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고기가 없잖아
다행히 비버들은 지난번의 꼽등이나 토끼들처럼 우글거리지도 않았고, 거대화하지도 않았다. 숫자는 다섯. 달리기 속도는 사람과 비슷했는데, 따라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에드워드는 선두에 달려오는 놈을 최대한 잔인하고 강렬하게 죽이는 걸 선호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선두가 당하는 걸 보면 발을 멈추기 때문이었다. 비버도 예외는 아니었다.
“큰 쥐새끼라!”
에드워드는 채집꾼들을 통과시킨 다음 선두의 놈을 향해 열쇠검을 휘둘렀다. 퍼억! 비버는 두 토막이 나서 나동그라졌다. 머리를 노렸지만 대가리는 약간 옆으로 흘렀다. 그래도 상관없다.
베로니카는 철퇴를 꺼내든 다음 외쳤다.
“난 앞니 큰 동물이 영 별로야!”
그녀는 망치로 자신한테 달려오는 비버를 후려쳤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세 번째 비버를 맞았다.
“이 새끼들, 안 멈추네?”
“주술로 속박된 놈들이야!”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거 같네.”
세번째 비버는 열쇠검에 주둥이부터 관통당했다. 놈의 앞니는 검손잡이에 이르러 멈춘 채 딱딱 부딪혀댔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완성된 비버 몽둥이로 네 번째 비버를 후려쳤다. 콰득!
베로니카는 다섯 번째 비버를 향해 외쳤다.
“너는 빛의 권능과 그 강함을 인정하라!”
그 순간 비버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 멈춘 채 이를 딱딱 부딪치기만 할 뿐. 상황 끝.
에드워드는 비버 몽둥이에서 열쇠검을 빼낸 다음 그 두 놈을 차례차례 확인 사살했다. 그리곤 다섯 번째 비버를 보며 말했다.
“토끼 때는 옆트임이었으니 이번엔 앞트임 어때? 가운데를 확 비우는 방식으로. 드물게 그런 마법사나 주술사들 돌아다니던데.”
“걔들이야 별짓을 다 하는 종자들이고…….”
둘이서 잡담을 하는 동안 마지막 비버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옆으로 쓰러졌다. 베로니카는 인상을 썼다.
“주술사가 연결을 끊었네.”
“뭐 쓸 만한 단서는 없어?”
베로니카는 쓰러진 비버를 살펴보더니, 목걸이 같은 걸 찾아냈다. 그녀는 줄을 끊고는 그걸 가져왔다.
“귀찮은 술법이지. 주술 걸린 비버 하나로 서넛을 더 통제하는 계단식이야. 이전에 우리가 상대해 본 것들과는 명백히 다른 유형이야.”
“그래? 그래도 어렵진 않겠네. 대형화, 지능화, 대량 번식 같은 것보다야 훨씬 낫지.”
꼽등이나 거대토끼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지 에드워드는 별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그의 등짝을 철퇴로 가볍게 때렸다.
“주술사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건 훨씬 전술적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비버는 큰 동물이라 대형화를 굳이 안 해도 돼.”
여기 있는 비버들은 적어도 40파운드급 이상. 에드워드는 그중 가장 큰 비버를 가리켰다.
“이거보다 커?”
물러서 있던 안내인이 대신 대답했다.
“큰 놈은 진짜 크지요.”
그때쯤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아낙족 벌목꾼들이 나타났다. 큼직한 도끼를 짊어진 그들은 죽은 비버들을 보자 당황했다. 우두머리 벌목꾼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호각 소리를 듣고 와 봤는데…… 당신들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건가?”
의심의 눈초리는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를 향했다. 채집꾼들과 안내인은 황급히 손을 내젓고 설명에 들어갔다. 베로니카가 중간중간에 한마디씩 끼어들면서 상황을 전부 파악한 거인들은 황급히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주민을 구해 주신 분들인 줄 모르고 실례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는데 호각 소리가 들리길래…….”
벌목꾼 우두머리의 사과를 에드워드는 점잖게 수용했다.
“오해할 만한 광경이긴 했지.”
베로니카는 벌목꾼들을 향해 말했다.
“비버가 사람을 공격하는 게 주술사의 수작이라면, 최근 길을 막는 비버들의 활동도 마찬가지겠지요?”
거인들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제 문제는 상단 대표의 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게 행렬 전체에 이익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어서 가서 상황을 파악해 봐! 그저 신기한 일이 아닌지도 몰라!”
거인들이 황급히 흩어지는 걸 보자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사실 이런 건 거인족들이 진즉 파악했어야 하는 거 아냐?”
“사람한테는 40파운드짜리 들짐승이지만 거인한테는 쥐새끼에 불과한 게 비버 아니겠어?”
에드워드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잠시 뒤, 거인촌 사람들은 거인이건 인간이건 다들 광장에 모여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차피 상단은 목재를 사가지 않는다든가, 버섯과 꿀 등을 못 팔더라도 근처에 팔면 된다는 식의 태도였던 사람들도 근심할 뉴스였다.
“비버들이 댐을 미친 듯이 만들어 댔소! 한두 군데가 아니오! 길과 물이 막혀서 지형이 변할 지경이오!”
한 거인 벌목꾼이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행자들을 상대로 돈이나 더 받아내 보려던 거인족들은 크게 당황했다. 뒤이어 산지기의 보고가 이어졌다.
“잡목은 그렇다 치고, 벌목할 나무들마저 빠른 속도로 해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버가 아닌 발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아낙족 촌장은 그 말에 바로 반응했다.
“비버가 아니라고?”
“인간과 거의 비슷한데 보폭은 더 크고 건장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보기엔 오크들의 것 같은데…….”
오크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순박한 거인들마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렸다.
“더러운 조그만 오크놈들! 비버가 나무를 쓰러뜨리자 훔쳐 간 거군!”
“초록곰팡이 같은 것들이 감히 우리 영역에 발을 딛다니!”
이야기를 듣던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오크 주술사라.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놈은 용병이겠지.”
에드워드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술법이 너무 강력해.”
“비버가 그리 무서운 동물이었냐.”
“비버 자체의 전투력이 문제가 아니야. 주술의 수준 이야기지. 동물 몇 마리를 부리는 주술이라면 흔하지만, 그 동물이 동족들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건 보통 수준으로 힘들어. 그런데 느닷없이 강해지는 주술사 같은 건 없거든. 예외가 있다면, 기원의 대상에게 잡아먹힌 주술사 정도?”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는?”
“……그 개새끼는 예외. 악마의 도서관에서 돌아온 놈이니.”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내겐 아주 귀한 선물 하나 준 양반인데.”
“정력강화부적? 그거 아직 안 버렸니?”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거인들은 당혹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오크들이 자기네 요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인들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듣자 하니, 오크들은 거인들의 영역 근처에 요새를 짓고 그 안에서 안 나온다고 한다. 호수를 낀 가파른 절벽 위에 있어서 거인들도 쉽게 못 건드린다고.
즉 오크들은 자기들이 직접 나오지 않은 채 비버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비버만 족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기, 기사님?”
그때 상단 대표가 슬쩍 에드워드에게 다가왔다. 저번 도적단 소동 이후 그는 에드워드 앞에서 저자세를 유지했지만, 이번엔 특히 더 저자세였다.
“듣자니 이단 재판에서 토벌대장 중 하나로 활약하셨다지요?”
“그런데?”
“절벽 위에 있는 바위산 요새를 겨우 18기의 병력으로 함락시키셨다던데요?”
이곳 사람들은 보병과 기술자와 비전투병력을 계산에서 빼는 버릇이 있어 소문도 조금 왜곡된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굳이 덧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기사님의 용맹이면 오크들을 물리치고 거인족들의 곤란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베로니카가 그를 흘겨보았다.
“순례자들이 도적단한테 납치당할 땐 심드렁하던 분이 거인족을 상대로 자비심에 눈을 떴나요?”
“제가 원래 그리 무자비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사제님. 그런데 딸린 입이 많아서…….”
상단 대표가 궁색한 해명을 늘어놓자 에드워드가 끊었다.
“오크 새끼들 족치고, 비버 부리는 주술사를 죽이고, 거인들로 하여금 길을 뚫게 하자?”
“바로 그겁니다!”
상단 대표는 박수라도 쳐 줄 기세였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오크 규모가 얼마나 되지?”
“촌장에게 물어봐. 근데 묻는 순간 네가 개입해야 되는 거, 알지?”
에드워드는 짧은 고민 뒤 아낙족 촌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크 새끼들 숫자가 얼마나 되는 거요?”
“제법 큰 무리입니다. 못해도 100은 될 것 같더군요. 전에 파악하기로는 아직 부락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닌데…….”
“무슨 근거로?”
“젊은 전사 비중이 높고, 대장은 있지만 그리 수직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자기들끼리도 싸움이 잦습니다. 뜨내기들이 모였다는 티가 나더군요.”
조언하거나 지도할 늙은 전사가 없다. 오크들의 ‘무리’와 ‘부족’의 차이는 거기 있다.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늙은 놈들이 암컷 오크와 노예들을 독점하는 게 눈꼴 시려서 나온 뜨내기들이 모였다 이거군. 그럼 방법이 없는 건 아니겠는데.”
“정말입니까?”
상단 대표가 반색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냉정하게 말했다.
“오크 요새는 목책을 두른 것일 테니까, 정문은 폭발 마법 한 방이면 뚫을 수 있을 거요. 문제는 그게 사거리가 상당히 짧고, 주문의 시전자는 엄폐할 곳이 필요하고, 시약값이 비싸단 거지.”
“제가 내겠습니다!”
상단 대표가 말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엔 오크 100마리가 쏟아져 나올 거요. 주술사를 뒤에 끼우고. 비버 숫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네.”
예측은 베로니카가 했다.
“많지는 않을 거야. 정교하게 움직이는 상급 주술이지, 숫자를 불리는 게 목적인 주술이 아니니까.”
“그럼 비버 자체는 별거 아니네. 정면 대결에선 고려할 요소가 아니야. 기병이나 거인이면 짓밟아 버리는 게 가능해.”
“대신 다른 주술이 있을지도 몰라. 놈의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니까. 저번의 최하급마법사 도적 따윌 생각하면 안 돼.”
에드워드는 고민에 빠졌다.
“지형이 불리한데, 오크는 100명이고, 뒤에는 실력 있는 주술사라. 숫자가 더 필요하겠군.”
마을을 지킬 사람을 남긴다면 거인 벌목꾼은 대충 10여 명 정도. 상단 대표는 자신의 호위병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기사님들과 제 호위병들까지 동원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모자랄 것 같은데.”
“돈 더 뿌리면 순례자들도 고용할 수 있을걸.”
베로니카가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도 괜찮지. 일단 무리 싸움으로 몰고 가면, 비버 정도는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상단 대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호위병들에게 특별수당…… 기사님들께 사례비…… 마법사님의 시약값…… 순례자들한테 일급…….”
에드워드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놓은 종이를 꺼냈다. 여마법사 스텔라가 그에게 내밀었던 주문 가격표. 그는 그걸 상단 대표에게 보여 줬다.
“참고로 폭발 마법 가격은 이 정도.”
“비싸!”
상단 대표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아직 이야기를 덜 꺼냈다.
“그리고 놈들을 끄집어낼 미끼 비용 빠뜨리셨소.”
“예? 미끼요?”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 * *
오크들의 목책 요새는 바위 절벽 위에 만들어졌는데, 매우 급한 경사로로 절벽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거인들 몰래 정찰, 수렵 채집, 도둑질을 시도하러 나가는 오크들을 빼면 그 경사로를 밟을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 무리는 ‘나무도둑질’에 맛을 들인 상태였고 문짝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른 아침, 오크들은 밤새 비버들이 잘라낸 나무를 숨 가쁘게 실어나르곤 도로 문을 닫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감시병 하나는 긴장이 역력했다.
“거인 새끼들이 슬슬 눈치챘으려나?”
초소 위 오크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 옆의 오크 병사는 낄낄 웃었다.
“거인은 머리가 커도 아둔해서, 비버들이 왜 겨울철에도 나무를 쓰러뜨리는지까진 모를걸.”
계속 영문도 모른 채 나무를 잃어가는 거인들의 모습이 이상적인 시나리오긴 했다.
“순회사제 같은 게 오면 주술을 눈치채는 거 아냐?”
“그럼 뭐 해. 놈들이 이 절벽을 기어올라올 수 있겠어? 나무에 파수꾼을 세우면 비버를 막을 수 있을까?”
다 어려운 이야기다. 오크 방어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요새를 점령하는 것도, 거인의 눈에는 작은 쥐새끼에 불과한 비버들의 벌목을 막는 것도. 하지만 오크 하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토벌군 같은 게 오면? 비버 같은 거나 부리는 주술로 그들을 막겠어?”
“말조심해, 멍청아. 그 주술사가 들으면 네 대가리가 삶은 콩보다 쉽게 으깨질 거다. 그리고 그때는 그냥 도망치면…….”
오크는 말꼬리를 흐렸다. 갑자기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벌써 식사시간인가?”
“도둑들이 돌아왔으니 식사를 준비하는 거 아냐?”
“냄새 좋네. 시발, 도둑들부터 고기를 주려나.”
그러나 나무도둑들한테서 곧바로 불만이 나왔다.
“고기 어딨어?! 냄새는 나는데! 고기가 없잖아!”
와장창!
탁자 엎는 소리가 들렸다. 감시꾼들의 시선은 요새 내부로 박혔다. 아무거나 대충 넣고 끓인 죽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오크들은 취사담당 노예를 패 죽일 기세였다. 인간 남자 노예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여러분이 굽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주방에는 구운 고기 따위 없다고요! 고기 아끼라고 하신 지가 언젠데!”
오크들은 혼란에 빠졌다. 감시병들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대체 어디에서 고기 냄새가…….”
“양고기 냄새 같은데?”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냄새의 근원을 찾았다.
“고기다!”
오크 감시병이 당혹감을 듬뿍 담아 소리쳤다. 그 말 한마디에 수많은 오크들이 목책으로 달려와 밖을 내다보았다.
“어디? 어디?”
“고기가 어딨어?”
감시병은 손가락을 길게 뻗으며 다시 소리쳤다.
“저기 고기가 있다!”
그의 손끝에는, 에드워드 일행이 수많은 양고기를 통째로 굽는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