은 달랐다.
규칙하에 당당하게 치르는 전투였다.
애초에 저들은 스스로를 전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치졸한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알 테지.
‘내가 보기에는 다 꼬마 전사님 같은데.’
“…너, 너희가 뭘 알아?”
아니나 다를까, 검은 털을 한 디어네가 더는 참지 못하게 소리쳤다.
이게 생각보다 잘 먹히는 수법이라 은호는 너스레를 떨었다.
“뭐가 다른데, 친구? 약속도 안 지켰어. 날짜도 무시했어. 습격도 했어. 이런 상황에서 터전까지 부서트렸잖아?”
“우리는… 지금 당장 살아갈 터전이 필요하다고. 안 그러면, 다, …죽을 테니까.”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가 던진 말에 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체 어떤 상태길래 그래?”
장난기를 털어버린 은호의 물음에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가 그를 째려보았다.
그 눈빛에 은호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설마 하며 물었다.
“…혹시 인간이 뭘 했어?”
“그래!”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의 말에 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머릿속으로 짐작이 가는 범인을 잠깐 내려놓은 뒤,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뭐?”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가 고개를 위로 높이 들었다.
“너희 산으로 가자고.”
“가서… 뭘 하려고?”
“뭘 하긴, 너희를 방해하는 것들 싹 털어버려야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문제가 생기면 말을 해야지. 이렇게 쳐들어온 건 치사하고 비겁한 행동이야. 그건 절대로 바뀌지 않아. 너희와 산 쟁탈전을 하려고 준비한 저 친구들한테도 미안할 짓을 한 거고.”
라흐다 무리가 비장한 표정으로 은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이제 제대로 된 산 쟁탈전을 위한 신경 쓰이는 부분은 싹 다 쳐내야지. 나랑 같이.”
잔잔한 미소가 은호의 입가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