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눈길 위 도적단 (2)
상단 대표의 선택지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우물을 강제로 열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면 골치 아프다. 게다가 이곳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이 교역로를 쓰기 피곤해진다.
눈을 녹여 먹는 건 배탈과 체력 저하를 일으키며, 그나마도 적절한 양을 확보할 수 없다. 상단 사람들만 챙긴다 해도 상당한 양의 눈과 장작을 구해야 한다. 수레를 끄는 짐말들의 물 소비량은 더 무시무시한 문제다. 짐승은 사람보다 더 못 견딘다.
무슨 수를 쓰든 다음 수원지까지 강행군을 하겠다면, 도적들이 이때다 싶어 덤벼들어 지연시킬 것이다. 그다음에 강매될 물 가격은 바가지 중의 바가지일 것이 뻔했다.
“도적들이 계속 방해를 한다면 결국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도 전에 남은 물이 바닥날 겁니다. 사람보다 말이 못 버팁니다.”
부하 직원의 말에 상단 대표는 머리를 싸맸다.
“빌어먹을 놈의 내전! 사법관도 치안 헌병도 없으니 이 중요한 교역로 하나 못 간수하고!”
“돌아가서 팔츠 공작께 지원을 요청할까요?”
“그는 우릴 지키고 보호해 줄 의무가 없어! 여력도 없을 테고! 게다가 돌아가는 길엔 그놈들이 안 나타날 것 같아?”
베로니카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법사를 끼니 도적들이 무지 대담해지네?”
상단 대표는 결국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는 베로니카에게 다가와 말했다.
“여러분들, 특히 마법사님께 부탁드리겠소. 놈들을 물리쳐 주시오. 마법사를 잡는 건 같은 마법사 아니면 사제가 제일이니…….”
태세 전환이 빨랐다.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돌아보았다.
“우리도 물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지. 일단 첫 번째 근거지까지 가본 다음, 놈들의 소굴을 찾자고.”
“도적놈의 자백에 의하면 첫 번째는 신참들이 머물고 작업하는 전진기지 같은 거니까…… 대단한 건 없을 거요. 소굴의 단서를 못 찾을 수도 있소.”
“당신 추적술로도?”
“글쎄. 일단 눈이 더 내리지 않는다면 비관적으로만 볼 건 아닐 듯한데.”
“그럼 해 보지 뭐.”
에드워드는 바로 인원을 골랐다.
“많이 움직이면 들킬 것 같으니까, 열 명 내외로. 경들도 오쇼.”
“이야기 안 꺼내면 섭섭할 뻔했소.”
“여자를 납치해 가는 놈들에게 기꺼이 철퇴를 내리겠습니다!”
로드리고와 조르쥬도 합세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가 시작할 거요.”
“응? 그러고 보니 엘프 분은 어디 가셨소?”
“여기요.”
로드리고의 질문에 헬레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글레이브를 피로 물들인 채 사람 머리통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정찰 나온 놈이 있더라고요.”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발자국을 거꾸로 추적하면 되겠네.”
스텔라는 머리통을 곁눈질하다 심호흡을 한 뒤 나섰다.
“상대는 수준이 낮지만 전투 감각은 저보다 뛰어날지도 몰라요. 실전 경험이라든가…….”
“좋네. 경험 쌓기로는. 전열은 빵빵하니까 설령 한두 번 정도 실패하더라도 기죽지 마. 밀어붙이면 이기게 되어 있어. 마흔 정도야 자리만 잘 잡으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에드워드의 격려 아닌 격려에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정찰이 안 돌아오면 이상하게 여길 거예요.”
* * *
도적 하나가 자작나무 아래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는 소변 구덩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더럽게 춥네. 협상이 오래 걸리나…….”
휙! 퍽!
그때 화살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소리도 못 지르고 쓰러지는 도적을 보고 헬레나가 말했다.
“놈이 방금 협상 어쩌고 하던데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그게 정찰병이 아니라 협상가였나 보군. 돈 받고 우물을 열어 줄 셈이었던 거야.”
“도적들이 장사를 잘하네요.”
“글쎄. 놈들에게 과시욕이 좀 있는 것 같아. 나라면 그냥 마을 사람들이 물값을 세게 매기게 한 다음, 그걸 삥뜯을 텐데.”
“마법사가 일일이 우물 뚜껑을 열어 줘야 하는 건 번거롭다는 건가요?”
“그래.”
둘의 대화를 듣던 스텔라는 생각에 잠겼다.
“마법사 아니면 두목이 그런 성향이겠군요.”
“소변 보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똥까지 나오냐?”
한 도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적으로 가려놓은 동굴 입구에서 누군가 나오자 다시 화살이 날아갔다. 퍽! 두 번째 놈이 쓰러져 눈밭을 구르자, 그제야 동굴 안 놈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방금 그 소리?”
도적들이 웅성거리는 순간, 기사들이 동굴을 향해 달려갔다. 에드워드는 겨울바람을 막는 거적때기를 잡아 뜯으며 소리쳤다.
“쟈니가 왔다!”
동굴에서 비명이 울리는 동안, 리안나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쟈니가 누구예요?”
베로니카는 생각을 포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영네 친구겠지…… 쟤가 의미불명의 말을 하는 거 한두 번 듣니?”
“사실 기사님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원래 제정신인 놈은 앵글리아 왕실의 보물에 손 안 대.”
리안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동굴에서 도적 대가리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오자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기사들 특권이지. 살짝 제정신이 아니어도 용납되는 거.”
* * *
로드리고는 도적들 동굴에서 발견한 술을 분배하자마자 바로 다 마셔 버렸다. 에드워드는 그걸 보고 질겁했다.
“그리 마시다 취한 채 싸우겠네.”
“승전주요.”
가르달은 도적들 머리통을 어떻게 하면 더 예술적으로 쌓아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고, 헬레나는 주변을 감시했으며, 카치운은 발자국을 찾아보았다.
스텔라는 붉은 나무 조각들을 잔뜩 찾아냈다.
“적 마법사가 대충 어떤 수법을 쓰는지 알겠네요. 붉은 꽃잎으로 물들여서 유황가루를 묻힌 나무 조각들이에요. 유효 범위 안에서 주문을 외우면 불이 붙죠.”
“준비 과정에 비해서 효과 자체는 시시한 주문이네. 부싯돌보다 좀 나은 거잖아. 유황값까지 생각하면 형편없고.”
에드워드의 평에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염 마법을 배운 도제, 즉 최하급 마법사 수준으로 추측되어요.”
“주의할 건?”
“주문을 외우면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나무 조각들이 일제히 발화해 버려요. 차례대로, 또는 특정 조건의 조각만 불을 붙일 수는 없을 정도로 수준 낮은 마법이죠.”
“그게 뭐가 주의할 거야. 놈의 약점이구만.”
“생각해 보세요. 특정 범위 안에서 작동하는 주문이에요. 놈이 달리기 시작한다면, 그건 함정을 설치한 곳으로 가고 있단 뜻이에요.”
베로니카는 이해가 더 빨랐다.
“도망칠 때 추적하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나무조각들을 준비해 놓은 걸 보면, 함정이 한둘은 아닐 거예요.”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추적하는 게 더 위험한 적.
“그럼 꾀어내거나, 앞질러 가야 한단 말이군.”
그때 카치운이 돌아왔다.
“발자국을 찾았소.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돌아간 발자국이 가장 최근 거요. 얼마 전까지 소굴을 들락거리는 ‘고참’이 이 동굴에 있었단 말이지.”
에드워드는 도적 대가리 숫자를 세어보았다. 밖에서 화살 맞고 죽은 놈들까지 대충 다섯.
“마흔이면 남은 게 서른넷 정도인가.”
“이깟 놈들 백 명이 와도 겁나지는 않지만, 신중히 해야겠구려.”
가르달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코가 제일 큰 도적 대가리를 제일 위에 올렸다. 스텔라는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전진기지에는 마법사가 없지만, 우물물을 두고 협상하려던 것을 보면, 마법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예요.”
“하긴. 협상이 타결되면 바로 와서 우물 뚜껑을 열어 줘야 하니까. 길어 봤자 반나절 남짓한 거리겠군.”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치운을 향해 말했다.
“여기 마법사가 있으면 더 편했을 텐데 말이야. 추적을 계속합시다.”
* * *
잠시 뒤, 카치운은 가지가 사라진 나무 하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눈을 파헤친 흔적도 찾아냈다. 장작을 베거나 주워간 것이다. 생나무를 그대로 태운다면 연기가 날 텐데, 능선 주변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연기를 숨길 줄은 아는 놈들이다.
“나뭇가지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장작을 찾아 더 멀리 나오고 있군.”
헬레나는 긴 귀를 까딱거렸다.
“눈이 더 깊어지고 있어요. 소리가 잘 안 들려요. 바람 소리도 강해지고.”
“이 근방이 놈들의 영역인 건 확실한데. 은신처로 삼을 곳이 안 보여.”
“땅굴이라도 판 걸까요?”
“못할 건 없지. 숲이나 산에 숨어 사는 놈들은 땅에 반쯤 묻힌 집들을 만들거든. 문제는, 그런 집은 눈까지 내리면 찾기 더 힘들단 거야. 뭣 좀 안 보이나?”
“솔직히 말해서, 여기가 매복지라면 낭패일 정도로 안 보여요.”
카치운은 헬레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우리가 매복 당한 거야.”
카치운과 헬레나는 재빨리 뒤로 돌아 달리며 소리쳤다.
“적습!”
우르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경사로에서 눈 묻힌 돌덩이들이 굴러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돌덩이들은 눈으로 덩치를 불려가며 경사로 아래를 향해 굴러갔다. 리안나는 기겁해서 외쳤다.
“한둘이 아니에요!”
“나무나 바위 뒤로 숨어!”
일행은 즉시 흩어져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리안나는 운이 없었다. 바위에 맞은 나무가 부러지면서, 리안나는 그대로 바위와 눈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더 큰 눈덩이가 되어 굴러가는 밴시를 보고 조르쥬는 식은땀을 흘렸다.
“맙소사, 애가 당했습니다!”
“쟤는 댁이 관짝 들어가는 것보다 늦게 죽을 테니 걱정 말고 댁 몸이나 건사하쇼!”
에드워드가 외쳤다. 잠시 뒤 도적 두목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산을 울렸다.
“하하하하! 눈치가 빨라서 살았구나! 좀만 더 앞으로 나왔다면 피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와, 정석적인 일회용 악당의 대사다.”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베로니카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나도 세상일이 희극처럼 굴러가면 좋겠네.”
카치운은 화살을 꺼내 능선 위를 보더니 도로 활을 내렸다.
“멀군. 접근을 안 하려 하고 있소.”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쫓아가면 함정을 만나겠지?”
“안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 바보겠지.”
에드워드는 경사로 끝을 보았다. 사람 다수, 돌덩이 몇 개 대기 중. 아마 더 있을 것이다.
“들킨 이상 별 수 없네. 물러간다.”
베로니카가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접근을 안 하고 화살 사거리 밖인데 어쩌겠어. 우리가 다가가면 도망칠 거고, 함정이 기다릴 거야.”
“마음에 안 드네. 도적 따위가 우리 머리 위에서 놀다니.”
그때 스텔라가 씩 웃었다.
“함정이 걱정된다면 좋은 방법이 있죠.”
“응?”
“쟤가 쓰는 함정은 어차피 아까 그 나무 조각 기반일 게 뻔하거든요.”
“그래서?”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얼마나?”
“10분 이하?”
스텔라는 지팡이를 이마에 대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도적 두목은 당황했다.
“어?!”
그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도적과 일행 사이에서 갑자기 땅이 꺼지고 꼬챙이가 치솟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바보.”
스텔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도적 두목이 분노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거기도 있냐, 마법사!”
“아하. 스텔라를 못 봤군. 저놈.”
에드워드는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적들의 시야에 나섰다.
“야, 비밀번호 좀 바꾸고 살아라! 1234가 뭐니?”
그녀의 말에 베로니카는 무릎을 쳤다.
“기본값!”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 세상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적들은 침묵했고 스텔라는 악역 여배우래도 믿을 높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곤 도적 두목을 비웃었다.
“너, 8개 숫자를 중복 없이 4자리 비밀번호를 짜지? 그거 경우의 수가 70개밖에 안 된다? 10분이면 다 시험해 보고도 남거든?”
“크윽! 많이 만들려고 최저 수준으로만 해 놨더니!”
“그리고 내 발동 범위가 더 넓은 걸 봤지? 이게 수준 차이란다!”
도적 두목은 좌절했다. 스텔라는 더 소리 높여 웃었다.
“너 도제 수준은 되니? 마법사 간판 달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아?”
그 말에 도적 두목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교수의 노예인 술사 주제에!”
이번엔 스텔라가 좌절했다.
“반박할 수 없다!”
학생이나 마법사끼리만 할 수 있는 처지 비관 대결. 도제도 마법사냐 vs 넌 언제 박사 될래.
“너네 뭐 하냐.”
에드워드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조르쥬는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검을 바닥에 꽂고 양손을 올렸다.
“항복해라! 너희 소굴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을 안다! 지금 항복하면 선처하겠다!”
기사다운 포즈와 대사였다. 그러나 도적 두목은 다시 일어섰다.
“선처? 도적은 무조건 교수형인데 무슨 개소리를! 거기 여자 마법사! 네가 잊은 것을 알려 주지!”
“응? 뭔데?”
“네가 발동시킨 것 중엔 내 신호용 함정도 있었다!”
“응?”
그 순간 멀리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좌측방 경사로. 에드워드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더니 말했다.
“아. 도적놈들은 차례대로 작동시키려던 함정을 스텔라는 발동 범위가 넓어서 죄다 작동시켜 버렸으니까…….”
베로니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원 요청 스위치까지 다 작동시켜 버렸단 거네.”
도적들은 마흔 명이 아니었다. 그 두 배였다. 게다가 새로 등장한 놈들은 무장 수준도 제법 괜찮았다. 부서지거나 낡았어도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생각 못 했네요.”
“하하하! 이것이 바로 전투마법사의 수 싸움이라는 거다, 초짜!”
도적 두목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수 싸움은 개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면서.”
“어쨌든 지원 요청 스위치까지 만들어 두는 준비를 해 둔 건 사실이지. 재밌는 놈이네.”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카치운은 놈들의 무기를 보고 말했다.
“궁병은 없고 죄다 폴암이나 몽둥이요. 갑옷은 내전통에 주운 것 같은데, 용병 출신이 섞인 건지도 모르겠소.”
도적 두목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여든 명! 기사는 단 셋! 말도 안 탔어! 나머진 여자에 잡병이다! 몰아붙여라!”
함성이 터져 나오며 도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카치운은 충격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잡병…….”
“저 새끼 지금 날 제외한 거요?”
가르달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자, 에드워드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드워프는 키가 작아서 안 보였나 본데?”
가르달은 분노에 차 일어났다. 소금산의 명사는 전례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네놈들 키를 드워프 평균에 맞춰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