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1화(7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1화
71화. 정상의 경치는 멋지다(4)
“산… 쟁탈전을 계속한다고? 왜?”
검은 털을 한 디어네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상하지? 반칙패를 당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내민 제안이 이상할 거야.”
“상당히, 이상하다.”
디어네는 은호를 경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번 더 산 쟁탈전을 치를 거야.”
은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보였다.
“너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때? 동의해?”
은호는 라흐다의 무리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우리는 대장을 존중해. 따라서 대장 대리의 말 역시 존중할 거야.”
확실한 대답에 은호는 번져가는 기쁨을 막지 못했다.
이렇게 믿어준다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회사에서 늘 기분이 최악이었네.’
회사에 믿음이 어디 있는가.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은 커지고,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조금만 뭐라고 해도 젊은 꼰대니, 뭐니 하면서 뒷담화나 하지 이런 게 어디 있을까.
“우리 친구는 어떡할래?”
“……대장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럼, 너희 생각은 어때?”
은호는 똑같은 질문을 다르게 물었다.
“…진짜, 다시 산 쟁탈전을 치를 수 있나?”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기대가 차올랐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할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너희가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줄게.”
“나는…….”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는 천천히 귀를 내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그러고 싶어. …너희는 어때?”
말을 꺼낸 뒤, 고개를 돌려 동료를 향해 물었다.
한 꺼풀 벗겨진 얼굴 너머에는 간절함이 드러났다.
* * *
두 발의 점프력을 이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토끼처럼 잘도 뛰어다니는 모습에 은호는 카메라를 단 윗옷을 살짝 바라보았다.
‘형이 좋아하려나?’
“인간.”
한참 달리던 흑견이 주변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은호를 불렀다.
“응?”
“일부러 그런 제안을 한 건가?”
“산 쟁탈전 하자고?”
“그래. 누가 보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맞아. 일부러 제안했어. 티가 좀 났어? 솔직히 안 났으면 했는데.”
“왜 그랬는가?”
흑견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산 쟁탈전은 누가 봐도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가 잘못한 일이었다.
저들은 명예를 저버렸기에 이를 다시 할 이유조차 없었다.
“이번 일이 두 무리에게 상처로 남을 거니까.”
“…상처?”
“솔직히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는데, 산 쟁탈전은 디어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 같았어. 전사의 명예, 이런 느낌이었거든.”
산 쟁탈전을 위해 달렸던 그 시간이 통째로 날아갔을 때, 얼마나 애가 탔을까.
특히 라흐다 무리는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끝을 내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이번 일로 뒤통수를 맞은 디어네 무리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뒤통수를 친 디어네 무리도 결판을 내지 않는다면 둘 다 이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아마 살면서 머릿속으로 자꾸만 ‘이랬으면 어땠을까’하고 후회가 남을 테니까.”
천천히 은호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흑견의 털 같은 어둠을 잡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인간도, 그랬나?”
경험담이 뒤섞인 듯했기에 흑견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 내가 그랬어.”
가볍고 경쾌하게 들렸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흑견은 섣불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판을 내지 못하면 큰 의미로 도망이 되는 거야. 도망자한테는 계속 그림자가 달라붙어.”
“어떤… 그림자인가?”
“후회.”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디어네들이 걸음을 멈추자 그들의 고개를 따라 돌렸다.
바로 아래에 협곡이 보였다.
“저 밑이다.”
길을 안내했던 디어네는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흑견은 아래를 잠깐 보더니, 귀를 쫑긋 세웠다.
“인간이 있다. 넷, 아니, 다섯이다.”
은호는 그 말에 잠깐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썼다.
아래를 보며 확대하자 잘 보이지도 않는 그물이 보였다.
누가 봐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물이었다.
‘정화자는 아니야.’
남은 건 환수 밀렵꾼뿐이었다.
“…친구들아. 혹시, 인간들이 너희들을 잡아갔어?”
은호의 표정이 천천히 식어갔다.
“맞다. 힘을 사용하는 인간들이다. 대장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옮길 장소가 필요했다. 지금으로서는 모르는 장소보다 그 장소가 제일 안전했다.”
불안함보다 확실함을 선택했다는 의미였다.
은호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런데 왜 그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 습격보다 그게 더 낫지 않아?”
“……지금, 우리더러 그쪽 무리에 도와달라고 말하라는 건가?”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힘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얼굴이 있는 문신을 통해 은호는 조금 전에 만났던,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의 우두머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너희는 지금 저 인간과 타협이라도 했는가?”
우두머리의 시선은 은호와 같이 부하들에게 향했다.
며칠 잠을 못 잔 것처럼 눈 밑이 퀭하고, 예민함이 흘러넘쳤다.
“…대, 대장. 그러니까…….”
“맞아. 너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지.”
은호는 당황한 디어네를 대신해 일부러 말을 내뱉으며 얄밉게 입꼬리를 올렸다.
“……인간. 여기가 어딘지 알고 왔나? 조금 전 상황과 같다고 생각하나?”
우두머리의 말에 맞추듯 우두머리와 함께 온 디어네들이 손에 쥔 나무 작대기를 은호에게 가도록 살짝 내밀었다.
“뒤통수는 잘 치면서 도와달라는 말은 죽어도 못한다고? 친구야. 너, 대장이잖아. 감정에 휩쓸리면 되겠어?”
“쟁탈전의 상대자에게 도와달라고 지껄이라고? 적한테?”
“친구야. 지금 너희 적은 그 무리가 아니라 너희의 보금자리를 뺏어간 저 인간들이야. 그러니까 감정에 휩쓸렸다는 거야. 이 상황에서까지 자존심을 그렇게 세우고 싶어?”
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상황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 환수 밀렵꾼이 있었다.
“나한테 날을 세우는 이유는 알겠어. 인간이 너희 무리를 잡아갔을 테니까.”
저 말에 우두머리의 이빨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빠드득.
“인간인 네가 우리를 어떻게 이해한다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가? 어떻게!”
“이해 못 해. 나는 네가 아니니까.”
당당한 저 말에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황당한 표정을 드러냈다.
곧 빠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틀어진 입술 너머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애초에 네가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네가 그때 그곳으로 오지 않았어도 성공한 일이었다! 네놈이 모든 걸…….”
“아니.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은호는 저 말을 단호하게 내쳤다.
“뭐?”
“저것들이 또 올 테니까.”
은호는 손가락으로 환수 밀렵꾼들이 있는 그곳을 가리켰다.
―몇 차례나 큰 힘이 사용됐다네? 환수 관리국에서 이를 확인했는데, 관찰 결과 아무 이상도 없었대. 다툼 같은 건 없을 테니까 편안하게 갔다 와도 되겠어.
이곳에 오기 전에 태호가 알려준 내용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이거 권석현이 저지르고 숨긴 거네.’
권석현은 사라졌지만, 놈이 환수 관리국에 뻗친 영향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넓은 곳을 지혜 혼자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정화자와 환수 밀렵꾼에게 손을 뻗은 흔적이 이미 있기에 분명히 이번 일도 관련이 있을 테지.
은호는 가방에서 얼굴을 가릴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를 꺼냈다.
“친구야. 분노를 가라앉히고 멀리 봐. 더 멀리.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네가 지켜온 것들이 사라지는 게 더 비참하고 슬플 거야.”
흑견의 등에서 뛰어내린 은호는 주저 없이 디어네의 우두머리로 향했다.
주춤거리는 행동도 잠시, 은호의 몸에 나는 햇살 같은 냄새와 순식간에 머리로 얹어진 온기에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겠다.”
은호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뾰족한 돌이 달린 작대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숨 막히게 살다 보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아. 너도 그랬겠지?”
“…….”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별거 아닌 저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목까지 어떤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도 포근해 날이 섰던 마음까지도 다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 무리하고 다시 산 쟁탈전을 치르기로 했는데, 네 생각은 어때?”
은호가 웃으며 물었다.
그 사실에 디어네의 우두머리가 입을 천천히 벌렸다.
“……그게 어떻게 되는 건데? 거짓말하는 거지? 걔들이 허락할 리가 없다! 내가… 망쳐버린 일을 다시 할 리가 없다!”
“거짓말 아닌데?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하는 거야. 단, 우리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은호는 손가락으로 우두머리의 코를 건드리며 씩 웃었다.
코를 잡은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다른 디어네처럼 평범해 보였다.
“그러니까 그 전에 일단, 저것부터 해결하자. 저것들을 싹 잡아서 내가 아는 사람들한테 넘기면 되니까 이제 울지 말고.”
몇 번 더 머리를 쓰다듬은 뒤 은호는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티가 났을까.
괜히 얼굴을 찌푸린 채 디어네는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멍멍이 형님.”
돌아선 은호는 더는 웃지 않았다.
“자연이 화가 났나?”
“아니, 내가 화가 나서.”
아무도 죽지 않아서 그럴까. 자연의 분노는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옅었다.
디어네는 외형적으로 봐도 누군가 탐을 낼만 했다.
게다가 이 장소, 환수 관리국도 오기 힘들 정도로 깊은 산지였다.
연구소에서 흑견을 타고 달렸음에도 1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디어네들이 산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겠는가.
권석현이 있던 환수 관리국이었다.
이런 깊은 곳에 디어네들이 사라지든 말든 누가 알까.
‘이런 사실이 참 짜증 난단 말이지.’
본인들도 찔리면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은호는 마스크고 쓰고, 안경도 착용한 뒤, 마지막으로 모자까지 눌러썼다.
“멍멍이 형님, 다섯 명이랬지? 초능력자고. 맞지?”
“그래.”
흑견의 대답을 들으며 은호는 잠깐 생각하다 우두머리를 불렀다.
“친구야.”
“…뭐지?”
“어떤 식으로 너희를 공격했어?”
까드득.
우두머리는 그 말에 이를 악물었다.
“너희를 비난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처음에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 하나 데려갔다. 따로 순찰대를 마련해 주변을 뒤지게 했지만, 그들 역시 데려갔다. 그래서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유형인지 알겠네.”
좋게 말하면 효율적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영악했다.
방금 막 좋은 생각이 차올랐다.
“친구야. 지금 친구가 얼마나 분통할지 그 말로 느껴져. 그러니까 우리 살짝만 되갚아줄까?”
복수가 아닌, 살짝 뒤통수를 때리는 정도였다.
은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자 디어네의 우두머리는 전혀 이해 못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이제 끝난 거 아니야? 쥐새끼도 안 보이는데.”
한 남자가 스마트워치를 쓰며 불만을 털어냈다.
<제대로 확인이나 해. 검은 놈 다 잡으면 흰 놈도 잡아야 하니까.>
귓가에 꽂은 무선 이어폰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디어네가 도망갔는지 아닌지 솔직히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참 짜증 났다.
‘그러게 왜 찔끔찔끔 잡아서는 눈치채게 해?’
제아무리 환수라고 불려봤자, 결국, 멍청한 짐승이었다.
디어네는 외형상 뭔가 고양이를 닮아서 수요가 많았다.
사는 곳이 하도 지랄 같아서 구하기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근처에 흰 놈과 검은 놈이 있었다.
두 놈을 묶어서 팔면 제법 짭짤했으니까.
남자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동자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눈앞에 나무는 지워지고, 움직이는 생물만 눈에 보였다.
투시에 가까운 초능력이었다.
높은 나무에 위장해 있던 그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살피며 산에 움직이는 생물을 보았다.
거리를 조절하며 이리저리 살피던 중 눈이 점점 뜨거워져 감아버렸다.
“오늘도 고생이 많네.”
그때,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나무가 움직여 놈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습…….”
파악!
놈이 말을 하기 전에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라간 나뭇가지가 턱을 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놈이 눈을 크게 뜨며 몸도 가누지 못할 시간에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온 은호가 뭔가를 뿌렸다.
치익.
분사되자마자 놈의 눈이 흐려졌다.
“환수 친구들 데려간다고. 아주 대단하네.”
은호는 놈의 머리를 건들었다.
“이거…….”
“당연히 최면 가스지. 잘자.”
현대인이면 현대인답게 도구를 써야지. 태호가 호신용으로 준 물건이었다.
나뭇가지가 놈을 들었고, 은호가 연 공간 너머로 던져버렸다.
“형, 한 놈 가요.”
“그래.”
공간 너머에 태호가 엄지를 올리고 있었다.
“잘 묶어서 환수 관리국으로 보낼게.”
“네네, 아직 네 놈 남았거든요.”
은호는 손가락 네 개를 올리며 다른 손으로 마스크를 내렸다.
입꼬리가 매섭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