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3화(9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3화
93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데,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여자는 마시던 와인을 내려놓은 채 웃었다.
다리를 우아하게 꼬아 상체를 살짝 숙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다른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들었을까.”
“죄송…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뭘 들었냐고 물었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나 봐.”
그녀는 검지를 길게 뻗어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의 턱 끝을 만졌다.
그 사실만으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주, 주인님!”
온몸을 떨고, 두려움에 빠져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았다.
여기에서 눈물을 흘렸다가는 정말로 죽을 테니까.
“나는 인내심이 없단다.”
주인이라 불리는 그녀는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없는 인내심을 끌어모아 너를 내가 구해줬어.”
주인은 붉은 머리를 한 여자를 향해 나머지 손을 뻗으며 내려왔다.
“오직, 너만을.”
그대로 껴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전신을 휘감은 그 목소리에 붉은 머리 가진 여자는 덜덜 떨었다.
어떤 말도 나올 수가 없었다.
여기서 저 사람의 기분만 나빠져도 자신은 터져 죽을 테니까.
“예유림, 너는 쓸모 있거든. 네 초능력은 쓸모가 있어. 그래서 멍청하게 붙잡혔지만, 지금 여기 있잖아?”
그녀의 말에 유림은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흑묘성도 놓쳐버렸다.
다른 환수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건 정체도 모를 남자 때문이었다.
―알면 뭐 할 건데?
아직도 생생했다.
―어차피 너희들은 입만 잘 나불거리면 되는데.
차갑게 내뱉어진 그 목소리가.
그놈의 힘으로 정신을 잃었고, 그대로 정신을 차리니 환수 관리국이었다.
조직에게 살해당할 거라 생각하던 차, 초능력 관리국으로 이송 중에 구해졌다.
“그 아이, 누구니?”
그녀가 묻자 유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사업을 방해한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어.”
그녀는 유림의 머리카락을 세게 쥐었다.
바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남자, 남자였어요.”
히끅.
유림은 어깨를 크게 떨었다.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찾아올 수 있겠네?”
그녀는 유림을 밀쳐내며 말했다.
하지만 손에 쥔 붉은 머리카락은 놓치지 않았다.
바닥으로 고개마저 숙인 유림은 꼭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같았기에 주인은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이 붉은 머리카락은 유림이 예전부터 소중한 거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내내 눈에 거슬리기도 했고, 실패까지 했으니, 소중한 걸 가질 자격이 있을까.
주인은 유림의 머리카락 일부를 붙잡고, 터트렸다.
터져나가면서 일어난 여파로 끊어진 머리카락과, 타버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무슨 수를 쓰든 내 앞에 꿇려. 그래야 네가 살아.”
“…….”
“대답.”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녀는 유림을 제치고 걸어갔다. 유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하, 하하.”
바닥에 가득 뿌려진 소중한 머리카락에도 그저 살았다고 안도하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 초능력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죽었을 테니까.
‘그놈…….’
유림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놈을 죽여야 해!’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
* * *
“…이거 봐봐.”
태호는 여러 가지를 은호에게 내밀었다.
뭔가 칼 같은 것도 있고, 주사기 같은 것도 있고, 통도 있었다.
“이게 뭐예요?”
“늘 말하던 그거지.”
“그거요?”
“은호 씨가 무식하게 혼자서 칼로 팔이나 팔목을 긋는지도 모른 채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은지 생각했던 내 멍청함을 탓하고, 아윤 씨보다 더 빨리 만났음에도 이를 눈치채도 못 한 내 우둔함에 기가 막혀서 반드시 은호 씨 전용 피를 뽑는 도구를 만들겠다고 말했잖아?”
말에 너무도 많은 뼈가 담겨 있었다.
은호는 그게 찔렸기에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엔… 음, 아팠는데요, 하다 보면 이게 참을 수 있는? 그런 게 되는 거죠.”
“은호 씨. 나를 진짜 못된 사람으로 만든 거 알지? 내가 그때, 가을 씨한테 얼마나 혼났는지도 말해줬지?”
태호는 그때만 생각해도 아찔했다.
그 상처가 칼로 직접 살을 벤 상처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미리 알았다면 무조건 말리는 건데.
“저도… 아윤 씨한테 진짜 혼났어요.”
“그건 그래도 되는 거지. 그렇지, 헤인아?”
태호가 책상에서 책을 보고 있는 헤인을 보며 물었다.
전체적으로 샛노랗기에 볼 때마다 신비로운 색이었다.
캐릭터로 된 도마뱀을 닮은 듯한 헤인은 웃고 있는 입꼬리를 유지한 채 태호에게 얼굴을 돌리며 큰 눈을 깜박거렸다.
뭔가를 생각하듯 눈동자를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가 혼나야 한다는 걸 물어본다면 그게 맞아. 은호의 행동은 다른 인간들에 비하면 특이하고 위험하니까. 인간이 할 행동과 거리가 좀 멀어. 그래서 지켜보는 건 언제나 신나.”
헤인이 꺼내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기에 태호는 더 당당하게 은호를 보았다.
“봐봐, 헤인이도 동의했잖아. 내가 아직도 은호 씨가 꺼냈던 기가 찬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거 알아?”
태호는 꽤 진지했다.
그때, 은호에게 ‘아프지 않게 피를 뽑고 싶었다면 아윤 씨나 나나 아니면 가을 씨한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물어보았다.
상식적으로 본인이 본인을 공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은호의 대답은 기가 찼다.
―금방 낫던데요?
“…그, 그러니까 이게 피를 뽑는 새로운 도구라는 거죠? 어떻게 작동하는 건가요?”
은호가 손가락으로 태호가 가져온 도구를 가리켰다.
뭔가 더 말을 하려다 태호는 한 번 참았다.
“우선 이건 의료 기계는 아니야. 등록해야 뒤탈이 없긴 해.”
“그건 형이 다 해주겠죠?”
은호가 믿는다는 표정을 짓자 태호는 기가 막혔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그 부분은 내가 아니라 가을 씨가 해줄 거야.”
“그럼, 문제가 없네요? 혹시 다른 문제가 있나요?”
“은호 씨가 의사나 간호사도 아니잖아? 그래서 혈관을 찾는 게 어려울 수 있어. 무엇보다 은호 씨가 싫어하는 주사 형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이지.”
“……으.”
은호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싫다는 게 느껴지자 태호는 저 사실이 더 기가 막혔다.
살을 베는 것보다 주사 맞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이것 참…….’
태호는 손이 가는 막냇동생이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은 외동이었다.
“어쨌든, 혈관을 찾는 부분을 보완하면 될 것 같은데, 통증은 내가 뭘 어떻게 해도 안 돼. 그러니까…….”
“그건 괜찮아요. 혈관만 잘 찾을 수 있게 해주면 너무 좋죠.”
은호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자 태호는 뭔가 이상하게 열받았다.
걱정해야 할 것들이 어긋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한 대만 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용 방법을 알려줘요.”
은호가 물었고, 태호는 잠깐 이빨만 악문 채로 ‘스―’하는 소리를 내며 화를 가라앉혔다.
“이게 조립 전 모습이야. 나중에는 조립 후 모습으로 나올 거야.”
태호가 하나씩 조립하자 끝이 뾰족한 수리검 같은 모습을 띠었다.
검지 두 마디만큼 작아진 칼에 은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냥 스윽, 베면 거예요?”
“은호 씨. 내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으로 보여?”
“에이, 나한테 사용하는 건데, 잔인하지는 않죠.”
“그냥 꽂으면 돼.”
태호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아직 시험단계라 불안정한 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센서가 있어서 혈관이 없으면 안에 든 바늘이 작동하지 않을 거야.”
푸욱.
태호는 찌르다시피 도구를 팔에 내리찍었지만, 평온했다.
도구를 떼자 어떤 상처도 볼 수 없었다.
“봤지? 혈관이 없으면 작동이 안 돼. 반대로 혈관이 있으면.”
태호는 조금 옆으로 움직여 도구를 찔렀다.
조금 전과 달리 어떤 소리가 들리더니 안에 피가 차올랐다.
“바늘을 통해 피가 흡입되는 거야.”
도구를 떼자마자 은호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태호는 으쓱거리며 피가 든 도구를 가볍게 흔들었다.
찹찹.
다른 소리가 들리자 태호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헤인이 앞발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인간이 하는 행동을 답습하자 태호는 놀란 눈을 하며 헤인을 바라보았다.
헤인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앞발을 멈춰서는 통통한 꼬리를 살며시 흔들었다.
“더 해줘, 태호. 나는 그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태호.
어색하게 들리는 그 발음에 태호는 멍한 표정을 했다.
“형. 형? 정신 좀 차려줘요. 헤인이가 그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대요. 물론, 나도 궁금하고요.”
은호가 재촉했고, 어느새 흑견도 그림자에서 나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멍멍이 형님도 궁금한가 봐요. 형, 지금 주목받고 있는데요?”
“……나.”
태호가 머뭇거리며 말을 겨우 내뱉었다.
정말로 울고 싶다는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이 방에 CCTV가 있었지만,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헤인이 손뼉을 치는 걸 담을 수 있겠지만, 그 반대로 ‘태호’라고 꺼낸 말은 영원히 들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엄청난… 발견을 놓쳐버리고 말았어.”
헤인은 인간을 알고 싶은 걸 떠나 탐구하는 그야말로 환수계의 학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어색하나 ‘태호’라고 발음하고 있지 않은가.
그 발음은 다른 환수들이 은호를 부를 때보다 더 똑똑하고, 귀에 익었다.
이 엄청난 발견을 너무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농담 아니라 이건 인간과 환수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 첫걸음이지 않을까.
태호는 그 첫걸음을 놓쳤다는 사실로 밀려드는 좌절감으로 손에 든 도구까지 놓칠 것만 같았다.
“형. 뭘 놓쳤는지 몰라도 내가 헤인이한테 부탁해볼게요.”
은호가 책상을 탁탁 치자 그제야 태호는 ‘아’하며 바로 정신을 차렸다.
절대로 할 수 없을 일을 해내는 힘을 은호가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에 피가 차면.”
태호는 말을 꺼내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빨리 절망에서 구해준 것도 웃겼고, 이 상황이 꿈이면 어쩌나 걱정하는 자신도 웃겼다.
태호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말을 꺼냈다.
“어쨌든, 피가 차면 여기 끝부분이 활성화될 텐데. 여기에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걸 달 거거든? 그때는 볼펜 꺼내듯이 누르면 은호 씨가 원하는 양만큼 나올 거야.”
“맞아요! 바로 그게 필요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거지.”
태호는 도구의 끝을 가리켰다.
“거기가 왜요?”
“이걸 꽂으면.”
태호는 옆에 있는 종이 뭉치에 도구를 꽂았다.
잠시 뒤, 피가 번져갔다.
“피를 자동으로 줄 수도 있어. 간단하지?”
“……형.”
은호는 숨을 들이켰다.
저 반응을 알기에 태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재 같지?”
“천재 같다는 게 아니라, 천재 맞는데요? 형은 천재예요!”
은호가 두 팔을 태호에게 뻗어 찬양할 때쯤,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가을이 안으로 들어왔고, 은호와 같이 있는 걸 보았지만, 급히 목소리를 냈다.
“현재, 초능력 관리국이 환수 관리국에서 인도받은 환수 밀렵꾼을 이송하던 도중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라고?”
태호가 입을 열자 가을은 차분히 다음 말을 꺼냈다.
“도주자는 흑묘성 사건 때 서은호 씨가 붙잡은 환수 밀렵꾼으로, 딱 한 명이 도주, 나머지는 모두 죽었습니다. 현재 도주자의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혹시, 누가 도주했는지 알아요?”
“네. 도주자는 예유림. 붉은 머리카락을 한 여성입니다.”
가을은 은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 *
한 존재가 눈을 떴다.
흐리멍덩하던 눈동자 사이로 열린 문을 보았다.
‘…문이 열렸어!’
얼굴은 토끼를 닮았으며 몸통은 웰시코기를 닮아 짧고 통통했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큰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목에는 답답해 보이는 두꺼운 목줄을 매고 있었다.
환수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저 빛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에 심장이 쿵쾅쿵쾅 뛸 것만 같았다.
나가도 될까.
나가도 되는 걸까.
미쳐버릴 것 같이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갔다.
하지만 환수는 달렸다.
허락이고 뭐고 좋았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이 줄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예전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금세 목줄이 팽팽해졌다.
목을 파고들어 목에 피가 났지만, 문을 향해 앞으로 달리고, 발톱이 모조리 빠져버린 발로 온 힘을 다해서 뻗었다.
와르르.
목줄을 감싼 기둥이 잠깐 무너지며 큰소리가 났다.
풀려난 목줄로 문을 뚫다시피 나갔다.
띠띠띠.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났지만, 환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베란다로 달려갔다.
와장창.
유리가 깨지고 그 소리에 안으로 들어오던 남자의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환수는 베란다에 창문을 막은 철창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우지끈.
철창이 찌그러졌고, 환수는 다시금 몸을 부딪쳤다.
일그러진 그 구멍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 채 간절히 소리쳤다.
“도와줘!”
누구든 좋으니까.
“제발, 도와줘!”
환수가 간절히 외친 세 번째 말은 뒤에서 밀어닥친 손 때문에 묻혀버렸다.
남자는 환수의 입을 막고 잠깐 아래를 바라보았다.
환수가 남자를 할퀴려고 해도 없는 발톱으로는 소용없었다.
무엇보다 저 남자의 힘이 너무도 강했다.
꽉 쥐는 손아귀에 몸이 짓눌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남자는 환수가 뭘 하든 말든 길거리와 상가가 보이는 그곳으로 시선을 뒀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한 남자가 자신 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이 거의 새하얗다시피 해 이상하리만큼 눈에 띄었다.
하지만 소리가 퍼져나갔다고 해도 어차피 짐승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지.
남자는 그대로 아래에 있는 모두를 비웃으며 환수를 끌고 갔다.
그가 사라지자 아래에 있던 은호는 눈으로 층수를 확인했다.
‘……23층.’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