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7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78화(78/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78화
78화. 안녕하고 인사하고 싶어(6)
* * *
은호는 눈을 뜨자마자 액체가 똑똑 떨어지는 링거와 마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독제라도 형한테 달라고 그럴걸. 그렇지?”
당연히 흑견이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은호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은호는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흑견이 없었다.
‘……화 많이 났나?’
흑견이 자신의 옆을 떠나지 않을 텐데.
은호는 상체를 일으켰다.
“……허.”
숨이 바로 막혔다.
평소보다 뭔가 더 많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지만, 놀라지 않았다. 이 역시 하루하루가 지나면 나아질 게 뻔했다.
자신의 회복 속도는 남달랐으니까.
“태블릿 씨.”
은호가 부르자 태블릿이 튀어나왔다.
흑견을 추적해봤다.
예상 시간 7분.
상당히 가까이 있기에 안도했다.
잠깐 밤을 즐기러 간 게 분명했다.
흑견은 고기도 좋아하고, 밤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둑한 밤 자체가 흑견의 주식이었으니까.
은호는 오늘도 야무지게 링거대에 여러 가지를 건 뒤에 끌고 나왔다.
야근과 철야에 시달렸던 이 몸뚱어리가 아직도 밤을 그리워하는 건지 몰라도 이상하게 밤에 눈이 떠졌다.
아니면 지금 새벽일까.
은호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복도를 거닐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디어네가 깨어나면 해줄 말이 있었고, 폭시한테 이번에 데려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 했다.
예전에 만났던 락이터의 새끼도 건강해져서 데려다줘야 했고, 윈디드와 레비아탐에게도 깨어났다고 알려야 하는데.
‘아.’
플라빗 형제가 돌아오면 꺼낼 어마어마한 말이 생겨서 기뻤고, 버니멀이 그 뒤로도 사장님하고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론한테도 가야 하는데.’
자신에게 노란 꽃을 준 햄피아가 있었다.
놀러가면 자신을 반겨줄까.
생각만으로 웃겨 미소가 감돌다 코카트레스인 아크를 떠올리니 걱정이 슬그머니 밀려왔다.
화풀이로 나무를 부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은호는 걸음을 멈췄다.
‘…크라슨.’
그 이름을 떠올리니 참 아팠다.
어떻게 됐을까.
자신의 말은 크라슨에게 닿았을까.
은호는 다시 걸었다.
밖으로 나와 아직도 불이 환하게 켜진 연구소를 보았다.
‘철야인가.’
원래 살던 세상과 참 많이도 닮은 이곳이라 적응이 빨랐다.
아직도 낯설지만, 그래도 이곳이 좋았다.
그리고 흑견이 좋았다.
은호는 달을 보며 엎드려 있는 흑견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연구소에 멀리 떨어지지 않는 그곳에 아름다운 금빛이 눈이 부시도록 일렁거렸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은호는 달을 바라보는 흑견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걸어갔다.
흑견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인간!”
당장 자리에서 일어난 흑견은 기가 찬 소리를 꺼냈다.
그제야 은호는 비로소 해맑게 웃을 수 있었다.
화는 났지만, 떠난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또 자리에서 벗어났는…….”
“멍멍이 형님이 내 옆을 떠난 줄 알고, 진짜 놀랐어. 그래서 이렇게 찾으러 왔어.”
은호는 다가오는 흑견을 보며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화를 내려던 흑견은 저 소리에 바람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고개를 살짝 숙여 코끝으로 은호의 얼굴을 살짝 밀었다.
“그때, 같이 가자고 말한 건 인간이었다.”
아직도 은호가 넘겼던 그 노란 꽃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인간이 떠나달라 부탁하지 않는 이상 곁에 있겠다.”
“멍멍이 형님.”
“말해라.”
“나는 절대로 그런 부탁은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자 은호는 크게 웃었다.
“기대도 돼?”
“마음대로 해라.”
흑견은 몸을 웅크렸다.
누가 봐도 편안하게 누울 수 있을 만큼 납작 엎드렸다는 게 보였다.
이 모습에 은호의 미소가 한껏 길어졌다.
“왜 밖으로 나왔는가?”
“멍멍이 형님이 없어서.”
“정말인가?”
살짝 까칠했지만, 묘하게 기뻐하고 있기에 은호는 흑견의 몸에 기댄 채 키득거렸다.
“그랬는데, 이제는 안 그러려고.”
은호는 말을 내뱉은 뒤 흑견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미묘해졌다.
방금 잠깐이지만, 화를 냈기에 차마 뭐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장난기를 가득 끌어모았다. 놀리는 맛이 상당했으니까.
“내가 멍멍이 형님한테 가면 화를 내잖아.”
“……안 낸다.”
“방금도 내려고 했잖아.”
“그건 인간이 자리를 떠나서 그랬다. 저걸 끌고 오지 않았는가.”
흑견은 발가락으로 링거 거치대를 가리켰다.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에 멍멍이 형님이 없는데?”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나는 다시 곁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럼, 내가 딱 맞게 깨버린 거야?”
“그렇다.”
“운이 좋았네. 이렇게 큰 달도 보고.”
은호는 흑견의 털 같은 어둠을 쓸어내리며 달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몰랐는데, 주변이 꽤 조용했다. 아마도 환수 친구들이 꿈나라로 간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왜 그랬을까. 멍멍이 형님은 이유를 들었어?”
“관심 없다.”
“슬픈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재미있어서 했을까.”
“신경 쓰지 마라.”
딱딱하게 이어진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가?”
“멍멍이 형님은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게 무슨 말인가.”
뭔가 기분이 나빴기에 흑견은 꼬리로 땅을 내리쳤다.
“그 꼬리 그렇게 쓰려면 나 줘.”
은호가 손을 뻗자 흑견은 꼬리에 묻은 흙먼지를 탈탈 턴 뒤에 조심스럽게 그를 덮었다.
“멍멍이 형님이 그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그러는 거지.”
“나는 그런 멍청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만약에 해도 내가 말려줄게. 더 따끔히 혼낼 거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 삐약이는 어디 갔어? 레비아탐도 돌아왔어?”
“이제 그만 물어보고 그냥 쉬어라. 인간은 지금 독에 당했다.”
흑견은 은호의 저 입이 그만 좀 멈췄으면 했다.
다른 날이라면 괜찮지만, 오늘은 멈춰야 했다.
“내가 좀 급했어?”
“그래.”
“사실, 쉰다는 게 사실 나한테는 좀 낯설다고 해야 하나. 아직 몸이 좀 거부하긴 해.”
계속 일을 했다. 눈 뜨자마자 일했고, 잠을 쪼개며 일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더라.
그것조차 떠올릴 만큼 아득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말을 꺼내다 말고 흑견은 눈이 거의 감길 만큼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은호가 쉬고 있었던 그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기어코 저걸 달고 있었다.
“인간은 가만히 있는 걸 모른다. 대체 왜 그런가?”
흑견의 언성이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뒤늦게 ‘아차’했지만, 이미 내뱉어버린 뒤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환경이라서…? 빨리 돈을 벌어야 했어.”
“돈? 인간이 좋아하는 그거 말하는 건가?”
“맞아. 사람들한테 영혼이나 마찬가지인 거야. 이게 없으면 죽어버려. 이거 때문에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하기도 하고.”
“인간도 많이 내려놓았는가?”
“멍멍이 형님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
은호가 놀라며 물었다.
보통 이렇게 물으면 기분이 나쁠 법하지만, 은호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기에 은호는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나도 그랬다. 돈은 아니었지만, 인간과 다른 방향일 테지만,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너도 힘들었겠다.”
은호는 흑견의 꼬리를 매만졌다.
고작 십 년이었다.
환수의 수명이 얼마나 긴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너무도 어렸다.
“인간은… 내가 만약에 다른 존재를 공격한다면 나를 어떻게 볼 건가.”
느닷없는 흑견의 물음에 은호는 눈을 크게 떠서는 고개를 올렸다.
“설마 계속 이거 고민하고 있었어?”
흑견은 그 물음에 고개를 살짝 반대쪽으로 옮겼다.
“…진짜야?”
은호가 놀라며 다시금 물었다.
“너는 인간이니까. 나와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 존재가 피를 흘릴 정도로 공격했으니까.”
뭔가 입이 가려운 상황이었기에 은호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흑견은 지금 무척이나 진지했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내가 멍멍이 형님을 무서워할 리가 없잖아.”
“그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사실인데? 무서워야 할 구석이 있어야 무섭지.”
옆에 늘 같이 있지만, 그런 낌새를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
“응?”
불러놓고 흑견은 말을 굉장히 주저했다.
“왜 그래? 고민 있어? 고민하면 바로 나거든. 내가 딱 해결해줄게.”
“…저번에 인간이 했던 말을 기억하나?”
“저번에? 언제?”
은호가 어리둥절 하자 흑견은 어둠으로 은호를 들어 올렸다.
“아니, 무슨 말이길래 그래? 이거 놓고 말해 봐. 어디 사고 쳤어?”
“내가 인간인가?”
흑견이 발끈하자 은호 역시 덩달아 발끈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하지. 삐약이가 말썽꾸러기라고 불러서 그래? 그건 그냥 별명일 뿐이야.”
“인간. 지금 꼴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긴 하네.”
은호는 머쓱해서는 흑견을 보며 괜히 웃었다.
“그……, 돌아갈까?”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나올 거다.”
“그러면 나도 있을래.”
“참 손이 많이 간다.”
흑견은 다시 은호를 내려놓고는 웅크려 앉았다.
“어쨌든 아까 하려는 말이 뭔데? 나 그거 안 들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
은호의 눈동자는 달빛을 받아 빛이 났다.
정말이지 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야 회복을 할 텐데.
흑견은 다시금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려다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이게 뭐라고.
“……나도 그렇다.”
흑견이 겨우 말을 흘렸지만, 은호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라.”
하지만 어딘가 쑥스러워하는 흑견을 보자 천천히 그 말이 스며들었다.
―널 만나서, 비로소 머물 곳이 생겼는데?
그때, 낯부끄럽게 꺼냈던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푸흡.”
은호는 입을 꽉 가리며 웃음을 막았음에도 새어 나왔다.
“조용히 해라!”
바짝 약이 오른 흑견의 말에도 은호는 그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서로 같은 마음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너무 기뻤다.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은호의 웃음소리로 주변에 있던 환수들이 다가옴에도 그는 웃음을 멈추질 않았다.
* * *
“…너무해, 은호!”
폭시는 은호를 보자마자 울먹거렸다.
뛰어갔는데, 레비아탐만 데려가고 공간이 닫혀버렸다.
쾅.
그때, 마음이 세게 닫히는 기분을 느껴버렸다.
레비아탐이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려줬지만, 은호를 보자마자 속상한 마음이 터져버렸다.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정말이야.”
은호가 쪼그려 앉아 폭시를 바라볼 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나는 그때 진짜, 진짜 속상했어!”
폭시는 땅을 보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입술을 파르르 떨렸다.
“폭시가 엄청 속상할 줄 알고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왔는데?”
폭시의 귀가 꿈틀거렸다.
늘 어떤 감정이든 잘 참았는데, 이상하게도 은호 앞에서는 다 무너져내렸다.
지금도 그랬다.
“그때는 상황이 위험했으니까. 레비아탐은 어쩔 수 없이 데려왔어. 내가 열어버린 공간 속에 머리가 낄까 봐 꽤 다급했으니까.”
레비아탐이 했던 말을 은호가 고스란히 하자 폭시는 귀를 내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은호한테 미움받는 줄 알았어.”
“내가 널 왜 미워해?”
은호가 손을 벌리자 폭시가 달려와 안겼다.
품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은호는 고개를 돌린 채 웃었다.
“다음번에는 꼭 어떤 일인지 말할게.”
“정말?”
“약속할게.”
“응!”
폭시가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앞발로 은호를 힘껏 안다가 슬쩍 은호의 뒤를 보았다.
흑견이 무표정한 상태로 보고 있자 그제야 폭시가 살짝 안도했다.
* * *
똑똑.
“나 왔어요, 형.”
“은호… 우리 흑견하고, 폭시가 왔네?”
은호에게 혼을 내려던 태호가 흑견과 폭시의 등장에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둘 다 언제봐도 참 예뻤으니까.
“안녕, 태호!”
폭시가 태호를 보며 앞발을 흔든 것도 모자라 은호의 품에 벗어나 다가갔다.
태호는 그대로 폭시를 모시듯 무릎을 꿇었고,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폭시야?”
분명 방금 화해했는데. 비어버린 자신의 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