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쇠고기는 좋은 낚시 미끼
“모든 선과 의로움의 원천인 빛이여! 그의 정신과 육신에 힘을 주시고, 빛 안에서 어려움을 면케 하소서!”
베로니카가 아슬아슬하게 근력 강화 주문을 걸어주는 순간, 에드워드는 자신의 머리 위로 풍압을 느꼈다. 후우웅! 미노타우로스의 철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가장 단순하고 강한 형태의 공격. 열쇠검이 부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친 일격이었다.
‘설마 부러지기야 하겠냐마는!’
검답지 않은 검이긴 했다. 검처럼 안 쓴 적도 많았고. 그래도 하나는 확실했다.
이 망할 보검은 절대 안 망가진다.
“무우?!”
미노타우로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드워드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검이 부러지지도 않았다. 놈의 철검은 열쇠검을 따라 미끄러졌다. 강하게 힘을 주던 미노타우로스는 그대로 앞으로 전진했고, 에드워드는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를 살려 그 밑으로 빠져나갔다. 그다음에는 바로 허리에 일격.
퍼억!
하지만 얕다. 베이질 않는다.
놈과 에드워드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 세트렛인들이 에드워드한테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에드워드는 표적을 바꿨다.
“죽는 게 소원이면 그렇게 해주마!”
에드워드는 선미루까지 뛰어 올라가 단신으로 세트렛인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화살은 그의 갑옷을 뚫지 못했기 때문에 세트렛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야 했다. 몇몇 전사들이 나섰지만, 기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불구덩이의 양쪽으로도 이미 기사단이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불구덩이와 난전 속을 헤집던 미노타우로스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는 쿵쿵 달려왔다.
무우우우우우!
놈도 불에 다치진 않는지 털은 그슬리지도 않았다. 에드워드는 방해가 되는 세트렛인 전사를 붙잡아 놈들의 대열로 드던진 다음 잽싸게 방향을 틀었다. 불 맺힌 검이 횡으로 크게 휘둘러지면서 세트렛인들을 베거나 태웠다.
“끄아아악!”
그러나 에드워드는 그보다 더 낮게 몸을 낮춰 굴렸다. 미노타우루스는 세트렛인들을 장작 삼다가 겨우 에드워드가 없음을 깨달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붉은 서코트 자락을 붙잡고는 팔랑팔랑 흔들었다.
“올레! 투우는 로드리고 경이 더 잘할 거 같은데 말이야.”
으직! 그때였다. 미노타우로스의 무게도 버티던 갑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베로니카가 외쳤다.
“이 불, 안 꺼져! 그리고 밑으로 파고드는 불이야! 조심해!”
“세상천지에 밑으로 파고드는 불도 다 있구만.”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하긴 주술과 마법과 기적이 빗발치는 세상이다. 뭔가 다른 법칙으로 타는 불, 불처럼 보이는데 불이 아닌 것 등이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화염 방어 마법 반지가 있다고 너무 나서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에드워드는 다시 미노타우로스와 맞섰다.
하지만 불이 더 빨랐다. 에드워드는 발밑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식은땀을 흘렸다. 전술 변경. 피해가 미미한 검은 방어에 쓰고, 저주받은 손으로 쥐어뜯는다. 다만 그러려면 아주 가까이 붙어야 한다. 검을 쓰는 것보다 더 가까이.
그러나 이제까지 상대했던 놈들과 이 미노타우로스는 달랐다. 염소 대가리의 악마는 꼼수가 특출났을 뿐이다. 오거 주술사는 완력에만 기댔다. 그러나 이 미노타우로스는 전사로서 훈련받은 티가 났다.
후웅!
짧은 베기. 열쇠검의 방어를 타 넘어가는 검격. 놈이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순간 열쇠검에 막힌 검날이 더 앞으로 파고들면서 에드워드의 머리 위를 스쳤다. 놈의 팔과 검의 길이가 훨씬 길기 때문에 사거리조차 불리했다.
“아, 젠장. 더럽게 까다롭…….”
우지끈! 에드워드가 투덜거리는 순간, 제일 윗갑판이 불을 못 이기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운데부터 무너진다!”
기사단원들이 소리쳤다. 다행히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건 미노타우로스가 먼저였다. 놈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더 벌리는 순간 에드워드는 빈틈을 찾았다.
“이판사판!”
에드워드는 앞으로 나가면서 놈의 사타구니로 손을 뻗었다. 금속 보호대가 있었지만 그런 건 에드워드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콰직! 기분 나쁜 촉감이었다. 불알 뜯기. 기사가 레슬링 때 종종 쓰는 기술 중 하나긴 했다.
소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검을 떨어뜨렸다. 비명도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사타구니로 향하는 소의 손을 피하며, 에드워드는 금속 보호대째로 살덩이를 잡아 뜯고 중얼거렸다.
“기분 나쁜 촉감이네, 이거.”
미노타우로스는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아랫갑판으로 떨어졌다. 쿠우웅! 입에 거품을 물고 움찔거리는 놈 다음으로, 에드워드의 발아래 갑판이 무너졌다. 다행히 층 높이는 그렇게 높은 게 아니었고, 그 아래에는 노잡이들이 있었다. 우지끈! 쿵!
“어이쿠, 실례.”
에드워드는 한 노잡이를 깔아버린 갑판 위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쓰러진 노잡이는 반응이 없었다. 그 불행한 자는 목이 부러져 죽은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나뭇조각이 달린 밧줄 목걸이를 건 채 멍한 표정으로 노를 잡고 있었다. 족쇄와 사슬 따윈 없었다.
쓰러진 미노타우로스 너머, 작은 나무방패를 든 세트렛인 감독관이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노잡이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서 무기를 뽑기 시작했다. 주술로 조종당하는 노잡이들. 대개는 부러진 노 따위를 대충 깎은 몽둥이였다.
사제 한둘이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물리적으로는, 목걸이를 끊거나 주술사를 죽이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주술사까지는 노잡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위에서는 자꾸 밑으로 타는 불이 떨어지고 있었다.
“방법이 없으니 원망 마라.”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한 뒤, 노잡이들을 쳐죽이며 주술사와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전진했다.
“도울게요!”
헬레나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르달이 고함을 질렀다.
“나도 내려간다!”
“미쳤소? 엘프야 불이 번지면 다시 윗갑판으로 뛰어오를 수 있겠지만, 댁은 아니라고!”
“자네마저 다리 길다고 자랑하나!”
가르달은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 아랫갑판으로 뛰어내렸다. 카치운은 별수 없이 활을 다시 당겼다. 베로니카가 소리쳤다.
“리안나! 화살 더 가져와! 스텔라 양, 저기 주술사 쪽에 주문 날려요!”
윗갑판의 큼직한 구멍을 통해 지원받으면서 에드워드는 계속 전진했다. 노잡이들은 고통도 공포도 못 느끼는 듯 계속 전진해와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단신으로도 세트렛 전사들을 밀쳐내던 기사는 기어이 미노타우로스 앞에 다시 섰다.
주술사는 겨우 일어서기 시작한 미노타우로스 뒤에 숨으려 했지만, 가르달이 에드워드의 등을 밟고 뛰어올랐다.
“드워프 만세!”
투척용도 아닌 전투용 도끼가 날아가 세트렛 주술사의 방패를 넘어 그 머리를 깼다.
그 순간 미노타우로스는 분노의 외침과 함께 전진했다. 쿠웅! 놈의 박치기가 허공에 뜬 가르달과 부딪혔다. 드워프는 노잡이들 사이로 날아갔다.
끄어어어억!
공마냥 노잡이들을 쓰러뜨리며 굴러가는 가르달을 보자 헬레나는 기겁했다.
“드워프가 죽었어요!”
“안 죽었어!”
“안 죽었대!”
가르달과 에드워드가 차례대로 외쳤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미노타우로스의 사타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짝불알. 남은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에드워드가 사타구니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자 반사적으로 검을 내렸다. 그러나 그게 에드워드가 원하던 바였다.
굳은 자세로 있던 검 끝을 붙잡은 에드워드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자신의 철검이 찌그러지면서 돌아가자 미노타우로스는 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검을 놓치고 만 것이다.
무우우우?!
놈은 어처구니없는 힘에 검을 놓치고 가슴팍을 열어버렸다. 그때 에드워드가 뛰어들었다. 콰득!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내던진 다음, 왼손은 놈이 방어를 위해 엉거주춤 내민 오른 손가락을, 오른손은 놈의 가슴팍을 붙잡았다.
“뒈져!”
가슴팍이 에드워드의 손아귀만큼 파이자 미노타우로스는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놈의 팔다리에 부딪히고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의 사지가 손에 닿는대로 움켜잡고 비틀었다.
“뒈져봐라, 새꺄!”
그 말과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왼쪽 손목은 찌그러져 버렸다. 그다음엔 무릎 관절이 부서졌다. 그제야 일행은 에드워드가 뭘 하려는지 알아냈다.
기사의 레슬링이라기에는 희한했다. 에드워드는 미노타우로스의 짧은 털을 가죽과 살점째 잡아 뜯고 있었으니까. 엄청난 힘에 잡아 뜯기는 공포를 마주하자 미노타우로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검을 놓치고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한 이상, 놈이 에드워드를 떼어낼 방법 따윈 없었다.
팔이면 팔, 가슴이면 가슴. 에드워드는 놈의 피를 뒤집어쓴 채 손이 닿는 대로 잡아 뜯었다. 도우려던 헬레나가 물러서서 헛구역질할 지경이었다. 베로니카는 인상을 팍 썼다.
“그러고 보니 만티코어도 쟤 손에 잡혔다가…….”
만티코어는 두껍고 거칠고 긴 갈기털이라도 있었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아니었다. 그 정도 크기도 아니었고.
다음엔 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를 향해 허우적거리던 손목이 잡혀서 부러져나간 것이다. 에드워드는 방해가 사라지자 다시 미노타우로스를 잡아 뜯었다. 내장이 붙잡혔을 때, 미노타우로스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콰직.
미노타우로스는 피거품을 내뿜기 시작했다. 카치운이 중얼거렸다.
“폐를 당했군. 저러면 자기 피에 익사할 거요. 아니면 그 전에…….”
에드워드는 남은 폐 하나를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손이 뭔가를 움켜쥐는 순간,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부러진 손목이 하늘로 향했다. 놈은 그 직후 멈췄다.
“심장을 잡았군.”
카치운이 말했다.
“당분간 소고기는 못 먹겠어요.”
리안나가 중얼거렸다. 미누타우로스가 휘젓던 팔다리는 에드워드의 손아귀에 부러지거나 작살이 났다. 에드워드는 놈의 가슴팍에서 털과 피가 잔뜩 달라붙은 채 일어섰다.
“염병할 새끼. 고생시키기는.”
세트렛 전사 하나가 윗갑판에서 계단을 내려왔다가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손을 높이 들어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뭐라는겨?”
리안나의 번역을 기대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집어 들고는 놈을 겨눴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못 해? 비텔리아어라도 해봐. 밥 먹으려고 손 씻었다고?”
세트렛인은 계속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때 배가 기우뚱거렸다. 콰드드득! 배 옆구리가 뚫리더니 거대한 서펜트 대가리가 들어와 세트렛인을 삼킨 채 반대편으로 관통해버렸다. 계단도 무너졌다.
“와, 깜짝이야!”
에드워드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뒤로 물러섰다. 가르달은 에드워드의 등 뒤로 달려와 말했다.
“바닥이 계속 타고 있소.”
에드워드가 등 뒤를 돌아보니, 그 말대로였다. 이번 발판도 사라지고 있었다.
“계속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보스전이냐…….”
“이 갤리는 3단이오. 아래에 한 층이 더 있겠지. 하지만 그게 마지막일 거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래층에도 주술사 있거든…….”
“대가리를 깨 놓지.”
가르달은 주술사의 머리에서 도끼를 뽑았다. 그리고는 서펜트의 비늘을 가리켰다.
“이건 어쩔 거요? 또 잡아 뜯게?”
에드워드는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뱀 내장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니 보류. 잡아 뜯어봤자 소용없겠는데.”
“알면 잡아 뜯었을 것처럼 말하는구만.”
배가 다시 기우뚱거렸다. 서펜트가 배를 감싼 채 날뛰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계단 위로 올라갔고 가르달은 그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뒤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려가자마자 주술사와 마주친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남은 세트렛인 전사들을 쳐 죽이면서 겨우 기사단과 합류했다. 기사단은 빠르게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한 기사단원이 소리쳤다.
“이 배는 글렀소! 이상한 불이 붙었지, 서펜트가 감쌌지! 더는 못 버티니 우리 배로 후퇴할 거요!”
“기다리쇼! 아래에 노잡이들도 있어!”
“그들까지 다 실을 시간이…….”
“피해!”
에드워드가 소리친 순간, 그 기사단원은 서펜트의 입에 채여 사라졌다. 기함을 얽은 놈은 시서펜트들 중에서 가장 큰 놈이었다. 카치운은 계속 활을 쏴대다 에드워드를 보고 소리쳤다.
“너무 크고 단단해!”
“전격 마법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둥소리가 울렸다. 콰르르릉! 하지만 서펜트는 움찔할 뿐이었다. 카치운은 버럭했다.
“이 무쓸모 마법사야! 더 좋은 거 없어?!”
“와! 폭언! 제가 주술사 주문 두 개는 방해했거든요? 그리고 저런 괴물 상대로 통하는 마법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학비 반납해!”
“댁이 줬어요?!”
가르달은 살아남거나 해방된 노잡이들과 함께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감탄했다.
“이야, 저거 대가리 잘라다 꼭 내 방에 장식하고 싶군.”
에드워드는 열쇠검으로 기사단 기함을 가리켰다.
“가르달은 노잡이들 데리고 배로! 스텔라, 시서펜트는 약점이 뭐야? 잡는 법 있을 거 아냐?”
“없어요, 그런 거!”
“시약 중엔 시서펜트 비늘도 있잖아! 못 잡는 게 어딨어!”
“그건 시서펜트가 버린 허물을 찾아서 가루로 만드는 거예요! 정면으로 잡으려면 대형 포경선 서너 척이 협동해야 한다고요!”
“기사단도 노포는 있어!”
에드워드가 기사단을 돌아보니, 과연 커다란 화살을 장전한 노포들이 시서펜트를 노리고 발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력과 수량이 모자랐다. 기사단 갤리가 집중사격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군선 각자가 전투 중인 상황에서는 쉬운 게 아니었다.
“젠장, 다른 방법 있어?”
“함정이나 독 먹이를 쓰는 게 정석이죠!”
“독이 어딨어?”
그때 에드워드는 갑작스러운 정적과 기묘한 시선을 느꼈다. 시서펜트의 시선이었다. 그제야 에드워드는 자기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미노타우로스의 피를 뒤집어쓰고 그 털을 잔뜩 묻힌 인간. 베로니카와 헬레나도 그 사실을 깨닫고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저기, 에드? 주문 걸어줄 테니까 일단 몸을 피해. 근데 이쪽으로 오지는 마.”
“베로니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