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he Reformed Emperor Prevented Destruction RAW novel - Chapter 131
33. 음울한 제국
알렉시안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빛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제국의 성역의 규모조차 이에 비할 바 되지 못한다. 사방을 잠식해가던 어둠이 물러나고 일시적으로 환한 빛이 모든 곳을 뒤덮었다.
고작 몇 초.
마도사의 벽조차 뚫지 못한 알렉시안에게 신은 고작 몇 초 동안만 그의 힘을 허락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주변의 어둠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봉인된 여섯 번째 멸망의 씨앗이 떨어지는 그 잠깐의 순간을 노리고 힘을 퍼뜨린 것에 불과했기에 공간이 닫히는 순간 어둠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
깨진 공간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알렉시안을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
그 눈동자는 마치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다는 듯 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알렉시안 쪽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재운 대가로 멸망의 힘에 손실을 안겨다 줬다면 충분히 남겨 먹는 것이니까.
이대로 만족하고 자신을 무의식 속으로 끌어내리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발휘한 탓에 온몸이 삐걱거린다.
고개를 돌릴 힘도 없기에 간신히 입술만을 열어 말했다.
“바로 퇴각해.”
대놓고 버티겠다는 듯 모든 힘으로 결계를 만든 상대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여기에 힘을 뺄 바에야 저들로 인해 생긴 몬스터와 폭주한 정령들을 막아내는 것이 더 나았으니까.
이 말을 끝으로 수마가 몰려왔으나 억지로 입을 열어 마지막 당부를 했다.
“버···텨···”
어떠한 절망이 와도, 끝내 버텨만 낸다면 알렉시안이 깨어나 멸망을 공략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폐하!”
에르헨이 다급히 달려와 부축했으나 이미 알렉시안의 의식은 사라진 뒤였다.
비록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보다 작은 소리였지만 근방에 있는 모두가 들었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분노해 적을 공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힘든 와중에도 당부를 하고 기절한 알렉시안.
“검성! 폐하의 명을···.”
모두가 퇴각을 준비할 때 홀로 결계 밖으로 나간 검성의 팔을 붙잡는 피오라.
“확인만 해보려는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올린 검성.
현시점에서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공간을 일렁이면서 날아든 참격이었으나 멸망들이 온 힘을 다해 만든 결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후···폐하께선 알고 계셨던 것인가?”
현재 자신들의 힘으로는 저 결계를 뚫지 못하리라는 것을.
멸망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결계다.
저것을 뚫으려면 최소 개발 중인 3세대 마도무기의 결전병기 혹은 자신의 이 불안전한 경지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다.
‘분명 억지로 나온 것은 확실하다.’
분명히 보았다.
다음 멸망들이 억지로 공간을 비집고 나오려 할 때마다 범접하기 어려웠던 격이 내려가는 것을.
저들이 이렇게까지 해서 나온 이유는 굳이 불확실성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이곳에 넘어온 것만으로도 게이트는 늘어나고 잠들어있던 정령들이 폭주해 인류를 상대로 싸워줄 것이다.
그 사이 자신들은 힘을 회복해 만전의 상태로 싸우면 되었다.
인류는 늘어난 몬스터와 폭주한 정령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멸망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갑시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는 검성.
자신 때문에 잠시 지체되었던 것을 사죄라도 하듯 한 번의 휘두름으로 몰려들던 한쪽 면의 몬스터들을 정리해버렸다.
멸망을 공략하던 기사들과 마스터들이 힘을 쓰자 퇴각로는 쉽게 만들어졌다.
두 번째 멸망을 소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아마 힘을 회복한다 한들 이전과 같은 모습은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멸망들 역시 큰 타격을 입고 스스로를 봉인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이건 ‘제국의 승리’였다.
그러나 누구도 웃지 못했다.
자신들을 이끌었던 황제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국군을 보호하기 위해 과하게 힘을 사용해 쓰러졌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멸망을 잡았다면!’
많은 후회들이 있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황제를 수도로 데려가는 것뿐이다.
그곳에 있을 수많은 치료사들과 전문가들에게 알렉시안 황제를 맡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제국군이 이를 악물고 몰려오는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길을 텄다.
“먼저 가시오.”
검성의 말에 피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하께서 목숨 걸고 지키신 병력이오.”
그렇게 말하며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곁에는 근위대장을 포함한 제국의 마스터 전원이 있었다.
“탑주는 가시오. 가서 하루라도 빨리 ‘그것’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이오.”
근위대장의 말에 마탑주가 입술을 깨물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렉시안이 탄 비공정에 올랐다.
피오라가 마지막으로 비공정에 오른 후 서서히 하늘로 상승하는 비공정 부대.
“지친 분은 먼저 가시오. 난 아직 몸도 풀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면서 오러를 끌어올리는 근위대장.
그런 그의 도발에 마스터들이 피식 웃으며 하나둘 오러를 끌어올렸다.
굳건히 버티고 선 그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재빠르게 퇴각 준비를 하는 병력들.
알렉시안이 살리고자 한 소중한 병력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던 마스터들이 퇴각한 건 모든 병력들이 퇴각하고 나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모든 제국군이 ‘멸망의 대지’라 명명된 북서부 지역을 떠났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충격! 제국의 황제가 쓰러지다!」
알렉시안이 비공정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대륙 각 지역에서 이 소식이 전해졌다.
제국에서 멸망에 관해 가장 전문가라 불리는 인물.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보유한 인물.
제국만이 아니라 대륙의 관점에서 보아도 중요한 인물인 그가 쓰러졌다.
죽지는 않아 다행이라지만 의식불명이라니 상황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끝나는 건가?”
제국을 통해 멸망이 어떠한 존재인지 전부 보았다.
그런 존재를 과연 황제의 지휘 없이 이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일전에 경고했던 것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는 중인 자신들이 과연 버텨 낼 수 있을까?
“멍하니 서 있지 마!”
한 노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은퇴한 노장이 현장에 복귀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
마찬가지로 여생을 정리할 노인들이 무기를 들고 전장에 선다. 그나마 제국이 기술을 뿌려주면서 양산할 수 있게 된 마탄을 쏠 수 있는 라이플 덕분에 근접에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후···부디 다시 깨어나시기를···.”
대륙의 희망인 황제가 깨어나기를 바라며 소총을 들고 몰려오는 몬스터와 맞서 싸우는 노인.
어느새 알렉시안 황제는 제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걱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대륙의 어떤 국가도 제국민보다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제국의 주 전력을 전부 배치해 가장 안전한 길로 돌아온 황제.
“아···.”
한 여인이 털썩 주저앉는다.
잠시 기절한 것뿐이라고, 돌아올 때쯤엔 깨어나서 자신들에게 손을 흔들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그 믿음이 깨졌다.
알렉시안 황제는 정말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신성마법과 마법결계를 겹겹이 두른 관에 누운 알렉시안.
힐링마법도, 신성마법의 축복도 효과가 없었다.
절망 어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제국민들 사이를 지나 황궁으로 돌아온 알렉시안.
“폐하!”
재상을 필두로 모든 대신들이 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현재 황궁에 있는 고위관료들은 대부분 알렉시안이 새로이 뽑은 이들이다. 기존에 있던 이들 중 능력 있는 자들은 자문을 위한 기관이나 후학을 양성하는 쪽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대신들 역시 모두 알렉시안이 새로 뽑은 이들.
그렇기에 알렉시안에 기대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재상이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지만 알렉시안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은 예외였다.
“모두 대전으로 모여주십시오.”
에르헨의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시종장처럼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서는 법이 없는 에르헨이 이렇게 말한 것엔 전할 말이 있다는 것.
대전에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이자 가장 중앙에 선 재상에게 에르헨이 다가가 품속에 품고 있던 것을 건넸다.
“폐하께서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에르헨이 보랏빛 봉투를 건네자 제이론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조심스레 꺼냈다.
가장 첫 줄에는 자신을 대신할 인물을 선정해두었다.
「짐이 죽는다면 다음 대 황제는 아드리안이다. 짐이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드리안에게 대행을 맡기겠다.」
가장 중요한 다음 대 황제.
알렉시안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음 대 황제에 대한 문제는 잔존하고 있었다. 은근슬쩍 선황비를 통해 원로들이 찔러보려 할 때면 문제가 터졌기에 여유가 없었다.
“···아드리안 공인가?”
개과천선을 한 엘로니안이 될 법도 했지만, 다음 대 황제는 아드리안이라고 딱 못 박아 두었다.
그러나 엘로니안의 표정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섭섭할지도 모를 그를 위로하듯 알렉시안은 그에게도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짐을 대신해 성역의 관리를 맡긴다.」
알렉시안이 직접 관리했던 성역.
석상이 완전히 하얗게 변하면 작은 빛기둥이 생겨난다.
그 성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핵심 요새를 건설 중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엘로니안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제국 생존의 핵심 프로젝트를 맡게 된 엘로니안이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밖에 대신들을 중심으로 핵심 사안들을 맡긴다는 말로 끝났다.
「음지의 세력을 모으느라 고생했을 재상. 그대에게 암시장에 대한 전권을 맡긴다. 그리고··· 고생했다.」
마지막 한 줄은 고생한 재상을 격려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알렉시안의 서신.
서신을 전부 읽은 제이론이 울먹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한동안 감정을 다스렸다.
“후···일단 아드리안 공에게 빨리 복귀를 부탁드리시오.”
대수림과 제국 사이에 있는 자치령에 총독 겸 동부 사령관에 오른 아드리안.
그러나 이제는 황궁으로 복귀해야 했다.
“엘로니안 공도 부탁드리오.”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엘로니안이 조용히 일어나 성역으로 가기 위해 대전을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젊은 대신들과 관료들뿐.
‘내가 해야 한다.’
대신들조차 아직은 젊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 혼란을 수습해야 했다.
“변한 건 없소. 폐하께선 맡기신 일을 하면 되는 것이오.”
그 말에 대신들의 흔들렸던 눈동자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관료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으나 대신들만 정신 차리면 어느 정도 굴러갈 것이다.
그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 재상이 모두에게 말했다.
“폐하께선 일어나실 것이오. 그러니 그때까지 최대한 이 제국을 멀쩡한 모습으로 버텨봅시다.”
재상의 말에 대신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시안이 깨어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 대신들이 금방이라도 알렉시안이 털고 일어나 일을 개판으로 한 자신들을 혼내줄 것처럼 빠르게 대전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재상이 조용히 황좌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저곳에 앉아 자신들을 꾸짖던 알렉시안이 보이는 듯했다.
“금방 돌아오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비어있는 황좌에 작게 고개를 숙인 제이론이 밀려있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재상 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