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he Reformed Emperor Prevented Destruction RAW novel - Chapter 109
29. 첫 번째 멸망
자동으로 베르무디의 중앙첨탑에 추가된 성역.
그 빛기둥 정중앙에 뜬 문양을 보며 다들 궁금했다. 그리고 그건 알렉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양의 정체에 관한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빛기둥의 파장이 몰려오자 일시적으로 신성력이 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기사처럼 신성력을 정제해 압축하는 과정 없이도,
신성마법을 통해 강화하지 않아도,
문양의 힘을 통해 자연스레 힘이 강화된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
한껏 들뜬 사제 한 명이 강화된 신성력을 사용하다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건 알렉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심해야겠네.”
알렉시안 역시 다른 사제들처럼 신성력을 발현하여 실험해보았다.
그 결과 빠르게 신성력이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문양의 힘을 이용하면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뿐이지 같은 양의 힘으로 강화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녀오셔도 되옵니다.”
손을 힐끔거리는 알렉시안을 보면서 웃으며 말하는 마르코.
“나중에 해도 되네.”
헛기침을 하면서 고생한 세 사람과 토벌군을 반겨준 알렉시안이 항구에 마련된 축하 자리에서 간단하게 연회를 열었다.
굳이 자리를 나누지 않고 병사들과 기사들이 뒤엉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자리.
그 연회장의 중앙에서 오랜만에 술을 마신 알렉시안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물었다.
“해룡의 사체는?”
“추가로 군함들이 투입되어 끌고 오고 있습니다.”
마르코의 말에 알렉시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늦어진 점이 바로 해룡의 사체 때문입니다.”
근위대장의 말에 알렉시안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에게 프랑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말세력이 나타났었습니다. 마족으로 추정되는 이들도 같이 나타나더군요.”
“···마족도 말인가?”
알렉시안의 물음에 세명의 마스터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입장에서 북부의 사룡에 더해 해룡까지 빼앗기는 것은 타격이 컸던 것.
“바로 가지고 오고 싶었으나 죽고 난 이후 터져 나오는 힘 때문에 시일이 걸린 것도 있습니다.”
북부의 사룡이 그러했듯 해룡 역시 대륙 전역에 그가 오래동안 봉인하고 있던 힘을 풀어내면서 시간이 끌렸고, 그 사이 종말세력과 마족들이 힘 빠진 마스터들을 노린 것이다.
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근위대장 역시 추후 진행될 멸망에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하진 않았나?”
“가지고 놀더군요.”
“후···고생은 우리가 하고 성장은 근위대장만 하다니···.”
두 마스터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레슬러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쑥쓰러운듯 헛기침을 하는 레슬러.
“한단계 성장한 건가?”
알렉시안이 놀란 표정으로 레슬러를 바라보자 그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성장이라고 할 만큼 강해지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 바뀐 것뿐이지요.”
“바뀌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레슬러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음···알아듣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제 심상의 형상이 좀 바뀌었달까요?”
그 말에 알렉시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형상을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는 거였나?”
분명 알렉시안이 알기로는 마스터라는 경지의 상징이자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스터에 오른 자들은 다른 것일까?
“그럴 리가요.”
“그게 쉽게 되었으면···상징이라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두 마스터의 말에 알렉시안이 레슬러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위험합니다. 평생을 쌓아 올린 것이 마스터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하는데 아무런 위험이 없을 리 없지요.”
프랑코의 말에 알렉시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현재 레슬러 경의 형상은 불안정합니다. 이게 지속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마르코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레슬러를 보았다.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패턴을 부수고 다시금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마르코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순 없나?”
“이미···늦었습니다.”
레슬러의 말에 알렉시안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어찌하여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알렉시안의 물음에 레슬러가 쓴웃음을 지었다.
“케일 녀석이 그러더군요. 사룡을 쓰러뜨리면서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그 말에 다들 침묵했다.
“만약 피오라 경이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그래서 온전한 사룡의 힘을 발휘했다면 그때도 자신이 이렇게 이길 수 있었을지 확신을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엄살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해룡을 상대하면서 느꼈다.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니라 검성이 있더라도 혼자선 확실한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기에···
“녀석은 기존의 검보다 더 강력한 검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설마 검성도 심상을 깬 것이오?”
프랑코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레슬러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이 없었잖습니까? 북부에서 여전히 활약을···.”
“그 녀석은 심상 따위 없어도 강합니다.”
그 말에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그 녀석의 심상인 검을 다시 다져나가는 것이기에 저처럼 티가 나지도 않죠.”
레슬러의 말에 알렉시안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무엇을 그리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로이 만들어질 제 심상은···신수나 신의 형상을 띄진 않을 것이라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신벌이라는 이름답게 검성에 이어 대륙의 2인자로 만들어준 기술.
그러나 해룡 역시 과거 신처럼 추앙받던 용이었다. 그가 죽기 전 레슬러에게 선물이라며 잠깐이나마 보여준 기억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해룡을 신처럼 떠받들던 모습이 있었으니까.
동시에 그에게만 속삭여주었다.
‘나보다 강한 자들이 올 것이다. 과거 이 세계에서 신처럼 떠받들던 패배자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알렉시안이 그토록 종말세력을 경계했었는지를···.
지금까지 보인 그의 행보를 보면 어쩌면 이미 종말세력이란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옆에서 보아왔던 알렉시안의 모습을 보면 제국을 발전시키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대비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아무리 둔한 레슬러라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 알렉시안의 옆을 지키기 위해선 현상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각오를 다져야 했다.
“그동안 폐하의 옆을 지키면서 느낀 건 무언가를 대비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슬러의 말에 두 마스터가 진중한 표정으로 알렉시안을 바라보았다.
“제국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었지요. 조금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 항상 더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 말에 알렉시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폐하께서 신의 사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예견하셨을 것이라는 점은 신도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신의 힘만을 생각하며 몬스터와 언데드들을 막아내는 것이 신의 축복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가장 옆에서 지켜본 레슬러는 안다.
저 힘이 있었다 한들 알렉시안이 없었다면 현재의 제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그렇기에 다짐한 것이다.
“폐하께서 밤낮으로 고생하시면서 이날을 대비하시는데 소신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에 알렉시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소신은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 제시간에 주무신 것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노력이, 그 고뇌가 전부 이때를 위함이 아니십니까?”
그의 물음에 알렉시안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곧 긍정을 나타내는 것임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황궁에 있으셔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는 상황에서도 북서부로 떠나셨지요. 위험을 감수하고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압니다. 그러니 소신 역시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렉시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신 역시 위험을 감수하고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신마저 베어버릴 수 있는 칼을 벼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도 폐하를 위협할 수 없는 검이 되겠나이다.”
레슬러의 다짐에 두 마스터가 고개를 숙였다.
더 강해지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언젠가는 검성과 근위대장을 따라잡겠다 했으면서,
현실은 심상을 무너뜨리는 것조차 무서워하며 현실에 안주했다.
반성은 마스터들만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듣고 있던 마탑주, 피오라 그리고 다른 고위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리하진 말게. 그대가 굳건한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예.”
알렉시안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하는 레슬러.
훗날 레슬러의 다짐이라 불리는 이 각오가 연회장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들어갔다.
분명 조금 전까진 먹고 떠들던 이들이 지금은 오직 알렉시안과 레슬러만을 바라본다.
그들도 들은 것이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황제가 매일 어떠한 희생을 하고 있었는지를.
그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대륙의 정점을 노리는 검이 어떠한 각오를 했는지를.
그렇기에 모든 이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들과 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제국의 정점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미 제국 최고의 부자이자 최고의 신분을 가진 황제에게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하는 것뿐이다.
자신들을 위해 남부까지 내려와 목숨 걸고 싸운 위대한 황제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병사들부터 기사, 심지어 마스터들까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분간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들을 보며 본래라면 손사래를 치며 그만하라 했을 알렉시안도 조용히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모두 고생했다. 그러니 오늘은 즐기자. 그리고 이날을 기억하며 앞으로 다가올 고난도 이겨내자! 그것이면 짐은 충분하다.”
웃으며 말하는 알렉시안을 보며 병사들이 만세를 외친다.
승전을 축하하며 잔을 들어올린다.
한 기사는 더 강해지겠다 다짐하며 정화된 몬스터를 구운 꼬치를 힘껏 물어뜯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이들도 질 수 없다는 듯 다짐을 한다.
그런 그들을 빤히 바라보던 셀리나가 알렉시안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마도왕. 이겨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곁에 있던 마스터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성도 이길거에요.”
그녀의 다짐에 레슬러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부터 이겨야 할 거요.”
“그건 지금도 가능할걸요?”
셀리나의 말에 레슬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 나중에 한번 붙어봅시다! 참고로 마법사라고 안 봐줄 것이오?”
“그건 나중에 수도가서 하게.”
그렇게 말한 알렉시안이 시원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 모습에 마르코를 비롯한 기사들 역시 하나 둘 술잔을 비우면서 연회를 즐겼다.
어느새 달이 차오르고 하나 둘 곯아떨어진 상황.
“그동안 피곤하셨나봅니다.”
한쪽에서 곯아떨어진 채 자고 있는 알렉시안을 보면서 묻는 레슬러.
“···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차기 시종장으로 낙점받은 에르헨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하이델 시종장이 매번 알렉시안을 걱정하면서 늙은 몸으로 뛰어다니는지를 남부에 온 이후 제대로 느꼈다. 굳건해 보이는 황제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그렇기에 뒤에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한다.
레슬러 역시 그러한 마음이었기에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일 터.
“앞으로 잘해봅시다.”
자신에게 악수를 건네는 레슬러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 에르헨.
“하이델 시종장께서 당신을 후임으로 생각한 이유. 이제는 알겠소.”
그렇게 말하며 술에 취해 잠든 알렉시안을 바라보는 레슬러.
연회가 열리는 동안, 그리고 그 전에도 세심하게 알렉시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 전에 서부에서 남부로 내려오는 동안 본 모습들까지.
그렇기에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이델이 은퇴한다 하더라도 에르헨이라면 알렉시안을 제대로 보좌할 수 있을 것임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레슬러의 악수를 받은 에르헨.
둘이 짧은 악수를 끝내고 코까지 골며 자는 알렉시안을 데리고 들어갔다. 토벌군이 돌아오며 열린 짧은 연회와 함께 남부의 승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마침내 길고 길었던 여정을 끝내고 중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전에 전날 확인하지 못한 실험을 끝내기 위해 도시 밖으로 갔다 온 알렉시안.
“성역 안에서만 강화되는 건가?”
제국에 생긴 성역 세곳.
그곳에서만 문양으로 인한 효과를 받을 수 있음을 최종 확인한 알렉시안.
그렇게 성역에 대한 확인을 끝으로 남부에서 할 일을 모두 끝낸 알렉시안이 마침내 중앙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