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1화(9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1화
91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2)
“…그게 저도 입단속을 하다가 들은 말이라 그때 어떤 모습인지 잘 모릅니다.”
“정말… 범죄자 같았다고 해요?”
“……네. 매우 유감스럽지만, 여러 걱정도 듣긴 했습니다. 설마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신 건 아니겠죠?”
지혜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은호는 입을 닦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얼굴을 숨기기에는 그게 제일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쨌든, 의도한 거라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슬슬 복장을 단속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장은, 이제부터 바꿔야겠네요. 꼭이요.”
은호는 범죄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름 고심한 패션이었는데.
“이건 노파심이지만, 혹시 초능력 관리국하고 이야기가 된 겁니까?”
“왜 그쪽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죠?”
도리어 은호가 묻자 지혜는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권석현이 서은호 씨를 조사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읽어버렸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에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은호의 표정을 보았다.
그가 가진 힘은 초능력 관리국에 등록되지 않은 힘이었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그는 등록되지 않은 초능력자, 즉 비소속 초능력자일 확률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아, 그거요?”
그저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했으니까.
“명쾌한 대답은 다음에 드릴게요.”
뭘 숨기고 있는 걸까.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지혜는 한 번 잡은 손을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네. 이 다음에 저도 굉장한 걸 드리겠습니다.”
환수 관리국이라는 곳에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지혜 역시 은호에게 맛있는 걸 내밀었다.
환수 밀렵꾼의 모가지를 잡아야 할 때니까.
* * *
‘…신경 쓰이네.’
은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멀뚱멀뚱 서서 생각했다.
“은호!”
폭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왜 가만히 있는가?”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흑견이 은호를 바라보았다.
“아, 잠깐 고민할 게 있어서.”
은호는 어느새 코앞에 앉아 있는 폭시를 보며 쪼그려 앉았다.
두 팔을 뻗어 얼굴을 문질렀다.
“무슨 고민이야?”
폭시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일단 두 개야.”
“두 개나 돼?”
“그렇지. 그런데 일단 하나는 지금 할 수 있어.”
하나는 초능력자가 아닌 자신을 뭐라고 하면 되는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이 부분은 사실 이전에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절대로 남들 눈이 있는 곳에 힘을 쓰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게 되어버렸고,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 되었다.
‘물론, 태호 형하고 가을 씨하고 의논해봐야겠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깔끔한 처리를 위해서는 그게 제일 최선이었다.
은호는 이 부분은 잠깐 미루고, 두 번째 고민을 꺼냈다.
“오늘…….”
“오면서 만났던 그 존재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가?”
흑견이 묻자 은호는 바로 대답했다.
“맞아. 엄청 신경 쓰여.”
“길거리에서 만난 거야?”
폭시가 은호의 손바닥에 얼굴을 대며 물었다.
“아니. 공원 분수대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었어. …무섭지 않을까?”
“아마 무서울 거야. 인간이 많은 곳은 나도 이제 혼자 가고 싶지 않아. 그때는 혹시 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돌아다닌 거니까.”
폭시가 귀를 늘어트렸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혹시 인간들이 가득한 곳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헛된 희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겠네.”
은호는 폭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봄이 세 번 찾아올 동안 그렇게 희망을 붙잡고 이리저리 움직였다면 얼마나 애가 탔을까.
“난 이제 괜찮아!”
폭시는 배시시 웃었다.
은호가 있고, 그가 친구를 찾아주기로 했으니까.
“나도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어. 은호 마음이 이해돼!”
“그렇지? 그 친구가 만약에 어떤 이유로 떠날 수 없는 거라면, 더 내버려 두기 어려워지는데?”
은호는 말을 하며 빤히 흑견을 보았다.
역시나 따가운 시선이 이어졌기에 은호는 더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다.
“인간. 일단 숨 좀 돌리거라.”
이제 막 집에 발을 디뎠는데 다시 또 어디를 간다니.
흑견은 그게 불만이었다.
은호는 그 말에 바로 달려가 물을 마셨다.
그 뒤, 외투를 벗고 소파로 걸어가 누웠다.
“10분 뒤에 출발할게. 이제 괜찮지?”
은호가 싱긋 웃자 흑견은 묘한 느낌이 몰려왔다.
바로 가지 않아서 다행인데, 뭔가 말려든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흑견은 찝찝함에 얼굴을 살짝 구겼고, 은호는 폭시를 보며 물었다.
“폭시도 같이 갈래?”
“난 좋아!”
폭시는 가볍게 뛰어 은호 옆구리에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 * *
‘……오늘도 없어.’
나뭇잎을 닮은 꼬리를 슬쩍 내리며 단쥐는 주변을 힐끔 살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아도 없었다.
하지만 단쥐는 실망하지 않았다.
분명히 또 올 테니까.
기다리는 그 시간은 자신에게 무척 특별했으니까.
공원이 사람들이 다 물러갈 때까지 기다린 단쥐는 그제야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그러다 갑자기 들리는 발소리에 다급히 꼬리를 올렸다.
무심코 근처를 지나가는 발소리와 달랐다. 정확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단쥐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오면 물어버릴 거야.’
“친구야.”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제야 단쥐가 꼬리를 내린 채 올려다보았다.
“누굴 기다리는 거야?”
단쥐의 눈이 커졌다.
아까 낮에 봤던 그 인간이었다.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 이상한 인간.
놀라기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내가 도와줄게.”
뒤이어 밀려온 저 말에 단쥐는 의구심을 느꼈다.
“…날, 도와준다니? 왜……?”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은호는 싱긋 웃었다.
몰래 숨어 단쥐를 관찰했다.
분수대 밑, 거기서 단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저 분수대 밑에 보금자리로 향하는 통로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쥐는 가운뎃손가락만큼 작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단쥐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이를.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단쥐의 몸을 감싼 나뭇잎이 흔들렸으니까.
“이유 없는 호의는 없어.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단쥐는 은호를 의심했다.
“맞아. 그렇게 의심해야 해. 그게 옳아. 호의라고 생각해서 덥썩 받으면 안 되는 거지.”
이러면 화를 낼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침착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이유 없는 호의와 마주할 텐데,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해줘.”
따뜻한 미소에 단쥐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인간이든 누구든 의심하는 게 맞았다.
자신은 작았고, 쉽게 죽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세상에 믿을 건 없었다.
딱 하나만 빼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 진짜 마음이 아파 와. 그러면 무척 슬플 거야.”
낯선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렸다.
인간에게 매몰되어 보지 못했기에 단쥐는 뒤로 물러나 인간의 등에서 고개를 내민 존재를 바라보았다.
인간처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웃고 있었다.
“너는 도움이 필요하고, 은호는 다른 인간과 다르니까. 내 말은 믿어줄래? 응?”
폭시가 애교를 부리듯 말을 꺼내며 단쥐에게 다가갔다.
꿀을 좋아한다길래 꿀벌 옷을 샀다. 정말이지 폭시의 옷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뒷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누가 골랐는지 몰라도, 진짜 잘 골랐네.’
은호는 몹시 만족했다.
우연히 지나간 애완동물 코너에 있는 옷 중 얘들한테 어울리는 걸 사고 말았다. 흑견에게도 뭘 입히고 싶었지만, 너무 커서 액세서리가 전부였다.
가령 저번처럼 폭시와 마트에 간다고 해도 머리랑 몸쪽을 가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진짜 여우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출발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는 인간 손에 길들여질 생각이 없다는 거.”
폭시는 몸을 낮춰 단쥐를 바라보았다.
잠깐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인간하고 가까이 있는 거야? 저건 인간이잖아.”
“나도 모르겠어.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은지, 나도 정말 알고 싶어. 그냥 진짜, 진짜 신기해!”
폭시는 잠깐 생각하다 말고 발을 동동 굴리며 웃었다.
은호의 곁에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은호 옆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호 옆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은호는 달라. 이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무 날을 세우지 말아줘. 응?”
폭시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부탁했다.
어딘가 어설픈 설득이었지만, 은호는 폭시가 꺼내는 말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느꼈다.
“친구야. 여기서 네가 기다리는 게 사람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은호가 꺼낸 말에 단쥐는 크게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표정에 은호는 뒤이어 올 말을 예상했다.
“나한테 더는 신경 쓰지 말아줘!”
단쥐는 눈을 감은 채 소리치다 말고 빨리 어디론가 달렸다.
혼란스럽고, 쓸쓸한 그 뒷모습에도 은호는 단쥐를 붙잡지 못했다.
무척 두려워 보였으니까.
그 깊은 감정에 은호는 어떤 상황인지 천천히 예측할 수 있었다.
“…가버렸는데, 안 쫓을 거야?”
폭시가 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저 친구는 내일도 이곳에 올 거야.”
내일만 오겠는가.
앞으로 쭉, 계속 이곳에 발을 디디겠지.
“친구를 기다리는 걸까?”
폭시는 씁쓸함을 숨기지 못했다.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뭘 두려워하는지는 알겠어.”
“…나도 알 것 같아.”
폭시는 은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도, 은호가 없었으면 그곳에 가지 못했어.”
친구와 함께 붙잡혔던 그 오두막.
혼자만 탈출했던 그곳으로 발을 내디디지 못했다.
만약에 저곳에 친구가 없다면.
그 사실이 너무도 두려워서 괜히 인간들이 가득 있는 곳을 헤맸으니까.
“저 애도… 그렇겠지?”
“그럴 거야.”
은호는 폭시를 토닥거렸다.
단쥐는 도와준다는 말에 크게 반응한 것도 모자라 도망쳤다.
만약에.
이 글자로 시작하는 두려운 생각이 수없이 밀려온 게 아닐까.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분수대, 그 근처에 자라난 식물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더더욱 그냥 볼 수가 없네.’
제3 자인 자신이 끼어들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달랐다.
아직 환수 밀렵꾼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단쥐가 조심한다고 해도 저 모습을 들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서 작은 단쥐가 사라졌다고 해서 누가 찾을까.
그러니 조금은 간섭하고 싶었다.
은호는 그림자를 보며 물었다.
“멍멍이 형님. 근처에 아무도 없어?”
“없다.”
“그럼, 정확히 누굴 찾는지 한 번 볼까?”
은호는 가방에서 피가 담긴 통을 꺼냈다.
슬쩍 피를 준 뒤에 거침없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친구야. 방금 도망친 친구가 누굴 찾는지 알아?”
위그드라실이 주머니에서 내려와 식물로 뛰어갔다.
손을 뻗자 더 선명해진 이미지가 은호의 머릿속에 박혔다.
시선이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수많은 발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단쥐가 있었다.
계속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바람을 따라 시선이 흔들리던 그때, 단쥐가 다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호기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식물은 고개를 돌려 그 발을 보았다.
작고, 앙증맞았다.
은호는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이미지가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저 친구, 진짜 아이를… 찾고 있었어.”
왜.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이 맑아지질 않았다.
이 사실을 알려준 식물과 위그드라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뒤, 은호는 흑견을 보았다.
“멍멍이 형님. 아무래도 힌트를 더 얻어야 할 것 같아. 잠깐…….”
“인간.”
“응?”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가.”
“…….”
흑견의 물음에 은호는 주저했다.
“역시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리는… 거겠지?”
“분명히 더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인간한테 부탁한 적도 없다.”
이전과 상황이 달랐다.
그렇기에 흑견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고집인 거 알아. 내가 간섭할 이유가 없는데 억지로 끼어드는 것도 알아.”
은호는 머뭇거렸다.
괜히 손을 주머니 속에 넣으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미 보고 말았는데, 그 친구가 아이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는데.”
은호는 괜히 땅을 바라보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하면, 그동안 마음에 쌓인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상상이 안 가서 그래.”
그 아이에게 고마운 일이 있는 걸까.
그래서 꼭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 마음 이외에 다른 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그 친구한테 말하지 않을게. 그게 그 친구를 위한 길이라면 그대로 손을 뗄게. 그래도 나는 알아보고 싶어.”
은호는 이번 일에 손을 뗄 각오를 하며 흑견에게 말했다.
“그러면 됐다.”
흑견의 대답에 폭시가 은호에게 다가가다 말고 그림자를 보며 실실 웃었다.
걱정하는 감정이 너무도 잘 보였으니까.
“멍멍이 형님은 부끄러움쟁이네?”
“부끄러움쟁이 맞지.”
은호 역시 그림자를 보았다.
저 말이 자신을 걱정한 소리라는 걸 왜 모를까.
“시끄럽다!”
흑견이 퉁명스럽게 꺼낸 저 말에 은호는 낄낄거리며 태블릿을 꺼냈다.
단쥐를 추적한 뒤 물었다.
“갈까?”
이건 그저 스치듯 다가온 인연에 대해 자신들이 벌이는 오지랖일 뿐이었다.
이 앞에 뭐가 펼쳐져도 단쥐는 모르는 이야기가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