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
1화 지옥과 천당
난 불의의 사고로 새 세상에 환생했다.
주어진 것 없던 전생과 달리,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어.
태어나자마자 무시무시한 초능력이 손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 육체는 귀족 기사의 것이었다. 지방 중소 영주의 삼남이지만 어쨌든 귀족이라고. 전깃불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는 시절이어도 귀족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게 편했지.
게다가 육체의 것인지 영혼의 것인지는 몰라도, 그 시대에 걸맞은 완력과 재능을 가졌다. 전생에서도 운동 좀 해 볼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7살 때부터 모계 친척의 가문에서 시작한 기사 수업은 나를 위한 무대였다. 동기들의 선두 그룹에 끼고, 성과가 쌓이고, 국왕의 원정에 따라가고, 일이 술술 풀려 나갔다.
차남 이하 기사의 출세 가도는 싸움 실력을 내세워 재산 많은 상속녀와 결혼을 하는 것이 전형적인데, 나는 일단 첫 번째 과제를 빠르게 클리어한 셈이다.
자신감이 샘솟아도 무리는 아니다. 그건 전생에서도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기분이었다. 경쟁에서 ‘정당하게 승리하고, 훨씬 앞서 나가는’ 짜릿한 기분.
그렇게 계속 잘 풀릴 줄 알았던 것이 문제였다. 과적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방심이라고 해도 되고.
클레어 가문의 삼남으로, 베레스포드 공작가에서 기사 수업을 받아, 트레베리아 원정에 동행했으며, 앵글리아 왕세자의 챔피언까지 출세한 기사 에드워드는 왕성 감옥에 갇혔다.
나 말이야, 나.
죄목? 왕실 보물 절도죄.
누명이라고 발뺌할 여지도 없었다. 사실이니까. 부처님 손바닥에 갇힌 손오공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좀 식상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할 문장은 하나뿐이었다.
난 X됐다.
* * *
철컹철컹!
쇠사슬을 흔드는 소리가 감옥을 울렸다. 에드워드의 손목은 천장과 쇠사슬로 연결된 강철 수갑에 묶였고, 발목도 강철 족쇄에 묶여 일어설 수가 없었다. 식사는 귀리나 보리로 만든 묽은 죽인데, 간수가 큼직한 주전자에 담아 죽지 않을 만큼 입에 흘려 놓고는 했다. 어지간한 중범죄자도 안 당할 구속이었다.
“그리 잘 나가던 챔피언 양반이, 왜 왕실의 보물을 훔쳤어? 꺽다리왕 로버트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잘 알잖아?”
새 친구인 옆방 죄수 노인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왕실이 쩨쩨해서.”
“로버트가 좀 쩨쩨하긴 하지. 하지만 대범한 사람도 도둑을 용서하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저번에 왕세자와 같이 훔쳤을 때는 봐주더라고.”
“이번에는 왕세자가 공범이 아니었나 보구만?”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설마, 이번에도 왕세자가 공범인가? 혹시 자네가 책임을 다 뒤집어쓴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에이, 난 또! 드디어 나 말고도 진실로 억울한 자가 이 지하실로 들어온 줄 알았네.”
“영감은 왜 억울한데?”
“난 내 발로 들어왔다네.”
“노망이군. 그건 억울할 게 없을 텐데.”
“야, 이놈 말본새 보소! 노인공경 어디 갔어?”
에드워드와 노인의 웃음소리가 지하 감옥을 채웠다. 에드워드는 킬킬 웃다 말고 다시 이를 갈았다. 안다. 왕실 보물고에 손을 댄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 시발. 진짜 순조로운 고속 출세 가도였는데. 그 망할 저주만 안 받았어도.”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귀가 밝았다. 그의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벽을 넘어 흘러들어 왔다.
“저주로 잠깐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정말 미칠 뻔했으니까. 손에 저주가 걸리는 바람에 어떤 무기도 쥘 수 없게 됐지. 하지만 이 나이에 기사 은퇴할 수는 없잖아.”
“왕실의 보물이 저주를 풀어 주나?”
“저주받은 손으로도 쥘 수 있는 검이 하나 있었지.”
노인은 깨달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 그걸 노렸군! 로버트에게 빌려달라고 하지 그랬어?”
“해 봤어. 근데 안 주더라고. 왕실 보물을 저주받은 손에 쥐어 주는 건 어렵대. 전도유망한 챔피언보다 왕실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지. 젠장.”
“아, 그래서 눈이 뒤집혔군. 훔친 다음엔 어쩔 생각이었나?”
“몰라. 그때는 너무 다급해서 별생각도 안 해 봤어. 뭐, 잠깐 몸을 피한 다음에 돌아와 사죄하거나 공 좀 세우면 봐주려나 했지.”
“자신감이 근거 없이 하늘을 찔렀군. 네놈이 왕세자와 친구라고 해도 그건 힘들 텐데.”
에드워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하지만, 후회해 봤자 늦은 일이었다. 이제는 그저 국왕의 처벌을 기다릴 뿐.
그때 저 멀리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문짝의 중량에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에드워드와 노인의 대화가 끊겼다. 식사 시간이 아닌데 손님이 온다면, 소식이 온 것이다. 좋은 소식이냐, 나쁜 소식이냐?
창살 너머로 간수와 손님이 드러났다. 일렁거리는 붉은 옷자락. 긴 흑발의 여성 사제였다. 눈은 가늘게 떴고, 피부는 하얗고, 핏빛 사제복은 늘씬한 몸에 달라붙어 살랑거렸으며, 콧날은 날카로웠다. 그러니까, 새침하게 생겼다.
여사제는 소매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는 에드워드를 내려다보았다.
“클레어 가문의 에드워드, 앵글리아 왕실의 보물인 열쇠검을 훔친 죄인. 맞지?”
“맞다. 넌 누구고, 무슨 볼일이냐?”
“교황청 교리법무성 이단심문관 베로니카 캠벨.”
“캠벨의 일원이라. 처음 보는데?”
베로니카는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도토리 세 개가 달린 떡갈나무잎 모양의 장신구. 앵글리아를 포함한 여러 왕국과 사돈지간이라는 대귀족 캠벨 가문의 문장이었다.
“캠벨이란 성씨를 달고 있지만 난 앵글리아 출신이 아니고, 여기 온 지 오래 안 됐거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왕실에서는 너의 힘을 아깝게 여기고 있어.”
에드워드가 정말 듣고 싶던 말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질문했다.
“사면인가?”
“조건부야.”
“말해 봐.”
“나는 보다시피 이단심문관이고, 곧 성지의 시오니아 왕국으로 출발할 예정이야. 단절된 교통로를 점검하고, 교회법과 관련된 사건들을 위해 순회 재판정을 열고, 성지를 수호할 지원자들을 모집하며, 사교도를 비롯한 악의 군세와 갖은 마물들을 정리하는 게 임무지.”
“멋지고 힘든 임무군. 보람차겠네.”
“너도 갈 거야. 앵글리아 왕실에서 열쇠검을 빌려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어. 기본적인 여비는 교단이 제공할 거야.”
베로니카는 등 뒤에서 검집을 꺼내 손에 들어 보였다. 여러 보석으로 장식한 손잡이와 검집. 에드워드가 손댔다가 감옥에 갇힌 물건을, 그녀는 아무런 제지 없이 들고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거나 여기서 썩는 것보다는 낫겠군.”
“너한테도 성지는 도움이 될 장소지.”
“왜?”
“성지에 가면 죄가 사라지지. 저주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 안 들어?”
“내 저주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거였나?”
“쉬운 것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성지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위협이 널려 있지.”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단심문관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빛의 이름으로 풀리지 않는 저주는 없어. 앵글리아 전역의 교회와 이교도를 찾아 떠도는 것보다는 확실해.”
“너와 왕실의 목적은? 그저 여자 하나 성지로 보내자고 날 사면하는 건가?”
“입 조심해. 사제복을 입고 있지만, 나 또한 귀족이고 캠벨 가문의 일원이야. 왕세자의 챔피언쯤 되는 기사의 호위를 받을 자격은 충분해. 그리고 성묘의 수호자와 그의 군대는 항상 사제와 기사가 필요하지.”
성묘의 수호자인 시오니아 국왕을 돕는다.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에드워드는 수긍했다.
“나도 조건이 있다.”
“죄인 주제에 조건을 내걸겠다고? 사면만도 감지덕지한데?”
“사면만으로는 부족해. 먼저 내가 훔쳤던 열쇠검을 돌려 줘.”
“준다 했잖아.”
“아예 소유권을 달라고.”
“도둑이 장물을 돌려달라니, 말세가 도둑같이 찾아왔네.”
“내 저주받은 힘을 견딜 검은 그것뿐이야. 내가 왕실을 위해 검을 휘두르기를 원한다면, 그 검부터 내놔. 빌린 물건을 어떻게 내 맘대로 휘둘러?”
“훔친 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고?”
“그럼. 빌리면 여전히 남의 것이지만, 훔치면 내 것이잖아.”
이단심문관 베로니카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그러나 곧 그의 요구를 승낙했다.
“좋아. 그건 내가 왕실에 이야기해 보겠어.”
“와우. 나보다 왕실과 말이 통하나 보네.”
“그저 잘 싸우는 챔피언의 말과 레이디의 말이 똑같니? 그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예식용 검이야. 그거면 충분해?”
여자의 신분을 다시 강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내 말, 내 갑옷도 돌려 줘야지. 그리고 앵글리아 국왕의 이름으로 성묘의 수호자에게 편지를 써 줘. 성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내게 작위와 영지를 주라고. 고귀한 여자를 아내로 내려 달라는 것도 잊지 말고.”
이단심문관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엔 표정뿐만이 아니라 입 밖으로 생각이 나왔다.
“뭐, 이런 날강도가 다 있어?”
“날강도는 무슨. 추천서 한 장 써 달라는 거야. 네가 정말 왕실과 연결된 집안의 딸이라면, 이 정도 제안은 전달할 수 있겠지. 싫으면 다른 사람들 알아보던가.”
도박이었다. 만약 이단심문관이 “그래, 알았어.” 하고 일어서면 만사가 끝장이었다. 다행히 이단심문관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탐욕이 마음에 들었어. 좋아, 챔피언을 부리려면 그 정도는 해야겠지.”
간수는 감옥 문을 열었다. 그가 수갑과 족쇄까지 풀어 주기 전에, 베로니카는 발길을 돌리곤 말했다.
“준비해, 저주받은 불량기사. 왕한테 갔다가 바로 출발할 테니.”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의 관절 곳곳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 활기가 몸에 돌았다.
그는 창살 밖으로 나가 복도에 섰다. 그리고 옆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부를 볼 방법 따위는 없었다. 이단심문관의 방문 전까지 함께 떠들던 노인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에드워드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그 노인처럼 썩지 않고, 여기를 살아나간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잽싸게 복도와 계단을 통과하자 밝은 햇빛이,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인생의 두 번째 기회.
에드워드는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 빛 속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