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2화(7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2화
72화. 정상의 경치는 멋지다(5)
“그럼, 형.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머지 놈도 잡아 올게요.”
“은호 씨!”
태호가 다급히 은호를 불렀다.
“네?”
“…위험한 일은 하지 마.”
고작 한 걸음이었다.
태호는 이 한 걸음을 넘어갈까, 말까, 심각하게 생각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눈치껏 빠질 테니까요. 기다리고 있어요.”
꿀꺽.
저 말에 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지금까지 눈치껏 빠진 사람이 그 꼴일까.
은호는 태호가 짓는 저 걱정스러운 표정을 잠깐 바라보다 공간을 닫아버렸다.
“…….”
잠깐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왜 그러는가? 저 인간이 무어라 말을 했는가?”
흑견의 물음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형이 날 진짜 걱정하는 건가 싶어서. 헷갈린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인가?”
“형이 날 진짜로 걱정할 리가 없잖아. 나도 참, 진짜 속을 뻔했다니까.”
은호 가볍게 웃자 그림자에서 빠져나온 흑견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가자, 멍멍이 형님.”
은호가 흑견에게 손을 뻗자 흑견은 가만히 은호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은호의 눈동자에 깃든 저 따스한 감정은 진짜인데.
“왜 그래, 멍멍이 형님?”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늘 그래와서? 조금 놀랐어? …음, 멍멍이 형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놀라울 만큼 쉽게 끊어져. 그래서…….”
은호는 말을 멈췄다.
식물들이 전해주는 이미지를 받았다.
“이쪽으로 한 놈이 오네.”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처음에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 하나 데려갔다. 따로 순찰대를 마련해 주변을 뒤지게 했지만, 그들 역시 데려갔다. 그래서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디어네의 우두머리가 당했던 방법대로 뒤통수를 치고 싶었다.
방금 태호에게 보낸 놈은 이곳에 퍼진 환수 밀렵꾼들의 눈이었다.
눈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제가 크기에 반드시 다른 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그럼, 그놈마저 연락이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
은호는 나무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라갔다.
“멍멍이 형님. 숨어야지.”
은호가 멍한 듯 서 있는 흑견을 불렀다.
흑견은 귀를 쫑긋 세우다 그림자로 파고들었고, 은호는 나무가 부풀린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다.
“…이 썩을 놈. 보고하랬더니, 어디로 간 거야?”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저 사람은 어떤 초능력을 가졌으려나.’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어쨌든, 단독으로 보내도 될 만큼 힘이 좋다는 거지?’
아래를 바라보며 일부러 반대쪽에 조금 멀리 떨어진 나무가 흔들리도록 지시했다.
걷다 말고 남자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노골적으로 길어지는 미소와 함께 손아귀를 펼쳤다. 그 위로 칼 여러 개가 나타났다.
‘저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나처럼 가방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튀어나온다고?’
처음 보는 초능력에 은호가 신기해하며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놈의 뒤에 있는 나무가 가지를 배배 꼬며 거대한 주먹을 만들고 있었다.
놈이 엉뚱한 방향으로 칼을 내던지던 그때, 은호는 손가락을 내렸다.
이를 따라 주먹이 놈의 머리에서부터 떨어졌다.
쿠웅!
큰소리를 따라 주변에 있던 새들이 날아가고, 바닥으로 납작 엎드린 놈을 향해 은호는 한 번 더 묵직한 주먹을 선사했다.
쿠우웅!
총을 맞아도 안 죽는 놈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슬쩍 나뭇가지로 찌르자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절했다.”
그 말에 은호는 냉큼 놈을 태호에게 던져준 뒤, 은호는 흑견의 등을 탔다.
‘세 놈.’
은호는 숫자를 속으로 세며 다른 손으로 흑견을 톡톡 두드렸다.
“멍멍이 형님, 놈들은 오고 있어?”
“오고 있다.”
“천천히 달려줘. 아, 식물 친구들,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흑견이 달리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참 좋았다.
먼저 환수 밀렵꾼들의 눈이 사라졌고, 그 눈을 찾으려는 놈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갑작스러운 납치 사건에 당황하던 디어네처럼 무리를 지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은호는 식물들이 전해오는 이미지를 보며 웃었다.
세 놈이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움직이고 있나?”
흑견이 묻자 은호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맞아. 같이 움직이고 있어.”
지금 놈들은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까.
놈들이 디어네에게 했던 방식을 고스란히 답사하고 있다는 걸 알까.
뒤를 바라본 은호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걸 보았다.
빨리. 점점 더 가까워졌다.
‘속이려고 해도 소용없어.’
마치 급하게 다가온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아니었다.
초능력으로 나무를 흔들며 미끼를 던지고 세 명은 그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 숲 전체가 자신의 눈인데 누굴 속이려고 드는지 몰랐다.
은호는 놈들이 움직이고 있는 그곳을 향해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디어네 무리가 나무에 숨어 몸을 숨기고 있는 그 장소와 이어졌다.
‘마무리는 넘겨줘야지.’
대충 이 정도만 길을 안내해도 디어네 무리가 화려하게 마무리를 지을 거라는 걸 알았다.
지금 디어네 무리는 아까처럼 쪼개지거나 흩어진 게 아닌, 하나로 뭉쳐 있을 테니까.
은호는 조용히 기다렸다.
다다다다.
흑견의 등에 올라탔음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디어네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꽉 잡아, 식물 친구들.”
은호는 그 진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식물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파앙!
하늘을 향해 흙더미 하나가 위로 치솟았다.
셋.
다섯.
여기저기 튀어나온 흙더미는 흡사 분수처럼 보였다.
“공격!”
우두머리의 힘찬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바위가 뒤섞인 흙더미가 환수 밀렵꾼들을 향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은호는 숨을 짧게 들이마신 뒤 물었다.
“……멍멍이 형님. 그놈들, 안 죽었겠지?”
초능력자의 튼튼함 때문에 그간 배웠던 상식이 와르르 무너졌다. 솔직히 이게 괜찮은 건지 아닌지 언제나 헷갈렸다.
흑견은 급히 발을 멈췄다.
몸을 살짝 기울여 땅을 향해 귀를 댔다.
덩달아 은호는 흑견의 몸에 바짝 붙어 뭘 하나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흑견은 고개를 다시 올려서는 입을 열었다.
“죽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나란히 세 개 들려왔다.”
“…여기서 들려?”
“그림자를 통해 전해 들었다.”
흑견은 방향을 틀어 흙더미가 쏟아진 곳으로 향했다.
디어네들이 벌써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겁에 질린 표정을 보자, 은호는 해야 하는 말부터 꺼냈다.
화가 나긴 했어도 무언가를 죽이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타인을 죽임으로써 밀려오는 두려움이 사람처럼 꽤 큰 모양이었다.
“안 죽었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
디어네 중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물으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그러니 놀라지 않아도 돼.”
은호가 꺼내는 말에 안도해서는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은 이들 역시 존재했다.
“물러나라.”
흑견은 디어네 무리에게 명령했다.
금세 뒤로 물러난 디어네들은 흑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털 같던 어둠이 부풀어지는 그때, 흙더미를 뚫고 정확히 세 명이 어둠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콜록, 콜록!”
모두 크게 기침하자 은호는 얼른 뛰어 흙더미로 올라갔다.
‘진짜 질기긴 하네. 이래도 안 죽어?’
칙!
치이익.
태호에게 받은 최면 스프레이를 골고루 뿌려주었다.
“잘 자.”
은호는 뒤로 빠져 3초를 셌다.
3.
2.
1.
셋 다 추욱 늘어지자 은호는 주먹 쥔 손을 하늘로 뻗었다.
“우리가 해냈어, 친구들!”
힘껏 지른 은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용했다.
그저 다들 어리둥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무얼 해냈다는 걸까.
애초에 정말 해낸 게 맞을까. 또 인간들이 오지 않을까.
혼란으로 가득 찬 디어네 무리의 반응에 은호는 조금 전에 꺼낸 말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 친구들이 듣고 싶은 말이라면 이 소리이지 않을까.
“이놈들을 잡았으니까, 납치당한 너희 무리 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정말로?”
디어네의 우두머리가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몰라. 그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고.”
폭시가 그랬다.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는가.
물론, 3년이나 지났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디어네 무리한테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좋다.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은호의 대답에 우두머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족을 잃어버리고, 단 한 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다.
막아도, 막으려고 해도 손아귀에 빠져나가는 흙처럼 동족은 사라졌다.
나머지 동족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오직 그 하나만 보고 모든 걸 내던져버렸다.
명예도, 신성한 규칙도.
무리가 살 수만 있다면 다 거추장스러운 것뿐이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우두머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모든 걸 앗아간 게 인간인데, 인간인 자신들을 구원했다.
은호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앞발을 내밀었다.
“……우리 무리를 지켜줘서 고맙다.”
은호는 그 앞발을 쥐며 똑바로 바라보았다.
“친구야. 무리를 지킨 건 너야.”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못 했다.”
“아니. 네가 버텼기에 다른 친구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거야. 잘했어.”
은호는 앞발을 쥔 손을 몇 번이나 흔들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우두머리의 꼬리가 찬찬히 흔들렸다.
무겁던 어깨가 가벼워지고, 머리를 찌르던 두통마저 사그라들었다.
그저 이 모든 게 신기했다.
햇살.
그래, 이 느낌은 가만히 햇볕을 쬘 때와 비슷했다.
흐리멍덩하던 우두머리의 눈동자에 빛이 차차 차올랐다.
“이제 산 쟁탈전을 하러 갈까?”
은호가 건네는 제안에 우두머리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사실 이미 승패는…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니까. 그래도 괜찮은가?”
터전을 떠나려고 결심했던 이유가 사라졌다.
설령 쟁탈전에 이긴다고 해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원래 살던 곳이 제일 좋았으니까.
“알아. 다 알고 너희한테 권했던 거야. 하지만 너희 무리도 우리 무리도 결착을 내는 게 제일 깔끔하잖아?”
우두머리는 저 말에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다시 제안을 주어 고맙다, 라흐다의 대리여. 우리는 산 쟁탈전의 제안을 받겠다.”
그제야 디어네 무리가 내지르는 기쁨의 탄성이 튀어나왔다.
“와아아!”
* * *
“내가 제시할 산 쟁탈전은 종목은 깃발 가져가기야.”
은호는 목에 힘을 주었다.
흰 털을 가진 디어네 무리도,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 무리도 모두 은호를 보았다.
“조금 전, 멍멍이 형님이 산 정상에 깃발을 꽂았거든? 우리는 지금 여기 산 밑에서 시작해서 산 정상 깃발을 먼저 낚아채는 무리가 승리하는 거야. 간단하지?”
은호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규칙도, 방법도 지극히 단순했다.
“동의해!”
“간단해서 좋은데? 얼른 하자!”
“맞아. 지금 바로 시작해!”
두 무리가 목소리를 높이며 호응했다.
은호는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 무리의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쨌든, 내가 대장 대리인데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주먹을 쥐어라.”
은호는 우두머리 말에 주먹을 쥐었다.
“내밀어라.”
그 소리에 은호는 주먹을 내밀었다.
“몸을 낮춰라.”
은호가 쪼그려 앉자마자 우두머리가 본인의 주먹을 은호의 주먹과 마주했다.
묘하게 익숙한 행동에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나, 네리온은 검은 아가리의 협곡을 이끄는 우두머리로서 이 쟁탈전에서 정당함과 공정성을 따르며 어떤 반칙도 허락하지 않겠다 맹세한다.”
네리온이 또박또박 말을 꺼내며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를 늦췄다.
저 배려에 은호는 괜히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뭘 말해야 하는지 알았으니까.
“나, 서은호는 세 개의 바위를 이끄는 자, 라흐다의 대리로서 이 쟁탈전에서 정당함과 공정성을 따르며 어떤 반칙도 허락하지 않겠다 맹세한다.”
시선을 마주한 네리온은 덩달아 웃었다.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가 이파리에 감싼 걸 들고 왔다.
이파리 속에 빨간 액체가 들어 있었다.
네리온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앞발을 빨간 액체에 담가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찍었다.
“이상이다.”
짤막한 네리온의 말에 은호 역시 빨간 액체를 묻혀 나무에 손을 찍었다.
손과 발이 나란히 찍힌 모습에 묘하게 뿌듯했다.
“이제 누군가 시작하고 외치면 되는 거야?”
은호가 묻자 네리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는 눈치를 보다 우리 중 누군가 움직이면 시작이다.”
“진짜?”
“먼저 가라. 뒤따라가마.”
“사양하지 않을게.”
은호는 먼저 달렸다.
그를 따라 두 무리의 디어네가 달렸다.
‘…빠른데?’
흙먼지만 남긴 채 금세 사라진 그들을 보며 은호는 입맛을 다셨다.
어쩌겠는가.
힘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근력으로 산을 타자고 제안한 게 자신이었는데.
‘완주만 하자. 완주.’
“달려라, 인간.”
흑견이 은호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지금, 달리고 있는데?”
“…….”
흑견은 말을 아끼며 앞을 보았지만, 충격에 휩싸인 얼굴은 숨기지 못했다.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너무하네. 이게 정상이라고.”
“말하지 말고, 달려라. 인간은 거북이보다 느리다.”
10분 뒤.
“와, 이거… 죽겠다.”
체력이 이렇게 약했나.
은호는 땀이 닦으며 어깨로 숨을 쉬었다.
“아직 멀었다, 인간.”
흑견은 하품하며 옆에 따라갔다. 웅크려 있다가 움직여도 될 정도였다.
“조금 전 말을 취소한다. 인간은 지렁이보다 느리다.”
2시간 뒤.
“…허억. 헉.”
은호의 땀이 비가 오듯 내려오자 흑견은 후들거리는 그의 다리로 시선을 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참 조마조마해 보였기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쿵.
은호가 나무에 머리를 박자 흑견은 다급히 앞발을 뻗어 나무를 부서트렸다.
빠악!
부서진 나무가 다른 나무를 부수는 걸 보자 은호는 그 자리에 멈춰 어깨로 숨을 내쉬었다.
“…헉. 나무, 부수면… 허억. 안 돼.”
은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올라오면서 생긴 상처를 억지로 터트려 피를 나무에 문질렀다.
다시 자라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걸었다.
다리가 휘청거려 앞으로 넘어질 뻔하자 흑견이 붙잡았다.
“내 등에 타거라.”
“…안 돼.”
“어째서 고집부리는가?”
“내가… 헉, 내가… 가야 하니까.”
그게 새로운 산 쟁탈전의 규칙이었다.
순수한 육체로, 직접, 산 위까지 올라가야 했다.
은호는 흔들리는 몸을 나무로 지탱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저 앞으로.
4시간 뒤.
은호는 기어오르듯 마지막 발을 내디디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온몸을 숨을 내쉬며 하늘이 보였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눈이 반 이상 감겼다.
오면서 몇 번이나 굴렀는지 몰랐다. 흑견이 붙잡아주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아니라 상처가 쓰라렸다.
‘그래도 상쾌하다.’
이렇게까지 숨이 벅찰 정도로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머릿속은 시원했다.
겨우 몸을 일으킬 정도로 숨을 달랜 은호는 상체를 일으켰다.
빠르게 눈이 커졌다.
아직 깃발이 꽂혀 있었다.
“……?”
은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을 했다.
깃발을 중심으로 두 무리가 어울려 서 있었다.
“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리온이 목소리를 내자 은호는 더욱 황당해 말을 더듬거렸다.
“…나, 를?”
“그래. 왜 이렇게 늦게 왔나?”
“아니… 이거, 이거 산 쟁탈전인데.”
“오늘은 네가 승리자이다.”
네리온이 꺼낸 저 말에 은호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반칙 아니야?”
“아니다. 깃발을 아직 아무도 뽑지 않았으니까.”
저 말에 은호는 네리온의 앞발을 잡았다.
“뭐 하는가?”
“봐봐.”
은호는 같이 깃발을 쥐고 뽑아버렸다.
“우리와 너희, 두 무리가 모두 승리자니까.”
힘겹게 올라간 은호의 미소에 네리온은 앞발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가, 승리자가 되어도 되는가?”
우두머리는 감정을 내비칠 수가 없었다.
모두를 이끌어야 했으니까.
“내가 우두머리 대리야. 네가 네 마음대로 한 것처럼 나도 내 마음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야? 그렇지?”
은호가 웃자 네리온 역시 덩달아 크게 웃고 싶었다.
명예를 내버린 자신들을 감싸준 저 말이 너무 고마워서.
모두를 배려하는 저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너희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데?”
“좋다!”
은호의 재촉에 네리온은 그와 같이 깃발을 크게 흔들었다.
환호성과 기쁨이 산 위에서 넓고, 크게 번져갔다.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참 멋졌다.
* * *
“…은호는 기절하고, 네가 고생이 참 많다.”
태호는 흑견의 등에 엎드려 자는 은호를 보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단잠에 빠졌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윈디드가 뭘 좀 들고 왔는데. 깨면 말해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