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거인과 비버 (2)
다음날 오전, 길을 살피러 나온 상단 대표는 바로 좌절했다.
“왜 이번 여행은 가는 곳마다 이 난리야!”
그의 절규는 합당했다. 이상한 도적단이 행패를 부리더니 이번엔 비버가 길을 막았다. 농담이 아니다. 비버들이 잔뜩 쌓아 놓은 나뭇가지들이 길 곳곳을 막은 것이었다. 거인들의 말로는 일부 지역의 물길이 막혀 침수도 예상된다고 한다.
에드워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인들은 이걸 어떻게 뚫고 가지?”
베로니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냥 그때그때 치우거나 뛰어넘으면서 앞으로 나간대.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되지만, 상단은…….”
점프 가능한 수레가 만들어지면 그건 운송 혁명일 것이다. 길 안내를 맡은 티펜발트 촌장이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요. 원래 비버는 겨울이 되면 공사를 안 하는데…….”
“겨울 아니면 항상 이 난리요?”
“실은, 겨울이 아니어도 이 지경까진 안 옵니다. 이상한 일이죠.”
“뭘, 노래하는 비버도 있는데.”
“예?”
“농이오.”
에드워드는 좌절한 상단 대표를 보고 말했다.
“그나저나 이래서 수레도 없는 등짐장수들이 아직 명맥을 잇는 건가 싶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람의 두 발은 못 가는 곳이 훨씬 적으니까. 하지만 경제와 물류를 등짐장수들한테만 맡기면…….”
“상단도 나라도 망하고 한 100년 전까지 후퇴하겠지. 그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정작 마을 주민인 거인들은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대단한 장애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간혹 물길을 막아 고이게 하는 곳에 가서 철거할 뿐이라고. 상단이 사들이는 게 거인촌의 주 상품인 목재가 아니라 그런지, 마을은 위기감이 낮았다.
엉망이 된 길을 보며 잠시 생각해 보던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짐마차도 여길 통과하지 못하겠네. 방법을 찾아야겠어.”
“다 해체해서 짊어질까? 수레 대신 짐말에 실으면…….”
“어찌어찌 돌파는 가능하겠지만,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의 양이 확 줄어들겠지.”
“흠. 아낙족 양반들은 그걸 노리는 건지도 모르겠군.”
“노려?”
“여행자들이 마차와 짐을 급히 처분하면 누구한테 얼마나 받고 팔겠어?”
“뭔가 얌체 같은 수법이네.”
“재난을 돈으로 바꾸는 법이 다 그렇지.”
“네가 말하니 묘하네. 일단 마을로 돌아가자.”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마을로 돌아와 보니, 순례자들까지 분열될 기세였다. 일부는 상단과의 동행을 그만두고 먼저 길을 헤쳐나가고자 했고, 또 일부는 상단에게 길을 치워 주는 노동력을 제공할 테니 돈을 달라 그랬다. 또 일부는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서 마지막 갈림길까지 거슬러 가려 했다.
어찌 되었든 거인들만 신났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소동물이 우리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일이 지금까지 몇 번 있었지?”
“두 번. 거대 꼽등이, 그리고 거대토끼. 투리치 시의 조그만 마물들을 빼면.”
“첫 번째는 연금술사의 실패한 실험 탓이었고, 두 번째는 주술사 니코스의 건망증 탓이었지. 이건 뭐일 것 같아?”
“이번 건 거대화는 아니고 단순 이상행동이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긴 한데…… 만약 이게 동물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면, 주술사의 짓일 가능성이 높아.”
“거인족 주술사가 일부러 저지른 짓이라면?”
“그러면 내가 바로 알아차릴걸. 이 마을에는 주술사가 없어.”
“그럼 다른 데 주술사가 있는 건가?”
“아까도 말했잖아. 사람의 일이라면 그렇단 말이지. 동물의 일이라면 우리가 손 쓸 방법 따윈 없어.”
“골치 아프게 됐군. 어쩌지?”
“일단 상단 대표의 결정을 기다려 보자. 늦어도 하루 이틀 안에 결론을 내리겠지.”
두 남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관에 돌아와 보니, 지클린이 난로 앞에서 요리를 잔뜩 차리는 중이었다. 그 옆에서 카치운이 단도로 감자를 깎으면서 말했다.
“점심은 좀 더 기다리쇼.”
“댁이 돕는 거요?”
“심심해서.”
가르달은 여관 밖에서 손질한 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손님까지 동원하는 여관이라니, 알뜰하기 짝이 없구만.”
“미안해서 어쩌나. 동생들이 다 독립해 버려서 일할 사람이 없거든요. 가끔은 몸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니까요.”
지클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가 슬쩍 딴죽을 걸어 보았다.
“셋이 아니라?”
“셋은 일하고 하나는 놀아야죠?”
“기적의 계산법이군.”
“합리적인 거예요. 셋이 일해야 한 명이 놀고먹을 여유가 나오지 않겠어요?”
가르달은 무심코 양의 피가 묻은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거 그럴싸하군!”
베로니카는 어이없다는 듯 딴죽을 걸었다.
“뭘 진지하게 고민해요? 수염이나 닦아요.”
“아뿔싸!”
한참 뒤 만들어진 요리는 버섯, 고기, 당근, 감자를 듬뿍 넣은 스튜였는데, 사실 어제 남은 스튜에다 물과 재료를 추가해서 한 번 더 끓인 것이었다. 일명 만년스튜. 여관의 흔한 메뉴지만 이곳은 버섯 종류가 풍부히 들어갔다는 게 특징이었다. 에드워드는 복잡한 향에 코를 킁킁거리다 말했다.
“산골은 산골이네. 버섯을 이렇게 많이 넣다니.”
지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에 사는 인간들이 채집해 오죠. 상품으로는 팔지 못할 하급품을 받아 왔어요.”
“상품?”
“여러분과 같이 온 상단이 이곳에서 사는 게 버섯과 꿀이죠. 작고 비싸거든요.”
“흠. 그런데 길이 막혀서 상단이 돌아가면, 못 파는 것 아닌가?”
“그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대단한 문제는 안 될 거예요. 등짐을 지고 다른 도시까지 가서 파는 수도 있으니까요. 찾아오는 상단에 파는 것보다야 수고롭겠지만.”
로드리고는 꿀에 흥미를 보였다.
“꿀이라. 이 여관에서는 안 파시오?”
지클린은 손사래를 쳤다.
“저는 꿀 따러 다닐 시간 없어요. 그렇다고 인간 채집꾼들과 교환할 물건도 없고.”
“많이 바쁜가 보군.”
“바쁘죠! 양 돌봐야지, 손님들 식사 차려야지, 술 사 와야지, 양털 깎고 실 뽑아야지…… 밤손님 받을 때도 있고. 뭐, 그건 자면서 해도 되지만요.”
“마, 마지막은 말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소.”
그러다 보니 메뉴는 만년스튜 하나뿐이고 양들은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에드워드도 꿀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보였다.
“꿀 좋지. 한 병 장만해 놓을까.”
베로니카가 눈을 흘겼다.
“베니아 있을 때 심심하면 당근 케이크 주문해서 먹었잖아?”
“당근맛과 꿀맛과 설탕맛이 같냐?”
호화 식탁에서 꿀과 설탕을 대접받은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쟁여 놓은 적은 없다. 카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꿀을 요리 재료로 써도 나쁘진 않을 텐데.”
가르달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유목민 요리 중에 꿀 쓰는 것도 있소?”
“내가 뭐 유목민 요리만 하나? 여기저기 오가며 배웠소.”
“나중에 식당이라도 차리게?”
“진지하게 고민하긴 했지. 영웅의 활을 얻기 전에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카치운네 집밥은 꽤 맛났지?”
그러자 가르달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뭐야? 그런데 왜 여행 중 식사는 나한테 맡긴 거요?”
카치운은 짧게 대답했다.
“난 요리사로 고용된 게 아니잖소.”
“이야, 돈 밝히긴!”
“이 괴상한 일행에서 제대로 고용된 건 나뿐이잖소. 사람을 부리고 싶으면 별도 요금 챙겨야지.”
스텔라도 이의를 제기했다.
“저도 정식 계약 맺고 고용된 몸인데요?”
“너 술사잖아.”
“그래서요?”
“그럼 교수의 노예에서 기사의 노예로 전직한 거지.”
“와, 아저씨 나빴어!”
스텔라의 비명에 다들 웃어 버렸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도 꿀과 버섯 좀 사 보자고.”
식후 바로 에드워드 일행은 여관 밖을 나섰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스텔라와 꼬질꼬질한 양털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리안나를 빼고. 양 냄새 나는 숙소 안보다는 조금 추워도 거인마을 구경이 더 보람찬 법이다. 두 기사 중 로드리고도 따라왔는데, 그 역시 에드워드 일행과 마찬가지 이유였다. 그러나 조르쥬는 따라오지 않았다.
“전장을 구르면서 악취 나는 잠자리 따위는 안 가리게 되었다고 생각했소만, 역시 귀족이 묵을 숙소는 아니더군요.”
로드리고가 넋두리처럼 말했다. 다소 계급주의적인 발언이지만 에드워드는 이해했다.
“이와 벼룩이 적은 건 그나마 다행이오. 밴시가 양털들 관리도 좀 하면 나으려나.”
밴시 리안나는 더럽고 꼬질꼬질한 양들이 냄새의 원인임을 알고 기함했다. 세탁요정의 본능은 산 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르달이 물 나르는 들통에 구멍을 뚫어 물뿌리개를 만들어 주자, 리안나는 아침부터 그걸로 양들을 씻기기 시작했다. 물은 모자라고, 날은 춥고, 때는 많고, 양들은 성난 상태인 것 등 악조건의 연속이었지만 밴시는 열성적이었다.
로드리고가 넋두리처럼 말했다.
“나도 저런 집요정 하나 잡았으면 좋겠소.”
“앵글리아까지 올 거유?”
“아, 그건 무리.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구려.”
1파티 1밴시의 꿈은 지리적 난제에 의해 사라졌다. 로드리고가 다시 말했다.
“저렇게 유용한 요정이 앵글리아에서는 죽음을 예고한다고 천대받는다니 믿을 수 없군. 소문과 선입견이 무섭긴 무섭소.”
“그러게. 나도 일찍 알았으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팔아치웠을 텐데.”
에드워드가 중얼거리자 베로니카가 그를 흘겨보았다.
“요정의 무리는 그런 데 민감해서, 천대받을 땐 흔하다가 교회나 자본의 표적이 되면 귀신같이 사라지지. 그리고 모든 밴시가 걔 같지는 않을 거야.”
“어, 설마 리안나보다 무능한가?”
“진짜로 죽음을 예고하거나 강력한 밴시가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저런.”
에드워드는 로드리고를 돌아보았다.
“그렇답니다.”
“아깝소.”
에드워드는 낄낄거리다 조르쥬가 없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조르쥬 경은?”
“숙녀분들 앞에서 꺼내긴 좀 민망한 이야기인데…… 지클린 양한테 도전한다고 남았소.”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고 에드워드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진심을 담아 애도했다.
“무모한 도전은 기사의 전매특허이긴 하지…….”
베로니카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넌 그 도전 안 하네?”
“내 취향의 도전이 아니야.”
“숙소를 여기로 잡은 보람은 있네.”
잠시 뒤 일행은 거인촌 구석에 있는 인간 거주지에 도달했다. 거주지라고 해도 집이 여섯 채에 불과했는데, 그나마도 한 집은 가장이 거인으로 그 가족은 혼혈이었다. 인간들의 남행상단은 이들의 주거래대상으로, 숯과 버섯과 꿀을 사곤 했다. 그래서 목재가 주 상품인 거인들과 달리, 상단의 위기는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꿀과 버섯을 주문하자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꿀은 조금 남았는데 버섯이 없습니다. 다 팔아서요.”
좋은 정보였다. 상단 사람들이 수레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수레를 포기하고 짐을 줄일 생각이었다면 새로 매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해결법을 찾거나 이전 분기까지 돌아가길 택할 것이다.
“하급품은?”
“손님들에게 드릴 건 못 되고…… 이미 주민들에게 다 나눠 줬죠.”
“저런.”
“다만 요즘 캐는 겨울 버섯은 상단과 계약되지 않은 거라 팔 수 있습니다. 채집꾼들이 캐오면 팔겠습니다.”
“아직 안 왔나?”
“어제 오늘 시작해서 아직은 물량이 없네요. 오늘도 아침에 나가던데…….”
토속 특산품 쇼핑을 기대하던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기다려야겠네.”
하지만 에드워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 쫓아가 볼까.”
“뭐하러?”
“심심하잖아. 지금 여관으로 돌아가면 양을 산 채로 세탁 중인 냄새와 맞닥뜨릴걸.”
“난 에드워드 경과 함께 가겠소. 산책하고 풍물구경하는 셈 치지.”
로드리고가 그 말에 얼른 선택을 내렸다. 가르달과 헬레나, 카치운은 그 반대였다.
“난 발이 느려서 포기하겠소.”
“저도 그럴 필요까진 못 느끼겠네요.”
“그러다 상단이 출발해 버리면 어쩌게? 가는 길마다 표시해 놓으쇼. 혹 상단이 출발하려거든 쫓아가서 알리게.”
남은 건 베로니카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따라갈게.”
“의외네. 난 네가 남을 줄 알았는데.”
“채집꾼 중에 불쌍한 처녀가 생길지도 몰라서.”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안내자를 따라 산으로 들어섰다.
“송로버섯은 지금이 제철이지요. 검은 건 서쪽으로, 하얀 건 남쪽으로 파는데 요즘 아퀴타니아 쪽은 난리가 난지라 검은 것의 수요가 떨어져서 가격도 떨어졌어요. 이 마을에서는 원래 돼지를 써서 찾는데 요즘은 개를 쓰지요. 오크 놈들 땅으로 들어가면 더 좋은 송로버섯도 많은데, 오크 새끼들은 먹지도 않고 팔지도 않습니다. 금은보화가 땅에 잠든 셈인데…….”
안내자는 말이 정말 많았다. 귀족 남녀들이 자기 말을 경청하면서 산을 오른다는 게 신난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겨우 그의 말을 끊었다.
“오크들은 송로버섯을 안 먹는다고?”
“예. 있는지도 모릅니다. 뭐, 먹거리로 사치 부리는 놈들은 아니고 그저 양이 중요할 뿐이라고 듣기는 했지요.”
“자기들이 안 먹을 거면 인간에게 팔아도 될 텐데.”
“그거 밀거래야! 오크들과 교역은 금지라고!”
베로니카가 태클을 걸었다. 안내자는 껄껄 웃었다.
“송로버섯을 찾고 캐는 것도 노하우라서 오크들은 못 합니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죠. 돼지는 쉽게 찾지만 자기가 먼저 탐욕스럽게 먹어 버리고, 개는 따로 훈련을 시켜야 하니까요. 사람도 전문 채집꾼이 아니면 못 알아보기 십상이랍니다.”
“그렇군. 그 새끼들 일망타진하고 버섯파티 하고 싶네.”
“하하! 놈들의 땅까지 갈 일이 있어야 말이죠. 게다가 이곳 거인들이 별로 의욕이 없어서요. 다들 힘은 끝내주는데도 평화주의 성향이 강하다니까요. 이곳 촌장은 그래도 옛날엔 날리던 용병이었다고 하던데…….”
안내자가 다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자 베로니카는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비텔리아의 관광객 안내꾼 영감들도 저 정도로 말이 많지는 않았어…….”
“동감입니다, 사제님.”
로드리고가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채집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호각 소리도 울렸다. 남녀 셋 정도였는데, 에드워드는 그들의 뒤를 쫓아오는 것들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래, 비버 소동이니 비버가 등장해야겠지. 근데…….”
“끼이이이익!”
비버들은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눈을 까뒤집고 채집꾼들을 쫓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으며 말했다.
“저게 인간도 쫓아오나?”
베로니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노래하는 비버도 있다며? 뭘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