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6화(9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6화
96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4)
* * *
은호는 레딩이 잠을 때까지 쓰다듬어주었다.
새근새근.
언제나 이불 속에 파고들어 덜덜 떨다 잠이든 레딩이 처음으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었다.
토닥토닥.
몇 번 두드려준 뒤에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견이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기에 은호는 손가락을 입가에 올린 채 조용히 병실 밖을 빠져나갔다.
“…인간.”
밖으로 나와서 꺼낸 흑견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은호는 복도를 걷다 그대로 뒤돌아 흑견을 안았다.
“저 표정을 알고 있어. 그래서였어. 내가 저 친구를 챙긴다고, 멍멍이 형님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알아.”
“벌써 몇 밤째 잠을 안 잤는지 알고 있나?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나도,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은 적이 있었어. 저 친구한테 미안하지만, 꼭 나를 보는 것 같았어.”
“인간과 다르다.”
흑견이 딱 잘라 말하자 은호는 웃음을 작게 터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멍멍이 형님. 전에도 말했는데, 나를 구한 건 멍멍이 형님이야.”
은호는 흑견의 볼 쪽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다고 내가 화를 멈출 것 같나?”
흑견은 화가 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어둠으로 은호를 들어 등 위로 올렸다.
은호의 눈이 커졌다.
“인간은 우리가 아니다.”
“알아.”
은호의 입가에 포근한 미소가 감돌았다. 선을 긋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니까.
“저 존재에게 꺼낸 말처럼 가장 먼저 인간 본인을 챙기거라.”
“그래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보다 저 친구가 더 슬퍼 보였어.”
“슬픔은 상대적이다. 인간이 대신 슬퍼하는 것도 잠깐일 뿐, 견뎌야 하는 건 저 존재다.”
“그렇지. 나도 알아.”
은호는 흑견의 털 같은 어둠에 기대어 실실 웃었다.
멍멍이 형님은 어떻게 저렇게 말도 잘할까.
“멍멍이 형님.”
“이것만 말하고 눈 감거라. 오늘은 나도 화가 났으니까.”
은호는 흑견이 화가 났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화가 났음에도 이렇게 챙겨주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 그놈들 만나면 진짜 눈이 돌아버릴 것 같아.”
“알고 있다.”
“여차하면 날 말려줘.”
“인간은 대체 왜 같은 인간에게 더 냉혹한가?”
“그건 어느 정도 오해야. 내가 태호 형이랑 가을 씨하고 아윤 씨에게 얼마나 무른지 모르지? 살면서 이렇게 무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라니까?”
“마지막은 인간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푸핫.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그래. 나는 사람이 싫으니까.”
“인간은 손이 많이 가고, 참 이상하다.”
“그래도 괜찮아. 너희를 만났잖아? 그건 내 인생을 둘러봐도 최고의 순간… 이야.”
마지막 말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은호에게도 짙어진 숨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쉽게 잠들어버릴 정도였는데.
‘참, 독하다.’
흑견은 걸어가며 생각했다.
―대체 날 언제 봤다고! 고작 이 가벼운 시간에 내가 좋다고? 날 좋아한다고?
레딩이라는 그 존재가 꺼낸 말은 어느 정도 동의했다.
―오래 봤다고, 널 무조건 좋아하게 되는 건 없어. 반대로 짧게 봤다고, 널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웃기게도 은호의 말 역시 동의했다.
‘……어렵다.’
흑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은호가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찰칵.
은호는 레딩을 그 꼴로 만든 하동윤의 뒷모습을 폴라로이드로 찍은 뒤 다시 그림자로 들어와 사진을 흔들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구석으로 내몰게 되면 웃기게도 원인을 제공한 첫 번째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은호는 그럴 셈이었다.
동윤의 피를 말려 스스로 눈이 뒤집혀 레딩을 납치했을 때 도움을 주든 같이 했든, 그놈에게 걸어가게끔 숨통을 쥘 생각이었다.
동윤에게서 레딩을 되찾은 날, 그때부터 흑견의 그림자에 숨어 놈을 미행했다.
우선 첫 번째로 놈이 다니는 직장에 레딩을 가뒀던 흔적이 찍힌 사진을 뿌렸다.
―네가 뭘 했는지 더 보여줘, 하동윤?
이름까지 적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원래 두리뭉실한 게 소문을 더 빨리 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바람만 불어주면 그뿐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버틸 힘이 가장 부족했다.
하나씩, 조금씩, 레딩의 흔적을 드러내자, 동윤은 알아서 회사를 그만뒀다.
환수를 건드린다면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법의 심판을 받을 테니 스스로 꼬리를 만 셈이었다.
은호가 두 번째로 건드린 건 인간관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드린 게 아니라, 반대로 동윤이 함부로 손을 뻗지 못하게 했다.
가을이 동윤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빼돌린 자료에는 레딩을 가지기 위해 시도한 흔적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그 자료를 다 모아서 동윤에게 보냈다.
―네가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딱 하나야, 하동윤.
대부분은 만나서 이루어졌는지, 돈을 인출한 흔적은 있지만,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추적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노골적으로 글을 적었다.
사람의 머리는 참 편리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 그 부정에 빨려 들어가니까.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락할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됐나?”
흑견이 묻자 은호는 흔들던 팔을 내렸다.
“됐네. 잠깐만.”
은호는 사진에 글자를 적어갔다.
직장에서도 짤려, 사람도 못 만나.
그 짧은 순간에 이 모든 게 일어나면 대부분 사람은 어디로 가겠는가.
술집이든, 술을 사러 가든 둘 중 하나였다.
「술은 몸에 안 좋아, 하동윤.」
글자를 깔끔하게 적고 난 뒤, 은호는 그림자에서 나와 뒤통수에 꽂아버렸다.
탁!
본능적으로 움켜쥔 주먹을 가슴 쪽으로 당길 뻔했지만, 바로 흑견이 은호의 발을 당겼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건 누구인가.”
흑견이 빤히 바라보자 은호는 눈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좀 신났어.”
은호는 자신의 손아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가득 올렸다.
“방금 봤지, 멍멍이 형님? 내가 뒤통수를 따악! 딱, 하고 완벽하게 꽂은 거. 내가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
“아아아아악!”
갑자기 동윤이 내지르는 소리에 은호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인내심에 한계가 왔나 보네.”
은호의 미소가 조금은 차갑게 변했다. 위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내려앉았다.
“이 미친 새끼야?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동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갑자기 집에 불이 꺼지고, 네온사인으로 된 표정을 한 가면인지 탈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상한 새끼가 습격을 해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환수마저 사라진 뒤였다.
환수를 사육하는 건 금지라 경찰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되찾고 싶으면 짖어, 하동윤.
사진에 적힌 글자를 봤지만, 환수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귀찮고, 찝찝하기도 해서 버릴 셈이었으니까.
그 뒤로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온했기에 그냥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평소와도 같은 날, 회사로 사진이 뿌려졌다.
―네가 뭘 했는지 더 보여줘, 하동윤?
그 글자와 함께 사진이 찍힌 곳은 어딜 봐도 자신의 집이었다.
나는 이 이상, 뭐든 할 수 있다.
그렇게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지옥이 찾아왔다.
직장 동료가 넌지시 물어보거나, 직접 물어봤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 소문이 퍼졌다.
하루,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너, 설마 환수 건드린 거 아니지?
누군가 장난을 던졌지만, 그 순간 불이 붙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의자도, 컴퓨터도, 책상마저 박살이 난 뒤였다.
회사 내에 초능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
그 간단한 규칙을 어긴 뒤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더욱더 무거워진 시선과 소문을 견딜 수가 없어 회사를 그만뒀다.
“이 새끼야!”
동윤은 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네가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딱 하나야, 하동윤.
또다시 자신이 찍힌 사진이 날아왔고, 그곳에 적힌 사진에 글자를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열심히 유지했던 인간관계가 너무도 쉽게 떨어져 나갔으니까.
―…연락하지 마라. 그간 정을 봐서 신고는 안 하겠는데,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버렸다. 자신이 환수를 감금한 걸 알자 더는 휴대전화를 쥘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엉켜버린 걸 느꼈다.
그 엉킴은 더욱 거세졌다.
“대체 누구냐고!”
동윤은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걸 느꼈다.
그 불길은 더욱더 거세지며 걷잡을 수 없었다.
―술은 몸에 안 좋아, 하동윤.
그따위로 자신을 업신여기는데 이걸 어떻게 견딜까.
“내가 너를 반드시 찾아낼 거다! 내가 반드시 너를…….”
“어디 한 번 해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으아아악!”
동윤은 벌게진 눈으로 앞을 보았다.
이성의 끈이 사라졌다.
자신이 환수를 샀던 걸 아는 사람.
그게 누구겠는가.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아무 탈이… 없을 거라고?’
환수는 손에 넣고 싶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손에 넣었겠는가.
동윤의 눈빛이 빠르게 차가워졌다.
* * *
동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랍을 뒤졌다.
분명히 아직 있을 테지.
여기저기 물건을 꺼내고, 서랍을 들어내고,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죄다 뒤졌다.
‘……찾았다.’
동윤의 미소가 길어졌다.
환수를 팔고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쪽에서 회원권이라는 걸 팔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고 보잘것없는 이 철판 같은 게 자동차 중형 값 정도는 줘야 하는 걸 알면 얼마나 웃길까.
하지만 특별해지고 싶었다.
환수.
생각보다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무엇보다 잘 길러서 새끼도 낳게 해 사육까지 한다면 몇 배나 거저먹을 수 있는 장사였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들이 다 ‘환수는 길들일 수 없다’라고 꺼낸 말을 무시하며 헛돈까지 썼으니까.
동윤은 회원권 뒤에 적힌 코드를 휴대전화와 인식시켰다.
링크가 뜨며 화면에 새로운 창이 열렸다.
‘아직 회원권 기간이 안 끝났네.’
동윤은 웃었다.
이 일이 불법이기에 아무래도 장소가 자꾸 바뀌었다.
그래서 회원권이 필요했다.
회원권이 있다고 아무렇게나 인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 직접 등록한 휴대전화가 필요했다.
여차하면 회원권을 밖으로 떨어트리거나 구부리면 되기에 뒤처리도 깔끔했다.
동윤은 입을 중얼거렸다.
한 번 열람 후, 다음 열람까지 시간제한이 꽤 길었던 걸로 기억했다.
“백아리로 132번길 43, 테리스 빌딩 24층, 귀여운 건 짓밟아야 한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암호 하나는 참 이상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두고 보자, 이 새끼들…….’
갑자기 뒷덜미가 싸늘했다.
설마 하며 뒤를 돌기도 전에 동윤은 알 수 없는 힘에 머리를 박았다.
콰앙!
휴대전화와 회원권을 떨어트렸고, 누군가 주웠다.
바닥에 달라붙다시피 한 동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누구냐고!”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백아리로 132번길 43, 테리스 빌딩 24층, 암호는 귀여운 건 짓밟아야 한다.”
은호는 그곳에 적힌 말을 기억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곳이 열리는 시간은 이틀 뒤였다.
참 더럽게도 은밀히 행동한다 싶었다. 이러니 잡는 게 어렵지.
“동윤아. 하동윤.”
저번에 이 집에서 화분을 키우는 걸 봤다.
그때 살짝 뿌려둔 피를 먹고 자라난 식물이 동윤의 뒷머리를 짓눌렀고, 은호는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이 새끼! 넌 내가 쳐 죽일 거다!”
“내가 너한테 줄 게 있었는데, 그만 잊어버려서 이렇게 찾아왔어.”
은호는 동윤의 말을 흘린 채 폴라로이드를 들었다.
동윤의 뒷모습을 찍은 뒤 사진을 흔들었다.
“동윤아, 넌 내가 진짜 반가웠나 봐?”
은호는 대충 흔들고는 글씨를 적었다.
몸을 하도 흔들며 움직이기에 체중을 실어 놈을 짓밟았다.
“이런 선물도 다 주고. 동윤아, 나 진짜 감동 받았잖아.”
발을 뗀 은호는 식물을 움직여 놈의 목을 칭칭 감았다.
그제야 지껄이던 말이 사라졌다.
은호는 동윤의 머리카락을 쥐어 고개를 들게 해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갈게, 하동윤.」
“보여, 동윤아? 내가 왔어.”
은호는 탈 속에서 미소를 그렸다.
레딩이 이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데?”
“괜찮아. 몰라도 돼. 제발, 반성 같은 건 하지 마.”
동윤이 아무런 의미 없이 했든 개인적 탐욕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래야 앞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테니까.”
은호는 손을 뗐고, 식물이 동윤을 붙잡은 채로 그대로 벽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앙!
벽을 뚫을 정도의 위력이기에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말했다.
“가면서 아래층 분한테 사과해야겠네. 그렇지, 멍멍이 형님?”
“저기도 빈 게 보이지 않은가, 인간.”
흑견은 앞 발가락으로 다른 벽을 가리켰다.
푸핫.
은호는 웃음을 터트리며 비어 있는 반대쪽 벽을 향해 동윤을 박아버렸다.
콰앙!
“아래층 분께 사과뿐만 아니라 맛있는 것도 사드려야겠어. 바퀴벌레를 좀 요란하게 잡았다고 말이야.”
은호는 눈이 뒤집힌 동윤을 보며 싸늘히 목소리를 냈다.
적의 본거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아냈으니 지혜에게 갈 시간이었다.
지금의 환수 관리국은 믿을 만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