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5화(75/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5화
75화. 안녕하고 인사하고 싶어(3)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해야 하는데, 질문이 너무 예상하지도 못한 거라 숨만 들이켰다.
“폭시가 은호를 되게 좋아하는뎀…….”
잎사귀를 닮은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추욱 내려갔다.
“…아, 아니, 아니야!”
그제야 뒤늦게 은호가 손을 가로저었다.
“내가 폭시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
“정말이얌?”
더듬이가 금세 올라오며 레비아탐이 눈을 반짝였다.
“위험할까 봐. 폭시라면 무조건 따라올 거 아니까, 그랬어. 너도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
혹여나 레비아탐이 공간 사이에 몸이 잘릴까 놀랐던 은호는 뒤늦게 긴장이 풀렸는지 잠깐 주저앉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미안햄. 내가 오해했엄. 은호가 폭시를 싫어할 리가 없는뎀. 나도 놀랐엄.”
“레비아탐.”
“응?”
“이번에는 진짜 위험한데. 여기 삐약이도 날개가 탔어.”
은호의 시선에 윈디드는 눈동자를 굴리다 날개를 살짝 펼쳤다.
레비아탐이 앞발을 뻗어 날개를 매만졌다.
“아팠겠담.”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작은 친구.”
레비아탐이 윈디드의 말에 눈웃음을 지었다.
“이제 왜 너희를 데려가지 않으려는 건지 알겠지?”
은호가 묻자 레비아탐은 앞발을 맞잡으며 꼬물거렸다.
“은호는 더 큰일이잖암.”
은호는 인간이었다.
자신보다 더 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네가 걱정이야, 레비아탐.”
“은호를 만나기 전에 나도 사고뭉치였엄. 여기저기 쫓겨 다니느라 많이 아팠엄.”
“혀를 뜯겨 힘 조절을 못 해서 그랬잖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지금은 잘하고 있잖아?”
은호가 덩달아 레비아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코카트레스가 레비아탐의 혀를 뜯어버렸지만, 온전히 코카트레스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환수였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약육강식에 살고 있는 이들이었다.
“난, 가족이 없는뎀. 다른 무리에서 날 받아줬는뎀, 그래도 거긴… 내 자리가 아니었엄.”
도로롱은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무리였다.
왜 가족이 없을까.
그때도 차마 묻지 못한 말이었기에 은호는 이번에도 섣불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은호 덕에 다른 얘들하고 오해가 풀려서 기뻠! 연구소에서 친구들이 많아서 기뻠!”
레비아탐은 말과 달리 다급히 앞발을 뻗어 은호를 꽈악 잡았다.
“그래도 내 자리는 은호 옆이얌. 내 가족은… 은호얌.”
“…….”
은호는 필사적으로 팔을 붙잡는 레비아탐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번져가는 따스한 온기에 천천히 눈빛이 깊어졌다.
“은호가 날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암! 하지만 나는, 은호를 가족이라고 생각햄!”
어딘가 늘 비어 있던 그 마음은 은호를 만나 채워졌다.
은호는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다면 이미 가족일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가는 거얌!”
레비아탐은 활짝 웃었다.
가족을 지키려.
그 이유면 충분하지 않을까.
은호는 말없이 레비아탐을 껴안았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두근두근.
레비아탐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은호는 숨을 삼키고 다시 숨을 내쉬었다.
“…은호, 울엄?”
레비아탐이 조용히 물었다.
“아니.”
가족.
그 단어가 얼마나 깊게 들어왔는지 몰랐다.
품 안에 작게 들어오는 작은 환수가 지금 얼마나 커다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지.
“그냥 기쁘네. 응. 지금 많이 기뻐.”
은호는 다시금 숨을 삼킨 채 레비아탐을 품에서 떼어냈다.
“나랑 약속해, 레비아탐.”
다소 단호한 표정에 레비아탐의 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위험한 행동하지 않기. 내 지시에 따르기. 이 두 개만 약속해줘.”
“약속할겜.”
레비아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호는 그제야 평소처럼 밝은 얼굴이 되었다.
“그럼, 가자.”
은호는 자신이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레비아탐은 은호의 팔을 타서는 어깨로 올라왔다.
태블릿을 꺼내 흑견을 추적하자 생각보다 멀리 있지는 않았다.
추적 시간 1시간.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 * *
윈디드의 등에 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환수 관리국에서 온 건지, 텐트를 친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힘을 가진 인간이 많네. 말썽꾸러기가 불렀나?”
윈디드가 아래를 바라보며 묻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사람들이 환수 관리국 소속인데, 쉽게 말하면 너희를 관리하는 사람이야. 삐약이 너랑 그 환수랑 싸웠잖아? 그때 일어난 힘의 파동을 파악해 이렇게 온 모양이야. 아, 그 환수가 힘을 써서 생긴 파동도 꽤 크긴 하겠네.”
“그래서 저 인간들이 우리를 공격한대?”
아무렇지도 않게 물은 윈디드의 말에 은호는 잠깐 멈칫거렸다.
“지금은 조사 차원에서 온 거라 그럴 일은 없어. 있어도 내가 말릴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것치고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지 않아?”
“하긴, 뭔가 이상하긴 하네. 꼭 누가 사고를 친 것 같은데.”
맹금류의 눈을 발동하며 짧은 사이 아래를 주시하던 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해야 하나.
꼭 임시 기지 쪽에 누군가 휩쓸고 간 것처럼 배열이 엉망이기도 했다.
‘…사고 친 거 아니지, 멍멍이 형님?’
은호는 조바심이 밀려왔다.
애초부터 흑견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환수 관리국을 보고 가만히 있을 거란 전제가 생각나지도 않았고.
걱정을 끌어안은 채로 얼마나 갔을까.
레비아탐의 입이 빠르게 벌어졌다.
“은홈, 은홈.”
레비아탐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했다.
푸르른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땅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되돌릴 거니까.”
꽤 덤덤한 은호의 말투에 레비아탐은 그가 말했던 환수의 힘이라는 걸 알았다.
눈에 힘을 빡 주었다.
“삐약아. 내려가 줄래?”
태블릿을 보던 은호는 바로 목소리를 냈다.
이 근처에 흑견이 있었다.
아래로 윈디드가 내려가자마자 검은 연기가 피어나 시야를 가렸다.
“병아리. 네가 이곳에 인간을 데려왔는가?”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나 사나웠다.
“…멍멍이 형님, 화났나 봠.”
레비아탐이 슬그머니 은호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렇네’하고 작게 말한 뒤, 은호는 흑견을 보며 웃었다.
“삐약이가 데려온 게 아니라 내가 왔어.”
“…뭐라고 했는가? 지금 이곳의 꼴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가.”
“솔직히 멍멍이 형님이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려서 그냥 소환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나중에 얼마나 토라질까 싶어서 그만두고 내가 왔지.”
은호는 흑견을 향해 장난기를 드러냈다.
“은홈, 이거 냄새 맡지 맘. 냄새가 이상햄.”
레비아탐은 은호의 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작은 손길에 은호는 키득거리며 마스크를 썼다.
저번과 다른, 태호가 만들어 준 방진용 마스크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피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도 차츰차츰 더 개선할 생각인지,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부분은 마침 자신도 계속 고민하던 문제였다.
어쨌든, 피가 식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가였으니까.
최근 병에 담긴 피를 사용했고, 즉석에서 칼로 피를 뽑을 때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의 양이 조절이 되지 않았고, 더 많은 피를 썼음에도 비슷한 효과가 발휘되는 걸 보니 뭔가 차이가 있는 듯했다.
은호는 가방에서 토템을 꺼내 윈디드의 날개를 따라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은호는 토템을 흔들었다.
그 뒷면에는 ’부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힘이 통하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건가?”
흑견이 불쾌함을 담아 묻자 은호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나도 준비는 해야 하잖아?”
은호는 흑견에게 달려와서는 양팔로 볼을 잡았다.
“그건 그렇고 멍멍이 형님. 솔직히 말해 봐.”
은호가 고개까지 가까이 밀자 흑견은 뒷발을 꼼지락거렸다.
“뭘 말인가?”
“방금 오면서 사람들을 봤는데, 시선이 되게 이상하더라고.”
“그 인간들이 이곳에 남은 냄새를 뒤섞어 놓았다. 방해다.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말에 짜증이 묻어있자 은호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확실히 흑견이 보기에는 화가 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공격하지 않았지?”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 왜 내가 지나가는 곳에 여러 가지를 두는가?”
그 뻔뻔한 소리에 은호는 기가 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잘 참았어, 멍멍이 형님.”
은호가 흑견을 토닥거렸다.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냄새는 저기에서 끊어졌다. 인간들의 냄새만 없었어도 놓치지 않았을 거다. 다 엎어버렸어야 했는데.”
흑견은 불만을 담은 채로 앞발로 방향을 가리켰다.
은호가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윈디드가 목소리를 냈다.
“저기 앞에 물이 있더라고. 그것도 계곡이. 저기 밑에 폭포랑 이어져 있고, 꽤 큰 강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놓쳤어.”
‘…물이라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은호 역시 이마를 때리고 싶었다.
사실 식물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는데, 물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모든 흔적을 지워주는 완벽한 곳이 아닌가.
은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경우의 수가 꽤 많네.’
그 환수가 윈디드가 말한 큰 강까지 의도적으로 움직였을 경우 하나.
사실 물에 빠진 건 거짓이며 원래 남아 있는 흔적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도망칠 경우 하나.
“멍멍이 형님. 혹시, 이 근처에 뭐 다른 건 있었어?”
“여기 말고, 저쪽에도 땅이 죽어 있었다.”
“두 군데나 그랬다고?”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은호는 문득 든 생각에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삐약아. 나 잠깐만 태워줘.”
“뭔가 알게 된 거야?”
“그걸 확인해보게.”
불확실하기에 은호는 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윈디드가 몸을 낮추자 흑견은 발톱으로 땅을 살짝 파헤쳤다.
레비아탐이 그 행동을 지켜보다가 흑견과 눈을 마주쳤다.
배시시 웃자 흑견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콧바람을 세게 불 뿐이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멍멍이 형님.”
은호의 말과 함께 윈디드가 날아올랐다.
흑견이 말했던 그곳 주변으로 도착하자 은호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삐약아. 여기서 빙글빙글 돌아줄래?”
“그거야 쉽지.”
“삐약이도, 레비아탐도 혹시 저기에 땅을 판 것 같은 흔적이 보이면 말해줘.”
은호의 제안에 레비아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호는 그 존재가 땅속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햄?”
“맞아. 지금 힘을 사용한 흔적이 두 개나 나타났어. 하나는 삐약이와 싸울 때 도망치는 용도. 다른 하나는 진짜 도망가기 위해서 힘을 퍼트린 거지.”
“그러니까 나랑 싸울 때 도망간 건 그냥 흉내였다는 소리야?”
윈디드가 기가 막힌 듯 부리로 혀를 날름거렸다.
“내 생각이 맞다면?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 물론, 확실한 거 아니야. 그건 이제 확인해야지.”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었다.
깃털이 탈 정도로 열심히 싸웠는데, 사실 놓친 게 아니라 도망가는 걸 바보처럼 몰랐다면 기분이 얼마나 이상할까.
하지만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번에 그 환수가 힘을 사용했을 때, 흑견이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땅속에 힘을 숨겼다고.
땅을 파는 힘이 있는 게 분명했다.
숨을 짧게 내쉰 윈디드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분한 감정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다음번에는 절대로 안 놓쳐.’
힘이란 참 어려운 것이었다.
과하면 죽어버리고, 약하면 제압이 힘들어지니.
그 균형을 해당 존재에 맞추는 게 참 어려웠다.
눈동자를 굴리던 윈디드는 무언가를 보자마자 부리에 힘을 꽈악 주었다.
“…찾았어.”
윈디드의 목소리가 무거워졌고, 알아서 아래로 내려갔다.
모든 걸 죽인 그 힘으로 땅이 끓어오르는 와중에 텅 빈 곳이 보였다.
얼추 보면 그 힘의 여파로 땅이 팬 것처럼 보여 의식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였다.
하지만 은호의 말을 듣고 다시 주변을 살피니 혼자 덩그러니 눈에 띄어 너무도 이상했다.
“일단 두 곳부터 메워야겠네.”
저기를 조사하려면 밟을 땅이 필요했다.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으며 그 통로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덩치로 땅속을 다닐 수 있는 거라면 솔직히 반칙 아닌가.
* * *
“…땅속이라니.”
흑견은 불쾌함을 가득 드러낸 채 구멍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냄새 추적이 어려웠다.”
지금 당장 그 존재를 씹어 먹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니까. 아니, 그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땅속으로 들어갈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윈디드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그 존재, 얼마나 컴?”
레비아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대체 얼마나 크기에 생각을 못 한 건지 궁금했다.
“이 친구보다 좀 더 큰가. 그럴 거야.”
“…뭐?”
레비아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것과 달리 은호는 깜짝 놀랐다.
“멍멍이 형님이 젤 큰 거 아니야?”
저 물음에 흑견은 아주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 꾹 참았다.
원래 모르는 게 많은 인간이었다.
“나보다 큰 존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입 그만 벌리고 기다리거라.”
“기다릴게.”
은호가 씩 웃었다.
땅속은 어둠이 드리운 곳이었다.
저번에 디어네 사건 때, 땅속에 파묻힌 환수 밀렵꾼들의 심장 소리도 듣지 않았는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았다.
만약에 실패해도 괜찮았다. 근처에 환수 관리국이 있으니까.
흑견은 숨을 천천히 내쉰 뒤, 앞발을 좀 더 뻗었다.
아지랑이처럼 흑견의 털 같은 어둠이 일어나더니, 몸에 물감으로 그린 듯한 금빛이 더 번져갔다.
쫑긋 세워진 귀가 신호처럼 작용하듯 주변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죄다 구멍으로 들어갔다.
흑견은 눈을 감았다.
그림자가 땅 밑에 파놓은 구멍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하나의 구멍이 여러 개의 구멍으로 나누어지는 걸 보자 흑견은 이를 갈았다.
‘…계획된 일이다.’
약속을 의도적으로 어겼다. 단순히 어긴 게 아니라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그 존재가 어디로 갔는지는 여러 방향을 살펴보다 어렴풋이 한 냄새가 뒤섞였다.
꽃 냄새.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냄새였다.
냄새를 따라가다 한 장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샛노란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다가 사라지고, 눈동자는 더욱 뾰족해졌다.
“그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거기가 어딘데?”
은호가 묻자 흑견은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너도 아는 곳이다.”
“내가……?”
* * *
느닷없이 허공이 쪼개지더니 공간이 열렸다.
그 여파로 밀려오는 바람에 한 환수가 고개를 돌렸다.
네 개여야 할 뿔 하나가 부러진 채로 곰처럼 크고, 단단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굴곡지듯 난 두꺼운 발톱이 땅을 긁었고, 이?÷?밖으로 드러나 있었기에 사나운 이빨 사이로 질척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치이이익.
떨어질 때마다 땅이 녹았다.
짙은 회색으로 물든 그 환수는 동물보다는 공룡을 닮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람을 따라 천천히 검은 꽃잎과 흰 꽃잎이 휘날렸다.
플라빗 형제가 꽃을 피웠던 바로 그곳이었다.
환수는 당황하지도 않은 채 은호를 보더니 히쭉 웃었다. 굉장히 비열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