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온천마을 (3)
이틀째까지는 분위기 좋게, 느긋하게 쉬었지만 사흘, 나흘째부터는 다들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흘째에 에드워드, 로드리고, 조르쥬는 아침부터 상단 대표와 함께 하늘을 보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다들 그랬다. 더 이상 상단에는 순례자들이 모이지 않았다. 각 일행 중 한 명만 나와서 상단 대표 옆에 있었다. 그가 출발을 결정하면 바로 일행에 전파하게. 에드워드 일행에서는 리안나가 그 역할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했다.
“휴양왕궁은 다 좋은데 창부 출입 금지라는 게 참 문제요.”
로드리고의 말에 에드워드는 짧게 웃었다.
“어쩌겠소. 그쪽도 품격이란 게 있단 거지.”
휴양지의 창부들은 낮도 밤도 없었다. 밤만 일을 뛰는 사람이 있으면, 낮에 일을 뛰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기사 삼인조가 들어간 목욕탕은 제법 컸는데, 욕조는 커다란 나무통에 불과했고 두 사람이 마주 앉는 형태였다. 휴양궁전의 온천과 달리 시작부터 얇은 옷만 걸친 여자 종업원들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손님이 손목을 잡아끌면 같이 탕에 들어가서 식사와 잡담을 하기도 했다.
“어머나, 기사님 아니세요?”
한 여성이 에드워드의 옷을 벗겨 주다 말고 아는 척을 했다. 제법 고운 여자였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뉘시더라?”
“기억 못 하시네. 하긴 당연하겠지만. 저희 부부도 상단 행렬에 있거든요.”
“응? 근데 여기서 뭐 하쇼?”
“뭐하긴요. 여비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돈 벌고 있죠. 이렇게 한숨 돌릴 수 있는 마을이 있다니, 천만다행이지 뭐예요?”
“남편은?”
“여기저기에 물 긷는 막노동꾼으로 일하고 있지요. 아침부터 바빠서 만나기도 힘들어요.”
여자는 에드워드의 팔을 끌어안고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얇은 옷은 어느새 푹 젖어 있어서, 속이 훤히 비쳤다. 돌아보니 로드리고와 조르쥬도 여자들이 붙어 있었는데 다들 오가는 대화 내용이 비슷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순례를 하러 간다면서 죄를 쌓으시오?”
“어쩌겠나요? 부부가 나란히 굶어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괜찮아요. 어차피 성지 가면 죄는 없어지니까.”
“합리적이군. 그런데 감기 걸리시겠는데.”
여자는 깔깔 웃었다.
“여기는 더우니까 괜찮아요. 아니면, 이것마저 벗어도 괜찮은 곳으로 가실까요?”
바로 2층으로 올라가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참 단단하기도 해라…….”
여자의 눈은 탐욕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만 성욕만이 아니라 뭔가 불길한 것까지 싹 튼 눈빛이었다.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성지보다는 가깝겠군.”
* * *
“오늘도 안 되겠대요. 내일은 허리띠한테 시키세요. 번갈아 해야 공평하지.”
점심때가 다 되어 돌아온 리안나가 투덜거렸다. 허리띠 캐슬린은 깔깔 웃어 버렸다.
“그럼 네가 남탕에 들어가서 기사님 몸 닦아 드릴래?”
“그게 뭐 어려울 게 있나요?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약 붓고 돌판에 문지르면 되잖……?”
“내가 빨랫감이냐!”
밴시보다 약간 늦게 들어오다 그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밴시를 한번 거꾸로 들어주었다. 징계가 끝난 뒤 그는 툴툴거리는 밴시를 향해 말했다.
“어쨌든 수고했다. 자, 점심 고기.”
에드워드가 내민 건 채소와 고기를 잔뜩 끼워 넣은 빵이었다. 리안나는 바로 그걸 받아들고는 질문했다.
“기사님은 식사하셨어요?”
“아니. 방금 욕탕에서 나왔어. 궁정백이신 주교님이 오늘 여기 오셨다고, 같이 식사하자신다.”
“와! 또 기사님만 좋은 거 드신다!”
“그래서 네 빵에도 고기 많이 넣어 놨잖아. 나와 베로니카만 가는 거라 어쩔 수 없어.”
“가르달 영감님만큼의 고기를 요구합니다!”
“누가 영감님이야! 그리고 넌 적게 먹어도 되는 요정이잖아!”
연초를 뻑뻑 피우던 가르달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에드워드도 고개를 저었다.
“네 뱃속에 드워프 수준의 고기를 어떻게 다 넣냐. 먹지도 못할 거 욕심부리지 마.”
“놔뒀다 먹으면 되죠!”
“애가 많이 탐욕스러워졌구만.”
“이 일행 따라다니면서 얻는 제 낙이 지붕 아래서 자는 거랑 고기 먹는 거잖아요!”
밴시의 말에 허리띠가 에드워드의 뒤에서 깔깔거렸다.
“고기에 영혼을 판 요정 같으니.”
둘이서 머리채 붙잡고 투닥거리는 걸 구경하던 에드워드는 헬레나에게 말했다.
“리안나한테 고기 좀 더 줘.”
“얼마나요?”
“재량껏. 뭐, 휴양지니까 인심 좀 쓴다.”
에드워드는 뒤늦게 내려온 베로니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눈을 흘겼다.
“너 아침부터 어디 막 돌아다니다 왔니?”
“아, 저기 계신 기사 동무들하고 다른 욕탕 구경도 좀…… 물 좋더라.”
조르쥬와 리카르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실휴양궁전을 두고 다녀올 정도의 여관이 어디 있을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순례자들과 경건한 만남을 좀 가졌어. 여비를 벌기 위해 남편이 물지게를 지고 아내가 종업원으로 뛰는…….”
짜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휴양궁전을 울렸다.
* * *
왕궁의 좀 더 깊은 곳에서, 점심 만찬을 연 주교이자 궁정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흔한 이야기지. 앵글리아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은 아퀴타니아 북부에서 여비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구걸과 매춘에 나선다지 않나.”
문맹률이 높고 세계관은 관념적이거나 협소한 시대. 체계적인 지도와 거리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널린 법이다.
“트레베리아도 마찬가지라네. 폴라 항에 도착할 때쯤이면 다들 알거지가 되지.”
“그 어느 때보다 적선이 간절한 사람들이지요.”
에드워드가 맞장구를 쳤다.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돈을 미끼로 유부녀한테 들러붙다니.”
“누가 들으면 협박한 줄 알겠네. 남편도 알고 보낸 걸 텐데 뭘. 여자도 어차피 성지에 가면 죄가 사라진다고 거리낌이 없더라.”
“올바른 순례의 태도가 아니야. 그래서는 없어질 죄도 안 없어져.”
“그건 아는데, 그럼 길바닥에서 부부가 굶어 죽으리?”
“그들은 그렇다 쳐도, 넌 제대로 해야지! 같이 어울려 주면 어쩌잔 거야?”
주교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만들 하게. 그 주제로 싸우면 밤까지 싸울 거야. 일선의 사제들도 어려워하는 이야기니까. 화제를 돌리지. 식사는 마음에 드나?”
“최고입니다. 매운맛이 제 입맛에 딱 맞군요.”
에드워드는 격찬했다. 그는 여러 요리 중 새빨간 국물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통상 국물 요리는 귀족이 손님에게 접대할 경우 비싼 재료들을 때려 박는데, 그의 앞에 놓인 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쇠고기와 와인을 넣어 끓이는데 향신료도 듬뿍 추가한.
주교는 에드워드의 전용 쇠숟가락에 가득 담긴 국물과 건더기를 보고 물었다.
“매운맛을 좋아하나?”
“예. 앵글리아에서는 파프리카를 구해도 매운맛을 내기가 어렵더군요.”
“그쪽 파프리카들은 안 맵나 보군.”
“쌀밥을 곁들여도 끝내주지요. 뜨끈한 국밥…….”
“쌀밥? 그렇게 먹는 방법도 있나?”
“이렇게 훌륭한 식사에는 빵 말고도 어울리는 게 있는 법이지요.”
베로니카의 시선이 묘해졌다.
“앵글리아에서 쌀밥을 먹어 봤다고?”
“왕궁에서 온갖 사람들 다 만나다 보면 별 걸 다 먹어 보게 되지.”
에드워드는 대충 둘러댔다. 실제로 왕실 식탁에 별미랍시고 올라온 적 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감히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베로니카는 그런가 하고 더 캐묻지 않았다. 주교는 자신의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쌀이라. 나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군. 하지만 당분간은 어렵겠지.”
“날이 춥고 길이 쉽게 안 열리니 말이죠.”
베로니카의 말에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며칠쯤 발이 묶이는 것은 흔한 일이야.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네. 곡물 가격이 전부 상승하고 있어.”
“들어본 것 같네요. 앵글리아 국왕의 순례 때문인가요?”
“그렇지. 6천 명의 장병이 움직인다니까 아퀴타니아는 물론 바닷길의 곡물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특히 지금 로버트 왕의 진로대로면, 이단 반란으로 그간 막혀 있던 아퀴타니아 남부 항구가 열리게 된단 말인데…….”
아무도 꺽다리왕 로버트가 이단 반란군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게 곡물 가격 상승을 부른 주요 원인이었다. 남부 아퀴타니아 항구가 열리면, 난민과 원정군과 순례객들을 위해 그쪽으로 곡물들이 흘러 들어갈 테니까.
베로니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근방도 영향을 받겠군요.”
“그렇겠지. 트레베리아도 곡물 수입량이 부쩍 늘었으니까. 내전이 장기화되면 필연적으로 농민들까지 피를 본다네. 귀족들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약탈전과 초토화가 뒤따르지.”
“교회와 궁정백께서는 어떻게 대처하려는지요?”
“다행히 미리 계약해 둔 곡물들이 있기는 해. 가격이 오르든 말든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사들이는 계약을 했지. 그 외에도 예산이 허락하는 한 곡물을 많이 사서 쟁여 둘 생각이라네. 하지만 불안한 소식들이 들려오더군.”
“불안한 소식들이요?”
“전서구를 타고 올 만큼 중요한 소식들이었지. 곡물을 실은 배들이 종종 입항하지를 못한다는 거야.”
“해적인가요?”
“그렇다네.”
에드워드는 쇠고기를 뜯다 질문했다.
“무슨 해적입니까?”
“다양하네. 범죄자들, 세트렛인들, 리자드맨들, 또는 토착영주들. 드물지만 오크들이 해적질에 나선다는 이야기도 있더군.”
범죄자들이야 당연히 있고, 어둠의 땅에서 나고 자라 악마를 숭배한다는 세트렛인들은 유구한 골칫거리고, 빛인지 어둠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중립 종족 리자드맨들은 유명한 해적들이다. 토착영주들이나 국가의 싸움은 때때로 어둠 진영의 해적들보다 위협적이다.
“자네들의 목적지인 폴라에 가면 방주기사단 지부가 있을걸세. 성묘수호기사단에 버금가지만, 육지보다 바다가 주 무대인 수호자들이지. 항구에 도착하면 그들의 정보들 좀 정리해서 편지해주겠나? 내 정보망은…… 언제부터인가 믿을 수 없게 되었네.”
“주교님의 정보망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주교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폴라는 인간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항구거든. 이곳은 애들 장난이야. 거기서 매수되지 않는 건…… 죽음뿐일 거라네.”
* * *
닷새째. 상단 대표는 드디어 출발을 결정했다. 날씨는 맑았고 일행의 정비는 웬만큼 끝났다. 스텔라는 새 신발과 양말을 빵빵하게 챙겼고, 리안나는 밀린 빨랫감을 해치웠고, 말들은 이제 운동을 못 해서 더 난리였다. 다만 불행이 없지도 않았다.
휴양궁전의 하녀들과 목욕탕의 유부녀들을 왕복하던 기사들 중, 조르쥬와 로드리고가 도둑을 맞은 것이었다.
“젠장!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방심하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여자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둘은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순례 그만두고 창부로 전직하기로 결정했나 보네. 그 유부녀들.”
타이밍까지 근사했다. 출발 직전에 돈을 훔쳐 가 버린 바람에 그녀들을 추적할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도둑년들은 일행이 출발할 때까지 잠수를 탄 다음 이 마을에서 창부로 영업을 시작할 것이다.
“흔한 일이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가 순례고 뭐고 다 잊어버리기까지 해. 순례를 하겠다면서 오히려 죄에 빠지다니, 황당하지. 차라리 구걸을 하거나 교회에 도움을 청하지.”
베로니카의 말투는 날카롭기까지 했다. 사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순례자들의 중도 포기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어. 그나마 피해액이 적은 것에 만족해야지. 기사 양반들, 내가 말 안 했나? 창녀들 옆에 누울 땐 돈주머니가 가벼운 게 좋다고.”
“그 조언을 받아들여 액수를 줄이긴 했는데, 설마 진짜 털릴 줄은 몰랐소. 아무리 창부들의 도덕 관념이 땅을 친다지만…… 대체 에드워드 경은 어떤 경험들을 쌓았기에 창부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는 거요?”
에드워드의 표정이 처음으로 띠꺼워졌다.
“많이 털리면…….”
“아.”
“저런.”
로드리고와 조르쥬는 한숨을 내쉬었다. 헬레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기사들보다 많이 털려 볼 정도로 엽색행각에 적극적이셨단 말이군요.”
“기사가 다 그렇지 뭐.”
“다른 두 분의 반응을 보니, 당신은 유독 심한 듯한데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그게 나아진 거예요?”
그때 저 멀리서 캐슬린이 날아왔다. 에드워드는 캐슬린에 매달린 돈주머니들을 턱 받았다. 모두 두 개.
“기사 양반들, 받으쇼.”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조르쥬와 로드리고가 되묻자 에드워드는 킬킬 웃었다.
“캐슬린에게 창녀들 추적해 놓으라고 명령해 놨소.”
뛰는 창녀들 위에 나는 에드워드. 기사들은 에드워드의 현명함을 찬양했다.
“역시 토벌대장감!”
“마법허리띠의 주인다운 행보군요!”
리안나가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사가 쪼잔하게 창녀랑 잔머리 대결을 한다아…….”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거꾸로 한번 들어주었다.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고 도끼눈을 떴다.
“잠깐. 너 또 갔니?”
“응. 난 안 털렸지만.”
짜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저 양반들 돈주머니 지켜 주러 간 거야.”
“네가 멀뚱하게 경비만 섰을 리가 없잖아. 뻔뻔하긴. 그나저나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는 들었어?”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짐마차 안으로 집어 던지고는 말했다.
“거인촌이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