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5화(95/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5화
95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3)
레딩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본 순간, 눈을 마주하지 않아도 격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농담 아니라 그 시선에 피부가 다 따끔거렸다.
―…인간한테 당한 게 많아서 경계심이 상당할 거야. 은호 씨가 지금껏 본 환수 중에서 가장 많이. 그러니까, 천천히 눈을 마주쳐야 해.
은호는 태호의 말을 떠올리며 시선을 아주 천천히 올려 마주했다.
억지로 씌운 모자에 가려졌던 레딩의 얼굴이 드러났다.
날개가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뭔가 귀처럼 흔적만 남아 있었다.
―……하. 쓰레기 새끼. 여기… 보여? 그 새끼가, 날개를… 잘라버렸어. 레딩이 살면서 꼭 필요한, 가장 중요한 걸 빼앗아버렸다고.
분노를 꽉 누른 태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은호는 시선을 살짝 내렸다. 그곳에 무언가 있었던 흔적이 아주 작게 남아 있었다.
―귀는… 없어. 이게, 귀가 있었는데… 없애버렸어. 듣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왜 그랬는지 알아?
은호는 레딩을 바라보는 게 괴로웠다.
분노하고, 원망하는 그 시선이 아팠다.
―인형을 만들려고. 살아있는 인형 있잖아?
태호는 그대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정말로 피가 났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어. 검사 결과 날개 쪽하고, 귀 쪽에 신경이 살아있거든.
이 모든 걸 다 살펴본 의사들과 태호는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본인한테 위해를 가할까, 발톱마저 빼버렸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빨이 뽑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게 다행이라니.’
밖으로 나갈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은호는 입을 열었다.
“기분은… 좀 어때?”
지금 말이 들리지 않을 테지. 알고 있지만, 은호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레딩은 바짝 얼어붙은 채 은호를 보았다.
폭시가 감정을 억눌러줬음에도 밀려드는 두려움이 너무도 큰 탓이었다.
은호는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레딩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식은땀을 흘리듯 레딩의 털이 축축하게 젖었고, 토끼를 얼추 닮은 얼굴 너머에 비로소 안정이 살며시 보였다.
레비아탐은 은호를 두려워하는 모습에 더듬이를 축 내렸다.
“은호가 한 거 아닌뎀. 은호는… 구해줬는뎀.”
“지금 인간을 너무 무서워해서 그래. 나도 예전에 그랬어. 나중에 조금 더 평온해지면, 그때 은호가 도와준 거라고 말해주자.”
폭시가 레비아탐을 꼭 안으며 말해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에 레딩은 그들의 행동에 그냥 몸을 움츠렸다.
“왜 그러는 것이냐? 우리는 너를 잡아먹지 않는다.”
흑묘성이 말이 꺼냈지만, 레딩은 이불로 들어가 몸을 감췄다.
“귀가 안 들린뎀. 지금 많이 아프뎀.”
레비아탐이 꺼낸 그 말에 흑묘성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귀, 귀가 안 들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더냐?”
“천천히 다가가야 해. 너무 빠르면 위협으로 보이거든. 지금은 우리도 물러나자.”
폭시의 눈에 레딩의 감정이 너무 빠르게 요동치는 게 보였다.
혼란.
그중 가장 큰 감정이기에 폭시는 자신들이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물러나서야 레딩은 코를 벌름거리며 이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 갔어.’
레딩은 주변을 경계하며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
여기는 어딜까.
다른 곳으로 온 걸까.
아니면 꿈일까.
‘꿈이 아니라면, 그 애들은 나랑 같은 신세야……?’
그러기에는 다들 목에 목줄이 없었다. 마음대로 움직였다.
레딩은 앞발로 목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없어.’
목을 만지던 앞발이 바빠지다 이내 부르르 떨렸다.
‘…나도 없어.’
레딩은 두 앞발에 얼굴을 묻었다.
그토록 증오스럽던 줄이 사라졌으니까.
‘꿈은 안 돼. …제발, 꿈은 아니어야 해.’
레딩은 앞발로 본인의 얼굴을 때렸다.
착.
아프다는 걸 알지만, 통증을 느껴야만 현실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 * *
갑자기 쓰다듬은 손길이 느껴졌다.
레딩은 밀려드는 온기에 놀라 눈을 뜨려고 했지만, 그저 몸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또 맞고, 또 쓰다듬는 걸까.
눈을 감고 자는 척해야 이대로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알기에 레딩은 평소처럼 그렇게 했다.
어서 빨리 가버리길.
어서 빨리 사라지길.
그렇게 기도하다 레딩은 몸에 긴장이 살며시 풀리는 걸 느꼈다.
‘……따뜻하다.’
그 인간은 어쩌다 가끔 이렇게 쓰다듬어주긴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꼭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웃어주고, 보듬어준 그때로.
‘…아니야. 정신 차려. 기대하지 마.’
그때랑 달랐다.
자신은 그 인간에게 붙잡혔고, 감금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도 괴로웠다.
‘하늘을 생각해. 하늘을…….’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 온몸에 큰 떨림이 밀어닥쳤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귀는 이미 제 작동을 하지 못했다.
날개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딱 하나가 아른거려 이 질긴 숨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네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었어.”
레딩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바로 갔으면, 네가 더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장가 같았다.
부드러운 바람을 맞는 것만 같았다.
햇살이 내리쬔 푸르른 하늘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다음에 또 올게.”
말이 끝나자마자 온기가 사라져갔다.
‘안 돼. 안 돼…! 조금만 더, 더 쓰다듬어줘!’
앞발을 뻗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몸이 더 무거워지며 땅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의식마저 놓아버릴 것 같던 그때, 주변 풍경이 뒤바뀌었다.
까맣던 세상 대신 드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눈동자를 굴리자 울창한 숲이 발아래에 존재했다.
팔랑.
소리가 들려 위를 시선을 올렸다. 그대로 모든 게 멈춘 것만 같았다.
날개가 있었다.
커다랗고, 웅장한 자신의 날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귓가로 스치는 바람 소리는 꼭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웃겼다.
소리가 들리고, 하늘을 날고, 그리고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다가가려던 그때, 누군가 발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래로, 더 깊은 아래로 끌려가는 그때, 레딩은 놀라 눈을 떴다.
숨을 따라 배가 바쁘게 움직였고, 눈앞에 푸른 꽃이 놓여 있었다.
‘꽃이다…….’
하늘을 닮아 있었다.
레딩의 눈동자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놀란 눈을 하며 다시 주변을 보았다.
머리맡으로 햇빛이 떨어졌다. 다급히 앞발로 머리를 매만지자 아무것도 없었다.
‘……꿈이었어?’
레딩은 앞발에 얼굴을 묻었다.
발바닥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드르륵.
문이 열렸고, 폭시가 웃으며 이야기하다 말고 달려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레딩은 저 존재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주변에 피어난 푸르른 나비를 보니 애가 탔다.
하늘은 저기에 있는데, 닿을 수가 없었다.
“…날, 죽여줘.”
폭시는 레딩이 꺼낸 말에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지 마. 포기하지 마. 조금 있으면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응?”
레딩은 그 온기에 눈물을 흘렸다.
* * *
“…친구야.”
어둠이 내려오면 항상 그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귀랑 날개. 신경이 살아있어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대. 오늘 확실히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어.”
레딩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보다 더 기쁜 것처럼 들렸기에 이상했다.
“네가 기뻐했으면 좋겠어. 네가 새로운 날개와 귀를 달아도 많이 어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잘되어야 하는데.”
왜 저런 걸 고민할까.
“계속 널 응원하고 있어. 견뎌달라는 말이 너한테 얼마나 무거울지 알아.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잘 먹어줘.”
포기하지 마.
전혀 다르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들려왔다.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레딩은 또 이해할 수 없는 게 늘어버려 이상했다.
그다음 날, 눈을 뜨니 보라색 꽃이 놓여 있었다.
누가 놨을까. 그런 의문도 잠시, 오늘은 나비를 부르는 존재 말고, 잎사귀를 단 다른 존재도 같이 왔다.
이번에는 말없이 꼭 안아줬다.
당황스러웠다.
왜 이렇게 해주는 걸까.
“…오늘 혼났지 뭐야. 멍멍이 형님하고 잘 자기로 약속했는데, 네가 잘 자는지 놀라지는 않는지 몰라서 계속 기웃거리게 되네.”
그 목소리는 또 어둠이 내려오면 들렸다.
“네가 나보다 더 잘 자고, 좋은 꿈도 꾸면 좋겠는데. 아, 밥도 잘 먹어야 해. 그 누구도 아닌, 널 위해서야. 그래야 뭐든 버틸 힘이 생겨.”
나긋나긋한 저 목소리는 이상하게 잠을 불러왔다. 그저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졌다.
그다음 날에는 하얀 꽃이 눈앞에 가득 있었다.
오늘은 별을 품은 까만 존재가 늘어나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는데, 또 그들은 자신을 안아주었다.
온기가 자꾸 늘어나자 레딩은 이상함이 너무도 커졌다.
왜 이러는 걸까.
따뜻함과 같이 의문이 몸집을 키워갔다.
“밥을 좀 남겼다고 들었어. 그래도 요새 잘 먹고 있었잖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야.”
오늘도 또 그 목소리가 왔다.
걱정을 담았고, 쓰다듬는 손길이 따사로워서 의문이 더 자라났다.
“혹시나 너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수 있는데, 너는 그 무엇도 잘못한 게 없어.”
어떻게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지 몰랐다.
“이곳이 이상할 수 있어. 왜 이렇게 해주는 걸까, 의문이 가득 쌓일 수 있어. 그 의문에 대답하자면, 네가 사랑스럽기 때문이야.”
사랑.
그 말에 레딩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에 또 목줄이 달라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다음 날에도 분홍빛으로 물든 꽃이 있었다. 보자 목이 멨다.
이번에는 입이 삐쭉 튀어나온 존재가 늘어났다.
불만이 담긴 저 표정에 흠칫 놀랐지만, 오늘도 자신을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숨이 막혔다.
따뜻한데, 죽을 것만 같았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몰라서 괴로웠다.
온종일 웅크렸다.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널 그렇게 슬프게 할까. 내가 그 인간을 박살 내고 오면 네가 웃어줄까?”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리자 흐릿했던 의식이 확 돌아왔다.
벌써 밤일까.
레딩은 꽉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빨리 가.’
“네가 더는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서 나아서 같이 산책하러 같이 갔으면 했는데.”
‘더는 말하지 마.’
“여기에는 꽃이 참 많아. 다 내가 피운 거긴 한데, 그래도 다른 얘들도 좋아하니까, 나도 행복하더라. 너도 그 꽃을 보면 기뻐해 줄까?”
‘하지 마. 말하지 마!’
“하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다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천천히 너만 생각하는 거야.”
이 모든 게 진심이기에 레딩은 가슴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네가…….”
레딩은 그 목소리가 닿기 전에 앞발로 이불을 걷었다.
새하얀 것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이 달빛에 비춰 반짝거렸다.
레딩의 눈이 커졌다.
그 인간이었다.
놀란 눈과 함께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 행동 전부가 자신의 숨을 막아버렸다.
“……하지 마!”
레딩은 소리쳤다.
“하지 않을게.”
대답이 바로 왔지만, 레딩은 가슴이 따끔따끔했다. 왜 자신이 저 인간 때문에 아픈 걸까.
“미안해. 네가 날 보면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몰래 왔는데, 널 또 슬프게 해버렸어.”
은호가 웃자 레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레딩은 다시금 소리쳤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너무도 답답했다.
“…왜 그러는데?”
레딩은 고개를 떨구며 물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이 모든 게 꿈일까, 무섭고 두려웠다.
이 목소리도, 이 감각도, 자신이 다 꾸며낸 일이고, 사실은 그곳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면.
상상만으로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대체 나한테 뭘 바라길래 꽃도 주고, 온기도 나눠주고, 따스하게 말하는 건데?”
“네가 좋으니까.”
은호가 웃었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초록색 빛깔이 흘렀다.
레딩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교감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 그대로 교감이었으니까.
정말로 자신과 말을 나눌 수 있었다.
“대체 날 언제 봤다고! 고작 이 가벼운 시간에 내가 좋다고? 날 좋아한다고?”
레딩은 그 사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래 봤다고, 널 무조건 좋아하게 되는 건 없어. 반대로 짧게 봤다고, 널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너도, 너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날 가두려고?”
레딩은 날을 세웠다.
그 인간이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대해줬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거리를 좁힌 게 아니었다.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걸 아니까.
그 거리를 좁힌 건 인간이었다.
밥에 뭔가를 섞었고, 정신 차리니 그 집이었다.
그대로 자신은 하늘을 빼앗겨버렸다.
인간이 미웠다.
아니, 저 인간은 그 인간보다 더 미웠다.
“친구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널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니까.”
저 인간은 고작 몇 마디에 그 인간이 준 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했으니까.
사랑이 아니라 탐욕이었다는 걸 깨달아버렸지만, 레딩은 밀려드는 두려움에 울부짖었다.
“너도 나를 버릴 거잖아! 너도 나를… 가둘 거잖아! 내 모든 걸 뺏고, 아무것도 못 하는 나를 비웃을 거잖아! 그럴 거라면 하지 마!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마!”
애초에 몰랐다면 이렇게 두렵지도 않았을 텐데.
이토록 숨이 막힐 일도 없었을 텐데.
레딩은 고개를 든 채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을 닦는 손길이 느껴지자 레딩은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아팠다.
그 인간에게 날개도, 귀도, 하늘마저 뺏겨놓고,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곳에서 낯선 존재들에게 안긴 그 순간에 몰려온 포근한 온기가 사라질까 초조해하는 자신이 싫었다.
아침마다 예쁜 꽃을, 밤에는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꺼내는 그 말이 차갑고, 아프게 바뀔까 무서워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자신이 싫었다.
“내가… 내가, 너무 싫어!”
가장 싫은 건 이런 자신을 너무도 싫어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였다.
왜 이럴까.
자신은 왜 항상 이럴까.
“친구야. 그럼, 너 자신이 좋아질 때까지 내가 더 좋아해 줄게. 더 많이 쓰다듬어주고, 더 많이 너의 좋은 점을 알려줄게.”
은호는 레딩을 안았다.
레딩은 이전과 달리 떨지 않았다. 그저 매달려 마음속에 감춰뒀던 모든 감정을 쏟아내듯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그 소리에 은호는 안도감을 느꼈다.
눈물과 함께 메말라버린 마음이 조금씩 차고 있다는 신호였으니까.
혹시나.
정말 혹시나 레딩이 이 모든 걸 꿈으로 착각할까, 은호는 토닥거리며 말을 꺼냈다.
“이건 꿈이 아니야. 너는 밖으로 나왔어. 그러니까, 너 자신을 좋아하게 된 그때, 나하고 밖을 산책하자. 다른 친구들도 보고, 꽃도 보는 거야.”
그 눈물 속에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묻는 것 같았기에 은호는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너는 아주, 아주 사랑스러우니까.”
달리 무슨 이유가 있을까.
은호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