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0화(9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0화
90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은호는 공원에 앉아 멍하니 분수를 바라보았다.
‘…온몸이 쑤시네.’
쇼핑이라는 것도 오랜만에 하니까 쉽지 않았다.
이제 슬슬 겨울이라는 계절이 찾아왔는데, 집에 옷이 없었다.
평소 옷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야근에 철야까지 당연하게 하는 회사 때문이라도 입는 게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외출을 더 많이 하기에 최소한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옷이 필요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태호가 사줬는데.
“멍멍이 형님도 지쳤지?”
은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 슬쩍 말을 걸었다.
“인간은 선택을 못 하는가?”
흑견은 드디어 참아왔던 답답함을 토로했다.
“어……?”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기에 은호는 당황했다.
“대체 왜 그렇게 깊게 고민을 하는 것인가?”
흑견은 비슷한 말을 다시금 꺼냈다.
인간이 옷을 입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들 역시 그렇게 꾸미는 존재들도 있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은호는 똑같이 보이는 흰색과 흰색을 두고 고민했고, 마찬가지로 똑같이 보이는 검은색과 검은색을 두고 고민했다.
대체 왜 고민하는지도 모르는 채 결국 선택한 건 짙은 파랑이었다.
이게 한 번이 아니었다.
여기 앉기 전까지 계속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다 보니 당장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으음, 옷을 고르는 게 어려워서?”
은호는 머쓱했다.
옷을 사봤어야지 알 텐데, 뭘 고르는 게 좋은지 몰랐다.
그냥 느낌이 가는 걸 골랐다.
어쩌면 자신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몰랐다.
“다음에는 다른 인간하고 가거라.”
“……와, 멍멍이 형님, 화난다고 막 찌르면 안 되는데.”
원래 세계에서도 친구가 없었는데, 이세계에서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은호는 뭔가 속이 쓰려 가방에서 물을 꺼냈다.
집.
회사.
아마 일부나 혹은 대부분 그럴지도 모르는데, 자신 역시 딱 두 개만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았다.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사회라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다양했지만, 자신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은호는 물을 먹다 말고 분수대 밑에서 뭔가 움직이자 시선을 내렸다.
푸흡.
은호는 그대로 물을 뿜었다.
“…왜 그러는가?”
흑견이 묻자 은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나뭇잎인 줄 알았는데,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저기, 움직이잖아!”
벌레일까.
제발 벌레는 아니길 빌었다.
흑견이 그림자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잘 보거라.”
흑견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그림자로 다시 머리를 집어넣었다.
사람들이 공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은호는 입가를 닦으며 그들을 힐끔 보았다. 그들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눈치였다.
용기를 내 조금 전 자신이 봤던 움직이는 뭔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중지만 할까, 아주 작아 벌레라 착각했는데, 환수였다.
나른하게 잠겼던 은호의 얼굴에 금세 활력이 깃들었다.
‘저렇게 작은 친구는 처음인데?’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분수대로 걸어갔다.
사람들을 힐끔 살핀 뒤에 은호는 쪼그려 앉아 분수대를 두드렸다.
똑똑똑.
미동도 없자 은호는 환수를 손가락으로 슬쩍 찌르며 물었다.
“뭐해, 친구야?”
“히익!”
깜짝 놀란 채 분수대에 딱 붙은 환수는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반응은 오랜만이라 은호는 낄낄 웃었다.
“…나, 나를 어떻게 봤어?”
환수가 놀라며 물었다.
“응?”
“난 지금 위장 중이야!”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은호는 오히려 눈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주변에 단풍잎이 많이 떨어져 있고, 색도 꽤 유사했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니 아주 잘 보였다.
갓 태어난 친칠라 같았고, 점을 찍은 듯 눈은 작았으며 살짝 오동통한 몸과 앞발과 뒷발은 짧았다.
주변 단풍잎과 닮은 몸 색은 보호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꼬리에 나뭇잎이 붙어 있어 은호는 본의 아니게 손을 뻗어 당겼다.
‘……어?’
환수와 이어져 있자 살짝 놀랐다.
“아파!”
환수가 삑삑 소리쳤고, 은호는 금세 손사래를 치며 당황했다.
“미, 미안해! 진짜 미안해!”
꼬리에 나뭇잎이 달린 게 아니라, 꼬리 자체가 하나의 나뭇잎에 가까웠다.
은호는 꼬리를 잡고 서럽게 우는 환수를 달래주려다 뭔가 옆에 그림자가 지는 걸 느꼈다.
설마 하며 고개를 돌리자 태블릿이 둥둥 떠 있었다.
다급히 태블릿을 붙잡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와아, 진짜 놀랐다.’
은호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꽉 붙잡았다.
자신에게만 화면이 보인다는 걸 알지만, 망가진 태블릿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태블릿이 둥둥 떠오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저는 주변 상황을 인식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전혀 다른 글자가 떠오르자 은호는 괜히 머쓱했다.
“…그래요?”
《심박수가 빠르니 심호흡부터 하십시오.》
“너무 놀라서, 놀라서 그랬어요.”
은호는 가슴을 다독이다 주머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위그드라실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슬쩍 밀었다.
흑묘성 사건 뒤로 위그드라실은 잠깐 잠에 빠졌다.
뭔가 싹에 달린 잎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저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자, 일단, 들어가 있어.”
자신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웠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꽤 무서울 수도 있었다.
은호는 환수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 친구는 아니네.’
언제 울었냐는 듯 반짝거리는 눈빛도 모자라 군침마저 삼키고 있었다.
‘…씨앗을 좋아하는 건가?’
은호는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단쥐.》
‘예전부터 느끼는 건데, 이름이 참 제멋대로네?’
환수를 발견해 이름을 붙이는 나라에 따라 다른 걸까.
생각을 멈추고 다시 읽었다.
《.》
《무리 혹은 단독으로 살아갑니다. 소심한 편으로 겁이 많습니다. 성체가 되어도 3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씨앗을 굉장히 좋아하고, 대식가로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활동량이 아주 많습니다.》
《몸 색이 주변 나뭇잎을 따라 바뀌며 나뭇잎을 닮은 꼬리 역시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굉장히 튼튼한 이빨로 나무를 갉아 집을 30분 내로 만들 수 있으며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주로 떠돌아다닙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성격이 있기에 물리지 않게 주의합시다.》
‘역시, 씨앗을 좋아했네?’
조심하지 않으면 위그드라실이 먹힐지도 몰랐다.
“그거, 씨앗이야?”
단쥐의 목소리가 갑자기 상냥하게 변했다.
“이건 안 돼, 친구야.”
“…치.”
단쥐는 그대로 옆에 있는 잎사귀를 야무지게 끌어와 몸에 덮었고, 마무리로 꼬리로 몸을 덮었다.
“…….”
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너무 신선했기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상당히 도도한 친구네.’
은호는 얼마나 위장을 잘했나 잠깐 바라보았다.
분수대 밑, 그 틈 사이에 나뭇잎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단쥐라는 걸 알면서도 잠깐 시선을 돌려 다시 찾으려면 어려울 만큼 위장 하나는 끝내줬다.
“친구야.”
은호는 손가락으로 단쥐를 쿡쿡 찔렀다.
여기는 사람들이 다니는 공간이었고, 활동량이 뛰어난 단쥐가 왜 여기 이렇게 위장하고 있는지, 그게 너무 궁금했다.
“나, 찌르지 마라.”
꼬리를 살짝 치운 단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것만 대답해주면 갈게.”
이유를 모르면 돌아가더라도 계속 궁금해 죽을지도 몰랐다.
“그걸 내가 왜…….”
단쥐는 말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보니 저 인간, 뭔가 이상했다.
‘어…….’
단쥐의 작은 눈이 아주 크게 요동치더니 이내 소리쳤다.
“너! 너 어떻게 우리말을 해?”
“음… 나한테 힘이 있어서?”
“그거! 그거 다른 인간도 할 수 있는 거야?”
“아마 못 할걸?”
은호는 말을 슬쩍 꺼냈다.
드루이드의 힘도 강제로 받은 건데, 누구한테 준다거나, 뭘 한다거나, 이런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세계 납치를 함께 당했던 이 가방도 이제 자신이 주인이 되었고.
단쥐는 그 말에 충격을 받는 듯 이내 축 늘어졌다.
다시 꼬리로 몸을 감싸며 힘없이 말을 꺼냈다.
“……나한테 떨어져.”
얼마나 실망한 걸까.
온몸에 ‘실망’이라는 글자를 써놓은 것만 같았다.
“미안해, 친구야.”
은호는 사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말이 단쥐한테 상처로 돌아갈 줄이야.
그 사과에 단쥐는 힐끔 은호를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말을 던진 뒤에 다시 꼬리로 감쌌다.
머뭇거린 그 말에 은호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등을 돌렸다.
자신이 갑자기 단쥐를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 * *
‘……역시 신경 쓰이네.’
은호는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거기서 뭘 하는 걸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그 대상이 사람일까.
이미 사람과 얽힌 환수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울도 있고, 헤인이도 있고, 버니멀도 있었다.
“저, 서은호 씨?”
귀를 때리는 말에 은호는 그제야 정신 차려서 지혜를 바라보았다.
“혹시 어디, 몸이 좋지 않으십니까?”
지혜는 휴대전화로 손을 뻗고 있었다.
“아뇨, 아뇨. 이야기 중에 딴생각해서 죄송해요.”
“그럴 만한 일이잖습니까?”
지혜는 숨을 길게 내쉬며 면목이 없다는 듯 은호를 바라보았다.
“권석현을 물리고 잔당이 남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새끼랑 관련된 놈들도 싹 다 처분했습니다.”
말이 과격했지만, 은호는 빨대로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현과 관련된 모든 건 그래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제2의 권석현이 되려고 밑에서 지랄을 떠는 또 다른 놈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혜의 눈동자에 불이 타오를 것만 같았다.
쳐죽일 놈.
말하지 않아도 이미 온몸으로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서은호 씨한테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에이,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는 오히려 그놈들이 설쳐대서 너무 좋은데요?”
은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덩달아 지혜가 시선을 올렸다.
“국장님은 어디로 이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솔직히 엄청 궁금한데요?”
그래야 폭시의 친구가 어디로 팔려 갔는지,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연히 궁금합니다. 궁금만 하겠습니까? 머리카락을 한가득 움켜쥐고 싶어질 정도니까요.”
저 말에 은호가 웃자 지혜 역시 길게 미소를 지었다.
은호가 가져다준 건 매우 많았다.
석현을 끌어내린 그때부터 환수 관리국에 숨어 있던 더러운 싹들을 하나씩 뽑았다.
빠르게 정리해 이제 마무리에 돌입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석현이 뚫어놓은 연결망을 통해 환수 밀렵꾼하고 손을 잡은 또 다른 썩은 싹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석현이 사용하던 그 방법으로.
이러니 보고받은 그때부터 짜증이 맴돌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진짜 놀라울 정도야.’
지혜는 은호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세간에서는 자신들이 무능하다고 말을 했다.
사실이었다.
이 부분은 반박할 게 없었다.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를 잡지 못하고, 환수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했으니 인정하는 게 맞았다.
다만, 비소속 초능력자하고 일반 초능력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다시 거기에서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라는 사실을 빨리 구분하기가 어려워 늘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줄이려면 놈들을 붙잡았을 때, 위까지 빨리 당돌 해야만 했다.
‘놈들을 잡으려면 환수와 가까이해야 하는데, 이게 허락되는 건 지금으로서는 은호 씨뿐이지.’
잡는다는 말이 참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걸 은호는 해낸 것이고, 감탄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찾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은호가 던진 저 말에 잔을 내려놓은 지혜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권석현을 찾아갈 준비는 미리 해놓겠습니다.”
역시 은호와 손을 잡은 건 몇 번을 생각해도 가장 옳았고, 가장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니 그가 하려는 행동에 손발을 맞추는 것 역시 당연할 정도였다.
“물론, 저는 그것만 준비하지 않겠습니다. 더 화려하게 꾸며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을 다시 똑바로 뜬 지혜는 조금은 날카롭게 눈꼬리를 올렸다.
환수 밀렵꾼들의 목덜미를 물어버려야 했다.
“역시 국장님인데요?”
은호는 착착 알아서 나오는 저 말에 몹시 흡족했다.
“법 개정도 잘 준비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혜는 말을 꺼내며 힐끔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은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저기에 심서율 씨가 있나요?”
“아뇨. 오늘은 양옆이 허전하신 듯해서요.”
“아아, 옷 사고 오는 길이라서요.”
“…그렇습니까?”
지혜는 무언가 아쉬움을 담아 대답하자 은호는 바로 눈치챘다.
넌지시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제복은 좋지 않은 인상만 있으니 이참에 새롭게 바꾸는 건 어때요?”
“…환수들이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친구들도 다 입이 있고, 귀가 있으니까요. 소문이 퍼지는 거죠.”
은호가 던진 그 말에 지혜는 입을 살짝 벌렸다.
권석현 사건에 정신이 팔려 더 중요한 걸 놓쳤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중요한 걸 놓쳤네요. 매번 신세만 지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하루바삐 환수 관리국이 정상화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니까요.”
“같은 뜻을 품은 동지네요? 아, 그런데 서은호 씨.”
은호는 빨대로 깊게 커피를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호 씨는 이제 어떤 가명으로 활동할 겁니까?”
지혜가 꺼내는 말에 은호는 의문을 느꼈다.
가명이라니.
“다른 직원들에게 인상착의가 들려왔는데. 뭔가, 경찰서 앞에 선 범죄자 같다네요?”
콜록콜록.
은호는 그 말에 사레가 들렸다.
“…버, 범죄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