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4화(94/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4화
94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2)
―도와줘!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아도 사람들은 도와 달라는 말이 아닌, 그저 시끄러운 소리에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개소리야 뭐야? 더럽게 시끄럽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은호는 비로소 확신했다.
환수가 꺼내는 말이라는 걸.
―제발, 도와줘!
이어 들린 환수의 간절한 말에 은호는 위를 바라보았다.
놈과 마주했다.
너무 멀리 있어 얼굴은 모르겠지만,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다 봤다.
그걸 알리고 싶었다.
“……하.”
은호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식히려 노력했다.
이렇게 대놓고 환수를 감금할 줄이야.
은호는 안경을 낀 뒤 맹금류의 눈을 발동해 위를 바라보았다.
구부러지고, 휘어진 철창을 보니 저곳에 갇힌 환수가 얼마나 탈출을 바랐는지를 알았다.
주저 없이 그곳으로 발길을 움직이려던 차, 은호는 그대로 멈췄다.
‘…진정하자.’
모름지기 사람이 사람을 추궁하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휴대전화로 최대한 확대해 철창이 구부러진 모습을 찍은 뒤, 바로 태호에게 연락했다.
“형.”
은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무거웠다.
<…혹시 아직도 머리가 복잡해? 이번 일은 솔직히 나도 충격적이긴 해. 이렇게까지 환수 밀렵꾼들이 날을 세운 적은 없으니까.>
조금 전, 가을로부터 흑묘성 사건 때, 자신이 잡은 환수 밀렵꾼 중 하나가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일은 초능력 관리국에서 벌인 크나큰 실수였다.
예유림.
그때, 붉은 머리카락을 한 그녀가 도주자였다.
“아뇨. 그 일이 아니에요, 형.”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이렇게 화가 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 일이 아니라니…?>
태호의 말에 은호는 상념에서 깨어난 듯 반응했다.
“누가 겁대가리 없이 아파트에 환수를 감금 중이네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형?”
<…이런 썩을!>
콰앙.
책상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호는 잠깐 기다렸다. 자신도 뭐라도 치고 싶은 상태였으니까.
“내가 먼저 손대면 안 되겠죠?”
<안 돼, 은호 씨. 일반 사람일 확률이 높아. 이건 비소속 초능력자와 달라. 처분을 피하긴 어려울 테니까.>
“형.”
<알아, 은호 씨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아는데, 이건 정말 안 돼.>
은호는 휴대전화에 힘이 꽉 들어갔다.
“도시 한복판에. 그것도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이런 식으로 거의 대놓고 환수를 감금하는 사례가 그렇게 많았다는 거예요?”
<은호 씨.>
은호는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저 말을 듣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폭시 때가 떠올랐다.
환수 밀렵꾼이 환수 관리국을 사칭해 폭시를 납치하려고 했으니까.
대체 뭐가 다를까.
<많을… 거야. 하지만 집은 개인적인 공간이야.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잖아?>
이를 악무는 듯 태호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건 이해해요. 다만, 형.”
은호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 은호 씨.>
“저 새끼가 어디에서 환수 친구를 데려왔을까요?”
<이제 저놈을 잡아서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캐내야지.>
“지금, 놈은 안일해하고 있어요. 대놓고 우리를 비웃고 있을지도 몰라요.”
은호는 평소 나른하고 부드러움이 어린 표정을 걷어버린 채 싸늘해진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형. 그 비웃음을 이용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휴대전화 너머에 들려왔다.
<은호 씨. 이곳에도 엄연히 법이라는 게 존재해. 알잖아?>
“알죠. 알고 있는데, 어차피 나는 잃을 게 없어요.”
이번에는 비소속 초능력자가 아닐 확률이 너무도 높기에 태호가 걱정하고 말리려는 걸 왜 모를까.
하지만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인지.
“저런 놈들은 처음부터 법을 개무시했잖아요? 나라고 못 할 게 있어요? 법의 테두리 안에 밀어 넣을 테니까, 형이 가져다 바쳐요. 내가 줄게요.”
태호는 이름만으로 이미 너무도 유명하기에 보는 시선이 많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두려울 건 없었다.
오히려 저놈을 이용해 어디까지 건질 수 있을지, 그게 너무도 궁금했다.
“…아, 이미 뭘 어떻게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혼내지는 말고요. 가을 씨한테도 전해줘요.”
은호는 걸음을 멈춰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지금 자신의 마음 같았다.
까맣고, 까맣게 칠해져서 자신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은호 씨. 힘은 이용하라고 있는 거야.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지. 나든, 이지혜 국장이든. 그러니까 말해봐.>
조금 전과 달리 감정을 뺀 태호의 목소리에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덫을 치려고요. 저 한 마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물고 올지 기대해도 좋아요.”
단 한 명이 불고 올 바람이 얼마나 거칠지 저들도 알아야지.
왜 자신들이 매번 조심하고, 마음을 졸여야 할까.
‘숨으려면 사람 눈길이 닿지 않는 그런 더러운 곳으로 숨어야지.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채 사람이랑 어울리고 사람다움을 즐기는 건 안 되지.’
은호는 가방에 손을 쑤셔 넣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조심해야 하는 건 자신들이 아니라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에게 손을 뻗고 있는 그 새끼들이어야만 했다.
결국, 그 벌레들한테 돈을 쥐여주는 건 그놈들이니까.
* * *
“…더러운 짐승 새끼. 어릴 때는 귀엽기라도 했지.”
남자의 손아귀에는 술이 담긴 캔이 들려 있었다.
얼마나 취했는지 몰라도 이미 얼굴이 붉게 물든 건 물론 주변에 술냄새가 진동했다.
더 단단하고 두꺼운 목줄에 묶여 바둥거리는 환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조만간 버리든가 해야지.”
“아니지. 버리는 건 네가 하면 안 되는 거지. 누구 마음대로?”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술이 단숨에 깼다.
“누구…….”
말을 잇기도 전에 갑자기 불이 꺼졌다.
갑자기 허공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된 불빛이 나타나더니 표정을 이뤘다.
개구쟁이라는 컨셉에 맞췄는지 몰라도 누가 봐도 비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너 대체…….”
치익.
놈이 말을 꺼내기 전에 은호는 태호가 준 스프레이도 잠재웠다.
그대로 쓰러지는 걸 보며 다시 스위치 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큰 소리가 일어났다.
쾅.
이내 비명이 터졌다.
“…악!”
발끝이 찧어버렸다.
탁.
불이 켜지자 흑견이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
“이건 진짜, 진짜 억울해!”
머리카락도 가려야 하니까, 태호가 탈을 만들어줬다.
외향 도안은 자신이 제안했다. 어떻게든 얄밉게 보이길 바랐다.
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숨쉬기도 편안하지만,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라 어두운 곳에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약해진단 말이야.”
은호는 발을 붙잡은 채 흑견을 바라보았다. 해명했음에도 한심함이 섞인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멍멍이 형님, 잠깐만 들어가 있어봐.”
가방에서 가을에게 받은 물건을 꺼냈다.
아까 태호에게 움직이겠다고 말한 뒤, 한 열 걸음 걸었을까, 바로 가을한테 연락이 왔다.
―다른 건 다 좋습니다. 네, 다 괜찮은데, 잠깐 저한테 와주시겠습니까?
전혀 괜찮은 목소리가 아니기에 당장 연구소로 뛰어갔었다.
그때 가을이 자신한테 넘긴 건 손톱만 한 칩이었다.
―집에 설치된 CCTV나 휴대전화 등 기계에 부착만 하면 됩니다.
은호는 딱 봐도 CCTV처럼 생긴 물건에 붙인 뒤 문자를 보냈다.
[CCTV 뒤에 붙였어요.] [오가을 씨 : 됐다고 하기 전까지 행동하지 마세요.]문자가 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자가 왔다.
[오가을 씨 : 됐습니다.]‘…이렇게 빨리?’
숨 한 번 돌렸을 뿐이었다.
[엄청 빠르네요…….] [오가을 씨 : 이곳에 담긴 자료는 차후 무조건 도움이 될 겁니다. 이제 움직이셔도 됩니다.]가을의 말이 끝난 뒤에야 은호는 바로 잠이 든 남자의 복부를 걷어찼다.
콱!
“…끄윽.”
자면서도 비명이 들려왔지만, 꼴좋다 싶었다.
은호는 바닥을 구르고 있는 여러 캔을 보았다. 그 뒤를 따라 치우지도 않은 쓰레기들이 바글거렸다.
평소 습관이 보였다.
은호는 자신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사람을 업신여기고, 혐오하는 표정이지 않을까.
그렇게 멋대로 생각한 뒤, 은호는 표정을 다잡고는 탈을 벗었다.
땀이 찔끔 났기에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뒤,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호흡을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환수의 상태를 보자마자 저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니까.
은호는 미소를 지으며 뒤로 돌았지만, 애써 올렸던 입꼬리가 밑으로 내려앉았다.
입마개로 입이 막히고 목을 다 채울 정도로 두꺼운 목줄에 묶인 것도 모자라 앞발과 뒷발 역시 묶여버린 그 모습에 당장 달려갔다.
“…미안해.”
은호는 목줄을 풀고자 손을 뻗으며 환수와 마주했다.
체념이 보였다.
어떤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마치 폭시 사건 때 만났던, 론이 아닌 다른 햄피아를 보는 기분이었다.
“네 목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왔어.”
목줄이 더럽게도 풀리지 않았지만, 은호는 환수를 보며 더욱 웃었다.
뭐라고 말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환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켜라, 인간.”
흑견이 말을 꺼내자 은호는 뒤로 물러섰다.
“가만히 있어 줘.”
이미 발버둥 치는 걸 포기했다는 걸 알지만, 은호는 환수를 향해 말했다.
흑견이 어둠으로 일으키자 갑자기 환수가 움직였다.
무얼 보는지 몰라도 환수의 눈동자에 깊고, 짙은 공포가 드리웠다.
“아니야. 널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은호가 다급히 교감의 힘을 꺼냈다.
손아귀에서 빛이 퍼져나가자 환수는 처음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사이 흑견이 환수를 옥죄여온 입마개도, 목줄과 앞발과 뒷발을 묶던 줄마저 죄다 베어냈다.
자유가 됐음에도 환수는 멍하니 빛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빛이다.”
퍼석 마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천천히 걸어오다가 앞발을 뻗은 채로 그대로 쓰러졌다.
은호는 굳어진 표정으로 다가가 조용히 환수를 안았다.
한눈에 봐도 마른 게 느껴졌다. 단지 마르기만 했을까.
이상했다.
이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레딩.》
《.》
《얼굴에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귀처럼 보이나, 귀는 따로 작게 존재합니다. 잘 때 말고는 하늘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기에 바람을 맞지 못하면 점점 쇠약해질 정도로 하늘을 사랑합니다. 몸집에 비해 몸이 상당히 가볍습니다.》
《귀는 작지만, 청력이 몹시 뛰어나 작은 소리에도 금세 반응합니다. 주변 얼굴에 달린 날개는 제2의 손으로 사용합니다. 새의 날개와 달리 바람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합니다. 이 힘으로 바람을 압축시키고, 공격합니다.》
은호는 슬쩍 떠오른 태블릿에 적힌 글자를 눈으로 읽다가 레딩을 안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커다란 날개도 없었고, 소리에 예민하지도 않았다.
이유가 뭐겠는가.
은호는 지금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방에서 폴라로이드 같은 사진기를 꺼내 남자를 찍었다.
사진을 흔들며 남자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보통 휴대전화에 개인 정보가 많기에 여기도 칩을 박았다.
[휴대전화에도 붙였어요.]가을에게 문자를 보낸 뒤, 바로 답장이 왔다.
[오가을 씨 : 이름은 ‘하동윤’입니다. 필요하실까 보냅니다.] [딱 필요했죠.]은호는 잠깐 앉아 레딩을 자신의 다리로 내려놓았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바닥에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되찾고 싶으면 짖어, 하동윤.」
은호는 적당한 말을 쓴 뒤에 동윤의 얼굴 위로 세게 던졌다.
착.
놈의 얼굴로 달라붙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은호는 다시 레딩을 안아 올렸다.
찰칵.
주변 환경을 찍고 동영상도 죄다 찍었다.
이 모든 게 증거가 될 테니까.
“가자, 멍멍이 형님. 여기 1초라도 더는 못 있겠어. 이 친구도 그럴 테고.”
그저 안았을 뿐인데, 손길을 거부하듯 발작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은호는 공간을 연 뒤 흑견을 바라보았다.
흑견은 레딩이 있던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 존재는, 버텼다.”
“맞아. 버텼어.”
은호가 굳세게 대꾸하자 흑견은 뒷발로 남자의 다리를 밟았다.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흑견은 이를 무시하며 공간으로 들어갔다.
* * *
“…눈 뜬다. 눈을 뜨기 시작했구나! 은호, 은호.”
웅웅 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레딩은 천천히 떴다.
바로 어둠이 보였다.
어둠은 싫었다.
그저 ‘웅웅’거리는 게 전부라 그 고요함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말랑한 촉감이 먼저 들이밀었다.
“왜 눈을 뜨지 않더냐. 나는 다 보았다.”
앞발을 내리며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별이 가득한 밤이었다.
“…별이다.”
레딩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목이 멘 소리였다.
“나는 별이 아니다. 위대한 존재니라.”
흑묘성이 불만을 담아 이야기하자 레비아탐과 폭시가 키득거렸다.
“괜찮암? 혹시, 어디 많이 아팜?”
레비아탐이 거리를 유지하며 물었다.
“안녕. 몸은 어때?”
폭시 주변에 나비가 맴돌았다.
레딩은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딱 은호를 보자마자 모든 행동을 멈추고는 그대로 숨을 크고 빠르게 내쉬었다.
이미 멀리 떨어졌지만, 은호는 레딩의 반응에 방 끝까지 물러나 조심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