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순례자의 죽음 (3)
가짜 늑대 인간은 크게 도약하더니 에드워드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에드워드의 공격을 회피한 놈은 침엽수의 가장 굵은 가지 위에 올라서더니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늑대가 아니라 원숭이로 변신했냐?”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몸을 틀었다. 챙! 늑대 인간의 발톱이 열쇠검에 막혔다. 공격은 위가 아니라 옆에서 왔다. 늑대 인간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
에드워드는 놈의 생각보다 친절했다.
“내가 왕세자의 챔피언이다, 이 멍멍아.”
“호오. 그럼, 널 죽이면 내 순례길이 더 편해지겠군.”
“아, 너도 순례자냐?”
“그렇다. 너와 목적은 반대겠지만, 챔피언의 모습으로 하는 여행도 각별하겠지!”
전직 챔피언이란 말은 안 해 줬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돌아다니다간 앵글리아 국왕 로버트와 교리법무성이 쫓아다닐 거란 소리도. 대신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주었다.
“아하, 변신하려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가 보군. 정보 고마워, 순례자 동무.”
늑대 인간은 으르렁거리더니 잽싸게 뒤로 물러섰다. 에드워드는 놈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늑대 인간의 발톱이 열쇠검을 막는 소리가 울렸다. 깡깡! 늑대 인간의 발톱은 단순한 발톱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검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 가죽도 의외로 튼튼해서 쉽게 베이지를 않았다. 대신 검까지 든 인간의 ‘길이’를 당해 낼 수는 없었는지 그는 점점 밀렸다. 팔다리에 조금씩 상처 입은 놈은 곧 벼랑까지 몰렸다. 에드워드는 숨을 몰아쉬면서 놈에게 다시 말을 붙여 보았다.
“움직임이 생초짜인 거 보니, 속임수 말고는 재주가 없지?”
“하하, 들켰군.”
하지만, 놈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에드워드는 놈을 향해 선언했다.
“내가 이겼다.”
“그렇군.”
“항복할 테냐, 내 검에 죽을 테냐? 아니면, 그 아래로 뛰어내릴 테냐?”
“뛰어내리면?”
그렇게 높은 절벽은 아니었다. 늑대 인간의 신체 능력이면 뛰어내려도 안 죽을지도 모른다. 절벽에 매달리는 방법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기 돌 많으니 네 머리 위로 던져 볼까?”
“던져 봐. 기꺼이 피해 주지.”
늑대 인간은 벼랑 아래로 홱 몸을 날렸다. 에드워드는 놈을 쫓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물러섰다.
그러자 벼랑 아래에서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하피가 날아올랐다. 사람 머리에 새 몸통. 놈은 하늘 높이 떠서 에드워드를 내려다보았다.
“아, 정말! 쉽게 안 속네! 너 뭐 하는 놈이야?”
이번엔 여자 목소리였다. 놈을 따라서 벼랑 아래를 쳐다봤다간 추락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평소의 의문을 하나 질문해 보았다.
“하피도 사교도야?”
“무식한 놈! 너는 종족과 괴물도 분간 못하느냐!”
“그럼, 넌 괴물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한가 보군. 하피도 알 낳냐?”
“난들 아냐?”
“모르는데, 어떻게 죽였어?”
“상상력이 빈곤한 기사군.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꼭 둥지로 갈 필요가 없지.”
“어떻게 했는데?”
“모른 채로 죽어라!”
하피는 에드워드를 향해 내리꽂혔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에드워드가 검을 드는 순간, 놈의 다음 속임수가 에드워드를 향해 작렬했다. 발가락 사이에 쥔 모래 뭉치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얼굴에 모래가 쏟아져도 주춤하지 않았다. 그는 흔들림 없이 열쇠검을 내찔렀다. 콰직! 하피의 깃털과 뱃가죽을 잡아 뜯는 소리와 함께 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하피는 에드워드를 지나쳐 저 멀리 처박혀 데굴데굴 굴렀다. 에드워드는 눈을 비비고,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시합장 모래 먼지가 이것보다 더 지독하지. 등 뒤에서 찌르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기사한테 정면으로 덤빈 네가 등신이다. 차라리 욕심을 버리고 그 날개로 도망쳤으면 목숨을 며칠이나마 더 연장했을걸.”
겨우 시야를 되찾은 다음, 에드워드는 다시 열쇠검을 들었다. 하피는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돌렸지만, 다시 일어날 정도의 기력은 없었다. 깃털 아래 살갗까지 크게 베여 이미 내장이 흘러나온 판이었다. 그놈은 숨을 크게 헐떡였다. 에드워드는 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놈은 결국 두 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잠깐, 잠깐!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어! 이 변신 옷을 주겠다! 사용법도 알려 주지! 이게 얼마나 큰 보물이냐 하면…….”
“괜찮아. 내가 알아낼게.”
“그럼, 소개장은? 소개장은 나만 아는 곳에 숨겨 놨어! 그러니까…….”
에드워드는 더 듣지 않고 하피의 머리통을 열쇠검으로 깨 버렸다. 반쪽이 난 골통을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그럼, 너만 아는 채로 죽어.”
소개장의 악용을 막자면 그것도 한 방법이긴 했다.
놈은 죽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검은색 옷을 걸친 젊은 사내의 모습이었는데, 얼굴은 추남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특히 이색적인 건 주둥이였는데, 짐승과 섞어 놓은 듯 이는 삐죽삐죽하고 큼직했으며 잇몸까지 드러난 판이었다.
“악마 숭배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뒤틀린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군.”
에드워드는 놈의 옷을 벗겨 냈다. 옷은 난생처음 보는 흐물흐물한 천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피가 전혀 묻지 않고 그 아래로 흘러내렸다. 게다가 분명 조금 전 놈의 뱃가죽을 찢었는데, 벗겨 낸 옷에는 구멍 하나 없었다. 놈은 이게 변신 옷이라고 했다. 그것만 사실인 듯했다.
놈은 끝까지 거짓말쟁이였다. 소개장은 돈주머니와 함께 옷 안에 있었다. 에드워드는 시체의 발목을 오른손에, 변신 옷을 왼손에 잡고 마을까지 걸어갔다.
시체를 땅에 질질 끄는 건 승자의 권리이기 마련이다.
* * *
밴시 리안나는 시커먼 변신 옷을 머리부터 뒤집어쓴 다음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늑대 인간 변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리안나는 그 자세 그대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 보았다.
“변신! 변신!”
그 앙증맞은 모습에 베로니카는 깔깔 웃어 버렸다.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요.”
“사실은 마법 소녀 변신이라고 외쳐야 하는 건지도 몰라.”
“그게 뭔데요?”
“말하는 흰 고양이한테 속아서 마녀가 되는 여자애들이지.”
“말하는 흰 고양이요?”
“불공정 계약의 화신이야.”
“애한테 이상한 소리 떠들지 마. 그런 게 어딨어?”
베로니카가 태클을 걸었다.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없다니 다행이군.”
베로니카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에드워드를 한 번 쳐다봐 준 다음, 밴시 리안나에게서 변신 옷을 벗겨 냈다. 펑퍼짐한 로브의 형태였는데, 소매 끝단에는 작은 금속 테가 여러 개 둘려 있었다. 베로니카는 그 테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상대를 죽여야 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새 소유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하겠지. 어딘가에 그 피를 묻혀야 한다던가.”
“몇 개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걸까?”
“네가 싸운 이야기만 들으면 최소 4개. 아마 그 이상이겠지. 그중 둘은 아마 전투용으로 늑대 인간과 하피 형태 정도는 기본적으로 취할 수 있게 해 놨을 거야. 굉장히 위험한 옷이네, 이거. 형태도 성별도 옷도 마음대로 훔치다니. 악마의 선물이 확실해.”
에드워드는 그 변신 옷에 흥미를 보였다.
“위험한가?”
“왜? 여자 모습도 해 보고 싶어?”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게다가 내가 여자 하나를 죽여야 한단 말이잖아. 하지만 늑대 인간이나 오크 같은 거로 변신하는 건 재밌겠지.”
베로니카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변신 옷을 돌돌 말았다.
“쓰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겠네. 스파이를 위한 물건이야. 시오니아에서는 정말 유용한 도구일지도…….”
“내 거다!”
에드워드가 먼저 소리쳤다.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악마의 선물은 무조건 교회의 관리 아래 들어가야 해. 그게 원칙이야.”
“젠장.”
“악마의 선물은 조심하는 게 좋아. 천천히 미치게 하거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니. 여하튼 암브로즈 시에 들르면 이것도 같이 조사해 보자. 사용법만 제대로 알아내면 너한테 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저주는 안 걸린 것 같다며?”
“악마의 선물은 저주가 없이 그 원리만으로도 이미 해로워 사용자를 농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야. 악마가 사용법을 절반만 알려 주는 예도 있지.”
“와! 그런 걸 저한테 입히셨어요?”
밴시 리안나가 소박한 항의를 했다.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원래 위험한 굴에는 개부터 밀어 넣는 법이다.”
“너무해!”
밴시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세상은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청년과 기사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혹시 더 있을지도 모르는 시체의 수색에 나섰다. 베로니카는 기사의 여비 중 일부를 장례 비용으로 쓰고, 남은 돈과 장비를 교회에 맡겼다. 그의 유족이나 지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문제는 기사의 말이었는데, 교회의 사제는 난색을 보였다.
“이건 기사의 군마군요. 일개 마을에서 오래 감당할 놈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단심문관님이 가져가시죠.”
나 홀로 편력 기사여도 우승자의 말이다. 좋은 말임에는 분명했다. 유지비용이 더 깨질 것이란 사제의 걱정은 합당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
“왜?”
“예비마 하나 더 필요하지?”
“있으면 좋지.”
“저 말 너 가져.”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객님.”
변신 옷을 뺏기고 뚱해 있던 에드워드는 잽싸게 태도를 바꿨다. 그는 주머니에서 가장 큰 금화 두 개를 꺼내 사제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여관 주인에게 전해 주쇼.”
좋은 건 금화 80개도 부르는 군마의 가격으로 금화 두 닢이면 헐값도 이런 헐값이 따로 없다. 그러나 원래 이 마을 것도 아닌 말을, 혹시 있을지도 모를 트러블을 감수하며 에드워드가 인수하는 것이니 사제도 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금화씩이나 준다고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사제는 깊이 고개를 숙인 다음 장례식장으로 갔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돈주머니를 힐끗 보곤 말했다.
“돈 없다 없다 노래를 부르더니.”
“여행용 비상금이야. 몇 개 없어.”
“이번엔 금화를 두 개나 써도 되고?”
“말은 그럴 가치가 있지. 이 가격에 내 말을 살 일이 어딨겠어?”
“하긴, 말은 많을수록 좋지. 네가 언제 실수로 또 죽일지 모르니.”
“젠장. 조심할 거야. 슬슬 적응되고 있다고.”
악마 숭배자의 시체를 불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른 다음, 두 희생자를 위한 장례가 시작되었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던 베로니카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아까운 기사를 하나 잃었네. 망할 사교도 놈들.”
“그러게. 네 남자 후보로도 쓸 만하지 않았냐?”
에드워드가 농을 걸자 베로니카는 눈을 흘겼다.
“시오니아에는 흔해.”
“뭐가? 네 남자 후보? 아니면, 신인 기사?”
“둘 다.”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에 올랐다.
“내가 참 잘난 숙녀를 모시고 있구만.”
“알아서 모셔라?”
“예이, 예이. 고명하신 이단심문관님을 또 홀딱 벗겨 보겠습니다요.”
“너 설마 훔쳐봤니?”
“봤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둘이서 티격태격하거나 말거나, 리안나의 위치는 조금 변화가 생겼다. 이제 그녀는 에드워드의 예비마를 고삐 잡고 끌게 되었다. 밴시는 기사에게 사소한 불만을 쫑알거렸다.
“왜 주인의 재산이 늘어나니 제 취급이 박해지는 걸까요?”
“누군가는 말을 끌어야지.”
“제가 올라타면 안 되나요?”
“예비마는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 놓는 게 원칙이다.”
“밴시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너 말 탈 줄은 아냐?”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그냥 배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베로니카는 풋 웃어 버렸다. 밴시의 체격으로는 안장에 발도 안 닿을 게 뻔했다. 설령 배우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하지만 기사 에드워드는 새 장난감을 찾은 악동의 표정이 되었다.
“그럼, 넌 지금부터 도시 도착할 때까지 말타기 특훈이다.”
잠시 뒤 밴시의 비명이 말발굽 소리와 같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