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8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86화(8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86화
86화. 별을 품은 친구(3)
저들이 숲에 뿌려놓은 정찰대는 이미 습격한 뒤였다.
―두, 두 사람이 뒤에 있습니다.
정찰대를 붙잡고, 들을 수 있는 건 다 들었다.
한 명은 급하고, 한 명은 너무 신중해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저들이 꺼냈던 많은 말도.
정찰대가 가진 신호를 내는 장치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엉뚱한 곳에 오게끔 했다.
뭘 하든 두 사람은 싸울 테고, 이대로 승리만 쟁취하면 그뿐이었다.
정찰대 역시 잘 포장해 연구소에 잠깐 놔둔 상태라 깔끔했다.
쉬이이이익.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은호는 딱 두 걸음 물러섰고, 운석처럼 내려온 거대한 돌이 두 사람의 머리를 강타했다.
쿠우웅!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은호가 뒤를 돌아보자 나뭇가지들이 얽혀 투석기처럼 변해 있었다.
그림자가 땅에서 치솟아 돌을 치워주었고, 쓰러진 그들을 향해 작은 비눗방울이 밀려왔다.
“……으으.”
그들이 아픔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 비눗방울이 터졌다.
크기가 작은 만큼 소리 역시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어난 진동이 그들의 머리를 강렬히 때려버렸다.
뇌의 신호가 꼬이며 몸을 움직이질 못하자 은호는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흑묘성을 불렀다.
“때려, 친구야!”
그 말에 흑묘성이 하늘을 보았다.
눈동자에 은하수가 담긴 것처럼 반짝거리던 그 순간, 조금 전 소리와 다른 묵직함이 밀려왔다.
하늘에서 혜성 같은 강렬한 빛 덩어리가 내려왔다.
콰아아아앙!
그대로 두 사람을 때려버렸다.
위력이 약할지언정 불꽃처럼 빛이 가득 튀는 그 모습에 흑묘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때려버렸다.
저 끔찍한 인간을 혼내주었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다가올 것만 같던 인간들이 꼼짝도 하지 않자 흑묘성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쫓겨도 되는 것이더냐?”
흑묘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물었다.
갑자기 인간들이 나타나 자신을 쫓아왔다.
차갑고, 서늘한 그 시선에 잡히면 큰일이 난다는 걸 알았다.
도망쳤다.
때로는 힘을 쓰며 저항도 했다.
하지만 졸렸다.
배가 고팠다.
목이 말랐다.
그 세 개가 자꾸만 자신을 찔렀다.
왜 자꾸 괴롭히는지 몰랐고, 왜 자꾸 자신을 쫓아오는지도 몰랐다.
다리가 아팠다. 발바닥이 따갑고, 자꾸만 눈물이 맴돌았다.
숨었는데, 그 숲에 사는 다른 존재들이 자신을 쫓아냈다.
대체 얼마나 뛰어야 하는지,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몰라 그게 서러웠다.
“나 이제…….”
흑묘성은 감았던 눈을 뜨며 간절히 빌 듯 물었다.
“…이제 아빠한테 가도 되는 것이더냐?”
그 물음에 은호의 어깨가 내려갔다.
“아빠… 라고?”
흑묘성이 환수 밀렵꾼들에게 쫓겨 다녔기에 부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은호는 여러 감정이 맴돌았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같이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
“응. 나 아빠한테 가서 해야 할 일이…….”
흑묘성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감더니 쓰러졌다.
은호는 잠깐 숨을 멈췄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손마저 덜덜 떨리는 모양새에 흑견이 꼬리로 은호의 얼굴을 쳤다.
“그저 쓰러진 것뿐이다.”
그 말에 은호는 서둘러 뛰어가 흑묘성을 안아 코 쪽에 귀를 기울였다.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손으로 본인의 얼굴을 붙잡았다.
넋을 놓은 듯 보이자 레비아탐이 은호의 어깨로 기어가 얼굴로 앞발을 뻗었다.
“땀이 엄청 많이 남. 괜찮암?”
“은호. 이번에 힘들었어?”
폭시마저 은호의 다리를 살짝살짝 흔들다 밀려오는 그의 감정에 귀를 내렸다.
처음 보는 감정이었다.
은호와 어울리지 않게 어둡고 칙칙했다.
“……아.”
은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이내 웃었다.
“잠깐 놀랐을 뿐이야. 이제 괜찮아.”
“정말인가?”
흑견이 물었고,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은호는 폭시와 레비아탐을 쓰다듬었다. 흑묘성을 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흑견 역시 쓰다듬었다.
“기절했을 뿐, 죽지 않았다.”
흑견은 바닥에 납작 깔린 듯한 인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죽으면 안 되는 거지.”
죽지 않으면 된다.
그걸 알려준 건 태호였다.
비소속 초능력자이자 환수 밀렵꾼들은 잡아 처넣어도 이상한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저들과 연결된 놈들까지 다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썩어빠진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을 끌어내리고 싶다는 상상을 하지 않은가.
이 세상은 그게 가능했다.
‘이번에는 누가 걸리려나.’
은호는 벌써 기대가 됐다.
되도록 큰 놈이었으면 했다.
휴대전화를 꺼내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슬슬 권석현을 찾아갈 때가 되긴 했지.’
바짝 약에 오를 때쯤이고, 어차피 미래가 망가졌으니 이참에 ‘에라이, 너희도 죽어’라는 심정으로 다 끌어내릴 수 있을 테니까.
“저예요, 가을 씨. 혹시 거기 형, 있나요?”
저들이 기절한 걸 다 확인한 후에 은호는 가을한테 연락했다.
<아뇨. 지금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흑묘성, 구출했어요.”
은호가 꺼내는 저 말에 안도하는 한숨이 휴대전화 너머로 새어 나왔다.
“하나만 확인하고 구조 작업 도우러 갈게요. 이지혜 국장님한테 연락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주소 찍어둘 테니,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환수 구조는 오래 걸리니, 될 수 있는 한 서둘러 오시면 됩니다.>
“…저 안 말려요?”
은호가 넌지시 묻자 가을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제가 말린다고 지금부터 환수 관리인을 털 생각을 멈추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말려드리겠습니다.>
“……와. 저 어디서 지켜보고 있나요?”
은호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엇보다 이번 행동은 저희한테도 좋습니다. 땅을 더럽히는 놈을 뿌리 뽑았더니, 이번에는 잡초가 설치네요. 이대로 두면 되겠습니까? 오늘은 확실히 뿌리 뽑고 싶습니다.>
“그렇죠. 저도 그래요.”
은호는 기뻤다.
권석현을 보내놨더니, 밑에 그가 남긴 것들을 주워 먹는 쥐새끼가 설치는 게 말이 되겠는가.
톡톡.
흑견이 은호를 앞 발가락으로 두드렸다.
“아, 마침 뭐가 오네요.”
은호는 최대한 시야를 확대했고,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누군가를 확인했다.
왼쪽 팔을 보자 환수 관리인임을 나타나는 표시가 달빛에 반짝거렸다.
왜 혼자서 왔을까.
그런 궁금증도 잠시 은호는 휴대전화를 끊으며 얘들을 잠깐 물렸다.
‘왜 왔겠어?’
단순한 정찰이라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었다.
“얘들아, 잠깐만 뒤로 물러나 줄래?”
“내가 들고 있을겜.”
레비아탐이 두 앞발을 뻗었다.
아무리 봐도 기특했다.
“고마워, 레비아탐. 하지만 내가 데리고 있을게.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은호 손 아프잖암.”
“…아, 맞다.”
은호는 그제야 다친 손을 옷가지 안에 넣었다.
하마터면 흑묘성한테 피가 묻을 뻔했다. 아니, 이미 묻었을까.
“인간.”
흑견이 기가 차 은호를 불렀다. 꽤 묵직한 목소리라 은호는 무조건 잔소리가 나올 거라 예상했다.
어깨를 잠깐 올리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 다들 쉿 하자.”
저 말에 폭시가 꺄르르 웃었다.
은호가 당황한 게 너무 잘 보였으니까.
“쉿.”
폭시는 그 말을 남기고는 제일 먼저 벗어났다.
그 뒤를 따라 레비아탐이 뛰어갔고, 흑견이 은호의 그림자로 파고들었다.
조금 전 두 사람을 유인했던, 장치를 이용해 신호를 줬다.
환수 관리인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자 은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느 쪽일까.
은호는 도착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제압할 준비 하자고, 친구들.”
은호는 당장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다친 손을 뻗었다.
어차피 나는 피, 낭비해서 뭘 하겠는가.
은호는 환수 관리인이 착지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왔습니까?”
“못 보던 얼굴인데?”
“방금 소리 들으셨습니까?”
“오면서 들었다.”
환수 관리인은 조금 전부터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를 의심하기보다는 늘 하던 일에 대한 염세적인 부분이 강했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환수를 막 손에 넣은 참이었습니다.”
“아, 그거?”
환수 관리인은 환수를 물건 보듯 쳐다보았다.
어떤 환수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무얼 하다가 잡혔는지 그런 자질구레한 건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은호가 그 손바닥을 가만히 쳐다보자 그제야 짜증을 내보였다.
“내놓으라고.”
“뭘요?”
“처음 왔어?”
“네. 처음이에요.”
“네 대가리가 나한테 넘기라는 거 있을 거잖아.”
“제가 뭘 넘겨야 하는데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뭘 바라고 있는지 분명히 말해야죠.”
“돈!”
환수 관리인은 역정을 내며 재촉했다. 꽤 초조해 보였다.
“…아, 돈이요?”
“왜 어리바리한 새끼를 보내고 지랄이야.”
“제가 어리바리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야.”
환수 관리인이 은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알았지만, 순순히 맞아주었다.
‘잘 찍히고 있겠지?’
태호가 준 초소형 카메라를 작동시켰기에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좋았다.
뇌물 혐의에 폭력까지.
‘완벽하네.’
은호는 손을 올려 카메라를 멈춘 뒤에 환수 관리인의 팔을 붙잡았다.
“왜?”
“왜…? 너 지금 왜라고…….”
“권석현이 내다 버린 부스러기라도 먹으니 맛있었어? 그 옷 입고 이러니 쪽팔리진 않았고?”
권석현.
그 이름이 나오자 환수 관리인은 잠깐 모든 행동을 멈췄다.
워낙 뉴스고, SNS고 떠들어대기에 유명하지만, 뭔가 달랐다.
은호가 손가락을 올리자 숨죽여 있던 식물들이 환수 관리인들의 발목을 낚아채 들어 올렸다.
무얼 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처럼 얼굴부터 떨어졌다.
쾅!
은호가 손을 위로 가리키자 식물들이 놈을 위로 끌어올렸다.
두 팔이 땅으로 뻗고,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번에 출동한 놈 중에 너 말고 그 부스러기를 먹은 놈이 누구인지 말해야 할 거야.”
은호는 다가가 뒷말을 작게 속삭였다.
“내 뒤에 이지혜 국장님이 있으니까.”
저들이 가장 두려워할 존재는 자신이 아니었다.
바로 세간에 권석현을 잡았다고 알려진 이지혜였으니까.
거리낌 없이 이름 좀 팔아보았다.
* * *
은호는 가을이 찍어준 그곳으로 도착했다.
구출한 흑묘성은 치료가 필요해 보였기에 연구소로 넘어가 기다리고 있던 가을에게 맡겼다.
그 자리에 아윤이 있기에 은호는 굳은 채 자연스럽게 손을 숨겼지만, 다친 걸 딱 들켜버렸다.
―그쪽 손, 너무 이상한데요?
의사의 눈을 속일 수 없는 걸까.
기어코 붙잡혀 응급조치 받았다. 그 시간 동안 혼도 나고 말았다.
―서은호 씨는 하루라도 피를 안 보면 입 안이 간지러운가 봐요?
‘…그런 거 아닌데.’
은호는 괜스레 억울했다.
가을이 환수 구조 작전을 벌인다고 말했기에 폭시와 레비아탐에게는 흑묘성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쯤, 같이 웅크려 자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이 많네.’
은호는 가을이 일부러 떨어진 장소를 알려줬다는 걸 알았다.
다가가기 전에 마스크랑 선글라스랑 다시 잡고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태호에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형이 안 받는 건 처음인데?’
은호는 슬쩍 다가갔다.
멀리서 태호가 보였지만, 흘러가는 분위기가 제법 심각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진짜로 환수 관리국이랑 연계하는지, 그 자리에 서율도 보였다.
순간, 서율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그가 사라졌고, 은호는 잠깐 당황했다.
가까이서 봤을 때 별생각 없었는데, 멀리서 보니까 서율의 초능력은 사기였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그림자가 흔들렸다.
은호는 뒤로 물러났고, 무언가 목을 스쳐 지나갔다.
부웅.
선명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은호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저예요!”
“……?”
서율이 그림을 그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다 말고 당장 머리를 깊게 박았다.
“죄송합니다!”
서율은 기겁했다.
국장이 아끼고, 또 아끼는 서은호일 줄이야.
너무도 수상한 사람이 서성거려 환수 밀렵꾼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 제가 아니었으면 진짜로 죽이려고 했어요?”
“해봤는데, 안 죽더라고요.”
서율은 당황한 채 말을 꺼내다 말고 입을 가렸다. 손에 쥔 칼이 시퍼런 날을 드러냈다.
“……네?”
“…그, 그러니까, 그게.”
서율은 본인의 입을 때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 일 무조건! 국장님한테 비밀입니다!”
“아, 그 검으로 사람 죽일 뻔한 거요?”
“아뇨. 서은호 씨한테 휘두른 일 말입니다.”
“그럼, 심서율 씨. 일단 빚진 거예요. 자, 구조하려는 환수한테 안내해줘요.”
“보통 이런 걸로 까는 거 아닙니까?”
“지금, 구조가 난항이라 다 같이 모여 있던 거 아니었어요?”
딱 봐도 그랬다.
환수가 구조를 거부한 게 분명했다.
은호의 말에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상당히 곤란합니다.”
“우선 안내해줘요. 형한테는 제가 문자를 남겨놓을 테니까요.”
사실 조금 전에 만난 환수 관리인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이 일이 먼저였다.
서율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권리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 * *
서율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눈물에 섞인 채 익숙한 말투가 들려왔다.
은호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주변을 지키던 환수 관리인들이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서율이 이를 말렸다.
“멈춰!”
“하지만 저자는…….”
“국장님의 명령이다.”
서율은 딱 잘라 말하고는 그들을 데리고 조금 더 물러섰다.
―만약에 서은호 씨를 만나서 뭘 부탁하든 무조건 들어줘. 이건 명령이야, 심서율.
정말로 지혜가 명령을 내렸으니까.
‘…사고는 안 치겠지?’
서율은 불안함에 괜히 입가를 핥으며 은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은호는 달리다 걸음을 멈췄다.
수없이 운석이 떨어진 듯한 흔적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으니까.
‘……흑묘성이다.’
은호는 그 모습을 단번에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