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8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81화(8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81화
81화. 내 이름은 레비아탐이얌
“…오오오.”
폭시가 옆에서 말을 꺼내자 은호는 모종삽을 내렸다.
“왜 멈춰, 은홈?”
레비아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갑자기 긴장되네.”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식물을 키우는 건 초등학생 때 말고 없었다.
뭔가 생물을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왜 긴장이 돼? 은호는 땅을 파는 게 무서워? 내가 대신 파줄까?”
폭시는 10개의 앞 발가락을 모두 펼친 채 은호를 바라보았다.
꼬물꼬물한 그 손길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이 식물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이 밀려와서 그랬어.”
“식물인데? 식물은 알아서 쑥쑥 자라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폭시야. 식물도 한 생명이니까, 책임감이 있어야지.”
환수 친구들은 자신의 옆으로 와준 거지, 절대로 누굴 키우니 뭐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식물이 최초였다.
애초에 생명을 감당한다는 게 자신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장 죽음부터 생각이 났으니까.
“…진짜 몰랐어. 식물은 알아서 쑥쑥 자라는 줄 알았어. 그러면 저 씨앗은 아기잖아. 갑자기 은호 마음이 이해돼. 심장이 빠르게 뛰어.”
폭시가 긴장한 표정을 하자 덩달아 레비아탐마저 얼어붙었다.
“아기는 누구든 지켜줘야 햄!”
“그렇지?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겠지?”
“응!”
폭시와 레비아탐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은호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자연한테 씨앗을 심기에 가장 좋은 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집 앞 마당을 알려줬다.
왜 집 앞 마당인지 몰라도 은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종삽을 올렸다.
“간다.”
폭시와 레비아탐 역시 진지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고 있을 거얌.”
“나도! 아기 식물이 잘못되지 않게 볼게.”
그 주변에 누워 있던 흑견은 꼬리를 흔들며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애초에 땅을 파는 게 뭐라고 이렇게 비장한지.
“아, 그 전에 이거 봐라.”
은호는 씨앗을 꺼내 보여줬다. 무려 빛이 나는 씨앗이었다.
“빛이 남!”
“씨앗에서 빛이 난다고?”
레비아탐과 폭시가 은호의 손에 각각 얼굴을 얹어서는 빤히 보았다.
이 모습을 당장 사진으로 찍고 싶을 정도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하나였다.
“태블릿 씨, 찍어줘요.”
가방에서 나온 태블릿은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찰칵.
태블릿의 등장에 두 환수가 고개마저 들었기에 완벽하다 싶었다.
“삐죽아! 이거 보여?”
이어 은호는 집 근처 전봇대에 매달린 일렉트를 불렀다.
전기 이외에 조금의 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래야 일렉트의 상태가 좋아질 테니까.
갑자기 일렉트가 날아왔다.
작은 단춧구멍 같던 눈이 그렇게 반짝거릴 수가 없었다.
“이거 전기 아닌데, 왜 빛이 나?”
일렉트다운 물음에 은호는 실실거렸다. 금세 장난기가 올라왔다.
“이걸 심으면 전기 나무가 되는 거야.”
“…전기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데?”
“전기 나무의 씨앗이잖아. 벌써 전기가 날 순 없잖아.”
“아아. 씨앗은 다른 거네? 씨앗은 냄새가 나지 않는 거네?”
일렉트가 앞발을 뻗어 씨앗을 매만졌다.
신기함이 가득한 저 눈을 보자 은호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
일렉트의 눈이 커졌다.
그대로 추욱 늘어져서는 땅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비아탐이 걸어가 일렉트를 앞발로 건드렸다.
“삐졌담.”
레비아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날 속였어, 은호.”
꼬리로 땅을 내리치던 일렉트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삐죽 내민 입술을 위로 뒤틀었다.
원망 어린 시선도 받았지만, 은호는 낄낄 웃으며 씨앗을 땅에 묻었다.
다들 왜 이렇게 놀리는 맛이 있는지 몰랐다.
“삐죽이 주려고 이것도 준비했는데.”
은호가 전기가 담긴 토템을 꺼내자 일렉트는 언제 토라졌냐는 듯 활짝 웃으며 앞발을 내밀었다.
토템을 넘겨주자 품에 안은 채 몸을 빙글빙글 감았다.
“이제 피를 뿌려볼게.”
은호는 씨앗 위를 흙으로 덮은 뒤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지금 피를 담은 통은 딱 한 방울을 부을 수 있을 만큼 정교하진 않았다.
살짝 손가락을 베어내서는 꽉 눌러 피를 떨어트렸다.
흥미 없어 하던 흑견마저 힐끔 바라보았다.
‘다른 식물과 다르겠지? 반짝거렸으니까?’
은호는 기대하며 바라보았다.
흙 일부가 아주 살짝 흔들리더니, 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랐담!”
“자랐어!”
호들갑을 떠는 레비아탐과 폭시와 달리 은호는 눈을 의심했다.
‘……응?’
자라는 걸 확인하려고 한 방울씩 주려고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왜 저것밖에 안 자랄까.
은호는 조금 더 깊게 베어내서는 피를 두 방울을 더 떨어트렸다.
조금 전보다 아주 살짝 자라난 기분만 있었다.
‘뭐지?’
뭔가 성장이 엄청 느렸다.
하도 이상하자 은호는 가방에서 피가 담긴 병을 꺼냈다.
모두 다 부어버리자 그제야 조금 더 자라는 기색이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어라……?’
은호는 바로 옆에 있는 풀에게 피를 줘봤다.
손가락만큼 뻗어 있던 풀이 쑥쑥 자라 자신의 무릎 이상으로 올라오자 그제야 안심했다.
‘힘이 사라진 줄 알았네.’
“피를 왜 그렇게 낭비하는가?”
흑견이 입을 열었다.
“이 식물 친구, 좀 이상한데? 봐봐.”
“…이게 다 자란 건가?”
흑견이 다가와 눈을 가늘게 떴다.
은호의 피는 다른 피와 냄새부터 달랐다. 사방에 퍼진 냄새로 흘린 양이 가늠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것밖에 자라지 않는다니.
확실히 이상했다.
“친구야…?”
은호는 아직 싹에 불과한 식물을 만졌다.
손가락이 닿자 주변에 빛이 맴돌았다.
그 색이 마치 교감의 힘을 낼 때 피어오른 초록색과 비슷했다.
은호는 눈동자를 굴리다 교감의 힘을 끌어냈다.
새싹이 품은 빛깔마저 더욱 짙어지며 새싹이 통통 튀듯 움직였다.
“이제 진짜 자라나려나 봐.”
“맞암. 이제 자라난담!”
폭시의 말에 맞장구를 친 레비아탐이 뒷발을 동동거렸다.
하지만 땅에서 튀어나온 건 새싹을 단 씨앗이었다.
뿅.
그 가벼운 소리와 함께 드러낸 모습에 은호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가득 띄워야만 했다.
‘…저게 뭐야?’
은호도 그렇고, 모두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새싹을 단 씨앗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원래도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았기에 너무나도 하찮았다.
‘응……?’
은호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지만, 진짜로 손아귀에 타자 그대로 굳어졌다.
뭔가 줄기 같지만, 어쨌든 손도 있고, 팔도 있었다.
“뭐야. 움직이는 씨앗이잖아.”
일렉트는 관심이 확 식어서는 다시 전봇대로 향했다.
“머, 멍멍이 형님.”
은호는 이게 뭔지 알려달라는 눈으로 흑견을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씨앗이다.”
“아니, 그걸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씨앗이 이렇게…….”
손가락에 닿는 촉감에 은호는 말을 멈추고 씨앗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 싹이 났고, 은은하게 빛이 났다.
눈과 입은 없었지만, 묘하게 귀여웠다.
“완벽한 씨앗이네.”
씨앗이 움직이면 어떨까, 귀여우니 됐다 싶었다.
어쩌면 그 나무에 섞인 자신의 피와 나무 자체의 특별함이 일으킨 기적이 아닐까.
은호는 보고 싶다고 눈빛을 보내는 폭시와 레비아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씨앗이 달려가 폭시와 레비아탐을 번갈아 가며 안아주자 두 환수의 눈빛이 바뀌었다.
“은호, 은호, 얘 진짜 예뻐.”
“나는 꼭 안아주고 싶엄!”
금세 마음을 빼앗긴 듯 보였다.
은호는 괜히 으쓱거렸다. 짧지만, 잠깐이라도 키웠으니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옆에 둥둥 뜬 태블릿을 보자 미소가 길어졌다.
《새로운 종이 탄생 되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붙여주십시오.》
새로운 종이라니.
역시 빛이 은은하게 날 때부터 알아봤다.
《기록되지 않은 종입니다. 무얼 하는지, 무얼 할 수 있는지,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뒷말은 솔직히 의외인데?’
태블릿이 모르는 것도 있다니.
당장 크라슨만 하더라도 발견이 된 적이 없어 이름이 없었지만, 태블릿은 크라슨이라는 종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환수가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으니, 태블릿은 그 세계에서 환수의 정보를 모아둔 도감 같은 게 아닐까.
“위그드라실이라고 할래요. 그래도 될까요?”
거대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아는 나무 중 가장 큰 세계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러면 더 쑥쑥 자라지 않을까.
《‘위그드라실’이라 기록했습니다.》
《현재 걸어 다닐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태블릿이 기록한 내용을 보며 은호는 가볍게 웃었다.
어쨌든,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으니까.
“네 이름은 이제 위그드라실이야.”
은호는 씨앗을 건드리며 말했다.
마치 말을 알아듣듯 고개를 끄덕이자 뭔가 하나라도 더 칭찬하고 싶었다.
“은호!”
그때, 일렉트가 은호를 크게 불렀다.
이런 일은 잘 없기에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왜 그래, 삐죽아?”
“저기 다른 존재가 전기를 노리려고 보고 있어! 공격해도 돼?”
“…다른 존재?”
은호가 위그드라실을 주머니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닭대가리다. 신경 안 써도 된다.”
흑견이 자리에서 엎드리자 그제야 은호는 굳어진 표정을 살짝 풀며 웃었다.
레비아탐을 쓰다듬으며 작게 ‘여기 있어도 돼’하고 말했다.
“아크!”
은호가 코카트레스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갔다.
닭을 닮은 머리와 늑대보다 더 큰 몸집에 나무로 가려지지 않을 텐데, 그렇게 서 있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흑견을 보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저 샛노란 눈빛만 봐도 몸이 굳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지금도 저 인간을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네 이름이 아크얌?”
은호를 따라온 레비아탐을 보자 아크는 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 조그마한 존재의 혀를 뜯어버린 게 자신이었으니까.
“……그래.”
아크가 마지못해 대답하자 은호는 레비아탐을 안았다.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나게 해도 되는 걸까.
“가까이 오지 않아도 되는데.”
은호가 슬쩍 말하자 레비아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거라면 아크만 봐도 몸을 덜덜 떨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은호가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었다.
“나는 레비아탐이얌.”
레비아탐은 아크를 향해 먼저 웃었다.
“…알고 있다. 저번에 들었으니까.”
아크는 껄끄럽다는 듯 대답했다.
저번과 달리 눈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왜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불편했다.
“있잖아, 혹시 너야?”
폭시가 다가와서는 아크 주변을 맴돌았다.
아크는 눈꼬리를 올렸다. 갑자기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왔으니까.
“우리 레비아탐의 혀를 뜯어버린 존재가?”
분명 작은데, 이상하게도 그 발걸음이 꽤 무겁게 느껴졌다.
아크는 저 물음마저 매섭다고 느꼈다.
“내가 너보다 더 강할 테니까, 네 혀도 뜯어버리면 되겠네?”
갑자기 나타난 나비를 보며 놀라던 아크는 뒤늦게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뾰족함에 눈동자를 돌렸다.
‘…대체 언제?’
어느새 폭시가 아크의 목덜미를 향해 날을 세운 발톱을 들이밀고 있었다.
―…혀가 뜯겼엄. 지금 치료하고 있는데, 발음은 나아지질 않암. 그래도 괜찮암. 난 이제 행복하니깜.
레비아탐이 그때 배시시 웃으며 말했지만, 주변에 흐르는 감정이 보였다.
그건 슬픔과 속상함이었다.
레비아탐은 그저 꾹 참고,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아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도 잘려 나간 레비아탐의 혀가 돌아온 건 아니었다.
“폭시야.”
은호가 부르자 폭시는 ‘흥’하며 내려왔다.
다소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다시는 레비아탐한테 가까이 오지 마. 내가 용서하지 않아.”
“나는 괜찮암. 정말 괜찮암!”
“또, 또, 저런다.”
폭시는 가볍게 뛰어 은호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어쩔 줄 몰라하는 레비아탐을 안아주었다.
“너는 내 친구야. 내가 지킬 거야.”
다시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폭시는 레비아탐을 더 꽉 끌어안았다.
“자자, 친구들아. 여기까지 하자.”
은호는 다소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저들을 말렸다.
“아크가 레비아탐의 혀를 물어뜯었고, 그건 잘못된 행동이 맞지. 하지만 그간 사과할 기회가 없던 것도 맞아. 레비아탐은 그간 치료하고 있었으니까.”
레비아탐이 연구소에 있는데 아크가 어떻게 사과를 할까.
그건 불가능했다.
“…아, 맞네.”
폭시가 그제야 눈꼬리를 내렸다.
레비아탐의 혀를 뜯어간 그 존재가 누구인지 몰라도 만나면 혼내주겠다고 생각해서 꽤 성급하게 군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 미안해.”
아크는 저 말에도 굳어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화든 뭐든 참고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어, 아크야?”
은호는 아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을 향해 공격만 멈춰달라는 그 약속을 지켜주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많은 전진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와라. 네가 놀랄만한 일이 있으니까.”
아크는 묵직하게 말을 꺼내고는 돌아섰다. 어쩐지 의기양양해 보였다.
‘내가 놀랄만한 일이라고?’
잠깐 생각하던 은호는 이내 미소가 감돌았다.
이곳에서 얘들을 괴롭히던 아크였기에 놀랄만한 일은 새로운 친구를 사귄 일뿐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