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9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97화(9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97화
97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5)
* * *
지혜는 눈가를 좁히며 복도를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능력 관리국에서 놓칠 리가 없는데.’
은호가 넘겨준 환수 밀렵꾼들을 이송하던 중 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유예림이라는 인물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환수 밀렵꾼들을 이송 중이던 곳은 초능력 관리국이었다.
초능력 관리국은 초능력과 관련된 일을 담당했다. 시스템 자체가 환수 관리국보다 더 초능력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습격 정도는 예상했을 텐데.
자신이 초능력 관리국의 부국장으로 있을 때와 비교해도 참 이상한 사건이었다.
나사가 빠졌다고 해야 할까.
‘…뭐, 내가 할 소리는 아니겠지.’
환수 관리국의 국장으로 있으면서 내부에 많은 것들을 놓쳤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어.’
환수 밀렵꾼들을 초능력 관리국에 넘겨주기 전, 정보 하나를 캐놓았다.
다만, 그 정보가 아직도 유효한 건지. 지혜는 그 사실을 몰라 사람들을 움직여야 할지, 아닐지를 깊게 고민했다.
생각을 이어가며 복도를 거닐고 자신의 집무실 앞에 선 그때, 지혜는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안에서 흘러오는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랐다.
누가 있었다.
자신의 방에 함부로 올, 겁이 없는 자들은 적어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혜는 문 너머를 가리켰다.
범위는 집무실 전체.
빠르게 범위를 조정 후, 문을 열었다.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거대한 힘이 일어남과 동시에 집무실 전체를 휘감아버리는 어둠이 솟구쳤다.
그 힘을 보자마자 지혜는 빠르게 초능력을 풀었다.
저렇게 어둠을 꺼낼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자신이 알기로는 흑견뿐이었다.
“……하.”
방에 있던 은호는 맹렬한 힘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은호라는 걸 알아보자마자 지혜가 놀란 눈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괜찮습니까?”
“이미 알고 있지만, 진짜 강하신데요?”
은호는 눈을 크게 뜨며 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떤 말도 없이 은호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한 뒤에 살짝 얼어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당히 위험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거든요.”
“다음부터는 문을 통해 들어와 주시겠습니까? 제가 적이 많아 오늘처럼 크게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게요. 방금 국장님을 놀라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머릿속에 박아뒀어요.”
은호가 웃자 지혜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공격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건 제가 잘못한 건데요. 다음부터는 문을 통해 제대로 올게요.”
은호가 두 손을 흔들자 지혜 역시 가벼운 미소를 내보였다.
“어떤 일이길래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오신 겁니까?”
갑자기 지혜의 가벼운 미소가 되게 무섭게 느껴졌다.
은호는 슬쩍 물었다.
“화… 났어요?”
“제 손으로 서은호 씨를 다치게 했다면, 그것만큼 최악인 건 없지 않을까요?”
지혜의 미소가 더 길어지고, 눈이 전혀 웃지 않았다.
압박이 밀려오자 은호는 바로 손을 뻗었다.
“자, 잡아 왔어요.”
은호의 손끝에 웬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하동윤이에요.”
동윤을 유심히 보던 지혜는 어깨 너머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채 다가갔다.
“환수 밀렵꾼입니까?”
그녀의 발은 자연스럽게 동윤의 얼굴을 짓밟고 있었다.
“서은호 씨가 꽤 열받은 모양입니다. 얼굴이 이렇게나 붓다뇨.”
“환수 친구를 감금…….”
콰악!
지혜는 동윤의 얼굴을 뭉개 버릴 기세로 주저 없이 발에 힘을 줬다.
“일단, 일반인이에요.”
“어차피 범죄자입니다.”
지혜는 서늘한 시선으로 동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 주변에 공기가 달라지던 그때, 동윤의 몸이 짓눌렀다.
콱.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가 꾸역꾸역 자라나도록 돈을 퍼붓는 쓰레기들이죠.”
콰악!
몸이 뭉개지자, 수면 스프레이로 재워버린 동윤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쯤은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혜는 은호를 보며 차분히 알렸다.
든든했다.
이렇게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니 은호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백아리로 132번길 43, 테리스 빌딩 24층, 암호는 귀여운 건 짓밟아야 한다.”
은호가 입을 열자 지혜는 발을 떼고는 당장 그에게 다가갔다.
“거기 맞습니까?”
확신을 담은 그 말에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알아내셨네요?”
“은호 씨가 넘겨줬는데, 당연히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예림이라는 사람만 살았다고 들었는데요?”
“수송 중에 사고가 제일 자주 일어납니다. 환수 관리국이든 초능력 관리국이든 바로 치고받을 용기가 없으니까요.”
지혜는 그들을 비웃으며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함을 드러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제가 있어서입니다.”
그 말에 은호는 이지혜가 어떤 사람인지 더더욱 알 수 있었다.
이건 자만이 아니었다.
권석현을 보아도 충분했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가 초능력 관리국에서 문제가 터진 걸 보면 충분할 정도로 이해가 갔다.
압도적인 힘. 그게 그녀에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회원권도 손에 넣었죠.”
은호는 회원권을 지혜에게 잠깐 보여줬다.
“환수 연구소와 연계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네요.”
환수 연구소에는 가을이 있었다.
그녀라면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었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은호는 싱긋 웃었다.
* * *
“……!”
은호를 보자마자 레딩이 멈췄다.
덩달아 은호 역시 행동을 멈췄다.
“…밖으로 나갈까?”
은호의 손아귀에는 초록색 빛이 감돌았다.
“너한테서 그… 냄새가 나.”
“내가 안 씻고 오긴 했는데, 불쾌하면 당장 씻고 올게.”
지혜에게 들린 뒤 바로 레딩을 상태로 보러온 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씻고 오는 거였는데.
“만났… 어?”
레딩은 주저하며 물었다.
상태가 전보다 안정화가 됐다고 해도 아직은 위험했다.
태호가 말하길 언제 다시 또 악화할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폭시가 레딩을 전담하다시피 해 계속 감정을 억누르는 중임에도 그랬다.
“만났어.”
하지만 은호는 레딩을 속이지 않았다.
“…나, 나를 데려가겠다고 그랬어?”
이불에서 겨우 나온 레딩은 다시금 뒷발부터 이불을 집어넣었다.
“아니. 그건 나도 허락할 수 없어.”
“그럼, 그럼 왜 만난 건데? 만날 이유가 전혀 없잖아!”
레딩이 날을 세우자 은호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쥐어패려고.”
“……?”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가 흘러나온 건지, 레딩은 눈을 크게 떴다.
“뭐… 라고?”
“너 대신, 쥐어패려고 만났어. 널 이렇게 만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때렸어…? 정말, 때렸어?”
레딩은 그대로 멈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때리기만 한 게 아니야. 너의 소중한 걸 다 뺏어갔잖아?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걸 뺏어버렸어. 앞으로도 더 많이 뺏어버릴 거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레딩은 입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친구야, 이건 꼭 기억해. 너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가 한 일이야. 친구는 어떤 죄책감 같은 것도 가질 필요가…….”
“못 와?”
레딩이 다급히 물었다.
그 간절한 눈망울에 은호는 레딩에게 다가가 쓰다듬었다.
‘이게… 원인이었구나.’
레딩이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유였다.
그만큼 레딩에게 동윤이라는 존재는 거대한 두려움 그 자체였다.
왜 이걸 몰랐으니까.
너무도 미안했다.
“절대로 못 와.”
은호는 그 어떤 말보다 힘을 주었다.
“날 찾을 수 없어?”
“나쁜 인간을 가두는 곳을 감옥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나오지 못해.”
“…정말?”
“정말이야.”
“……나, 이제 자유야?”
레딩은 그제야 저 말을 토해냈다.
“너는 이미 자유였어.”
비로소 레딩은 은호가 꺼낸 말을 가슴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단어였으니까.
“목줄… 안 해도 돼? 안 맞아도 돼?”
무언가를 갈망하듯 레딩은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자꾸 물었다.
“밥도 마음대로 먹어도 돼? 이제, 나… 어두운 곳에 안 갇혀? 발톱도… 더는 안 뽑혀?”
그 물음 하나하나가 아팠다.
울음을 꾹 참는 레딩의 저 표정이 너무나도 아팠다.
모든 게 동윤이 하는 대로 흘러갔던 순간이 고통과 뒤섞기 때문에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걸 왜 모를까.
“친구야. 널 가두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어. 내가 다 치워버렸으니까.”
“그럼, 나… 밖에 나가도 돼.”
그럼에도 레딩은 완전히 끝났다는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주저하지 않았다.
얼마나 강인한가.
“그럼.”
은호는 레딩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이 문은 널 위해 열려 있어.”
열린 문 사이로 살며시 빛이 내려왔다.
레딩은 그 빛을 보며 앞발을 내밀었다.
이내 레딩의 시선은 자신의 몸으로 향했다.
몸을 묶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묶여 있지 않고, 그 인간도… 없어.’
그 사실 하나에 무겁던 몸이 가벼워졌다.
코를 벌름거렸다.
비로소 저 인간한테 나는 따스한 냄새와 다른 존재가 뒤섞인 평온한 냄새만 주변에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이상하게도 다르게 들렸다.
마치 바람 소리 같았다.
레딩은 다시 앞발을 뻗었다. 이내 휘청거렸다.
어떻게 걷는 거더라.
이상하게 걷는 게 너무도 어색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넘어지면 잡아줄게.”
은호가 꺼낸 말에 레딩은 용기가 났다.
앞발을 내밀었다.
다시 뒷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온 힘을 다해 부딪쳐도 그 인간이 닫아버린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온 힘을 다해 부딪치지 않아도 열려 있었다.
레딩은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앞발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이어 다시 때리려고 하자 붙잡혔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려던 차, 따끔한 말이 뒤따랐다.
“그건 안 돼, 친구야.”
“…….”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
“그럴 때마다 내 손을 잡아.”
은호는 손을 뻗었다.
레딩은 짧은 앞발을 내밀었다.
빛이 어린 은호의 손을 쥔 순간, 레딩은 그리움이 밀어닥쳤다.
바람 냄새가 났다.
그리고 온종일 붙잡고 싶을 만큼 따뜻했다.
“…이게 꿈이라면, 나는 더는 못 버텨.”
레딩은 그 손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아. 내가 몇 번이든 말해줄게. 이건 꿈이 아니라고.”
레딩은 고개를 올려 은호를 보았다.
‘……예쁘다.’
만약에 꿈이라도 이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기억하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레딩은 이어진 손길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시 앞을 보았다.
문은 너무도 높고, 거대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밖을 향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닿았다.
자신의 마지막 기도는 은호에게 닿았다.
‘그러니까, 나도 할 수 있어.’
레딩은 몸에 달라붙으려는 모든 나쁜 생각과 감정을 떨쳐내듯 힘차게 문을 넘어섰다.
숨을 들이마시고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잘했어! 정말 대단해!”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활짝 핀 은호의 미소가 보였다.
레딩은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
“나, 문을 넘어섰어.”
“맞아.”
“문밖으로 나왔어!”
“나온 거야!”
“나…….”
레딩은 솟아오르는 감정을 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볼래!”
그게 자신이 버텼던 마지막 바람이었다.
은호는 레딩을 안았다.
오래 묶여 있었기에 걷는 게 힘들 정도로 근육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 하늘을 보자.”
은호는 신이 난 걸음으로 복도를 달렸다.
두근두근.
레딩은 은호의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지금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든 걸 통해 보일 정도였다.
레딩은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은호의 발소리 속에 키득거리는 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웃음이 이어지던 그때,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레딩의 눈이 커졌다.
눈망울에 빛이 어린 듯 반짝거렸다.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하늘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던 그때, 은호는 레딩을 양팔로 든 채 본인의 머리맡에 올렸다.
“……?”
레딩은 고개가 기울었다.
은호는 그대로 달렸다.
바람이 얼굴이 밀어닥치자 레딩은 놀란 눈이 되었다.
자신이 날고 있었던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느렸지만, 눈을 감으면 진짜 나는 것 같았다.
레딩은 느꼈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은호.”
“…어?”
은호는 숨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다시 날 수 있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너라면 다시 날 수 있어. 반드시!”
“은호.”
“그래.”
“그때, 내 목소리를 들어줘서, 고마워.”
레딩은 두 팔을 벌려 은호의 머리를 감쌌다.
“……날 구해준 게 너라서 너무 다행이야.”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 인사에 은호는 코끝이 아려왔다.
레딩은 바람을 맞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하늘을 시야 안에 가득 담으며 더는 끝이 아닌, 미래를 그렸다.
저 넓은 하늘에 다시 날아다닐 자신을 생각하며 아주 수줍게,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