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7화(7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7화
77화. 안녕하고 인사하고 싶어(5)
“……하!”
크라슨은 기가 찬 소리를 내뱉었다.
인간이.
“고작 인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크라슨이 억눌린 채로 이를 악물었다.
은호는 그 앞에 토템을 세웠다.
하나, 둘, 셋.
차례대로 발동시킨 뒤 크라슨을 바라보았다.
“친구야. 이제 너는 누군가의 슬픔도, 누군가의 허망함도, 네가 부순 곳에 사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대체 어떤 목적으로 왜 그랬는지 몰라도 더는 터전을 잃는 환수들은 없어야 했다.
“고작 인간이? 나를? 나를…?”
크라슨은 이 허망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발밑에 있었다.
모든 걸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 거지 같은 약속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느꼈는데.
퉤엣!
크라슨이 내뱉는 마지막 발악은 은호에게 닿지 않았다.
나란히 세워둔 토템 앞에 무너졌다.
“고작 인간 걸 떠나서 네가 저지른 일이 너무도 무거우니까.”
“내가 뭘 저질렀는데?”
아무 잘못도 없다는 저 뻔뻔한 표정에 은호는 웃었다.
그렇게 나올 걸 예상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았겠지.
솔직히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환수들의 임시 보호소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제일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환수를 마주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렇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그 이유를 찾는 게 어쩌면 자신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은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환수를 그저 감싸주는 일만이 정답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네가 절망하길 바라고 있어.”
조용히 말을 흘렸다.
평소 은호에게서 들을 수 없는 차가운 말이었기에 그에게 매달려 있던 레비아탐이 슬쩍 시선을 주었다.
“내가 절망할 것 같아? 겨우 이따위 일로?”
“이따위 일이 아니니까. 넌 졌어.”
은호는 패배를 확고히 했다.
졌음을 크라슨에게 인식시켰다.
“네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는데?”
툭 하고 던진 은호의 말이 무거웠다.
크라슨이 믿은 건 본인이 가진 부식의 힘이었다.
모든 건 바로 그 힘이 있기에 가능했을 테니까.
“그간 즐거웠니?”
은호는 물었다.
“그 힘으로 짓누른 환수 친구들을 보며 행복했어?”
또 물었다.
“지금 네 모습이네?”
이어 비웃었다.
크라슨이 매순간, 매번 보았던 그 모습을 지금 본인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깨달았을까.
지금 느끼고 있을까.
크라슨의 입이 살짝 벌어지자 은호는 눈웃음을 지었다.
“친구야. 절망이라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아.”
“네가 지금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이미 느끼고 있잖아?”
은호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찍었다.
“나는 서 있고, 넌 바닥을 기고 있으니까.”
그 말에 발끈하듯 크라슨이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다.
은호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크라슨의 눈에 핏대가 서고, 얼굴마저 그 핏대가 바짝 오른 상태였다. 그저 필사적으로 발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모든 게 점점 더 크라슨을 짓누를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크라슨은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깨닫기 전에 억지로 짓눌렀다.
‘정신 차려!’
크라슨은 본인을 다독였다.
이까짓 것에 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아래에서 땅이 올라와 몸을 더 조였다.
“…뭐 하는 거야?”
땅속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움직임에 크라슨이 다급히 물었다.
“나무가 우뚝 솟을 수 있는 건 땅 아래까지 뻗은 뿌리 덕이야. 그 뿌리가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뿌리라고……?”
“그래. 널 위해서 움직이고 있어. 네가 절망을 느끼도록.”
은호는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크라슨이 어떤 움직임도 낼 수 없도록, 희망이라는 걸 감히 품지 못하도록 나무를 움직였다.
뿌리가 땅을 올리며 크라슨을 억압하자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크라슨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얼굴뿐이었다.
이상했다.
흘러가는 이 분위기가 너무도 낯설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그 자체가 너무도 많은 감정을 불러왔다.
“절망했어, 친구야?”
다시 조용히 물어오는 은호의 목소리가 달리 들렸다.
그제야 크라슨은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저 인간이 그렇게 기다리던 절망이었다.
조금 전에 느꼈던 그 절망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소용돌이가 가슴속에 크게 흔들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마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크라슨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너 따위 인간에게…….”
은호와 눈을 마주한 크라슨은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고작 인간이었다.
이 발톱으로 찢어버리면 죽는 인간인데, 왜 이렇게 크게 보이는 걸까.
목소리를 내면 다른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
“절망했구나.”
은호는 크라슨이 느낀 그 감정을 대신 말로 꺼냈다.
그 순간, 크라슨은 가슴이 철렁거렸다.
자신이.
저 인간을 두려워한다고.
“내가 두려워졌네?”
은호는 크라슨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니야.”
크라슨은 은호의 발을 바라보았다.
다가오는 저 발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짓누를 것처럼 거대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가까워지자 크라슨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감정을 더는 숨기지 못했다.
“오지 마……!”
크라슨이 비명처럼 내지른 그 말에 은호는 입가에 호선을 그렸고, 크라슨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이제야 네가 피해를 당한 환수 친구들과 같은 선상에 섰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크라슨은 꼼짝도 하지 않는 몸을 느끼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네 몸 말이야. 제대로 붙어 있는 게 맞을까?”
은호가 넌지시 질문했다.
그 질문 하나에 크라슨은 섬뜩함이 밀려왔다.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기에 움직이지 않는 건지, 움직일 수 없는 건지, 그 사실이 두려워졌다.
“무섭지?”
은호가 물었고, 크라슨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이미 너무도 커다란 두려움이 크라슨의 눈빛에 어렸으니까.
크라슨에게 터전을 잃은 환수들이 자신을 볼 때 지었던 그 눈빛과 닮아 있었다.
“이 두려움은 다른 환수 친구들이 너에게 느꼈을 감정이고, 동시에 네가 즐겁게 바라보던 감정이겠지.”
크라슨은 더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감정을 느껴버렸으니까.
“너는 즐거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즐겁지 않아.”
은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히려 마음이 쓰라렸다.
“친구야.”
은호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아직도 네가 느끼는 그 감정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환수 친구들이 많아.”
손을 뻗어 크라슨을 쓰다듬었다.
그 행동에 흑견이 발끈했다.
크라슨의 피부에 독이 있다고 분명히 들었을 텐데.
“빌어. 그 친구들이 널 용서하지 않아도 빌어. 그게 네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니까.”
크라슨을 용서하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저 환수에게 피해를 본 다른 환수 친구들이었다.
크라슨이 용서를 빌어야 그 친구들도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크라슨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 또한 그 친구들일 테니까.
“만약에 혼자 사과하기 힘들다면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너, 멍청이야?”
크라슨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소리였다.
방금까지 싸웠던 상대에게 저런 말을 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마저도 너를 버리면 진짜 혼자일까 봐. 그래서 나는 너를 못 놓겠어.”
은호는 크라슨을 끌어안았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하나도 몰랐다.
크라슨이 일방적으로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했듯 은호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그저 자기 마음대로 크라슨하고 약속했다.
“그 후에 네 이야기를 들어줄게. 네가 왜 그랬는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몸이 점점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은호는 크라슨을 놓치지 않았다.
“그 후에 너를 보면 오늘처럼 날을 세우는 게 아니라, 안녕하고 인사할래.”
다시금 일방적인 말을 꺼냈다.
이래야 먼저 크라슨에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은홈……?”
레비아탐이 은호를 보더니 흠칫 놀라 그의 옷자락을 다급히 잡아당겼다.
“그 손 ?G. 놔야 햄!”
“그래. 이제 그만해라.”
흑견이 언성을 올린 채 은호를 어둠으로 떼어냈다.
흑견과 레비아탐을 보던 은호는 씩 하고 웃었다. 평소와 미소가 달랐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간을 열어라. 어서.”
흑견이 재촉했고, 그 말에 윈디드가 놀라며 물었다.
“말썽꾸러기한테 저 독이 통해?”
당연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지만, 윈디드는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은호는 뭔가 특별했으니까.
“너도 멍청이인가?”
흑견이 날을 세우며 윈디드를 노려보자 윈디드는 표정을 살짝 구겼다.
“모를 수도 있지. 말썽꾸러기는 뭔가 다르잖아.”
은호는 그 분위기에 안심하며 공간을 열고자 손을 떼어냈다.
진짜로 몸이 이상해졌으니까.
땅이 울렁거리고, 피가 흐르고.
‘……어?’
주르륵 흐르는 피에 모두의 시선이 멈췄다.
‘…와, 그 맛이 맞네!’
이건 뭔가 뾰족한 독이었다.
은호는 왠지 웃겼다.
이 맛을 또 느낄 줄이야.
혈관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뒤이어 일어났지만, 은호는 공간을 열었다.
“…화내지 마.”
멍멍이 형님.
그 말을 작게 한 채로 급격히 흐려지는 시선을 막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사아아아.
누가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은호가 저 존재를 용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림자로 덮인 모든 구역이 크게 흔들렸다.
“너.”
흑견은 샛노란 눈동자로 크라슨을 바라보았다.
섬뜩했다.
지독한 어둠이 몰려온 듯 흑견의 몸이 점점 커졌다.
“…치, 친구?”
윈디드마저 당황했다.
마치 분노라는 것만 몸에 가득 담은 것 같았다.
“이따위 개짓거리를 하려면 인간 눈에 띄지 않게 해라. 다음에도 걸린다면 내가 너를 찢어 죽여버릴 거다.”
은호가 있기에 하지 못했던 말을 흑견은 거침없이 꺼냈다.
“내가 못 할 것 같나?”
죽이는 게 뭐라고.
태어나면서부터 야생의 세계로 내쳐졌다. 어떻게 하면 더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압도적인 힘.
그것 이외에 필요한 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삶이 지쳐버렸다.
잘 때도, 물을 먹을 때도 매 순간 긴장하는 그 삶에 지독하리만큼 싫증을 느꼈다.
무얼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지조차 잃어버린 삶이었다.
“오늘은 단지, 하지 않은 것뿐이다.”
은호가 싫어하니까.
저 인간이 그런 꼴을 보지 못하니까.
탁.
자신의 발가락에 낯선 온기가 느껴지자 흑견은 시선을 빠르게 내렸다.
“으, 은호가 화내지 말라고 했엄. 그리고 지, 지금 은호가 아팜!”
레비아탐이 덜덜 떨며 말을 꺼냈다.
“……하.”
흑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화를 가라앉혔다.
자신의 삶이 달라진 건 바로 저 인간 때문이었다.
저 인간은 그걸 알까.
흑견은 은호를 바라보았다. 괴로움에 오만상을 찌푸리자 괜히 볼을 꼬집어주고 싶었다.
“멍청한 인간.”
그 말을 흘리며 흑견은 레비아탐을 바라보았다.
“먼저 가겠다.”
“응!”
흑견이 은호를 등에 올린 채 공간으로 들어가자 레비아탐이 덩달아 따라가려다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말썽꾸러기한테 나중에 찾아간다고 말해줘.”
“갈 거얌?”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윈디드는 바짝 얼어붙은 크라슨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다음에 ?c!”
레비아탐은 앞발을 흔든 뒤에 공간으로 들어가려다 부르는 소리에 멈췄다.
“잠깐!”
크라슨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눈물을 흘리는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왜 저 작은 존재를 불렀는지도 몰랐다.
“미안하다고 전해줄깜?”
레비아탐이 물었지만, 크라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레비아탐이 배시시 웃었고, 크라슨은 가벼워지는 몸을 느낀 채 그저 공간으로 들어가는 작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윈디드가 슬쩍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크라슨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인간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자연을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걸까.
이 생각을 하는 것도, 이 눈물도 이상했다.
이미 자연은 이곳에 있으니까.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어쨌든, 너는 나랑 같이 가야 해.”
윈디드는 본분을 잊지 않고 살짝 무게감 있는 시선으로 크라슨을 보았다.
이유를 떠나 약속을 어긴 존재였다.
이를 벌하는 자는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약속을 어긴 대가를 받아낼 테니까.”
윈디드가 앞발로 크라슨의 목을 짓누르며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