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남행상단
이단자 엥겔의 재판은 한 달이 걸렸다. 그는 자신의 구명을 탄원하는 편지를 여기저기 보냈지만, 사상적 깊이가 얕은 데다 빛의 힘도 잃어버린 떠돌이 사제를 지지해줄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그가 체포될 때의 몰골을 에드워드의 토벌대원들이 이미 파다하게 소문을 내버려서, 그의 추종자들도 모래성과 개미떼처럼 무너졌다.
요하나는 엥겔의 재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뿌려지는 걸 확인했다. 그녀가 꼭 보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에드워드는 대주교한테 청원하고 간수한테 뇌물을 찔러야 했다. 감시가 따라붙고 에드워드가 수행원 노릇을 한 것은 덤.
“그 여자 이쁘고 착한데 사람 신경을 쥐어짜는 것 같아. 마치 결혼생활 한 달 치를 미리 해 보는 느낌 같다니까.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해 주면 애교가 늘긴 하는데.”
요하나를 감옥으로 보내고 돌아온 에드워드가 투덜거리는 걸 베로니카는 묵묵하게 들어주었다. 가끔 도끼눈을 뜨긴 했지만. 리안나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새 짚 넣은 매트리스와 시트 깔고, 감방에 소박한 가구 몇 개 넣어 주고, 등불 대신 양초 넣고, 선물도 몇 가지 주고, 기사단 지부에 계좌 만들고, 입금하고, 예금과 이자 인출하게 위임장 써 주고, 순찰 끝나거든 제일 먼저 들어가 보고, 가끔 거기서 자고…….”
“뭐야, 그거? 완전히 결혼생활이잖아요!”
“선배 기사들이 정부 만들어 집 주고 돈 주고 거기서 지내던 거, 내가 하는 기분이야. 아직 고정 수입 나오는 곳도 못 얻었구만.”
스텔라는 깔깔 웃었다.
“예습하는 셈 치세요.”
카치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정의 소중함보다 그런 것부터 배우다니 뭔가 거꾸로 됐군.”
“냅두쇼. 꼭 결혼해야 정부를 두는 건 아니잖아.”
가르달은 파이프를 물고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말했다.
“뭐, 부부도 일단 결혼하고 그 뒤에야 애정을 쌓는 경우가 흔하잖소. 비슷한 거지. 정부와의 생활을 그렇게 굴리는 양반은 난생처음 본다만…….”
“걔가 내건 동침 조건이 기사식 애정과 헌신이라.”
“그래도 약속은 지키시는군.”
“내가 그 정도로 나쁜 놈이 아닌 것도 있는데, 일단 대주교와 이단심문관 눈치가 있잖수.”
“아.”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와 정부의 관계는 눈 맞고 선물이 오가다 육체관계와 사생아의 출산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완전히 거꾸로 밟는 셈이니 에드워드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순서를 거꾸로 밟으니 결혼생활 비슷해지네. 근데 진짜 결혼하면 이거보다 더 심하겠지?”
“당연하지.”
현장의 유일한 유부남, 카치운이 즉시 대답했다. 스텔라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카치운 씨, 부인한테 일러바칠 거예요?”
“직장동료는 그런 거 안 찌르는 법이다. 도리를 지켜.”
“어머나, 그럼 뭘 찔러요? 불륜? 설마 하고 있어요?”
“할까 보냐!”
둘이 티격태격거리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까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중에 육체를 빨아먹는 것들은 많았는데 정신적으로 빨아먹는 건 처음이네. 정부는 원래 좀 쉬려고 찾아가는 거 아냐?”
“그러게 누가 색욕에 미쳐서 순서를 거꾸로 밟고 코 꿰이랬니?”
베로니카가 겨우 입을 열었다. 꼬시다는 투가 강했다. 에드워드는 구시렁거렸다. 헬레나는 오히려 이해한다는 투였다.
“여자가 정부여도 남자는 의무를 다해야죠.”
“젠장. 여기 떠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 아니다. 걔는 진짜 찾아올지도 모르겠네.”
스텔라가 다시 말을 붙였다.
“기사님, 기사님. 그래서 애는 들어섰대요?”
“네 월급을 육아비로 전용할 예정이다.”
“왜 제 월급으로 사장님 육아를 하는데요? 아니, 저 월급도 있었어요?”
“줄 예정이었는데 증발했다.”
“와, 말장난으로 사람을 농락하시다니.”
“돈 급해?”
“그야 항상 그렇죠.”
“너 토벌대 포상금 어쨌어?”
“박사 과정에 필요한 실험 하나 해 본다고 날린 지 오래예요.”
리안나의 사소한 고발이 이어졌다.
“그래도 조금 남았는데, 도박으로 다 날리셨어요.”
“그건 도박이 아니라 희망의 도전과 신뢰의 도약이었을 뿐…….”
“스텔라 양? 고해 좀 하시죠?”
베로니카가 아까보다 더 서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스텔라는 살짝 울먹이며 말했다.
“어차피 남겨 봤자 조금씩 까먹다 사라질 돈이었는데요 뭐! 역전극을 노려 볼 수도 있지!”
“역전을 노리면 저축을 하세요.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항변이잖아요.”
베로니카의 정석적 훈계에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아니면 투자를 하든가. 고리대금업이나 무역선에 투자하면 몇 배로 돌아오더라?”
“그것도 쉬운 건 아닌 듯한데요…….”
스텔라가 볼멘소리를 남겼다.
다소의 잡담이 오간 뒤, 베로니카가 더욱 공적인 목적으로 입을 열었다.
“많은 재판이 정리되면서 이단심문관도 10명씩 필요하지 않게 됐어. 상의한 결과 목적지가 따로 있는 사람들부터 빠지기로 했지.”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여길 떠나겠군.”
“그래. 북쪽에서 온 상단이 있는데, 여기서 구리를 매입하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 항구까지 간다고 해.”
“상단? 그런 자들도 있나.”
“도적화된 이단자 집단들이 아직 암약하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무리를 불려 이동하길 원하는데, 여기에는 순례객들까지 포함돼. 토벌대 출신들도 받는 모양이야. 우리도 합류한다.”
내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이단 토벌도 대충 끝나면서, 베니아 시 인근과 공작의 세력권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상단이 통과할 정도는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불안한 건 사실이고, 그건 상단뿐만 아니라 순례 비용을 달고 다니는 순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르달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녀석들이라면 호박을 가져오는 자들이겠군.”
에드워드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시오?”
“제일 좋은 호박이 내려오는 보석길이라오. 여기보다 약간 더 남쪽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하나는 남쪽 항구로 가고 하나는 비텔리아로 내려가지요. 둘 다 성지로 가는 배편은 있는데, 여기서는 남쪽이 더 가까울 거요.”
“먼 데서 오는 거요?”
“호박은 알레마니아나 그보다 더 북쪽에서 캐니까 멀리서 오지만 사람은 아니오. 릴레이식 교역이지. 장거리를 뛰는 건 위험하니까. 그래도 마지막에 항구까지 가는 상단은 꽤 긴 거리를 움직이며 물건도 더 사들인다 들었소.”
“그렇군. 호박이라. 유통구조를 산지 직송 단순화하면 반값도 안 할 것 같은데.”
“꿈같은 이야기구려. 어떤 상인들에겐 악몽이지만.”
가르달은 껄껄 웃어 버렸다. 리안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알레마니아는 또 어디죠?”
“트레베리아 북동쪽. 아르데니아의 정기 북방 원정군도 가끔 그쪽으로 가.”
헬레나가 설명해 주었다.
“중간에 거기 들러서 호박 사 왔으면 돈 버는 거 아니에요?”
“요정이 상인혼에 눈을 떴니?”
“저 옷 대여업도 하는데요?”
“일용할 양식을 버는 것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자는 다르잖아?”
“대여업도 최소 투자 최대 회수인데요?”
헬레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리대금보다야 덜하지만, 현물대여도 비슷한 이유로 비난받고는 했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으면 내전 중인 트레베리아의 한복판을 가로질렀겠지. 점검해 보는 보람은 있겠네.”
“그러게. 주적이 인간 기사들일 테니 밴시탄도 보다 훨씬 자주…….”
“전언 철회! 저는 행복합니다! 이 길로 와서 행복합니다!”
에드워드가 거들기 시작하자 집요정은 잽싸게 태세를 바꿨다. 일행은 한번 웃어 버리고는 회의를 끝냈다. 베로니카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 다들 준비해. 1주일 뒤에 출발이니까.”
* * *
그 1주일 사이에 1차 사면령이 내려왔다. 그 포고문에는 대놓고 ‘1차’라는 글자가 적혀 차후 여러 번의 사면이 있을 것임을 알려 주었다. 교회는 바로 사면자 명단을 작성했고, 다행히 요하나는 거기에 속했다. 대신 주술사로서의 재능이 문제라, 당분간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받게 되었다.
그 뒤에도 교회가 일자리를 알선해 주고 에드워드가 약간의 돈을 남겨 놓기로 한 덕택에 당장 생활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막연히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보다, 확실한 약속인 사면령이 내려오는 걸 보고 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녀원 생활은 꽤 갑갑하다던데, 괜찮겠냐?”
“전 성가대장이었어요. 규율은 나름 잘 지킨다고요?”
이제야 좀 그럴듯해졌지만 곧 떠날 감옥 안에서, 요하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팔을 붙잡고 거기에 뺨과 이마를 한참 부볐다.
“뭐, 그건 다행이네.”
에드워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면받아도 교회의 엄격한 관리를 못 견디거나, 빈털터리거나, 자립할 기술이 없거나, 원치 않는 임신의 충격을 못 이기는 등 다양한 이유로 자포자기하는 여자가 많다. 매춘굴이라도 안 들어가면 다행이다. 요하나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가족은 악몽이었고, 돌아오지 않길 원한 자는 불에 탔고…… 이젠 기사님 차례네요.”
다시 돌아올 것처럼 애정과 헌신을 약속해 달라. 누군가 문을 두드리거든 희망을 안고 열어 보게.
그게 조건이었다. 에드워드는 닭살 돋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버리고 한 달 넘게 서로 꽁냥꽁냥 잘 논 거로 증명이 안 되나? 웬만한 의무도 다했는데.”
“로망요. 기사와 그 정부한테는 중요하잖아요?”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주 풀고 자리 잡으면 사람 보낼게.”
“네?”
“지금이야 애도 낳아야 하고, 교회에서 배울 것도 있고, 길도 위험하잖아. 그러니 못 데려가지만, 적어도 몇 년 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요하나는 웃어 버렸다.
“낭만적이진 않네요. 오히려 귀족 남자의 공허한 약속 같아요. 그렇게 달래고는 안 돌아오죠.”
“그게 뭐 어렵다고.”
“어렵죠. 수입이 적으면, 부인이 성을 내면,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식으면.”
“의외로 잘 아는군.”
“통속적인 이야기들이잖아요? 어차피 안 돌아올 거라면, 차라리 정말 달콤한 약속을 하나 남겨 주세요.”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다 말했다.
“난 평범한 놈 아니니까 괜찮아.”
요하나는 에드워드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몰락해서 돌아오지나 마세요. 저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
* * *
“여자 울렸나 보네?”
출발 직전, 마차 앞에서 마지막 점검을 해 보던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떫은 표정으로 손수건을 들고 중얼거렸다.
“여자의 눈물이 젖은 손수건이라. 한 달이 좀 길긴 했군.”
“한 달 하고 일주일이요. 연애 놀이 하고 정들기엔 적절한 기간이죠.”
스텔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네요. 당신도 여자한테 의무를 다할 줄 아는 분이셨군요.”
에드워드는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돈과 권력 있는 남자가 정부를 두는 게 거의 기본이다시피 한 세상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헬레나의 태도는 묘했다.
“넌 의외로 계속 호평이다? 설마 유부남 취향이냐?”
“……기껏 칭찬하는데 좀 비꼬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난 언제나 여자한테 충실했어.”
“그랬죠. 육욕 한정으로만요.”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쟤는 기사 양반이 자기한테도 그렇게 해 줄 걸 기대하는 모양인데.”
“드워프는 좀 닥쳐요. 남녀 구별도 안 되는 종족이.”
“왜 구별이 안 돼! 여자는 수염이 없잖아!”
“그게 전부잖아요!”
가르달과 헬레나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에드워드는 상단 수레들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이것저것 많이 실은 수레들. 사람도 백 명 단위. 얼굴이 익은 병사와 기사도 보였다. 에드워드는 기사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술고래와 마조잖아? 댁들도 떠나쇼?”
파란 서코트에 흰 사슴 문장의 콧수염 기사는 에드워드에게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오, 에드워드 경. 미리 말을 못 했구려. 우리도 토벌대를 그만 떠나기로 했소. 할 일이 확 줄어서 말이오. 마침 돈도 생겼겠다, 성지로 가 보려던 참이오.”
노란색 서코트에 가재 문장을 지닌 거구의 기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꾸준히 할 일을 찾아야지요.”
“하필 제일 개성적인 기사 양반들이 붙었구만.”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까지는 같이 간대. 거기서 다들 헤어지겠지만.”
“엥? 성지 간다며?”
“술…… 로드리고 경은 항구의 친척 집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간대. 조르쥬 경은 바로 배를 탈 거지만, 우리는 거기서 송사도 처리해야 하고. 서로 배편이 다를 수도 있겠지.”
위험한 길을 가기 위한 일시적인 동행.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 둘이면 가면서 심심할 일은…….”
“이 바보 꼬맹이!”
“이 밝힘증 악령!”
에드워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리안나와 허리띠 캐슬린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마차 위를 구르는 소동이 벌어졌다. 두 기사가 폭소하는 걸 본 에드워드는 마저 중얼거렸다.
“이미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