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6화(7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6화
76화. 안녕하고 인사하고 싶어(4)
“…너한테 상당히 향기로운 냄새가 나네?”
천천히 입맛을 다시는 그 행동에 은호는 숨을 삼켰다.
저 환수를 만나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혹여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혹여, 세뇌 같은 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자신의 착각이었다.
저 웃음과 입맛을 다시는 행동을 보면 전혀 아니었다.
빠르게 은호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물어버리고 싶잖아.”
저 환수가 꺼내는 걸걸한 목소리를 따라 은호는 처음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 지금으로서는 몰랐다.
그저 저 환수가 지금껏 봤던 환수와 다르다는 건 분명했다.
은호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주변에 맴도는 태블릿을 쥐었다.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태블릿이 환수가 맞다고 증명하자 은호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우선, 임시 이름인 ‘크라슨’을 불러옵니다.》
《주로 지하 동굴이나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지내는 환수입니다. 독자적으로 살아가며 동족도 해칠 만큼 상당히 난폭하고 잔인합니다. 햇빛을 싫어해 지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주쳤다면 되도록 피하시는 걸 권해 드리겠습니다.》
《땅을 파고 생활해 발톱이 상당히 두껍고 단단합니다. 어깨뼈를 뺐다가 끼울 수 있을 만큼 몸이 부드럽습니다. 부식의 힘을 사용해 주변에 있는 모든 걸 녹일 수 있습니다. 단, 선천적으로 귀찮음이 많습니다. 이 특성으로 난폭하고 잔인한 부분이 꽤 상쇄됩니다.》
이름이 없었다.
태호 말대로 발견되지 않은 환수였다.
그럼에도 태블릿에 정보가 기록된 건 의외였다.
“그 입 닥쳐라.”
흑견이 크라슨에게 으르렁거렸다.
크라슨은 그 소리에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눈동자를 돌려 윈디드를 보았다.
그제야 웃음이 더 크게 터졌다.
“날 잡으라고 왕이 보냈나?”
크라슨은 발톱을 매만지며 눈꼬리를 올렸다.
육식 동물의 눈을 닮아 상당히 날카로웠다.
‘왕……?’
은호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흑견에게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정말로 환수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는 걸까. 그러면 왜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내게 저 인간을 바치러 왔나?”
크라슨은 은호를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솔직히 어떤 맛인지 궁금할 정도로 냄새가 달랐다.
“은호 건들면 용서하지 않을 거얌.”
레비아탐이 날을 세우자 크라슨은 더 크게 웃었다.
조그만 것 옆에 더 조그만 거라니.
“아아, 그 전에 정산할 게 있네.”
아주 잠깐 크라슨은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고작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순식간에 윈디드를 향해 매섭게 다가왔다.
“감히 내 뿔을 부서트려?”
날을 세운 발톱으로 윈디드의 날개를 노렸다. 저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면 어떤 기분일까.
탁.
그림자가 올라와 크라슨의 팔을 붙잡자 잠깐 허공에 매달렸다.
크라슨은 입꼬리를 올렸다.
바로 시선 앞에 인간이 보였다.
쭉 뻗은 팔의 발톱 끝에서부터 액체가 튀어나와서는 은호를 노렸다.
검은 안개가 은호 앞에 나타났고, 액체가 녹는 소리가 났다.
치이이익.
“…인간을 보호해? 푸핫. 하하하!”
크라슨은 흑견을 크게 비웃었다.
진짜 장관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내 뒤를 밟는 게 이상하다고 했는데, 저 인간 때문이었어? 저 인간이…….”
“친구야.”
은호가 입을 열었다.
크라슨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저거 뭐야?”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야. 저거 뭐냐고. 저거, 우리말을 쓰잖아? 우리말을 한다니까!”
뒤로 물러선 크라슨은 흡사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저 인간이 너무도 역겨웠다.
크라슨의 고개가 살짝 삐딱해져서는 등줄기에 있는 뼈가 도드라지게 보일 정도로 등을 바짝 올렸다.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 알려줘.”
은호가 다시 묻자 크라슨은 날을 세웠다.
“너희에게는 약속이 있다며. 그걸 어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
인간의 저 물음에 다 귀찮아졌다.
생각하는 것도 역겨워하는 것도.
“약속. 약속. 약속. 약속!”
점점 말을 빨리하던 크라슨이 혀를 내밀었다.
“애초에 내가 그거 왜 지켜야 하는데?”
“왕이 정한 거다.”
윈디드가 다소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이미 천천히 위압을 흘리고 있었다.
“죽이고 싶으면 그러든지. 저번에 말했지만, 하라고. 왜 못 해?”
크라슨은 앞발을 뻗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따라 땅이 썩어갔다.
“이렇게! 죽이라고! 날 죽여!”
“아무것도 죽지 않았는데?”
은호가 아래를 가리키며 웃었다.
크라슨은 눈동자를 내려 바닥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경계를 놓치지 않았지만, 표정이 빠르게 무너졌다.
파릇파릇한 풀이 올라와 있었다.
왜.
의문이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친구야. 너는 이제 이곳에서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을 거야.”
은호는 미소를 흘리며 단언했다.
천천히 눈빛이 내려앉은 채 땅으로 피를 흘렸다. 다른 손으로 토템마저 꺼냈다.
저게 뭔지 바라보다 말고 크라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주먹을 가득 쥐어서는 땅을 힘껏 내리쳤다.
콰아앙!
흙먼지가 가득 일어남과 동시에 그들이 있는 바닥이 요동쳤다.
윈디드가 은호를 물어 하늘로 날았고, 흑견은 그림자를 통해 들어가 크라슨에게 다가가 그대로 허공으로 올라왔다.
사나운 이빨이 상대적으로 연약할 크라슨의 복부를 물어버렸다.
크라슨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전에 앞발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 끝은 흑견에게 닿지 않았다.
“?.”
흑견은 나가떨어진 살점을 뱉어버렸다.
“아주 더러운 맛이다.”
“푸하하하! 날 물었어? 날”
크라슨이 오히려 기가 막힌 듯 흑견을 비웃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부식을 품고 있기에 살 역시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넌 이제 죽어.”
확신에 찬 크라슨의 소리에 놀란 건 윈디드였다.
윈디드는 은호를 땅으로 내려준 뒤에 빠르게 날아가 흑견 옆에 안착했다.
“너, 쟤를 물었어?”
“물었다.”
“친구. 쟤, 딱 봐도 독이 가득하잖아. 그걸 물어?”
윈디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그깟 독이 뭐라고.”
흑견은 코웃음을 쳐준 뒤에 크라슨을 노려보았다.
그림자에서 올라온 어둠이 흑견 주변에 넘실거렸다.
“너는 건드리면 안 될 존재를 건드렸다.”
은호를.
털 같은 어둠이 수없이 엉킨 실처럼 흐트러지게 날리던 그때, 바닥에서 날이 선 어둠이 수없이 올라왔다.
파바바바박!
크라슨이 가뿐히 도망갔지만, 끝까지 따라붙은 어둠은 앞발을 뚫으며 그대로 남은 뿔 하나를 꿰뚫어버렸다.
흑견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검은 연기처럼 흐트러지더니, 크라슨 앞에 나타나서는 앞발로 목을 쥐며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콰앙!
그 소리에 윈디드가 흠칫 놀랐다.
데굴데굴 구르던 크라슨 쪽으로 그림자를 통해 움직인 흑견은 물 흐르듯 튀어 올랐다.
바닥에 쓰러진 크라슨이 눈을 뜰 무렵 흑견은 허공에서 앞발을 휘둘렀다.
두꺼운 어둠이 감싸진 앞발은 정확히 크라슨의 뿔을 향했다.
빠아악!
충격을 끝으로 너무도 가볍게 부러진 뿔을 걷어차며 흑견은 비웃음을 흘렸다.
“나도 부쉈다, 삐약아. 아주 가뿐히.”
“이, 이 미친 똥개가!”
크라슨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흑견을 보며 분노했다.
치이이익.
크라슨의 피는 질척해져서는 땅을 녹였지만, 이마저도 금세 회복이 되어서는 더 두껍고 튼튼한 식물이 머리를 빼꼼히 든 채로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왜?’
크라슨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힘은 공기와 접촉하면 끝없이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무슨 일일까. 자신의 힘이 마치 누군가에게 흡수된 것만 같았다.
아주 강한 위화감이 들었다.
뭘 놓치고 있을까.
“이걸 유치하다고 하지, 친구?”
윈디드가 던진 말과 함께 머리 위에 링이 빛이 났다. 날개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안 놓치기로 했기에 윈디드는 진심으로 임했다.
몸을 살짝 낮춰 링에서 모여드는 빛줄기를 쐈다.
빔처럼 길게 이어져 크라슨을 내리찍듯 쏘아졌다.
얼어붙어 있던 크라슨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며 달렸다.
저번에 싸웠기에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맞으면 몸이 마비되어버렸다.
‘귀찮아. 귀찮아. 귀찮다고!’
크라슨은 모든 공격이 봉쇄당한 이 상황이 짜증 났다.
하지만 직접 공격한다면 상황은 다를 테지.
윈디드의 빛을 피하며 둥글게 돌다 목덜미를 뜯을 기세로 다가갔다.
‘지금!’
크라슨이 다가가자 흑견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놈의 얼굴을 후렸다.
파악!
“지금이라고 생각했나?”
얼굴이 할퀴어지며 뒤로 밀린 크라슨이 한쪽 눈을 감았다.
피가 떨어졌다.
“고작 이 정도로 그렇게 설쳤는가?”
흑견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까드드득.
바닥을 긁은 채 흑견을 노려보다 말고 크라슨은 고개를 움직였다.
윈디드의 날개 끝에 모여든 빛이 총알처럼 순식간에 쏘아졌다.
쾅!
빛이 닿자마자 나무들이 부서졌고, 그 잔해가 사방에 튀었다.
크라슨의 한쪽 눈이 커졌다.
바로 저 공격이었다.
뿔을 날린 그 공격.
사실 아직도 섬뜩해 온몸에 전율이 맴도는 중이었다.
“저번에 내가 좀 살살 했어. 이게 참 감을 잡기가 어렵거든. 자칫하면 죽어버리니까.”
윈디드 주변에 맴도는 빛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늘어났기에 크라슨은 몸을 낮추며 크게 경계했다.
“떼로 몰려오니까, 이거 참 정신을 못 차리겠네.”
빛이 날아오자 크라슨은 공격을 피해 뛰었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소리 속에 미묘하게 다른 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갑자기 길어졌다. 날갯짓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위쪽.
크라슨이 고개를 들자 윈디드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지. 이거 잊었어?”
윈디드의 링에서 빛줄기가 쏟아 내렸다.
발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림자에 뒤엉켜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빛을 맞은 크라슨은 떠밀려 나무에 크게 부딪히자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우지끈’하고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윈디드가 다가왔다.
크라슨은 몸을 덜덜 떤 채로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계속 끼어들어 방해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끈질긴지 몰랐다.
크라슨은 기다렸다.
힘을 모을 수 있는 곳이 땅뿐이 아니었으니까.
“친구.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날 부른 건 너니까.”
“……?”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왕을 따르며 왕과 함께하기로 약속했어.”
윈디드가 꺼내는 말에 크라슨의 눈동자에 핏대가 섰다.
약속.
또 그 빌어먹을 약속이 나와버렸다.
“왕이 이 땅에 내려오면서 새로운 약속을 우리에게 내렸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며 우리를 받아준 인간과 그들이 생활하는 이 땅을 헤치지 않기로.”
윈디드는 다른 말을 꺼냈다.
위압이 점점 더 강해지자 크라슨은 숨을 내쉬는 게 어려웠다.
처음 맞붙었을 때와 달랐다.
더욱더 덩치가 커져서는 같은 존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왕께서는 약속을 어긴 자를 엄히 벌하라 명령했지. 이를 위해 약속을 어긴 자를 처벌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들어봤겠지?”
“……!”
크라슨은 그제야 이 모든 행동이 이해됐다.
왕의 옆에서 명령을 따르는 존재들이 있었다. 이를 수호자라고 불렀는데, 저놈이 수호자였다.
크라슨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윈디드만큼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그 빌어먹을 약속이 자신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크라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자 가장 높이 서 있던 나무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흰 꽃과 검은 꽃이 크게 흔들리며 꽃잎을 뿌렸다.
이어 다른 나무가 움직여 크라슨을 감쌌다.
그렇게 한 그루씩 점점 늘어나자 크라슨은 당황한 눈으로 나무를 보았다.
콰앙!
몸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 무엇도 땅을 죽이지 못했다.
크라슨이 내뿜은 부식마저 코웃음을 치듯 어떤 나무에도 닿지 않았다.
‘……이거 뭐야?’
크라슨은 나무 속에서 아주 큰 절망을 느꼈다.
수없이 녹여버린 식물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뭔가에 힘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거 뭐냐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사이 식물들이 크라슨을 묶고, 나무들이 나뭇가지를 손처럼 변해 크라슨을 강하게 짓눌렀다.
우르르 쌓인 나무 밑에 깔린 크라슨은 발악했다.
당장 위에 알 수 없는 거품이 보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퍼버버벙.
하지만 거품이 터진 순간, 머리를 관통하고 귀를 찌르는 그 통증에 크라슨은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커헉.”
달달달.
땅이 움직이는 느낌이 밀려오자 크라슨은 눈동자를 겨우 굴렸다.
인간이 태연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단순히 ‘걸어온다’라는 게 아니라 뭔가 달랐다.
이곳 숲 전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풀과 꽃들이, 그리고 나무들이 저 인간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걸 보자 크라슨은 그제야 계속 느꼈던 위화감을 알아챘다.
“……너였어?”
“그래, 나야.”
은호가 미소를 지었고,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레비아탐이 더듬이를 바짝 세운 채 앞발에 힘을 꼭 쥐었다.
은호한테 뭐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친구야. 아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은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더는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다고 했지?”
은호가 손을 뻗자 나뭇가지가 토템을 가져다주었다.
흑견과 윈디드랑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때 만들어 놓은 토템을 발동시키고,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통해 전달했다.
부식 역시 토템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걸 연구소를 통해 확인하고 돌아온 길이었으니까.
“그렇게 됐네?”
은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