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배를 타기 전에 (1)
에드워드 일행은 오크 요새에서 해방된 노예 몇 명과 함께 고기 파티에 돌아왔다. 리안나는 푹 젖은 옷을 벗어 불가에 말리고 몸을 수건으로 싸맸다. 그리고 양고기 숀에게 달려들었다.
“숀! 그리웠어!”
승전 소식을 듣고 온 거인촌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오크 요새의 처분을 두고 짧은 의논을 거쳤다. 비워 두면 다시 오크 같은 것들이 점령할 테니, 마을 주민 일부가 이주하기로 결정이 났다.
축제의 장은 더 많은 고기가 추가되었다. 상단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지출을 감수했다.
“그래, 먹자! 먹는 게 남는 거다!”
상단 대표는 출자자로서 한 자리 낀 채 루루벨을 뜯어먹었다. 오크 시체들을 치우고 돌아온 상단호위병들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이번 여행은 계속 이랬으면 좋겠군요.”
“이 게으른 직원들!”
상단 대표가 절규했다. 그때 오크 요새 주변을 뒤져보던 채집꾼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바구니마다 가득 담긴 송로버섯을 내밀었다.
“오크 영역에서 방금 가져온 겁니다. 역시 전혀 손대지 않았더군요.”
상단 대표는 눈에 불을 켰다.
“삽니다!”
“제일 좋은 건 기사님들 드릴 겁니다.”
채집꾼들이 웃으며 말했다. 몸 여기저기에 부목과 붕대를 감은 로드리고가 중얼거렸다.
“이거 부끄럽구만. 조르쥬 경처럼 견제라도 해야 했는데. 시작부터 비버를 맞고 넘어져서.”
“에이, 뭐 어때요? 오크 한둘 잡았으면 일은 다 했지.”
여관 주인 지클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조르쥬가 끼어들었다.
“저도 결국 한 일이 없습니다. 여자분보다 뒤처질 수는 없다고 앞으로 나섰는데, 맙소사. 역시 정령의 힘을 빌린 엘프 전사는 대단하더군요. 여자 운운한 게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하긴, 조르쥬 경은 어제 저한테도 패하셨…….”
“인간과 대화할 땐 인간 기준으로 좀 합시다!”
지클린의 끼어듦에 조르쥬가 비명을 질렀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때 베로니카는 구시렁거리던 밴시 리안나의 허리춤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거 뭐야?”
오각형에 오망성과 독수리 무늬를 연이어 새긴 황동 조각품. 리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가에서 주웠는데요?”
“이거 부적이잖아?”
“어, 오거 거예요? 설마 돌피부 주술?”
베로니카는 그 부적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런 거 함부로 줍지 말고, 발견하면 바로 나한테 이야기해. 무슨 부적인 줄 알고 막 건드리니?”
“괜찮아요. 어차피 밴시는 안 죽는데 뭘.”
“애가 이상하게 반항하네. 뭐, 그리 위험한 건 아니야. 간단한 주술 방호구지. 주문이나 마법을 무효화하는 종류. 오거가 스텔라 양의 첫 번개를 맞고도 무사했다는데, 그게 돌피부 주술이 아니라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와! 그럼 그거 끼면 제가 마법사님보다 세져요?”
스텔라는 리안나의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콩.
“그래도 약한데?”
“너무해!”
리안나가 항의하거나 말거나, 베로니카는 그 부적을 스텔라에게 넘겼다.
“이건 당신이 쓰는 게 낫겠네요. 주문 대결에 유용하겠어요.”
“악마의 선물이 아닌가요?”
“그냥 간단한 방호구예요. 달이 떠오를 때마다 충전되고, 자동으로 사용되는.”
“어머나. 나름 귀한 거네. 그 오거 자식 정말 세긴 셌나 본데요?”
“주술사로는요. 전사로는 완력에만 기대는 얼간이였지만.”
“하지만 이건 헬레나 양의 전리품이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적 같은 건 욕심 안 나요. 베로니카 양의 판단을 존중하죠.”
대충 이야기가 일단락될 때쯤, 지클린이 방패 크기의 접시에 고기를 잔뜩 쌓아 여자들 앞에 내려놓았다. 송로버섯을 곁들인 양고기들. 죄다 거인 사이즈였다.
“자, 실컷 먹어요! 싸우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작고 말라서야 되나요? 비버고기까지 가져올까 봐.”
기병들에게 밟혀서 납작해진 비버들. 거인들은 그것들도 씻고 손질해서 고기로 만들었지만, 꺼리고 싶은 것이었다. 헬레나는 안색이 안 좋아진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까지는 좀…….”
“역시 안 되겠다! 그것도 가져올게요!”
말리기 전에 지클린은 숯불 더미로 뛰어갔다. 다들 안색이 안 좋아질 때쯤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거인 기준이란 거 피곤하구만.”
* * *
상단은 큰 투자를 해야 했지만 오크 영역에서 새로 캔 버섯들까지 구입했다. 대표는 그걸 팔아 비용을 보충할 생각이었다. 손해만 본 건 아니었다.
에드워드 일행은 송로버섯과 꿀, 비버 가죽을 얻었다. 거인들의 도착 전까지 유일하게 오거에 맞선 게 헬레나였기 때문에, 주술사가 부리던 비버들은 헬레나의 전리품으로 인정된 것이다.
비버 가죽은 방수성도 내구성도 뛰어난 좋은 물건이었다. 그러나 거인촌에 맡기든 항구에 맡기든, 무두질을 기다릴 시간까진 없다 보니 [세 자매 여관>의 지클린에게 숙박비로 넘겨주었다.
“양은 비싸게 팔고, 비버 가죽도 생기고, 귀여운 기사님과도 놀아 보네요. 재수가 좋네.”
지클린이 웃으며 말하자 조르쥬가 헛기침을 했다. 에드워드보다 큰 키의 기사가 귀엽단 소리를 듣는 게 여전히 적응이 안 된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를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러게 왜 객기를 부려서 거인족과…….”
“네가 색욕과 과시욕을 문제로 남에게 훈수 두는 거 보니까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베로니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지적을 무시했고 조르쥬는 한숨을 내쉬었다.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고 웃는 여자는 난생처음입니다.”
“몸무게가 댁의 몇 배는 될 텐데 당연하지. 소 한 마리급이라고. 자괴감 안 드시오?”
“근데 그게 또 묘하게…… 농락당하는 느낌이…….”
“아.”
로드리고는 모범적인 기사였다. 그는 베로니카의 치료 주문도 최소한만 받고는 일어섰다.
“주문을 아끼시고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시오.”
“그래도 전투에 나서려면 좀 더 치료받으시는 게 낫지 않나요?”
“이 정도면 큰 문제 없소. 거인들도 있고…….”
로드리고는 거인촌에 남기로 했다.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몇몇 거인들과 함께 오크들의 요새를 관리한다고 했다. 요새가 수리되고 정착민이 생기면 다시 길을 떠날 예정이었다. 조르쥬 역시 로드리고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남았다. 에드워드를 포함한 세 기사는 짧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항구가 코앞인데 여기서 헤어지는군. 몸조리 잘하쇼.”
“고맙소. 당신의 하인에게 편지를 맡겼으니, 폴라의 내 친척에게 전해 주시오. 사례하실 거요.”
“무운을 빕니다. 성지에서 봅시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일행에 돌아왔다. 그는 리안나가 받은 로드리고의 편지를 확인한 다음 말했다.
“여자도 없는 동네는 빨리 벗어나자.”
“왜 없어? 시간 줄 테니까 너도 하고 와. [엄마와 아기 에드워드 놀이>나 [큰누나에게 씻김당하는 소년 에드워드 놀이> 같은 거…….”
“사양한다!”
에드워드는 단호히 말했다. 베로니카는 깔깔 웃어 버렸다.
“아, 가는 곳마다 거인족 여관만 있으면 좋겠네. 이런 재미가 다 있다니.”
* * *
위대한 해양공화국 다티니아의 동맹시, 폴라의 붉은 기와는 짙은 푸른색의 바다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놓인 고대 유적들과 오래된 성당들은 이 항구가 유구한 세월 동안 번성하던 곳임을 알려 주었다.
“도시다! 시약 상점부터 가요!”
스텔라가 보챘다. 그러나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항상 그렇듯 우편물 확인부터 하기로 했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잠든 돈부터 찾자고.”
“네 돈인 것처럼 말하지 마.”
베로니카가 일침을 줬다. 일행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성묘수호기사단 지부로 방향을 잡았다. 그 와중에 수많은 거지 떼가 일행을 기웃거렸다.
“기사 나리, 자비 좀…….”
“안전한 항해를 기도해 드릴 테니…….”
돈이 다 떨어진 순례자부터 구걸이 생업인 자들까지. 대열 중간의 이단심문관은 거지건 뭐건 다들 설설 피했지만, 선두의 에드워드와 후미의 스텔라에게는 거지들이 종종 손을 내밀곤 했다. 에드워드는 그들을 싹 무시하며 말했다.
“과연. 여기까지 와서 거지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상인과 뱃사람과 승객들은 기도가 간절하니까. 안전을 기원하며 적선하는 게 보통이거든. 그걸 노리는 거야. 너도 할래?”
“너무 많아.”
“은화 하나만 던져 줘도 돼.”
안전 기원. 에드워드는 순순히 은화 하나를 꺼내 거지 떼를 향해 던졌다. 그 순간 거지들은 와르르 몰려들어 서로 다툼을 벌여댔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적선이 아니라 분쟁을 만든 기분이네.”
지부에 도착한 일행은 곧 여러 편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베로니카, 헬레나, 가르달, 스텔라 등. 편지 받을 일이 없는 리안나, 우편물이 쫓아오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카치운, 그리고 에드워드는 편지가 없었다.
베로니카가 에드워드한테 눈을 흘겼다.
“친구 없니?”
“내가 손이 이러잖아. 펜대를 어떻게 잡냐. 편지 쓰기 귀찮아지니 자연히 오가는 것도 적어지지.”
“구술해. 적어 줄게.”
“너한테 내 교우관계를 다 까고 싶지는 않은데.”
먼저 아르데니아에서 온 편지를 받은 헬레나가 빠르게 편지를 읽어 보았다. 그녀는 그 편지를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거대토끼 소동 기억나요?”
“왜?”
“아브릴 소식이에요. 임신했대요.”
“누구? 아, 그 하프엘프 이름이 아브릴이었나?”
“결국 마을을 떠나서 아르데니아에 왔대요. 마을 사람들과 또 크게 싸운 모양이더군요.”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뭐, 양육비와 생활비는 아르데니아가 대주겠지.”
베로니카가 힐난했다.
“네 사생아들 모으면 기사단 하나쯤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내가 애 뿌리는 기계인가.”
“아니었어?”
그때 리안나가 끼어들었다.
“기사님이 안은 여자들 전부 임신했다고 치면 숫자가 어마무시하지 않을까요?”
“난 내 씨가 확실하고 책임까지 내가 져야 하는 경우면 외면하지 않겠지만. 근데 그런 게 몇이나 되겠어? 끽해야 아브릴과 요하나 정도지.”
“진짜 더 없어요?”
“가만. 생각 좀 해 보자. 그리고 또 누구 있더라…….”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스트롬니스에서 온 편지들을 보자.”
“응? 스트롬니스?”
“벤슨과 데보라가 결혼식을 올렸고, 신부는 임신했대. 딸이면 베로니카, 남자면 에드워드로 이름 짓겠다는데.”
“축하할 일이네.”
“리글리 씨의 편지도 있어. 데보라의 집 밑에서 보물을 찾았대.”
“오. 잊었던 적금을 되찾은 기분이군. 그래서?”
“많은 양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줄 사례비 약간은 남을 것 같다네. 그리고 마법 팔찌로 보이는 걸 찾았고 감정받아 먼저 동봉하니…….”
“좋은 건가?”
“야간 투시의 팔찌래. 있으면 좋은 능력이지.”
베로니카는 황금 팔찌를 꺼내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그는 희희낙락하면서 그걸 챙겼다.
“역시 좋은 일에는 보상이 따라오는군.”
“그리고 마을 소식 더.”
“그 깡촌에서 뭐 더 중요한 소식이 있나?”
베로니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가 리안나의 도움으로 팔찌를 사슬갑옷 아래에 낀 채 장난칠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윌킨슨 부인과 여관…… 둘 다 이름도 모르지? 여하튼 그녀들이 동시에 임신했댄다.”
베로니카는 서늘한 눈빛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둘 다 누가 아빠인지 짐작을 못 하겠는데 주머니 사정이 딱하게 됐대.”
“윽.”
“윌킨슨 부인이야 정신이 나가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니 어쩔 수 없다만, 다른 하나는 네가 애아빠라고 주장한다던데.”
둘 다 짚이는 구석은 있다. 윌킨슨 부인은 가해자였고, 하나는 스트롬니스를 떠나는 순간까지 에드워드와 있었으니까. 다만 그 전후로도 다른 남자들이 있었을 테니, 에드워드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그 애들이 누구 아이인지 확언하진 못하는 상황.
“설마 양육비 달래?”
“달라면 낼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이 경우 양육비는 의무가 아니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내는 순간 핏줄로 인정했네 아니네 하면서 귀찮아지는 문제. 설령 낸다 하더라도 양육비는 생활비가 아니므로, 푼돈만 쥐어 줄 수도 있다. 편지를 쓴 존 리글리도 그걸 잘 알았다.
“적선이 필요하다고만 하네. 리글리 씨도 머리 썼어. 둘 다 법적으로는 양육비를 받을 권리가 없으니 순전히 네 자비에 기댄다는 의미야.”
“리글리 씨가 돈 뜯으려 수작 부리는 건 아닐 텐데.”
“그 양반 성품이면 그러진 않지. 물론 안 보내도 돼. 정 키우기 곤란한 애라면 수도원에 봉헌되겠지.”
“돈 보내도 수도원 안 갈 거란 보장은 없지.”
“수도원이 뭐 어때서? 길거리에서 죽거나 노예로 팔리는 것보다는 낫지.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불우한 어린이들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는 수도원의 공적이 크다?”
“알아, 알아.”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주먹 위로 이마를 떨궜다. 하나는 그렇다 치고, 윌킨슨 부인 건은 좀 억울하기까지 한 문제였다. 그건 에드워드가 피해자니까. 그러나 여자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에드워드한테 질문이 던져지면, 그건 미묘한 문제였다.
자비는 그저 호구 잡히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과시이며 동시에 빛에 공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곧 배를 타야 한다. 바다엔 악마와 그 종들이 기다린다.
안전 기원 적선.
차라리 기회라 생각하자. 한참 고민하던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스텔라.”
“네, 기사님.”
“전속마법사는 전속비서지?”
“그렇기도 하죠.”
“나 대신 편지 써. 내 사례는 마법 팔찌면 충분하고, 돈은 필요 없으니, 내 몫의 금액을 떼서 적선하라고. 수도원에 보내도 푼돈이나마 쥐어서 보내야지. 대신 그 일로 나 다시 귀찮게 하지 말라 그래.”
“흔하지만 나름 신경 쓴 타협안이네요. 알았어요.”
베로니카는 편지지를 접어 스텔라에게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스텔라, 네 월급은 더 미룬다.”
“농을 해도 꼭 나쁜 농을 하신다, 사장님. 방금 일 맡겨 놓고서.”
스텔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기사단 지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향해 혼잣말을 뱉었다.
“뭐, 배를 타기 전에는 죄나 껄끄러운 것들을 대충 털고 가는 법이지. 공헌도 하고.”
“그런 법이지.”
성의 없는 소감을 말한 뒤 베로니카는 자기 편지 더미 속에서 봉투들을 집어 들었다.
“에드? 이건 너한테 전달 좀 해 달라는데?”
“응? 내 편지들?”
에드워드는 자기 앞으로 온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첫 번째 봉투의 필체는 여자의 것이었다.
“뭐야? 아델레 누님한테서 온 편지잖아?”
“아델레?”
“내 은사이신 베레스포드 공작님의 큰딸인데…….”
“흠. 네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면 역시 위험하지 않을까?”
“뱀파이어 이야기 그만 우려라…….”
베로니카의 농담에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며 편지를 뜯어 내용물을 보았다. 깨끗한 종이에 짧은 문구.
-다 들통났음. 미안.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베로니카는 그 편지를 엿보았다. 그리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데?”
“그게…… 아델레 누님은 공작가 장녀지만 정략결혼이 싫다고 수녀원 들어간 케이스거든?”
“그런데?”
“정략결혼이 싫지, 남자가 싫은 게 아니었거든?”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드워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부귀영화와 출세 지향적 귀족 수녀원’이라는 게 좀…… 규율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잖아? 게다가 스스로 수녀원에 들어갈 정도로 반항아 기질이 넘치니…….”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종마 자식. 들켰다는 게 그 이야기야?”
“공작님이 편지라도 찾았나 봐. 젠장. 누님이 낳은 애들이 둘인데 그중 둘째는 내 핏줄일 가능성이 있어.”
“둘 다 네 핏줄 아냐?”
“첫째는 확실히 내 애가 아니야. 시기가 안 맞거든. 뭐, 아델레 누님은 엄청 활기찬 분이고 애인도 많았으니까.”
“그런 따님이면 베레스포드 공작님도 이미 반쯤 포기했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그럼 기사님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스텔라가 흥미진진하다는 투로 끼어들었다. 그러자 카치운이 딴죽을 걸었다.
“아니, 딸 가진 아버지한테 그런 말은 역효과지. 자기가 선도를 포기한 거랑, 남이 신경 안 쓰고 건드리는 건 다르다고.”
유부남이자 애 아빠의 말에 에드워드는 더 깊게 좌절했다. 다음 편지는 베레스포드 공작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들통났다는 아델레의 편지를 보건대, 그 내용은 보나 마나다. 에드워드는 차마 봉투를 뜯지 못하고 스텔라에게 넘겼고, 그녀는 그걸 대신 뜯어 읽었다.
잠시 뒤 스텔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지에서 만나거든 ‘차분히’ 얘기 좀 하자시는데요?”
“아, 순례 그만두고 싶다. 성지 안 가고 싶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렸다.
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