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8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80화(8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80화
80화. 다시 만났다(2)
조심히 내민 락이터의 앞발을 향해 새끼 역시 앞발을 내밀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엄마의 품에 안긴 새끼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아.”
히히힛.
뒷발을 동동거리며 행복함에 파묻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래, 엄마 여기 있어.”
락이터 역시 새끼를 안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루가 일 년을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기다리느라 고생 많았어.”
은호는 손을 뻗어 락이터를 토닥거렸다.
“…고마워, 은호. 정말 고마워.”
락이터는 눈물을 훔치며 은호에게 인사했다.
도중에 자신이 안심할 수 있게 아이가 잘 지낸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보여줬으니까.
인간에게 한 아이를 잃었지만, 그 상처마저 포근히 덮어주는 것만 같았다.
“저번에 기억해? 네 아이가 아프다는 걸 발견한 사람이 있는데, 다음에 데려가겠다고.”
“기억해. 혹시, 저 인간이야?”
“맞아. 이름은 설태호야.”
은호는 태호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멀리서 서 있다 은호의 손길에 태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너의 아이를 치료해줬어. 세상에 너희를 위하는 인간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이 사실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거야.”
락이터는 한 팔로 새끼를 안은 채로 태호에게 다가갔다.
그림자가 지자 태호는 멈칫거렸다.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도 몰랐고, 생각보다 크자 압박감마저 밀려왔다.
“인간.”
락이터는 태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렇게도 증오했던 인간인데, 품에 안긴 새끼의 온기와 은호가 데려왔다는 이유 하나로 태호가 짓는 표정이 제법 괜찮게 보였다.
저번에 은호의 간절함과 미안함을 봤기에 딱 한 번만 인간을 믿어 보기로 했다.
평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선택일 줄이야.
“나는 너를 기억했어.”
만약에 우연이 저 인간을 만나도 이 냄새와 저 얼굴을 잊지 않을 테니.
“고마워, 인간. 나와 나의 아이를 구해줘서.”
락이터는 태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 태호는 락이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태호는 아주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락이터를 포함한 환수와의 거리는 늘 무척이나 멀기에 언제나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만 내디디면 락이터를 만질 수 있었다.
그 거리까지 환수들이 허락했다.
처음은 도로롱이었고, 그 다음은 폭시였으며 흑견과 락이터까지 이어졌다.
이 기적은 은호가 불러왔고, 만약에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을 꿈이 되었으면 했다.
어릴 적 빌어본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꿈 같은 일이 계속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까.
태호는 시큰거림을 참아내며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 * *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던 환수는 노란 꽃을 보더니 방긋 웃던 입꼬리를 내렸다.
괜히 앞발로 꽃을 건드렸다.
머리에 뿔 두 개가 숙이는 고개를 따라 내려갔다.
조금 각이 진 얼굴은 햄스터를 닮아 있었고, 동글동글한 눈동자에는 빠르게 아련함이 깃들었다.
공작 깃털을 닮은 네 개의 날개가 파닥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나쁜 인간.”
몇 번을 생각해도 나빴다.
다음에 불러달라고 이름을 알려줬다.
하지만 몇 밤이 지나도 인간은 오지 않았다.
“나쁜 인간.”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나쁜 인간!”
역시 인간은 나빴다.
아니, 그 인간은 달랐는데.
서은호.
이름을 떠올리자 마음이 아팠다.
“워!”
갑자기 소리가 들리자 환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드러누워서는 비명을 질렀다.
“…피아아악!”
“놀랐지? 엄청 놀랐지?”
익숙한 목소리에 환수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
옆에 나타난 존재를 보자 환수는 그대로 멈췄다.
봄과 같은 냄새가 이어 흘러나왔다.
“론.”
활짝 웃는 미소를 따라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그 이름을 불러주자 눈물이 차올랐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그 상태로 햄피아인 론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간 쭉 가슴에 품어왔던 여러 감정도 같이 흘러내렸다.
“…로, 론? 어디 다쳤어?”
“왜 이제 왔어, 나쁜 인간!”
론은 울면서 땍땍거렸다.
“너무 늦게 왔지?”
“너 죽은 줄 알았잖아!”
“나, 걱정했어?”
“안 했어! 나쁜 인간 걱정은 안 해!”
어헝헝.
론은 울면서 소리쳤다.
그때와 변함없는 말투와 행동에 은호는 웃음이 났다.
두 손으로 론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나는 계속 네 걱정을 했는데?”
“거짓말하지 마! 그랬으면 왔어. 왔다고.”
론은 앞발과 뒷발을 흔들며 은호의 말을 부정했다.
“너한테?”
“…….”
론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론을 안았다.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준 그 날, 론이 주었던 그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여기서 꺾어다 준 걸까.
“노란 꽃을 볼 때마다 널 생각했어.”
“…거짓말이지?”
론은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눈물이 멈추고, 씰룩씰룩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진심이야. 네가 나한테 준 그 꽃, 거기서 내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걸?”
“그거, 별로 예쁜 꽃도 아니고, 많지도 않았어.”
“그래도 나는 좋았어. 너한테 받은 꽃이라 정말 좋았어.”
은호가 품에서 떼어내자 론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은호는 장난기를 드러냈다.
“너도 계속 내 생각하고 있었지?”
“아, 아니야! 내가 나쁜 인간을 생각할 리가 없잖아!”
론은 주먹 쥔 손으로 근처 바닥을 팡팡 쳤다.
그때, 병원 이불을 칠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정말? 이건 좀 속상하다. 우리 서로 이름을 알려줬는데.”
은호가 실망하자 론은 온몸의 털을 바짝 세웠다.
“……기다렸어. 조금. 아주 조금! 진짜 조금이야!”
목소리마저 떨리자 은호는 크게 웃었다.
“그런데 그 커다란…….”
갑자기 그림자가 지자 론은 딸꾹질하듯 ‘히끅’거렸다.
“오랜만이다.”
흑견의 말에 론은 은호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나, 날 또 팔아넘겼어? 날? 이 나쁜 인간!”
“아니. 나랑 같이 다녀.”
“왜, 왜 그러는데? 협박이라도 받은 거야?”
“아니야. 내 가족인데?”
“……?”
은호가 흘린 말에 흑견도 론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각자 다른 의미겠지만, 은호는 아무렴 어떠냐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별일은 없었어?”
“똑같았어. 그냥, 좀, 살짝 허전했을 뿐이야.”
론은 힐끔힐끔 은호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수줍은 듯한 얼굴을 하다가 그 감정 자체가 어색한지 날개를 괜히 파닥거렸다.
“아! 나쁜 인간한테 보여줄 거 있어.”
“나한테 보여줄 거?”
“얼마 전에 큰 소리가 나면서 생긴 게 있어.”
“큰 소리? 혹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지?”
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크라슨처럼 다른 환수의 터전을 뺏는 일이 벌어지며 어쩌나 싶었다.
“나쁜 인간이… 머무는 거기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거야?”
론은 은호의 표정에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사라진 뒤, 가끔 생각이 나면 이 주변만 맴돌았다.
하루하루마다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는 그 냄새에 아쉬움이 길어졌지만, 그래도 잘 지낼 거라 생각했다.
역시 그때, 같이 살자고 말했어야 했을까.
론의 입가에 그 말이 맴돌았다.
“아니야. 네가 걱정돼서 그래.”
은호는 론의 볼을 콕 찍었다.
론은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고는 날았다.
“따라와!”
“쑥스러워?”
“그런 거 아니라고!”
이익.
론은 허공에서 주먹을 휘두르다 다시 앞으로 빨리 날았다.
은호가 키득거리며 뒤를 따랐고, 흑견은 주변을 바라보다 노란 꽃으로 시선을 뒀다.
살며시 웃은 뒤 둘의 뒤를 따라갔다.
예전에 잠깐 머문 곳이지만, 딱히 특별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저 인간이 빨리 돌아가서 침대에 드러누우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맴돌았다.
얼마나 갔을까.
일방적으로 은호가 론에게 말을 걸며 쫑알거렸고, 밀려드는 질문에 론이 괴로워할 때쯤에 은호는 말을 멈췄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땅이 깊게 팬 것도 모자라 그곳에 별자리 같은 점이 연결되어 반짝거렸다.
팔을 길게 벌린 정도라 엄청 넓지는 않았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와. 와. 와아아. 이거 뭐야?”
은호가 론을 바라보았다.
“나도 몰라.”
론의 대답에 은호는 흑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멍멍이 형님은 알아? 여기 살았잖아.”
“모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운석이 떨어진 흔적…….”
“다른 존재의 힘이다.”
은호의 기대를 흑견이 와장창 무너트렸다.
이게 환수의 힘이라니.
그 사실에 은호는 밀려오는 걱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론. 여기 있던 다른 얘들은 괜찮아?”
“여기에 아무도 안 살아.”
“정말?”
“그냥 가끔 누가 지나가겠지. 밤에 큰소리가 나기도 했고, 봐봐. 시체도 없잖아?”
“혹시 누가 그랬는지 봤어?”
“음…….”
“잠시만.”
은호는 그 흔적을 찍었다.
찰칵.
“…아! 여기에 모르는 존재가 며칠 나타나긴 했어.”
태호한테 문자를 보내려던 차 론의 말에 은호는 손을 내렸다.
“어떤 존재? 누가 나타났는데?”
말하는 순간, 은호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론은 그 표정을 보자 은호에게 날아와 발바닥으로 얼굴을 찍었다.
역시 뭔가 이상했다.
인간에게 저런 표정은 낯설었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누가 너 괴롭혔어?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너는 나쁜 인간이지만, 그래도 내가 도와줄게!”
론의 눈에 켠 이글거림을 보던 은호는 숨을 들이켰다.
바람을 따라 그때 맡았던 노란 꽃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미소를 그렸다.
“…약속을 깬 환수가 다른 환수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어.”
“난 또 뭐라고. 원래 그래. 아니다, 약속을… 깬 건 그건, 음, …약속을 깼어? 약속을……?”
론이 눈을 크게 떴다.
입마저 벌어지려던 차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그 일은 너하고 관련 없어! 걔가 멋대로 한 거니까!”
론은 코웃음을 쳤다.
은호의 볼을 누른 앞발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날 저 존재한테 팔았을 때처럼 뻔뻔하게 행동해. 그래야 나쁜 인간이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당돌하다고 해야 할까. 이전과 다르지 않은 저 말투와 표정에 은호는 이상하게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맴돌았다.
“론. 나는 멍멍이 형님한테 널 판 적이 없어. 그냥 반응이 귀여워서 계속 부르긴 했는데, 사실 네가 보고 싶었어.”
“그게 그거…….”
론이 몸을 파르르 떨며 소리치려다 말고 그대로 멈췄다.
“날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맞아.”
“…….”
은호의 웃음이 흘러나오자 론은 아예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어, 어쨌든, 모르는 존재와 누구랑 싸운 것 같긴 한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어. 내가 물어볼게.”
“고마워.”
“뭐가?”
“날 위로해준 것도, 여기 데려와 준 것도, 그리고 날 반갑게 맞이해준 것도.”
“…가끔 와. 그러면 돼.”
“그럴게.”
은호의 대답에 론은 앞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밀려드는 기쁨에 입꼬리가 올라갈 무렵, 불쑥 보인 노란 꽃에 시선을 돌렸다.
“이건 내 선물.”
은호의 말이 뒤따르자 론은 두 팔로 꽃을 안았다.
뒤늦게 꽃에 얼굴을 파묻어 배시시 웃었다.
* * *
“…오늘 너무 신기한 하루였어, 그렇지?”
은호는 털썩 누웠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검은 꽃과 흰 꽃이 흔들렸다.
―내 영역에 지나가지 말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싸우진 않았어. 아, 그 존재가 어떻게 생겼냐고? 으음, 뭔가, 까만 존재였어.
그 환수와 싸웠다고 알려진 다른 환수를 찾아가 물으니 나온 말은 저게 전부였다.
까만 환수.
그 말에 잠깐 기대했다가 이내 흑견은 아니라 생각했다. 흑견에게는 반짝이는 힘이 없었으니까.
“왜 여기에 온 건가?”
흑견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뭘 그렇게 다니는지 몰랐다. 그냥 얌전히 있을 것이지.
“이 나무 친구가 저번에 나 도와줬잖아?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싶어서.”
크라슨 사건 때 저 나무가 주도적으로 도와줬다.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유일한 나무이기도 했다.
“고마워, 나무 친구야.”
은호는 나무를 향해 진심을 담았다.
그 말이 이상해 흑견은 입을 열었다.
“인간.”
“응?”
“자연은 대부분 인간을 돕지 않는가.”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지.
“늘 나를 도와줘서 고마운데, 식물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이 친구만 빼고.”
은호는 나무를 가리켰다.
손을 길게 뻗어 나무를 쓰다듬었다.
플라빗 형제의 인연도 있기에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건 이상한 소리다.”
“하지만 진짜야. 나 별로 안 좋아한다니까?”
나무가 갑자기 가지를 뻗기에 은호는 말을 멈췄다.
은은하게 빛이 나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보석이야…?”
묘하게 헷갈리게 생겼다 싶었다.
“아니, 씨앗이다.”
흑견이 딱 잘라 말하자 은호는 머쓱했다.
고맙습니다.
나무가 아주 느리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을 꺼냈다.
“에이, 아니야. 내가 더 고마운데? 이런 거 안 줘도 돼.”
은호가 선물을 거절했지만, 나무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받을 때까지 이렇게 있을까, 슬쩍 물었다.
“나 진짜 가져간다?”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렸다.
은호가 손을 뻗자 위로 떨어트렸다.
두근두근.
뭔가 생명력이 느껴졌다. 아주 강한 생명력이.
‘진짜, 씨앗이네……?’
씨앗에 빛이 난다니.
뭐가 되었든 심어보고 싶었다.
‘어……?’
생각하나가 은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애정으로 키우면 다를까.
그게 너무 궁금했다.
“고마워! 내가 진짜 잘 키울게.”
은호는 생각을 접고, 나무를 쓰다듬었다.
이 씨앗은 나무의 소중한 자식이나 다름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