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he youngest son of the golden spoon life RAW novel - Chapter 250
※?2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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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식품의 미국진출을 준비 중이던 시기에 스타벅스라는 커피가게가 7월 말, 이대 앞에 문을 열자마자 평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료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움직임의 중심에는 대주식품 제 2연구소가 꽉 쥐고 있었다.
솔직히 오디션 프로그램의 잡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는데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대형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의 커피가게였다.
인지도가 있는 식품회사가 커피 사업에 뛰어든다면 성공 가능성은 얼마가 될까…..
그런 자료조사를 준비하는 와중에 우리보다 한발 빨리 움직인 것이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커피가게였던 것이다.
연구소에서는 여러 나라를 통해 커피나무 묘목을 들여와 직접 커피를 재배했다. 그와 동시에 원두를 수입해서 볶았을 때, 가장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향과 맛이 나는 시간대를 찾았다.
베트남 커피의 블렌딩 방식도 도입했는데 연구소 직원들의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괜찮았다.
대주식품 이사회에서는 고민에 빠졌다.
원래 처음 계획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티깃으로 고급 커피음료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스타벅스의 한국진출 때문에 대주식품에서도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으로 커피가게 사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란 말이 오고 갔다.
그런 상황에서 기존 캔 음료에 대한 노하우는 가지고 있는 터라 커피 캔 음료의 고급화로 상품을 출시하자는 의견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미국진출을 앞두고 큰 자금이 투입되는 모험성은 자제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캔 음료를 출시하자는 사업으로 결론 내려졌다.
사실 커피전문점 사업을 추진하는 의견을 낸 내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금방 몇 달이 흘러버렸다.
미국 실사단과 합류하여 미국으로 떠날 날짜가 정해지자 할 일이 많아졌다.
커피전문점 사업의 아쉬움은 나름 캔커피 음료의 시판과 시장 반응이 좋아서 어느 정도 아쉬움을 덜어주었고, 모든 걸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하는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나는 현재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대 인근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김아환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아환이는 현지에 대해 완전히 적응했는지 현재 미국 상황, 그리고 음반 시장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꼭 필요한 물품이나 구해야 할 집에 대해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1999년이 끝나갈 때 즈음 온 세상은 떠들썩했다. 앞의 두 자리인 19에서 20으로 바뀔 때 컴퓨터가 인식을 못 하여 다시 1900년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모든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지만 그런 주장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내 아파트 동거인이라 할 수 있는 배현지 작가의 짜증이었다.
미국 현지에 공장을 증설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고려 상황을 살펴야 하고 여러 전문가의 자문 또한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는데 배현지 작가는 그것조차도 불만이었다.
한번은 새벽에 늦게 집에 들어가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려고 씻지도 않고 내 침대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작정을 한 듯 내 옆에 눕더니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왜 이래? 내일 새벽에 회의가 있어. 잠시 눈만 붙이려고 온 거야…..”
나는 그녀를 내게서 떼 내려고 밀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바지를 벗기는 데 집중했다.
“안 돼. 오늘은 꼭 해야겠어.”
“누나….. 지금은 자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제발 좀 자게 내버려 둬.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그녀는 그제서야 벗기려고 잡았던 내 바지를 놓더니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민우 너, 내가 말은 안 했지만 미국에 언제까지 있을 계획인 거니?”
“가봐야 알지 내가 언제까지 있겠다 하고 가는 건 아냐. 실력이 쌓이고 어느 정도 내 능력이 검증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거야.”
“그게 언제인데?”
“대충 4년 정도? 그보다 빠를 수도 있고, 더 걸릴 수도 있지.”
“헐! 4년? 그러면 내 나이 서른 중반이야.”
그녀는 놀란 얼굴이 되어 소리쳤다.
“누나도 좋은 남자 있으면 빨리 잡아. 혹시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내 말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민우 네 탓을 할 생각은 없어. 넌 그저 사막의 신기루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나더라….. 계속 너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 착각 속에서 지금껏 살았는지 모르지. 그리고 약간은 기대감도 있었어. 민우 너도 결혼 상대자로 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말이야.”
나는 그녀의 말에 갑자기 잠이 확하고 달아나버렸다.
“누나….. 우리 여기서 같이 살자고 했을 때 분명히 누나에게 말했었지. 난 결혼 같은 건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이야. 내 능력을 발휘해서 대주그룹에서 내가 차지할 것을 확고하게 해야 하는데 당장 미국으로 가는 것도 그런 몸부림 중 하나야. 그걸 엘씨기획사 사장이자 내 새엄마가 보증해 줬고, 나를 믿고 나를 지지해 주는 이사들이 그 길을 마련해 줘서 가는 거라고…..”
“으흐흐흑, 민우야….. 나 어떡해….. 이미 난 민우 널 사랑하고 있나 봐….. 네가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을 때,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런 마음이 떠나질 않아. 애써 마음을 진정해 봐도 그게 잘 안 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희망도 없을 거라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마음으로 만났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민우 네가 내 마음의 방을 독차지하고 있어. 그 누구도 널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 어떻게 하지?”
갑자기 흐느끼며 우는 그녀가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내 품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럽게 울었다. 그녀의 눈물이 내 티셔츠 한 면을 젖게 만들었고, 그런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등을 여러 번 두드려 주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것 같았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요란한 알람시계의 울림으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아직 내 옆에서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었다. 부디 나 같은 이기적인 남자 말고 그녀만을 위해주는 그런 남자를 만나라고…..
***
JBS 방송국의 김선재 피디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조작방송으로 징계를 받았지만 그나마 중징계는 피했어. 그래도 엘씨기획사에서 적극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바람에 감봉으로 끝낼 수 있었어.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다시 맡아달라는 거야. 나만큼 확실한 인물이 없었던 거지.”
“다시 복귀하시는 겁니까?”
내 말에 김선재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필요로 하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시골로 내려가야지. 안 그러면 너무 억울해. 징계까지 받아가며 여길 계속 붙어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오기가 생겼어. 방송국도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단 걸 알아.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내 식대로 내 맘대로 하는 거지 뭐.”
“어떻게 보면 좋은 소식이네요.”
“그래. 널 보자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듣자 하니 미국 간다며? 공부하러 가는 거냐?”
“네.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언제야?”
“얼마 안 남았네요.”
“그래. 내가 이 소식을 직접 만나서 전하고 싶었어. 괜히 찜찜한 마음으로 미국 가면 안 되잖아. 다 잘 풀렸으니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들은 다 잊고 좋은 마음으로 떠나.”
나는 김선재 피디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마음 써 주셔서…..”
“대신 많이 배워가지고 와라. 그때까지 방송일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만약 한다면 이젠 날 도와야 할 거다.”
“언제든지요. 게다가 마냥 가는 건 아닙니다. 대주식품의 미국진출에 제 입김이 들어가는 상황이고, 엘씨기획사에서도 국내 시장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무대에 설 수 있는 글로벌한 인재를 육성해야 하니까 미국에서 제가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배우러 가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일하러 가는 것일 수도 있죠.”
“호오, 기대되는걸? 그나저나 잘 다녀와라. 미국 가기 전에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으니까 지금 작별인사를 미리 하자꾸나.”
나는 김선재 피디와 힘찬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엘씨기획사에도 들러 앞으로 미국에서의 음반 시장에 대한 정보와 현지 실력 있는 뮤지션과의 교류도 계획했다. 표광열 피디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피디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그렇게 미국으로 갈 일정은 다가왔고, 새로운 환경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대단하고 위대하고 찬란하신 아버지와 엘씨기획사 사장인 새엄마, 그리고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누나까지 공항으로 마중 나와주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엔 우리나라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결심과 함께 마중 나와준 내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배현지 작가는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도 그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제 2의 인생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기대를 하며 뒤돌아 탑승구로 향했다.
1부를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