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온천마을 (2)
신에 대한 경건함을 유지한다.
죄를 씻어낸다.
악취가 병을 유발한다.
더러움은 신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이 정도나마 틀이 잡힌 위생 개념은 목욕탕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키기에 충분했다. 교회도 목욕에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목욕탕에 차려진 매춘굴이 문제지.
그러나 상당수의 대중목욕탕은 나무통을 여럿 가져다 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큰 대중탕은 큰 도시에나 있을까 말까…… 특히 스텔라와 리안나는 돌로 만들어진 초대형 목욕탕을 본 적이 없었다. 개헤엄으로 욕조를 한 바퀴 돌고 온 밴시가 감탄하듯 말했다.
“엄청난 낭비네요. 물이 계속 흘러들어오고 나가요. 욕조가 아니라 못인데요?”
“고인 물은 더러워지니까.”
실오라기 하나 없이 욕조에 몸을 기댄 베로니카는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마찬가지로 식사로 나온 빵을 씹으면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물이 고이면 이끼가 끼고 벌레가 생기죠.”
“아니면 왕실의 권위를 위해 아랫사람들에게 ‘물을 나눠 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옆에 앉은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소금산의 폭포수와 비슷하네요. 용도는 전혀 다르지만.”
“물 쓰는 곳은 다들 생각이 비슷하죠. 깨끗하고 좋은 물은 높으신 분들 먼저.”
“그 말씀 대로예요. 그나저나…….”
헬레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여자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귀부인들은 물론 하녀들까지 헬레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엘프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들이 있는 건 알지만, 어째 여긴 유독 심한데요?”
“엘프의 문제가 아니라 헬레나 양의 문제일 것 같은데요.”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헬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네? 특정 체형은 온천에 들어오면 안 되나요?”
“아뇨. 이 온천 효능이라고 선전되는 것 중 하나가…… 여자를 더 풍만하게 만들어 준다나 어쩐다나.”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헬레나의 가슴팍을 향했다. 온천수를 밀어내는 압도적 중량감. 스텔라는 먹던 빵조각을 쓰게 삼켰다.
“뒤에서도 보일 지경인 게 더 커지면 괴물이잖아요…….”
헬레나가 말없이 탕에서 일어나려 하자 베로니카는 그녀를 붙잡았다.
“온천 효능 같은 거 너무 의식하지 마요. 과장과 거짓도 많으니까.”
“그, 그렇겠죠?”
“그럼요. 그냥 몸을 씻는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는 거죠. 사람들이 자꾸 효능, 효능 하는데 진짜라도 그게 한번 들어갔다고 나타나겠어요?”
베로니카는 턱 밑까지 탕에 몸을 푹 담그며 말했다.
“그런 것보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죠.”
“어째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시오니아는 더 자주 씻거든요.”
“시오니아라…… 베로니카 양은 거기 출신이라셨죠?”
“네. 오빠가 그곳에서 나름 잘 나가는 영주죠.”
“전에 들은 적 있네요. 신랑감 알아 놓을 테니 그만 귀환하라던…….”
“가끔 있죠. 여자가 무슨 사제고 법관이냐는 꼰대들.”
헬레나는 오빠를 꼰대로 비난하기 시작한 베로니카의 한탄을 한참 얌전히 들어주다, 겨우 그 한탄이 멈출 때쯤 자기 질문을 꺼냈다.
“그럼 시오니아에서 앵글리아까지 와서 에드워드 경을 고른 건가요?”
“누가 들으면 제가 시오니아에서 걔를 일부러 찾아간 줄 알겠네요. 마침 앵글리아에 왔는데 걔가 제일 쌌어요. 초기 투자 비용이 세게 들어서 문제였지.”
“아, 말이 죽고 하인들이 떠나 버렸다는 이야기요?”
“그 자식과 단둘만 남게 되었을 때 정말 많이 싸웠죠. 콜체스터로 돌아가서 도로 왕성 감옥에 처넣어 주려 했는데.”
“안 넣으셨네요?”
“그야, 거기로 돌아가라 하면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베로니카는 술잔을 쭉 비웠다.
“갑자기 돌변해서 저한테 칼을 겨누거나 훌쩍 떠나 버려도 문제였으니, 그냥 인간 하나 구제하는 셈 치고 적응 훈련부터 한 다음 새 하인을 고용하기로 했어요.”
“등짝 때리기도 혹시 그때쯤부터?”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부터요.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그리고 적어도 말은 안 죽이게 될 때쯤에…….”
베로니카의 눈이 스텔라랑 물장난을 치는 리안나를 향했다.
“쟤를 잡아서 하녀 고용할 돈은 굳었죠.”
“쟤는 고생하는 것만 보면 에드워드 경의 속죄까지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헬레나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베로니카는 웃다가 술잔을 탕 안에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겨우 잔을 수습하고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구제하는 셈’ 치고요. 정말 구제될지는 그 녀석한테 달린 문제겠지만.”
“일부러 죄인을 고르신 건 가격 문제만이 아닌 모양이군요.”
“순례길이잖아요. 내가 이 녀석을 갱생시킬 수 있을까 하는 도전의식도 있었고, 이 녀석이 어떤 원석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깔고 시작하긴 했죠.”
“원석?”
“단순히 잘 먹고 잘 싸우는 기사 그 이상의 존재요. 뭐, 정말 그것밖에 못 하는 놈이라면, 말 안 듣는 망아지에 불과하다면…… 그냥 최전선으로 보내 버릴 테지만.”
“만티코어 잡기 전에도 그런 이야길 하셨죠. 최전선으로 보내면 그만이라고.”
“그랬던가요? 엘프는 기억력이 좋네요.”
“이젠 에드워드 경이 최전선으로 간다면 저도 따라가게 됐지만요.”
“저런. 헬레나 양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그건 상관없어요. 서로 자존심 싸움으로 시작한 관계지만…… 전사라면, 망나니 기사 곁에서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문제는 당신이죠.”
“저요?”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 경은 뱀파이어 대신 당신을 선택할 정도였잖아요. 당신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든, 기대해 볼 만하지 않나요?”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뱀파이어의 협상 조건이 그 녀석의 욕망 미만이었다잖아요. 그 욕망엔 저뿐만 아니라 당신마저 포함되었다고요?”
“욕망 앞에서 후퇴할 인간은 아니긴 하죠. 에드워드 경의 꿈이 한 침대에 여자 열둘을 동시에 넣는 거라 해도 이상하지는 않아요.”
헬레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자가 옛 여자의 사악한 약속보다 당신을 선택해 살린 거예요. 흥미롭지 않나요?”
베로니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헬레나 양이 그 녀석한테 엄청 너그러워진 줄은 몰랐네요.”
“저도 아직은 절반이에요.”
그때쯤, 물벼락으로 리안나를 더 깊은 곳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한 스텔라가 베로니카 곁으로 다가왔다.
“뭐 재밌는 이야기 있어요? 기사님 이야기?”
“그런 거 찾는 귀는 엘프보다 밝으신가 보네요.”
스텔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야 술사 생활은 낙이 없잖아요!”
“알기 쉬운 이유라 다행이군요. 제일 지쳤던 사람이면 적당히 하고 쉬세요, 좀.”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뭔데요?”
“사제님이 기사님이랑 진도 나가야지, 기사님이 저한테 수작 안 부리죠.”
“기사가 호위대상에 손대면 임무 실패거든요? 아니, 그나저나 에드워드가 수작 부려요?”
“기사님이 신발 사 준다는데, 그걸 미끼로 뭔 짓을 할지 걱정이 좀…….”
“그게 걱정되면 자기 돈으로 신발 좀 사요! 도박으로 다 날리지 말고!”
투닥거리는 사제와 마법사를 보고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결국 다음 날 아침, 에드워드와 베로니카와 스텔라는 제화공 앞에 섰다.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베로니카를 보았다.
“그래서 나 감시하러 왔냐?”
“아니면 내가 이른 아침부터 여기 따라오겠니?”
“내가 이른 아침부터 신발 사 주다 말고 여자 덮칠 놈으로 보여?”
“아니야?”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아니하지 못하므로…….”
짜악!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후려갈긴 다음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제화공에게 말했다.
“신발 맞출 시간이 있을까요?”
“주문 제작은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이 걸리겠군요. 오늘 오전에 출발하실지도 모른다면서요? 이미 만들어 둔 것 중에서 골라 보시죠.”
“만들어 둔 것도 있나요?”
“여행객들이 들르는 길이다 보니 수요가 있어서 모카신 정도는 늘 여벌을 만들어 두긴 합니다.”
“역시 제일 큰 제화공 집을 찾는 게 정답이라니까.”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새로 만드는 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제화공은 웃으면서 말했다.
“집만 큰 게 아니라 솜씨도 여기 제일입니다. 싼 가죽들로 만든 모카신들부터 보시죠.”
“싼 것도 필요하긴 한데, 좀 좋은 걸 주려고 해서.”
“좋은 거라. 하긴 길이 험하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제화공은 자기 작업실로 들어가더니 제법 근사한 가죽 장화 한 켤레를 들고 나왔다.
“다른 고객의 주문을 받아 만든 것들 중 하나인데, 마법사님의 발에 맞을 것 같군요.”
“엥? 그럼 그 주문은 어쩌고?”
“기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새로 만들면 됩니다. 궁정백님 손님이면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어머나, 미안해서 어쩌나.”
스텔라는 내키지 못하는 척하면서 그 장화를 받아 신어 보았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엔 돈과 시간 있을 때 미리 주문해요.”
에드워드는 그 장화에 싼 모카신 몇 켤레를 추가하고 계산했다.
“이제 발 잘린 마법사 볼 일은 없겠지.”
“꼭 무시무시한 말씀을 붙이시네…….”
스텔라가 투덜거릴 때 헬레나가 구둣집에 들어섰다.
“에드워드 경? 다 끝났나요?”
“응. 왜? 지금 출발한대?”
“아뇨. 그 반대에요. 상단 대표는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고, 사람들은 포기한 채 여기저기 흩어졌죠. 갑자기 날이 갤 것 아니면 점심때까지 기다려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에드워드는 구둣집을 나와보았다. 과연 고갯길 쪽 하늘은 이 마을보다 어두컴컴하고 구름이 낮게 깔렸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까보다 더 안 좋은데.”
* * *
“자, 그런고로. 다시 온천 대실.”
먼저 탕에 들어와 있던 에드워드의 말에, 모두는 절반만 납득했다.
“그런데 왜 남녀 혼탕이에요?”
스텔라가 안 내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헬레나는 수건의 면적이 모자라서 쩔쩔맸다. 베로니카는 미간을 잔뜩 좁혔다.
에드워드는 뭐가 대수냐는 표정을 지었다.
“수건으로 가렸으면 됐지 뭐.”
에드워드가 이번에 빌린 곳은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좀 더 작은 탕이었는데, 휴양궁전 안에서도 좀 비싼 곳이었다. 사람들끼리 양측에 마주 앉고 그사이를 나무판이 가로지르는데, 그 위에 음식이 번갈아 올라오는 호화 코스였다. 베로니카는 스텔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잘 챙겨 주는 척하더라니, 이런 거 꾸미고 있었니?”
“여기까지 왔으면 이런 거 한번 해 봐야지. 왕처럼 놀자는데 싫다는 사람 있나?”
에드워드나 너스레를 떨자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기왕 할 거면 남녀 따로 주문하지. 혼탕은 때때로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는다고. 그런 걸 사제한테 권하다니.”
“남녀 따로는 비용이 2배거든. 여하튼 내가 사는 거니까 사양 말지?”
“잘 먹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스텔라와 리안나는 바로 탕에 들어가 식사를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돈이 궁한 여마법사와 고기에 영혼을 판 요정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에드워드 맞은 편에 앉았고, 헬레나도 그 옆에 들어왔다.
베로니카는 나무판자 위 음식들을 보곤 말했다.
“호사이긴 하네.”
“반쯤은 널 위해서다.”
“응? 나?”
“난 그래도 베니아에서 한 달 동안 재밌게 논 셈인데, 넌 계속 재판 업무 처리했잖아. 좀 쉬어야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향해 눈을 흘겼다.
“웬일로 기특한 소릴 다 하니?”
에드워드는 멋쩍은 듯 옆으로 눈을 돌렸다.
“소비엔 핑계가 필요하거든.”
“역시 에드워드 경은 토벌대장감이 맞소!”
마주 보는 사람 없이 혼자 앉은 카치운 너머, 욕탕 반대쪽 끄트머리에 앉은 로드리고가 말했다. 조르쥬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물론이고 파트너까지 다 챙겨 주시다니, 호걸이시군요.”
로드리고와 조르쥬의 맞은 편에는 웬 여자 둘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 여자들은 이곳 손님들이 데려온 하녀들인데 조르쥬와 로드리고가 밤새 꼬셨다고 한다. 에드워드는 이죽거렸다.
“어쩐지 밤이 되어도 욕탕에서 안 나오더만.”
“밤의 대중탕은 하인 하녀들이 쓰는 시간이자 혼탕이거든요. 하하!”
조르쥬가 태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창부 출입 금지라면 안에서 여자를 만들면 되는 일. 에드워드는 그들에게 질문했다.
“주인한테는 양해를 구했소?”
“미리 사전 조사를 다 했지요. 이것도 인연인지라 허락을 얻는 건 쉬웠죠.”
기사가 눈치 주면 거절 못 하는 계급의, 하녀 하나쯤 빠져도 문제없을 만큼 하인 하녀를 데려온 주인들에게 허락을 얻었다는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감탄했다.
“재주 좋군. 부지런하시네.”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예를 들어 제 파트너 아가씨의 고용주는 은퇴한 상인인데, 요즘 곡물 시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응? 기사가 관심 가질 이야기요?”
조르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앵글리아 국왕이 성지 순례에 나섰답니다.”
에드워드는 기겁했다.
“그게 뭔 소리요?”
“군대 6천을 이끌고 출발한다더군요. 왕궁은 왕세자와 재상들에게 맡기고요. 아퀴타니아 남부 항구를 이용할 거라고 해서 그 경로에 있는 물건값이 폭등하고 있답니다.”
조르쥬의 옆에 있던 로드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긴 이단 반란으로 떠들썩한 곳들 아니오? 설마 꺽다리 로버트가 아퀴타니아를 돕는 건가?”
“아니…… 우리 폐하라면 절대 그런 생각으로 진로 잡은 게 아닐 거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두 기사의 시선이 그에게 박혔다. 조르쥬가 물었다.
“그렇다면?”
“거기가 지름길이거든. 앞을 막는 게 있으면 아퀴타니아 국왕이건 이단이건 상관없이 박살 낼 거요.”
“하긴. 꺽다리 로버트라면 그러고도 남을지도 모르지.”
“에이씨, 폐하도 너무하시네. 성지 갈 거면 나도 데려가지. 난 빙빙 돌아서 가고 있는데.”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내가 너 안 데려갔으면 로버트 왕의 출발 전에 넌 참수형이었어.”
“하, 내가 미쳐서 열쇠검에 손을 댔구나. 이런 날이 올 줄도 모르고.”
“열쇠검에 손을 안 댔어도 기사로서 불완전한 자가 왕의 성지 순례에 따라갈 수 있었을까?”
“그건 부탁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잖아. 6천이나 데려가는데 꼽사리는 낄 수 있었을걸.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깝네.”
에드워드는 현자타임이란 게 무슨 말인지 새삼 느끼고 목욕탕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로드리고는 포도주를 홀짝이다가 말했다.
“오히려 그 반대 아니오?”
“무슨 말이오?”
“에드워드 경이 성지로 가는 동안 겪는 이야기들은 앵글리아 궁정에도 보고되고 있을 것 아니오? 꺽다리 로버트가 그것에 자극받아 성지 순례를 결심한 거라면?”
“에이, 설마 국왕이 일개 기사의 모험담에…….”
스텔라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에드워드는 도로 고개를 내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폐하라면 그러고도 남지…….”
“대체 앵글리아 왕실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스텔라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앵글리아가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아퀴타니아나 트레베리아와 다시 전쟁할 여력까진 안 되거든요. 교황청도 파문을 불사할 거고. 심심하면 일회성 원정 순례를 결정할 수도 있겠죠.”
에드워드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명성을 올리고, 성지에 친앵글리아 세력을 만들고, 종교적 욕구도 충족시키고, 몇몇 기사들을 그곳 영주로 심어 놓을 수도 있는 일회성 원정 순례.
“왕이나 대영주쯤 되면 심심할 때 할 만하지…… 전쟁도, 원정도. 역시 출세를 해야 해.”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넌 눈앞의 여자들 간수나 제대로 해.”
“그거 너 포함이냐?”
“색욕의 의미 말고! 잘 지키라고. 네 출셋길이 나한테 달려 있다는 거 잊지나 마라? 저번처럼 뱀파이어에 홀딱 낚여서…….”
“나만 낚였나, 그거.”
“아무튼! 내가 시오니아에 도착 못 하면 약속이고 뭐고 다 말짱 꽝이야.”
“그것도 저주가 풀려야 말이지. 젠장.”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읊으면서 엽색행각 벌일 시간에 회개나 해라?”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고 웃으면서 베로니카한테 시선을 돌렸다. 수건, 물, 증기, 나무판자 따위에 가려졌지만 육감적인 몸매임은 여전했다.
“너랑 다니는 한은 좀 무리일 것 같다.”
엄청나게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베로니카는 인상을 쓰고는 에드워드의 정강이를 살짝 찼다.
“종마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