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육식 권하는 사회
밴시 리안나는 양고기 앞에서 좌절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저 양들을 씻겼는데! 물도 땔감도 부족한 걸 얼마나 노력했는데! 양들도 겨우 내 말을 듣고 교감하기 시작했는데! 숀! 미미! 하스킨즈! 루루벨! 아, 근데 정말 맛있겠다…….”
양들과의 교감을 이룬 기억은 수많은 양고기 통구이 앞에서 5분만에 박살이 났다. 에드워드, 지클린, 카치운이 주욱 늘어놓은 양고기는 ‘장엄하다’라는 말까지 어울릴 지경이었다.
숯불을 잔뜩 지핀 후 그 양쪽에 꼬챙이에 꽂은 통갈비를 주욱 늘어놓고 몇 시간을 굽는 요리. 이번엔 주로 양이지만, 돼지고기 송아지고기와 거위고기는 물론 비버고기까지 준비했다.
에드워드는 바람 방향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는 경박한 미소를 지었다.
“오크 새끼들도 고기맛을 안다면 지금쯤 배가 고파 미칠 거다.”
밴시가 바로 대답했다.
“저도 배가 고파 미치겠는데요!”
“너 아까 애타게 외치던 ‘제이’가 저기 있네. 저거부터 뜯어먹든가.”
“그놈이 제일 말 안 듣고 늙은 검은 양인데요! 아깝기는 미미가 제일 아깝죠! 제일 맛있을 것 같아!”
“어떤 거? 이거?”
갈비짝에서 떨어지는 기름을 받아 도로 고기에 바르던 카치운은 둘의 만담을 보다 중얼거렸다.
“저 양반은 왕이나 영주 같은 거 하면 고기 조달하는 게 참 큰일이겠어.”
“아, 영주 하면 더 크게 해야지!”
에드워드가 그걸 듣고 소리쳤다. 지클린은 깔깔 웃었다.
“이런 우량고객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에요! 양값을 이리도 후하게 쳐 주다니!”
“계산은 상단 대표께서 했지만.”
통구이는 기본적으로 소금간만 하고 굽는 요리지만, 그 외에도 고기와 요리의 종류는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엘프 헬레나는 아르데니아의 올리브유를, 드워프 가르달은 소금산의 암염을, 거인촌 티펜발트의 채집꾼들은 송로버섯과 꿀을 내놓았다.
향신료도 있었다. 카치운은 비장의 향신료 후추를 꺼냈으며, 에드워드는 온천도시에서 가져온 파프리카 가루와 마늘을 꺼냈다.
장엄하게 늘어선 양갈비부터 카치운이 지지고 볶는 요리들까지 살펴본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왕이 기사들 대접하는 거 보는 것 같네.”
에드워드는 손으로 호쾌하게 갈비를 뜯었다. 그의 손 아귀힘 때문에 작은 칼을 쓸 필요는 없었다. 밴시 리안나는 양갈비에 얼굴을 묻고 파먹다시피 했다.
“숀, 미안해!”
“윌슨은 없냐? 외쳐 봐. 미안해, 윌슨!”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
“애 그만 놀려. 윌슨이 누군데?”
“가장 외롭지만 가장 강한 자의, 가장 신실한 친구였지…….”
“앵글리아의 기사야?”
“붉은 얼굴에 키가 작았고 수영을 못했어. 불쌍한 친구.”
에드워드는 진심으로 애도한다는 표정을 지었고 베로니카는 충격을 받았다.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보는데. 근데 그런 양반 이름을 갖고 농담이 나오니?”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실은 안 죽었거든.”
“응?!”
남녀가 고기 구워 먹으며 농담하는 모습. 누가 봐도 함정이다. 하지만 전사의 자존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도발’에 응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가 된다. 하찮은 도발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성채를 비우고 돌진해 오는 적장 이야기가 왜 그리 흔한가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그게 춥고 배고픈 겨울철의 식욕까지 건드린다면 더 큰 문제다.
오크들의 요새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더니 곧 정문이 열렸다. 베로니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열었어. 저 등신들.”
“사내들은 다 그래. 사실 인간 기사들도 저러지.”
“그거야 알지만, 저쪽 오크는 너무 못 참네. 혹시 앵글리아 기사들도 저 수준이니?”
“내가 제일 잘 참는 편이었어.”
“보편 기준으로는 그게 잘 참는 거야, 못 참는 거야?”
“글쎄.”
에드워드는 대야에 손을 대충 씻고 장갑을 꼈다.
봉건 영주로서 땅을 다스리는 자,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기사가 어떻게 싸울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부족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오크들이 어떻게 싸울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기사나 전사들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다. 물론 상황과 지휘관에 따라 그 세부 내용과 결말은 가지각색이다. 간신히 통제에 성공해 도발 당하지 않거나, 맞도발을 하거나, 오히려 매복병을 쳐부수거나 등등.
에드워드는 투구를 쓰면서 마저 말했다.
“이래도 안 넘어오면 술 마시고 여자 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었네.”
“지클린 양이랑?”
“안 될 건 없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 취향은 아니라. 넌 어때?”
“맞는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멋진 세상이지. 먹고, 마시고, 싸우고, 과시하고, 범하는 게 최고의 미덕인 세상. 이런 세상에 ‘싸우는 남자’로 태어났는데 과적응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말이 안 돼.”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인간은 그것에 뭔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인간과 오크가 차이가 뭐니?”
베로니카가 설교하듯 말했다.
밴시 리안나는 양갈비에 더 달라붙었다.
“한입이라도 더 먹을게, 숀!”
카치운도 손칼과 그릇을 내려놓고 무기를 들었다.
“숀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제 뱃속에서 하나 되어 살아갈 거예요!”
“좋은 자세다.”
카치운은 그 말만 한 다음 한구석에 놔둔 무장을 도로 챙겨 걸쳤다.
지클린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고기 안 태우고 잘 구워 놓을게요!”
그녀가 말하는 순간 오크 무리가 정문을 박차고 나왔다. 놈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저 같잖은 새끼들을 죽이고 고기와 여자를 빼앗아라!”
놈들이 달려오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이제 돌아가기엔 늦었다 싶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놈들의 화살이 드문드문 날아오기 시작할 때, 에드워드는 등 뒤의 숲속 그림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오쇼!”
그 순간 거인 벌목꾼들, 몽둥이나 지팡이를 든 순례자들, 드워프 가르달이 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들이 당혹해 물러서지는 않을 정도의 적당한 숫자. 가르달은 수염과 갑옷 위로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젠장, 배고파 죽겠네…… 먹고 시작하면 안 되나? 이거 교회가 개발한 신종 고문법인가?”
거인들도, 순례자들도 다들 비슷한 눈빛이었다. 그들 역시 고기 냄새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아낙족 촌장마저 눈이 반쯤 뒤집힌 상태였다. 그는 전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늘! 저 곰팡이 새끼들을 족치고! 고기 먹자!”
벌목꾼들은 함성을 지르며 숯불 양옆을 지나쳐 앞으로 달려나갔다.
* * *
“멍청이들! 멍청이들! 보나마나 복병이 있을 거라 했는데! 문을 닫아라!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오크 대장은 황급히 문을 걸어 잠근 다음, 분통을 터뜨렸다. 거인들은 체격도 컸지만, 전열을 제대로 갖춘 상태였다. 그들이 돌 하나씩 내던진 다음 도끼나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오크 무리들의 첫 돌격은 그대로 분쇄되었다. 잠시 뒤에야 오크들은 한 발짝 물러나거나 자리에 멈춰, 마찬가지로 전열을 갖추었다.
고기와 여자로 약을 올리는 뻔한 도발에 넘어갔다. 복병을 발견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돌격이 실패해도 후퇴하지 않는다.
복병이 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알고도 도발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겨우 저런 얄팍한 도발에 넘어가, 내 말을 안 듣다니!”
그러나 그건 오크 대장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족장이 아니고 여긴 부족이 아니다. 부족조차도 때때로 전사들의 통제에 실패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네가 약하기 때문이지.”
낮고 무거운 목소리. 커다란 그림자가 요새 제일 깊은 곳에 있는 오두막에서 나왔다. 거인보다 더 큰 덩치였다. 오크 대장은 공포에 빠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둠의 종족들 사이에서 ‘넌 약하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다음 벌어질 일은 몇 종류 없었다.
콰직!
통나무 같은 몽둥이가 오크 대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오크 대장은 찍소리도 못하고 죽어 버렸다. 아직 남은 오크들과 노예들 사이에서, 그림자는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먼저 밀무역 같은 걸 하는 놈은 나약한 거야.”
* * *
에드워드와 거인들이 오크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 순간, 다른 데 숨은 별동대가 움직였다. 그 별동대는 조르쥬와 로드리고, 헬레나, 스텔라, 상단호위병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텔라는 흔들리는 말 위에서 간신히 주문을 완성했다.
“난 폭발 마법이 싫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책 정문이 폭발했다. 콰과광! 내부에 주문이 작렬한 건물의 경우와 달리, 문짝 전부가 날아가지는 않았다. 문짝 한가운데, 빗장 거는 부분이 날아가고 남은 문짝은 경첩 역할을 하는 밧줄에 매달린 채 덜렁거렸다. 하지만 기병들이 진입하기엔 충분한 공간이 나왔다.
로드리고와 조르쥬를 비롯한 상단 행렬의 기사들은 선두에 섰다. 상대적으로 경장인 상단호위병들, 여자에 이종족인 헬레나, 마법사인 스텔라보다 뒤에 선다는 건 기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짓밟아라!”
남은 오크들이 어떻게든 문짝을 막아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마법사를 저격할 궁병이 남았다면, 무너진 곳에 자재나 간이장애물을 들이밀 병력이 남았다면 이 지경까지 안 왔다. 그러나 그런 대비는 하나도 안 된 상태였고, 기사들은 군마의 체중까지 실어 돌진했다.
와장창!
문짝을 지켜보려는 덧없는 시도들이 무위로 돌아감과 함께 별동대는 요새 안으로 진입했다.
“요새를 점령해라! 잔적을 소탕하고 후발대를 들여!”
신명 나게 지휘하던 로드리고는 문득 자신이 들어오기도 전에 쓰러져 있는 오크의 시체에 눈이 갔다. 머리가 몸 안으로 들어가 버리다시피 한 시체였다.
“뭐야, 이놈은 왜 이렇게 죽었어?”
로드리고가 중얼거리는 순간, 스텔라가 비명을 질렀다.
“로드리고 경, 조심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드리고의 방패에 커다란 비버가 날아와 부딪혔다. 우당탕! 40파운드급 쥐새끼를 얻어맞은 로드리고는 말과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으억?!”
비버를 던진 거대한 그림자가 건물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놈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말 안 듣는 놈들을 교육시키는 사이에 인간들이 왔군.”
거인보다 더 큰 키와 옆으로도 불어난 거구, 거무죽죽한 회색 피부. 오른손의 무기는 크고 투박한 철판으로 만든 도축용 식칼. 왼쪽 손목에 해골을 꿴 줄로 묶여 대롱거리는 것은 한손 완드.
그리고 그 주변을 지키는 대형 비버들.
“오거다! 오거 주술사다!”
한 병사가 소리쳤다. 빠르게 공포가 퍼지는 순간, 조르쥬는 감탄했다.
“오거라! 이 근방에서는 드문 놈이 나타났군! 거기다 주술사라고?”
로드리고는 말에 깔린 다리를 겨우 빼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당연히 오크 주술사일 거라고 생각한 게 맹점이었군.”
그의 왼팔은 축 늘어졌다. 골절. 방패를 들어 올릴 수 없는 상태. 대신 조르쥬가 나섰다. 그는 호승심에 가득 차 외쳤다.
“선봉으로 나선 내 이름은 조르쥬 드 발로뉴! 외 백작께 기사로 서임되었으며, 옥셀레의 주교께서 내린 사명을 받고……!”
“시끄럽다!”
오거 주술사는 손을 한번 휘둘러 완드를 쥐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너희는 악마의 지식을 보고 무릎 꿇어라!”
그러나 스텔라도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둘 사이에서 얼음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잠깐 위축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다들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쪽 주문을 상쇄했어요! 죽여요!”
스텔라가 바로 설명해 주었다. 조르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다면야!”
창을 든 기사의 돌진에 오거 주술사는 분노했다.
“주문을 못 쓰면 인간이 날 이길 줄 아느냐!”
조르쥬는 앞길을 막는 비버들을 짓밟으며 달려나가, 오거가 휘두르는 완드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복부에 창을 꽂아 넣었다. 와지끈! 창은 단번에 박살 나 흩어졌는데 오거 주술사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이에 다른 기사들이 뒤이어 달려들었다.
“소동물을 부리는 주술사 따위에 주눅들지 마라! 비버 따윈 밟아 버려!”
기사들의 외침에 오거는 코웃음을 쳤다.
“하찮은 놈들! 난 날붙이에 죽지 않는다!”
기병창들이 차례차례 오거의 몸에 꽂혔지만 과연 그 말대로였다. 기사들, 기병들은 놈의 주변을 맴돌면서 무기를 휘두르고, 새 창을 받아 돌격했지만 그 어떤 돌격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그래도 기사들은 아슬아슬하게 오거의 무기를 피해 가면서 그 주변을 계속 맴돌고, 기회가 보일 때마다 공격했다. 그 사이에 스텔라는 번개 주문을 완성했다.
“프리시아 학당의 이름을 걸고!”
콰르르릉!
스텔라의 흰 번개 주문은 오거 주술사의 주문보다 더 빨랐다. 그러나 오거 주술사는 주문만 멈췄을 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스텔라는 기겁했다.
“켁! 날붙이뿐만 아니라 마법도 견뎌?”
몇 개 안 가져온 기병창도 다 부서지면서, 기사들은 창보다 훨씬 짧은 검이나 철퇴 등의 무기만 남게 되었다. 선공을 기사들에게 양보했던 헬레나는 그 광경을 보고 말에서 내렸다. 마상 전투보다는 이쪽이 더 익숙하니까.
“스텔라 양, 남은 주문은?”
“그게…… 방금 것보다 강한 건 없어요. 마력은 조금 남았지만 시약이 문제예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약 상점도 없었고, 폭발 마법으로 다 써 버려서. 이제 오거의 주문을 상쇄하거나 방해할 잡동사니 주문들만 찔끔?”
“그거면 충분해요.”
“어쩌게요? 날붙이에 안 죽는다는데?”
헬레나는 허리띠에서 다트를 뽑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죽여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