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8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87화(8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87화
87화. 별을 품은 친구(4)
자신이 보았던 흑묘성보다 더 크며 덩치 역시 달랐다.
못해도 2M는 넘지 않을까.
‘역시, 아까 그 친구는 새끼였어.’
이내 시선을 움직여 흑묘성이 있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나무로 꽉 찼을 그곳이 흑묘성의 힘으로 공터가 되어버렸고, 그 뒤는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구석으로 내몰린 건지, 구석으로 간 건지 몰랐다.
그저 애절하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은호는 밀려드는 생각에 숨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콜록, 콜록.”
흑묘성이 내뱉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좋지 않을까.
어쩐지 목에 둘린, 기묘한 연기가 힘없이 축 늘어진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은호는 흑묘성에게 걸어가는 동안 여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저 흑묘성이 자신이 봤던 새끼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가 찾는 듯한 존재가 새끼라면.
어째서 새끼는 아버지에게 떨어져 환수 밀렵꾼을 피해 도망쳤던 것일까.
흑묘성은 가족 중 누군가 죽으면 따라 죽을 정도로 애정이 끈끈하다고 했다.
저 흑묘성은 새끼가 죽었다고 생각해 절벽까지 온 걸까.
“…친구야.”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가기에 은호는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흑묘성은 뒤늦게 반응했다.
새끼만큼 지친 걸까.
아니면 새끼보다 더 지친 걸까.
“내… 아이를 내놔!”
지친 기색과 달리 굉장히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증오와 분노가 가득 섞여 있었다.
“너희가 데려갔잖아! 내, 내 소중한 아이를 너희가 데려갔잖아!”
은호는 온몸으로 퍼붓는 그 감정에 피부가 다 쓰라릴 정도였다.
‘…폭시를 데려올 걸 그랬나?’
“인간.”
흑견이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은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저 친구, 다른 친구랑 달리 많이 아파 보여.”
“안다. 내가 공격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흑견마저 곤란한 표정을 하자 은호는 그제야 왜 적극적으로 구조를 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초능력으로도 쉽사리 위험해질 만큼 흑묘성이 약한 상태란 소리였다.
“그러면 지금 저렇게 흥분하는 것도 위험한 거잖아?”
“그렇다.”
“콜록, 콜록!”
흑묘성은 크게 기침했다.
온몸이 다 젖힐 정도였기에 은호는 몸이 바짝 굳었다.
“…친구야. 일단 진정하자. 응? 지금 너무 흥분했어.”
“내 아이! 내 아이를 돌려줘!”
“네 아이, 지금…….”
은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토록 약한 몸을 이끌고 바람처럼 은호의 앞에 나타났다.
흑견이 앞발을 내밀려다 몸으로 살짝 흑묘성을 밀었다.
그대로 주욱 밀려나 힘없이 바닥에 누웠다.
“콜록, 콜록!”
더 크게 새어 나오는 기침에 은호는 놀라 달려갔다.
“…친구야. 친구야.”
은호가 손을 뻗자 흑묘성이 날을 세운 발톱으로 할퀴었다.
힘이 빠졌지만, 은호의 피부를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새끼 흑묘성에게 물렸던 쪽의 손과 팔에 깊은 자상이 남았다.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읏.”
은호는 신음을 흘렸고, 흑견의 눈에 핏대가 솟았다.
당장 흑견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멍멍이 형님. 저 친구가 죽을 수도 있다며?”
“멍청한 인간!”
흑견이 소리쳤다.
지금 본인의 꼴이 어떤지 안 보인단 말인가.
“멍멍이 형님. 나는 빨리 나을 수 있어. 그런데 이 친구는 아니잖아.”
가까이서 보자 병색이 깊은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런 상태로 아이를 위해 힘을 짜낸 아버지로서의 행동을 탓할 수 있을까.
그저 걱정해준 흑견이 고마울 뿐이었다.
“네 아이, 무사히 있어.”
은호는 달달 떨리는 손을 뒤로 숨긴 채 입을 열었다.
무사하다는 그 말에 가득 일그러트렸던 얼굴도, 피부가 찌릿할 만큼 맹렬하던 분노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빨리 표정이 바뀔 줄은 몰랐기에 은호는 아주 많이 놀랐다.
경계심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무사하더냐?”
그저 제발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표정에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의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망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그 누구보다 그 말을 바랐을 테니까.
“어디… 아픈 곳은 없더냐?”
흑묘성은 아이부터 걱정했다.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까.
나약해지고, 무거워진 저 몸을 이끌고 얼마나 수없이 걸어왔을까.
난장판이 된 주변 광경을 보며 정말 저 흑묘성이 온몸을 갈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은호는 평소보다 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무사해. 아픈 곳도 없고, 괜찮아.”
지금은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안심해줬으면 했다.
“…내 아이가, 살아 있었어.”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은 채, 흑묘성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걸 품에 안은 것처럼 활짝 웃었다.
그렇게 환한 웃음일 수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은호 역시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마저 느껴지질 않았다.
“내 아이가…….”
흑묘성은 숨을 한 번 참고는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아이가 죽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냄새가 사라지자 막연하게 밀려오는 죽음이라는 묵직한 단어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모든 어둠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살아 있었어.”
살짝 감았던 눈을 뜨자 금세 별이 담긴 눈이 일렁거렸다.
은호는 손을 내밀었다.
흑묘성을 토닥거리며 덩달아 웃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무서웠지?”
은호의 물음에 그제야 흑묘성은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왜.
무얼 슬퍼하는 걸까.
모든 걸 다 떠나 살짝 내린 시선에 바닥을 적신 피가 보였다.
“미안… 하구나.”
“친구야. 사과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신 놓지 마.”
손바닥에 닿는 체온이 새끼 흑묘성과 달랐다.
차가웠다.
이런 차가움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였다.
“아이는 무사해. 지금 잘 자고 있어. 그러니까, 너부터 치료하자.”
은호는 불안했다.
지치고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힘겹게 버텨내던 흑묘성이 이제는 반대로 전부 다 놓아버릴 것 같아서 초조했다.
어쩌면 아주 깊게 묻어둔 기억과 묶여 자신이 멋대로 상상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 후에 다시 만나는 거야.”
은호는 흑묘성을 독려했다.
“내가 만나게 해줄게.”
뭐든 좋았다.
다음.
이 다음을 바라봐야만 사람이든 누구든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보고 싶잖아? 아이가 웃는 모습을 봐야지. 네가 뭘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다 놓기에는 너무도 멀리 왔잖아…?”
“그래, 보러 가야지. 내 아이를…….”
그 말을 끝으로 흑묘성은 만족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친구야?”
은호는 흑묘성을 흔들었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점점 더 내려가는 걸 알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숨을 쉬고 있었는데, 숨소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좋지 않았다.
귓가에 ‘삐―’하고 울리는 병원 기계음이 들릴 것만 ?갼年?
“…친구야, 눈 떠봐.”
불러보고, 흔들어봤지만, 감긴 눈은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은호는 상처를 입은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이 피로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만 할까.
은호는 밀려오는 막막함에 양손으로 흑묘성을 끌어안았다.
일단 어떻게든 낮아지는 이 체온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같았는지, 흑견이 흑묘성의 옆에 웅크려 앉아 꼬리로 뒤덮어주었다.
두근. 두근.
이유는 모르겠지만, 흑묘성의 심장 소리마저 들려왔다.
느려지고, 또 느려지고 있었다.
절망감이 밀어닥칠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는 걸 해라.”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꺼내는 흑견의 말에 은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당장 연구소로 가는 게 답일까.
그사이 저 심장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정말 이대로 자신의 손아귀에서 식어가는 걸 봐야만 하는가.
그건 싫었다.
또 그렇게 되는 건 싫었다.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은호는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모른다.”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얼굴을 가득 구겼다.
화가 났다.
이전과 달리 힘이 생겼는데, 왜 이걸 이용할 수 없는지.
‘대체 왜…….’
《교감의 힘은 서은호 님이 바라는 방향대로 새로운 힘을 개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았을까, 태블릿이 시야 안으로 들어와 글자를 띄웠다.
그 사실에 은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교감의 힘을 끌어냈다.
상처를 입은 은호의 손아귀 중심으로 초록색 빛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를 중심으로 덤불이 자라났고, 꽃이 피어났다.
꽃은 달빛을 반사하듯 청명한 빛을 냈다.
‘이게 아니야…….’
그저 이 근처에 있는 싹을 틔웠을 뿐이었다.
이 빛으로는 주변을 밝히는 게 고작이었다.
‘한 번만.’
은호는 간절히 빌었다.
‘…제발, 한 번만.’
생명을 주느니, 되살리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사실을 바라지 않았다.
‘이 친구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저 우연히 타인의 도움으로 죽음의 기회를 넘긴 사람처럼 자신이 그 기회가 되길 바랐다.
죽어가는 이 심장을 치료받을 수 있을 때까지만 다시 뛰게 할 수만 있다면.
‘……제발.’
무엇 때문에 보금자리를 벗어났는지 몰라도 아빠가 보고 싶다는 새끼 흑묘성과 새끼를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된 아빠 흑묘성을 다시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바람일까.
은호는 눈을 세게 감으며 주먹을 쥐었다.
둥.
그때, 또 북소리가 들렸다.
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언가 피어날 것처럼 고통이 밀려왔다.
둥.
북소리는 빨라지며 덩달아 심장마저 요란하게 움직였다.
자신의 속에서 그릇에 담겨 피어난 싹이 줄기를 살짝 뻗었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통증으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둥!
북소리가 강해진 그때, 무언가 은호의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그 앞에 한 그루의 나무가 보였다.
모든 어둠을 물리칠 정도로 빛이 나며 아름답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뭇잎 하나가 살랑살랑 떨어지자 은호는 손을 뻗었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은호는 이 광경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흑견은 어디로 갔고, 흑묘성은 왜 보이질 않는 건지.
‘무엇보다 이 나무, 대체 뭘까.’
뭔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듯했다.
은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얼굴을 스치고 가는 바람을 느꼈다.
나무는 사라지고, 떨궈진 고개 밑으로 태블릿이 보였다.
《■■■■■을 불러옵니다.》
‘……?’
글자가 깨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쯤, 주변에 뿌려진 모든 빛이 반딧불처럼 움직여 은호 손으로 스며들었다.
손은 물론 팔 위까지 알 수 없는 무늬가 드러나 팔을 덧댄 것처럼 은은하게 빛을 냈다.
방금 봤던 환영 덕인지 뭔지 몰라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흑묘성의 심장 소리가 더 느려졌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흑묘성에게 손을 대자 팔을 덧대던 그 빛이 손을 물들였던 피마저 모조리 흡수해 아래로 내려갔다.
검지 끝에 핏방울이 맺히듯 푸르른 빛이 나타났다.
너무도 맑은 빛이었다.
토옹.
빛이 떨어지자 물방울과도 같은 깨끗한 소리가 퍼져나갔다.
빛은 그대로 흑묘성의 몸으로 파고들었고, 잔잔한 물의 파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번지던 그때, 싹이 피어올랐다.
‘몸에서… 싹이 피어올랐어?’
은호가 눈을 크게 뜨다 말고 입을 가렸다.
목구멍으로 뭔가가 강하게 올라오며 그의 목덜미는 물론 손아귀에 가지가 피어난 것 같은 흉터가 생겨났다.
하지만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흑묘성의 몸에서 피어난 싹이 자라더니 넝쿨처럼 뒤 감겨 아주 작은 가루를 뿌렸다.
마치 잔잔하게 내려오는 눈 같았다.
그 가루는 흑묘성에게 스며들었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심장의 소리를 힘차게 만들어주었다.
고동 소리를 따라 은호의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꼈다.
은호는 믿기지 않는 듯한 눈을 하며 흑묘성에게 손을 뻗었다.
넝쿨처럼 휘감겼던 줄기는 사라졌고, 생명이 느껴졌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하지만 힘에 대한 호기심은 미뤄둬야 했다.
저건 일시적인 힘 같았으니까.
은호는 공간을 열고자 자리에서 일어다 말고 핑그르르 도는 시야에 그대로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우웩.”
은호는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더는 삼키지 못했다.
핏덩이가 쏟아지며 몸이 깨지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온몸이 화끈거렸다.
은호는 그대로 몸을 감싸면 덜덜 떨었다.
《현재 서은호 님이 감당하지 못할 힘을 사용하셨습니다.》
《경고합니다. 이 이상의 사용을 중지하십시오.》
태블릿이 경고문을 띄웠지만, 은호는 볼 수 없었다.
“…머, 멍멍이 형님.”
은호는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흑견을 불렀다.
“열어라.”
흑견이 은호를 어둠으로 일으켜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씩 웃었다.
덜덜 떨리는 팔로 공간을 열었다.
* * *
깜박깜박.
흑묘성은 눈을 깜박거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그때 봤던 다른 존재가 보였다.
“일어났엄?”
레비아탐이 흑묘성을 보며 웃었다.
“아빠는?”
“아빰?”
레비아탐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흑묘성은 초조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그 인간이 아빠한테 데려준다고 했느니라.”
“…은호, 지금 아파.”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축 늘어졌다.
“……왜?”
흑묘성은 불안함으로 물든 채 꼬리를 꽉 쥐었다.
자신을 구하려다 다른 인간한테 다친 걸까.
아니면.
“내가… 내가 물어서 그렇게 됐더냐?”
흑묘성은 귀를 축 늘어트렸다.
그 인간을 무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인간이 있다는 걸 몰라서, 그냥 무서워서 너무 세게 물어버렸다.
“아빠가 그랬는데… 강한 인간하고, 약한 인간하고 있다고 했느니라.”
그 인간은 약한 인간이었을까.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 것처럼 흑묘성의 눈망울에 파도가 쳤다.
“아, 아니얌. 은호는…….”
레비아탐은 밀려오는 냄새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더듬이가 바짝 올라가며 눈동자에 별이 스며들었다.
문이 열렸다.
“안녕, 친구들.”
그리고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