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멀미는 지옥의 선물
일행은 배 타기 전에 적선하면 행운을 빌어주겠다는 거지 떼를 지나쳐 방주기사단 성채로 향했다. 그곳은 전과 달리 매우 붐볐다. 항구에 기사단 군선들이 정박했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주황색 서코트와 튜닉들을 보고 리안나는 눈을 비볐다.
“와, 눈 아픈 색깔이다.”
“저게 물에 빠졌을 때 잘 보이는 색깔이라 그런가 본데.”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베로니카는 그 주황색 틈 사이로 돌아왔다.
“눈 빠지겠네.”
“주황색 때문에?”
“아니. 서류 보느라. 다행히 연락선과 군선들이 입항하면서 정보가 쏟아지더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베로니카는 밀수꾼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놀기만 한 게 아니었다. 기사단은 해적들의 편지 조각 같은 것도 해독하여 보관했다. 그녀는 나흘 동안 숙소와 기사단을 왕복하며 그것들을 열람했다.
“밀수꾼에서 정보가 막혔다면 ‘배와 항구’는 정답이 아니야. ‘배와 배’ 또는 ‘항구와 배’ 사이에 뭔가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래서 그것부터 뒤졌어.”
“그래서 뭐 나왔어?”
“재밌는 게 하나 있긴 했는데, 결정적 증거는 안 되는 것 같아.”
“뭔데?”
“익명의 편지인데 ‘배를 털어 달라’라는 내용이었어. 종이에 쓴 거였지.”
“종이?”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들이 쓸 물건은 아니지. 글씨는 반듯한 게 교육받은 남자 글씨로 보였지만.”
“세트렛인들은?”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우리보다도 덜 대중적이야. 문자도 다른 경우가 많아.”
종이는 아직 비싸고 인쇄술은 시작도 안 한 시대. 오크들은 아예 종이를 쓰지 않는다.
“그래? 흠. 묘하군. 빛의 인간이 해적에게 배를 털어 달라 부탁한다…….”
“아마 그게 우리가 주목한 식량수송선들이겠지.”
하늘로 솟았는지 바다로 가라앉았는지 행방이 묘연한 식량수송선단, 해적한테 노략질을 부탁하는 수상한 편지들. 에드워드가 보기에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 편지를 받은 해적은 거절한 것 같아. 하지만 보낸 놈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해적에게 연락했겠지. 이유야 다양할 거야. 경쟁자를 무너뜨리려 한다든가.”
“그것만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겠어?”
“범인은 못 찾아도 식량은 찾아야지. 중요한 문제니까 직접 나서야겠어.”
“어떻게?”
“이 의뢰를 수락한 해적이 누군지는 몰라도, 놈들은 수송선들을 나포한 채 바다를 떠돌고 있단 이야기가 돼. 하지만 배를 움직이려면 최소한의 선원은 필요하고, 그들이 소모할 물과 식량도 필요하지.”
“식량은 화물을 까먹어도 물이 필요하겠지. 흠. 물이 있는 곳을 털면 된다 이건가?”
“정확해.”
“그런데 어디? 오크 항구? 세트렛인 항구? 무인도?”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 진즉 알았으면 밀수꾼한테 ‘식량을 약탈한 해적’이 아니라 ‘배를 나포한 해적’으로 물어봤을 텐데. 그 자식,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
“나더러 네 엉덩이에서 손 떼라고 한 거 보면 다시 만날 생각은 없는 게 확실하겠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가볍게 때린 다음,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백색함대가 어떤 섬에서 ‘가짜 화물선’으로 의심되는 걸 찾아 봉쇄 중이라는 소식은 있더라.”
“가짜?”
“화물선인 척하고 검문을 통과해 다른 화물선을 습격하는 해적선이야.”
“가짜 화물선이 보통 짐 실은 채 움직이나?”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위장용 화물로 식량을 택하는 가짜 화물선은 없지. 그러니 별로 기대할 증거는 못 돼.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어, 그럼…….”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 탈 준비해. 출장이야.”
* * *
에드워드 일행은 때마침 출발하는 기사단의 쾌속 연락선을 타고 백색함대로 향할 수 있었다. 배에 타기 위해 웬만한 짐은 죄다 페르난도 저택에 놔두고 가볍게 출발.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배를 타고 바로 성지로 갈 줄 알았는데, 졸지에 순찰대 노릇까지 하게 되네.”
“어쩌겠니. 연락선에다 우리 짐마차를 실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이 식량 문제는 굉장히 중요해서 소식만 전하고 끝낼 수 없다고. 베니아 시까지 영향을 줄걸.”
“오래 걸리지만 않으면 좋겠군. 배는 빠르지?”
“이 해역의 가장 먼 섬도 폴라에서 이틀 거리에 있긴 해. 문제는 바다가 넓고 복잡하니, 숨으면 찾기 힘들어서 결국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지.”
“뭔가 건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걱정스레 진로를 논하는 동안, 가르달은 신난 표정으로 갑판 위를 누볐다. 리안나는 들뜬 드워프를 보고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신났어요?”
“배 타는 건 처음이거든! 생선은 정말 질리게 실어날랐다만!”
“헤에. 전 두 번째인데.”
“앵글리아 건너올 때?”
“웬 악령 선장이 절 사과통에 처박았죠.”
“네가 잘못했지?”
“84일 동안 고기 못 잡았다는 영감님 하나 놀린 죄밖에 없어요!”
“대죄네!”
카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못 잡는 낚시꾼을 놀리면 안 돼.”
“84일 동안 고기 못 잡았으면 대체 뭐 먹고 살았는지는 물어봐도 되는 거 아니……!”
그 순간 배가 옆으로 크게 출렁거렸다. 리안나는 기겁해서 갑판에 몸을 내던졌다.
“밴시 살려! 잘못했어요!”
그 꼴을 보던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 멀미는 괜찮냐?”
“슬슬 시작하겠네…….”
베로니카는 말꼬리를 흐렸다. 잠시 뒤 베로니카는 뱃전을 붙잡고 악마들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악마 새끼들은 다들 태양 빛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야 해…….”
“악마가 배 만든 게 아니면 정말 억울하겠네, 그 저주.”
에드워드가 낄낄거렸다. 그때 스텔라가 베로니카한테 슬쩍 말을 걸었다.
“멀미약 사실래요?”
“당신 약사 아니고 약은 죄다 짝퉁이잖아요.”
스텔라의 점술과 약물은 죄다 가짜였다. 당연했다. 교양 7과에서 점성술을 배우긴 했지만 점쟁이는 아니고, 시약에 대해 배우면서 약학도 들여다봤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그녀의 점술과 약품은 어디까지나 저위험으로 푼돈 버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것들. 하지만 스텔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건 진짜라니까요? 미치광이풀에 이거저거 섞어 만든 건데…….”
“그거 독초잖아요! 그것도 맹독!”
“독도 잘 쓰면 약이죠! 기사님 앞에서 토할 거예요? 저도 먹고 탔다니까요?”
실랑이 끝에 결국 설득에 넘어간 베로니카는 수상한 약병을 비웠다. 잠시 뒤, 그녀는 헤실거리며 에드워드를 끌어안았다가, 헬레나의 손으로 선실에 압송되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노려보았다.
“너 사실은 안 먹었지?”
“팔기도 아까워서요.”
“너 약물 제조 금지.”
“에엑! 너무하신다! 점쟁이가 약과 부적을 안 팔면 뭘 팔아요?”
“너 부적도 팔았냐?”
“당연히 가짜죠!”
“자랑이냐!”
“마음이 있으면 세상이 움직이는 법이잖아요? 점술도 부적도 약물도 다 마찬가지…….”
스텔라의 항변을 듣던 가르달이 카치운을 향해 말했다.
“그쪽 부족원들이 쟤한테 점 많이 보지 않았나?”
“……정말 미래가 궁금하다기보다는 심심해서 보는 거니까 뭐.”
“차라리 광대를 할 것이지. 여하튼 마법사는 믿을 족속이 못 되는군.”
“거기 드워프! 폭언 금지!”
스텔라가 항변했지만 에드워드도 별다른 의견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넌 마법사 말고 광대를 해야 할 거 같다.”
“에엑! 기사님마저 그러시기에요?”
“하는 짓이 그렇잖아. 너 그러다 교수대에 목 매달린다.”
“월급 주세요! 월급 주면 점쟁이 짓 안 해도 되는데!”
“아, 그건 무리.”
에드워드는 그의 등을 통통 때려대는 스텔라를 무시하면서 낄낄거렸다.
하루를 그렇게 항해한 뒤, 연락선은 어느 섬의 항구 앞을 봉쇄하던 백색함대의 분견대에 합류했다. 그 항구는 리자드맨들의 섬으로 이름은 카프텍이었다. 당연히 그곳 리자드맨들은 기사단 함대에 툭하면 쪽배를 타고 다가와 항의를 하곤 했다.
“꺼져, 인간! 고기 잡아야 돼!”
“도주(島主)의 해적질을 막기 위해 봉쇄 중이다! 돌아가라!”
기사단원의 답변에 리자드맨들은 욕설을 하면서 오물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뱃전까지 닿지도 않았으므로, 기사단원들은 반격하지 않았다. 백색함대의 갤리선으로 올라탄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보곤 중얼거렸다.
“리자드맨은 처음 보네. 세상은 넓구만.”
환각과 멀미를 오가다 겨우 직전에 회복한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을 짚었다.
“잠깐만, 나 아직 앞이 어질거려.”
“그러게, 수상한 약물을 덥석 집어 먹기는 왜 먹냐. 진짜 약사나 연금술사를 찾아가지.”
“그것들도 이미 먹었어. 약효가 몇 시간을 못 가서 그렇지. 네가 멀미를 알아? 안아 줘. 쓰러질 거 같아.”
“헬레나! 얘 아직 제정신 아니야!”
에드워드의 말에 헬레나는 황급히 베로니카를 부축했다. 리안나는 성난 리자드맨들을 보며 소리쳤다.
“비늘아저씨들도 84일 동안 고기 못 잡았어요?”
“누구야, 그 억세게 운 없는 어부는?”
리자드맨의 대답이었다.
밴시와 리자드맨 어부들이 투닥거리는 걸 뒤로하고, 에드워드는 선장과 만났다. 멀미약 부작용으로 헤롱거리는 베로니카 대신 그는 분견대장과 정보를 교환했다.
“식량을 실은 올란디니 상회 수송선?”
“그렇습니다. 혹 추가적으로 찾은 단서 있습니까?”
“모르겠소. 우린 이곳 도주가 인간 선박을 해적선으로 전용한 것 같다는 소식에 여기까지 온 거라.”
분견대장은 선의 만 가장 안쪽을 가리켰다. 낡아빠진 화물선 하나가 정박해 있었는데, 주변에는 인간 선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적어도 포로는 아닌 듯했다.
“저게 그 소문의 가짜 화물선입니까?”
“그런 것으로 추정 중이오.”
“추정 중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실제로 쓰였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까. 이 섬의 리자드맨들은 인간들이 여기서 정박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소.”
“출항 안 하고?”
분견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들어가서 검문하면 좋겠는데, 어쨌든 여기는 리자드맨 영역이라…… 도주는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선박을 내줄 수 없다며 버티고, 저 화물선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소.”
“아하, 그래서 봉쇄를 하셨군.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그렇소. 진짜 손님이라 해도, 이 정도 압박이면 포기하겠지.”
좀 깡패 같은 대처법이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에드워드는 뱃전에 몸을 기댄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리자드맨들을 설득해서 저 화물선에 접근할 방법 있나?”
“위험해. 도주와 저 화물선이 진짜 해적이라면, 그 소굴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는 거야. 우리가 인질로 잡히면 백색함대도 쉽게 못 움직여.”
에드워드는 다시 화물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박 이름을 새긴 황동판을 배 뒤에 붙여 놨는데,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카치운? 저거 뭐라고 쓰였는지 보이쇼?”
“코노.”
카치운이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올란디니 상회의 배 중엔 코노라는 이름 없어. 허탕쳤나 봐.”
카치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배는 낡았는데 황동판만 새 거요.”
분견대장은 경악한 표정으로 카치운을 보았다.
“그게 보이오?”
헬레나도 뱃전으로 다가와 황동판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에드워드와 카치운을 돌아보았다.
“그냥 부서져서 새로 달았을 수도 있지만…….”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일부러 선박명을 숨기려고 바꿔 달았을 가능성이 있지.”
분견대장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적선으로 쓴 게 맞겠군! 총원 전투 배치! 돌입을 준비한다! 다른 배에도 전해!”
“어? 설마 그것만으로? 도주랑 싸워요?”
스텔라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자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건 이 친구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린 구경하면 돼.”
잠시 뒤 기사단은 분주하게 단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쪽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리자드맨들도 황급히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쌍방의 규모는 곧 수백 명 단위까지 늘었다.
“배에 붙어 있던 인간들이 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소.”
카치운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보이네. 해적이든 뭐든 켕기는 게 있는 새끼들이란 말이지.”
“리자드맨들이 쫓아가서 잡는데?”
“그러게?”
그제야 베로니카는 뱃전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상황을 살펴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잘라내기네.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보호고 나발이고 못 해 주겠다 이거야.”
“쫄았군.”
“내가 도주라도 백색함대가 상륙전을 시도하면 겁 먹을 것 같긴 해.”
잠시 뒤 리자드맨 쪽배 하나가 기사단 선박들을 향해 다가왔다. 거기에 탄 리자드맨 하나가 기사단을 향해 외쳤다.
“카프텍의 도주 고를락님의 명령으로 코노 호의 임검을 허가한다! 단, 다른 선박은 안 된다! 동의하면 인간 셋만 내려와라!”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시위가 통했다.
“체면 때문에 싸울 맘은 없는 것 같네. 리자드맨 쪽은.”
“에이, 리자드맨 대가리도 썰어 보나 했더만.”
가르달이 투덜거렸다.
* * *
임검 인원은 다섯 명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베로니카와 에드워드가 동승했기 때문이었다. 리자드맨들은 그 요구를 수용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얼른 해 보고 떠나라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여기저기를 뒤졌고, 곧 배 안에 가득 적재된 식량을 찾아냈다. 손대는 사람이 없어 쥐들이나 축내고 있었다. 선실 안에는 여러 배의 이름이 적혀진 황동판들이 들어 있는 상자도 있었다. 그 황동판 중 하나의 이름은 베로니카가 아는 것이었다.
“크리스톨. 이거 올란디니 상회의 선박이었네?”
리자드맨들에게 붙잡혀 온 화물선 선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사제님, 그 황동판들은 이 배 물건이 아니라…….”
“그래? 이 황동판이 뭐든지 간에, 폴라로 돌아가면 널 알아볼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베로니카는 변명을 길게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스텔라가 만든 엉터리 멀미약이었다.
베로니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그걸 악당의 입에 들이밀었다.
“바른대로 말하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