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8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82화(8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82화
82화. 내 이름은 레비아탐이얌(2)
은호는 흐뭇하게 웃은 뒤, 일렉트에게 물었다.
“삐죽아. 따라올 거야?”
“아니.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알았어.”
아쉽지만, 일렉트가 좋아하는 건 전기였으니까.
레비아탐하고 폭시한테 끌려서 강제로 오기도 했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와. 올 수 있지?”
“나는 바보 아니야.”
일렉트는 불만을 담아 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 * *
은호는 흑견을 탄 채로 성큼성큼 앞서가는 아크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자 품에 안겨 있는 레비아탐을 보며 물었다.
혹여 놀랐을까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
“응, 괜찮암.”
레비아탐이 웃었다.
“지금 심장이 빨리 뛰는데?”
은호가 툭 찌른 저 말에 레비아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음. 음. 으음. 그러니깜!”
“이러면 같이 가야지. 레비아탐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레비아탐은 그 말에 입을 가리며 키득거리다 앞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쿵. 쿵.
아크의 커다란 날개를 보자마자 심장이 빨리 뛰었다.
무섭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멋대로 날뛰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과를 받고 싶은 걸까?’
레비아탐은 잠깐 생각하다 은호의 팔에 기댔다.
혀가 잘린 일은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슬픈 일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졌으니까.
레비아탐은 고개를 힐끔 돌려 흑견을 보았다.
‘나도 저렇게 컸다면 무섭지 않았을까.’
흑견이 부러웠다.
저 거대한 덩치라면 이런 감정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할 말 있나?”
“아니얌.”
레비아탐은 흑견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그란 눈동자가 살짝 반으로 접힐 때쯤, 은호의 손길이 이어졌다.
레비아탐은 눈을 감았다.
따뜻한 온기에 꽉 막혔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원래 심장을 지키는 게 어려워. 무슨 생각을 해도 무서우니까.”
“…어떻게 알았엄?”
레비아탐은 눈을 떠 은호를 바라보았다.
“나도 무서워 봤으니까.”
“은호감?”
“그럼. 나도 무서운 거 많아.”
“은호감…?”
“이거 비밀인데, 사실 나 벌레 무서워해. 되게 많이.”
은호는 레비아탐에게 속삭였다.
“쉿.”
은호가 한쪽 눈을 찡긋 감자 레비아탐은 앞발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신기했다.
은호는 무서운 게 없어 보였는데.
윈디드도 엄청 크고 날카로운 인상인데 성큼성큼 다가갔고, 못된 인간한테도 그랬고, 다른 존재들에게도 주저 없이 다가가는 그 등을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벌레 안 무서워하는데. 하나도 안 무서운데.’
레비아탐은 뭔가 웃겼기에 다시금 앞발로 입을 가린 채 키득거렸다.
이상하게 힘도 났다.
“이 앞이다.”
아크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멀리 온 거야?”
은호가 묻자 아크는 차갑게 대꾸했다.
“직접 봐라.”
그 말에 은호는 레비아탐을 내려준 뒤, 흑견의 등에서 성큼 내려왔다.
바로 아크 옆으로 다가가자 뭐가 불편한지 몰라도 아크는 옆으로 거리를 띄웠다.
“아크. 내가 불편해?”
은호는 거침없이 물었다.
“그래. 불편하다.”
아크 역시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기쁜데?”
“무슨 수작이지?”
“네가 나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잖아?”
“보고 나서도 그 말이 나올까?”
아크는 날개로 앞을 가리켰다. 조금 전 보았던 의기양양한 모습과 닮아 있었다.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한 거 아니야? 나 완전히 헛다리 짚은 거야?’
은호는 괜히 헤드셋을 만지작거리다 한 걸음 나아갔다.
걷다가 뭔가가 다리 옆에 바짝 붙자 시선을 내렸다.
폭시가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든든한 말을 꺼낸 뒤, 폭시가 먼저 수풀 너머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은호가 수풀을 헤치고 앞을 바라보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터에 나뭇가지들이 꽤 많이 널브러져 있었다.
‘……?’
나뭇가지를 보라는 걸까.
“나뭇가지가 많아.”
폭시의 말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시는 주변 냄새를 킁킁 맡았다.
“아크의 냄새가 가득해. 뭔가 또 섞였고.”
덩달아 은호 역시 냄새를 맡았지만, 풀 냄새가 날 뿐이었다.
“여긴 내 보금자리다.”
“…뭐?”
아크가 던진 그 말에 은호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아크의 집이라면 즉, 저 나뭇가지는 집을 이루는 재료라는 셈이고, 집을 누군가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네가 그랬을 텐데, 다른 존재들이 내 근처로 오지 못하게 막아주겠다고. 그런데 보이나?”
아크는 은호를 비웃었다.
“…이거 언제부터 그랬는데?”
“나는 너와 약속을 지켰다.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봤는가?”
아크는 날개깃을 바짝 올렸다.
덩달아 꼬리에 달린 뱀을 닮은 존재가 혀를 내밀었다.
“약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너라는 존재로 나는 약해졌고, 이렇게 된 거라는 걸 이제 알겠나?”
아크는 이 숲에서 벌어진 사태를 은호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저번에 은호는 자신을 꺾었다.
동시에 약하면 무조건 강한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그 사실마저 깨부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실이 꺾인 그 뒤로 우려와 달리 놀랍도록 조용했다.
다른 존재들에게 보복도 없었다. 그저 우연히 만나면 눈길 한 번만 줄 뿐, 정말로 근처에 오지도 않았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진리가 흔들리자 모든 게 흔들렸고,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저 인간이 한 말이 맞다고 생각할 무렵, 이 일이 벌어졌다.
“봤나? 약속을 깬 건 내가 아니다.”
그 약한 것들이 저 인간을 믿고 설친 짓거리였다.
자신은 약자가 됐으니까.
이제야 이 숲에서 자신은 어떤 위치가 됐는지를 알아버렸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이 치욕감은 생각 이상으로 비참했다.
“아니얌. 이거 얘들이 한 거 아니얌.”
조용히 다가온 레비아탐이 말을 꺼냈다.
여러 냄새가 섞여 있어 구분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알고 지껄이는 거지?”
아크는 레비아탐을 노려보았다.
그 섬뜩한 눈빛에 레비아탐은 앞발로 입을 가렸지만, 이내 내리며 소리쳤다.
“달람!”
레비아탐은 아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힘으로 이곳을 억누르는 동안 얘들은 계속 평화를 원했으니깜! 내가 알암!”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겠지. 이때다 싶으니까!”
“아니얌! 너한테 복수해봤자 뭐가 달라지는 뎀?”
“내가 사라지면 이 숲에 온전한 평화가 생기겠지. 이거 떠나라는 증거잖아? 나보고 나가라고 지껄이는 거잖아?”
아크는 점점 몸을 부풀어 올리며 바짝 날이 선 발톱으로 땅을 긁었다.
얼마나 분노로 찼으면 꽉 다문 부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누가 너보고 떠나라고 했엄? 그건 너무햄!”
“그 행동을…….”
“이봐, 닭대가리.”
흑견이 입을 열자 아크는 있는 힘껏 째려보았다.
“내 이름은 아크다.”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나가. 대체 왜 아이처럼 구는 거지?”
흑견은 고갯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이건 꼭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쫓아내는 사실에 불만을 품어 징징거리는 꼴이 아닌가.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잡은 건 인간이다.”
아크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널 잡았지. 여긴 네 집이니까.”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자신과 한 약속을 잘 지켰다.
충분히 다른 얘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그간 잘 지냈는데, 갑자기 누군가 네 집을 이 꼴로 만들었다는 건 솔직히 이상하긴 해. 너는 강하잖아?”
“강하다.”
아크가 목에 핏대를 세워 말하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은호는 가방에서 피가 담긴 병을 꺼내 뿌렸다. 그 행동에 아크가 흠칫거렸다.
“그저 주변 식물 친구들한테 물어보려고 그러는 거니까, 긴장하지 마, 친구.”
“내가 언제 긴장했다고 하는가?”
아크가 눈을 가늘게 뜨자 폭시가 말로 넌지시 찔렀다.
“놀란 거 다 봤는데?”
“너는 뭐길래 조금 전부터 나를 자극하지?”
“나는 레비아탐의 친구니까!”
폭시가 귀를 쫑긋 세웠고, 레비아탐은 앞발을 모은 채로 눈을 반짝거렸다.
“그런 하찮은 것 따위에 현실을 외면할 셈인가?”
“레비아탐이 아니라면 아닌 거야.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아크가 내뱉은 말에 폭시는 가볍게 맞받아쳤다.
근거는 있었다.
아크는 분노하고 있었고, 레비아탐은 그런 아크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는 게 다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이라니.
“내가 확인할게.”
은호는 저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씩 웃었다.
이럴 때는 물어보는 게 최고였다.
“친구들아. 여기 무슨 일이 있었어?”
은호가 식물에게 묻자 주머니에 있던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소리도 거의 없었지만, 은호는 무언가를 느끼며 고개를 내렸다.
“위그드라실?”
몸에 은은하게 빛을 냈기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위그드라실은 바닥을 향해 발을 콩 찍었다.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애석하게도 입이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은호는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에너지를 느꼈다.
이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미지에 놀랐다. 너무도 선명했다.
위그드라실한테 ‘네 힘이냐’라고 물어야 하지만, 은호는 밀려오는 이미지에 집중했다.
아크가 보금자리에서 나간 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환수가 조심히 걸어와 이곳을 마구잡이로 부서트렸다.
그 환수는 순둥순둥한 멧돼지를 닮았는데,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앞발에 글로브라도 낀 것처럼 컸고, 팔이 길었다.
‘…어떤 환수지?’
처음 보는 환수였다.
머릿속으로 쏘아진 이미지가 사라진 뒤, 은호는 잠깐 두통을 느꼈다.
“위그드라실. 이거 네 힘이야?”
은호가 묻자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짧은 팔을 이리저리 돌렸다.
‘…와.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저 작고 귀여운 씨앗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뭔가 달랐다.
갑자기 식물들에게 전해오는 그 이미지가 선명해진 게 위그드라실 덕이라면 자신은 대체 무슨 종을 만든 걸까.
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 뒤,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다잡았다.
어쨌든, 범인을 찾았으니까.
“아크야.”
은호가 아크를 부르자 이미 의심부터 눈동자에 박은 그 눈빛에 그는 더 싱긋거렸다.
“혹시 멧돼지를 닮은 얼굴에 팔이 굉장히 길고, 앞발이 두꺼운 그런 친구를 알고 있어?”
아크는 저 말에 부리가 살짝 벌어졌고, 레비아탐은 앞발을 올렸다.
“알암!”
“알고 있다고?”
“응응! 아크의 친구얌.”
레비아탐이 꺼낸 그 말에 아크는 발끈했다.
“누가 내 친구인가? 내 뒤만 귀찮게 졸졸 따라다니는 놈일 뿐이다!”
“아, 네 부하 같은 그런 친구란 말이지?”
은호는 슬슬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기에 아크를 한 번 더 건드렸다.
“나는 그런 거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다시금 나온 아크의 대답에 은호는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방법은 잘못됐는데, 아크를 되게 좋아하는 친구네.’
그 환수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현재 아크는 자신 때문에 1인자라는 자리에서 내려온 상태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아크에게 휘둘렸던 다른 친구들도, 아크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하지만 이건 예측을 못 했네. 분명 저번에 그 친구의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레비아탐이 알고 있는 걸 보면 꽤 자주 등장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가 갑자기 1인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아크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현실 부정이 제일 먼저겠지?’
이런 상황에서 아크를 다시 1인자의 자리에 올리려면 갈등을 일으켜 다시 힘을 되찾게 하는 방법뿐이었다.
그게 바로 저 자작극이었다.
“정말 제대로 본 게 맞아?”
아크는 잠깐 망설이다 되물었다.
“왜? 짐작 가는 게 있어?”
은호 역시 되물었다.
“뭘 하기 전에 항상 나한테 허락을 구했다. 이런 짓을 멋대로 저지를 놈이 아니야.”
“평소라면 그랬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게 무슨 말이지?”
아크는 은호가 꺼낸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모든 게 이상했다.
“역시 내가 약해졌기…….”
은호는 아크를 찰싹 때렸다. 전혀 기별도 가지 않았지만, 아크는 얼굴을 가득 구겼다.
“아크.”
숨을 한 번 내쉰 뒤, 은호는 그 손으로 아크를 토닥거렸다.
“네가 나한테 진 뒤로 많은 게 달라졌다는 걸 알아. 네가 만든 규칙이 아니라, 내가 만든 규칙을 따르는 중이니까. 물론, 그게 불만인 것도 알아.”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공격을 금지당한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충격적인가?”
의도적인 도발이기에 은호는 저 말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아닌지 몰려오는 살기가 제법 강렬했다.
은호는 그들에게 고개를 저은 뒤 아크를 제대로 보았다.
정말로 아크가 약해졌다면 당장 저 친구를 건드리는 다른 친구들이 나타나야 정상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이제야 찾은 평화인데 구태여 전쟁을 향한 불씨를 뿌릴 이들이 어디 있을까.
아크는 이런 상황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태라는 소리였다.
“미안해, 아크. 네가 이렇게 혼란을 느낄 줄은 몰랐어. 같이 고민하기로 했는데, 내가 많이 소홀했지?”
“날 동정하지 마라!”
아크는 날카롭게 은호를 바라보았다. 저런 표정이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저 인간이 대체 뭐길래.
“너의 동정을 받을 만큼 나는 약하지 않다! 인간 너는…….”
기세마저 높이자 흑견이 단숨에 아크의 목덜미를 쥐어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콰앙!
“……멍멍이 형님?”
은호는 깜짝 놀랐다.
“기어오르지 마라, 닭대가리.”
흑견은 아래로 내려보았다.
이런 존재들은 밟아야 꼭 말을 들었다.
본인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이상한 존재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