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he Reformed Emperor Prevented Destruction RAW novel - Chapter 135
33. 음울한 제국
등 뒤에 있는 후광과 함께 빛이 연구실 전체를 감싸며 폭주한 정령을 비롯한 오염된 정령 전체를 휘감았다.
‘이젠 확실히 알겠네.’
성자라는 힘의 특성.
그건 바로 ‘오염된 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그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정화하는 것이었다.
흔히 성자라 하면 아픈 자들을 치유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의 성자는 오염된 존재들과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위로라···.”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오염된 존재의 괴성.
그러나 현재의 알렉시안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
-억울해. 도와줘.-
-차라리 소멸시켜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폭주한 정령들은 알렉시안의 빛을 받는 것만으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지만, 오염된 정령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죽여달라고,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 달라, 말하고 있었다.
“난 위로 같은 걸 잘 할 줄 모른다.”
알렉시안의 말에 괴성을 지르던 오염된 정령들이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알렉시안은 인가의 말로 말했지만, 오염된 자신에게 그 의미가 똑똑히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약을 하자.”
-계···약?-
“그래. 이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잖아.”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오염된 정령들이 그의 주변으로 다가온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그들 역시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정화하면 너희는 소멸이야.”
그 말에 오염된 정령들이 가만히 알렉시안을 바라보았다.
“일부만 정화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광휘의 검을 들어 올렸다.
“일부만 정화하더라도 너희는 불안정하겠지.”
당장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형체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렇기에 계약이 필요했다.
형체가 사라지기에 사물에 깃들게 한다.
계약을 통해 계약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힘을 제공받는다.
추가로···
“마광석을 통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화된다.”
-···그럼 살 수 있어?-
오염된 정령의 물음에 알렉시안이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그건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오염된 정령.
다른 정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오염된 정령들이 동의한 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적대심이 남아있는 이들은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연으로라도 돌려보내 주마.”
알렉시안의 말에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오염된 정령의 눈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고마워.-
그 말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은 알렉시안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알렉시안의 신성력이 발현되자 무너졌던 형체 속에서 짧게나마 정령 본래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적개심을 갖고 있던 오염된 정령이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알렉시안에게 선물하듯 말했다.
-우린 그저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뿐이야.-
“···사룡과 같은 이유인가?”
그 말에 뭔가 말하려 했지만 포기하고 쓴웃음을 짓는 오염된 정령.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맙다.”
알렉시안의 말에 방긋 웃으며 천천히 가루가 되어 자연으로 녹아드는 오염된 정령.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알렉시안.
바로 그때 허공에 글자가 생성되었다.
[특별퀘스트: 멸망 속에 감춰진 잊혀진 진실을 찾으세요]특별퀘스트가 떠오르자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알렉시안.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퀘스트가 떠올랐다.
[각성자 퀘스트: 순례길] [※ 오염된 정령들을 구원해주세요.] [구원한 숫자에 따라 보상이 결정됩니다.] [현재 – 최하]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퀘스트 창들.
거기에 더 해···
[멸망이 당신의 행동에 반응합니다.] [메인퀘스트: 오염된 차원의 나무가 세계를 침식하는 걸 저지하세요.]자신들의 종을 빼 나가는 것을 느낀 것일까?
예민하게 반응하는 멸망.
그러나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긴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정리한 알렉시안이 남은 오염된 정령들과의 가계약 체결을 시작했다.
진짜 계약이 아니다. 거기다 정령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정령 쪽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
이는 가뜩이나 상처받는 정령들이 몇몇 나쁜 인간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게끔 하려는 배려였다.
그걸 오염된 정령들도 아는지 순순히 알렉시안의 말을 들었다.
“검이든 뭐든 아무거나 가져와.”
알렉시안의 명령에 황급히 뛰어나가는 마법사.
첫 시도라 그런지 제법 좋은 마도무기를 가져왔지만 정령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이제는 싸우는 게 질렸는지 무기를 싫어하는 정령도 있었다. 결국 폐쇄된 연구실을 나서서 오염된 정령들과 함께 지하시설을 돌아보았다.
-저거! 저거!-
거대한 크기의 골렘을 원하는 정령도 있었고, 여러 개의 1, 2단계 골렘들을 조종하는 3단계 골렘을 원하는 정령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은 오염된 정령들을 단순히 무기나 인간을 대신하여 싸우는 골렘에만 깃들게 하는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렇게? 이것도 가능한데!-
생각보다 더 유능했다.
기본적으로 정령들의 생각은 어린아이와 같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마저 그렇진 않았다.
오랜세월 살아왔기에 웬만하면 다 알아들었고, 골렘에 깃들어 가계약을 맺는 순간 마법사들이 원하는 걸 빠르게 충족시켜주었다.
현시점의 3단계 골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도 자연스레 해준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정령 마법까지 가능하다고?”
“허!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고? 이건 다음 골렘 연구에 도움이!”
마법사들이 침을 흘리면서 열심히 골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거기에 정령사들 역시 충격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정령들의 선택을 받았기에 순수하지 않은 정령들을 혐오하는 정령사들이다.
그런 그들 입장에서 아직 완벽하게 정화되지 않은 정령들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
거기에 현시점에서 정령사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정령마법들을 바로 앞에서 차근차근 보여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진정하도록.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오염된 정령들과 가계약을 맺을 방법이 우선이다.”
알렉시안이 눈 돌아간 이들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차근차근 정리했다.
게임에서는 마광석도 신성력도 없었기에 정화마법으로 천천히 정화하면서 가계약 각을 잡아야 했다.
나중엔 기계장치를 만들어서 대량의 정령들을 와인을 숙성시키듯 조금씩 정화해서 가계약을 맺고 주기적으로 관리했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폭주한 정령이야 신성력의 힘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지만 오염된 정령같은 경우 게임처럼 똑같이 시간을 들여야 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자인 알렉시안을 통해 빠르게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답안지가 있다면 연구결과는 더 빠르게 나올 수 있다.
기술자 입장에서 일단 카피해서 결과물을 내기는 쉬웠기 때문이다.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한 연구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일단 시작은 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어째서 중요한지는 이미 알렉시안이 열차를 통해 보여주었기에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
“폐하. 오늘은 이만하시지요. 아직 몸이 전부 회복되지 않았사옵니다.”
시종장의 말에 알렉시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사안은 내일 다시 논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지하시설을 빠져나온 알렉시안.
시종장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그 즉시 회복을 위한 약탕에 들어가 노곤해진 몸을 풀고 숙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지하시설에 방문해 수도원과 정령사, 마법사, 개발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회의에 들어갔다.
밤늦게까지 연구를 하고 시종장이 찾아오면 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생각보다 이르게 개념이 잡혔다.
“후···이곳에서 할 일은 끝났나?”
알렉시안의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또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쓴웃음을 짓는 알렉시안.
“그게 가장 빠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늙은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넘어올 때 시종장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재의 자신에게 시종장이란 유일하게 의지할만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놔둬야 했다. 황궁에 남겨두는 선에서 부려먹는 것도 한계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생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니 진짜 쉬게 해줘야 했다.
“자네의 사직서일세.”
알렉시안이 오래전 받아두었던 하이델의 사직서에 사인한 것을 보여주었다.
“···폐하.”
“완전히 놓아줄 생각은 없네.”
그렇게 말하며 고대역사에 관해 자문위원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건넸다.
“쉬엄쉬엄 도와주게.”
“···아직 버틸 만하옵니다.”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젓는 알렉시안.
“충분히 해줬어. 이젠 쉬게.”
완전히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느낀 하이델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에르헨이라면 시종장에 어울리겠지요. 하오나 에르헨마저 폐하를 따라간다면 황궁은···.”
“아드리안이 있지 않나?”
“내부에 문제가 있을 것이옵니다. 지금이야 소신이 부족하나마 관리해왔지만···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그 말에 알렉시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선황비가 노력 많이 한 것 같더군.”
서부의 안정화, 그리고 서부국가들과의 철도 연결사업, 동맹국 및 대륙 중부연합과 제국과의 외교까지.
전부 선황비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알렉시안이 황궁을 비울 때마다 자꾸 선을 넘으려는 방계 황족들을 관리하기까지 했다.
아드리안이 대리를 맡은 이후에도 꾸준히 뒤에서 도왔다는 것을 들었다.
“선황비의 권한을 완전히 돌려준다 해도 황궁을 완전히 관리하긴 어렵겠지.”
선황의 여인으로 인정한다 해도 결국 황비는 황비.
후가 아닌 비의 신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몇몇 방계 황족의 정통 핏줄을 이어온 황족들은 무시할 것이 뻔했다.
알렉시안에겐 길 수 있어도 그건 알렉시안 한정일 뿐.
“그 말씀은···.”
“2황후로 모실 수 있도록 내무대신과 논의해보게. 하는 김에 아드리안의 모후도 같이 논의하도록.”
“···괜찮으시겠습니까?”
유일한 황후의 적통.
완벽한 계승자.
그러나 현시점에서 알렉시엔에게 이 타이틀이 필요할까?
“이제 와서 짐의 권좌가 흔들릴 것이라 보는가?”
“그럴리가요. 그저···폐하의 모후에 대한 것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멸망의 시대야. 모후께서도 인정하실 것이야.”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한 사용해야 하는 시기다.
사사로운 이유로 인력을 낭비하는 것은 사치다.
“소신의 마지막 일이 되겠군요. 그때까지 이 사직서는 폐하께서 보관해주십시오.”
“그리하지.”
알렉시안이 웃으며 사직서를 다시 받아들었다.
그렇게 알렉시안이 황궁에서의 일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대륙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몇개의 도시가 더 무너지고, 최전선이라 볼 수 있는 방어선은 더 후퇴했다.
알렉시안이 깨어났음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제국민 입장에선 알렉시안이 깨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몰라도 대륙의 소도시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가 바뀌길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없다.
그렇게 이대로 도시의 멸망을 기다리며 좌절할 때였다.
「정령사 연합: 가계약 개발? 알렉시안 황제의 제안에 의해 개발된 가계약이란?」
「폭주한 정령을 정화하며 가계약을 맺어 짧은 시간이지만 이용할 방법을 찾다!」
「정령사의 재능이 없는 이들도 가계약을 통해 정령력을 개화할 가능성이 생겼다!」
여러 희망적인 얘기가 나왔지만 대륙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령사에 한해 유의미한 이야기일 뿐.
그에 또 다시 실망하는 사람들.
바로 그때 또 다른 발표가 나왔다.
「오염된 정령과의 가계약 성공!」
「오염된 정령을 통해 대규모 3단계 골렘 양산 가능할 듯!」
이 역시 알렉시안을 통해 개발되었음을 알리며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그 즉시 공유해버렸다.
그러나 아직까진 연구가 필요했다.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버틸 중형도시들엔 의미 있을지라도 당장 급한 소도시들에겐 의미가 없었다.
그때 또 다른 발표가 나왔다.
「성자가 된 알렉시안 황제. 순례길에 올라 오염된 정령들을 정화할 것!」
「순례길을 통해 최소 군단 단위의 골렘 양산 가능할지도.」
알렉시안이 돌아오자마자 멈춰있던 제국이 다시 굴러간다.
그에 음울했던 제국의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난다. 그러나 이번엔 제국만이 아니었다.
대륙 전체가 이 발표에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보답하듯 알렉시안의 순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