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루키 (1)
갤리선들이 제압당한 뒤에도 세트렛인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섬의 요새로 도망쳐 최후의 저항을 했다.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목책 요새를 간단히 무너뜨렸다. 임시 거주지에 불과한 곳이라 별 대단한 요새화가 이뤄지질 않았고, 이미 대부분의 전력은 배와 함께 제압당했기 때문이었다. 리자드맨 전사 하나가 망루에 올라가 포효했다.
“개종하면 빛의 노예! 안 하면 우리 노예!”
그 장소가 만약 빛의 진영이었다면, 빛 대신 어둠이 들어갔을 문구였다. 리자드맨들은 항복하지 않는 세트렛인들을 전부 베어 죽였다. 모든 전리품의 반절은 리자드맨들의 몫. 그들은 철저히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느려터진 화물선으로 도망치던 선원들 역시 곧 리자드맨들에게 붙잡혔는데,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그걸 두고 리자드맨들과 말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러니까, 얘들은 어둠의 함선이 아니니 당신들 전리품으로 인정 못 해준다고!”
베로니카가 리자드맨 지휘관한테 소리를 쳤다. 도주의 장군인 그는 인간이 봐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깃발을 바꿔 달고 어둠의 배인 척하는 놈들은 이미 어둠이오!”
식량 수송선들은 위조된 문서와 깃발로 세트렛의 배인 척하고 해적 섬 근처에 정박한 것이었다. 세트렛인들도 거기 속았다는 게 개그였다.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평상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에드워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포로로 잡힌 선장들과 선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사칭한 소속은 ‘산벡’보다 더 거대한 세력이자 그 뒷배인 ‘벰투’의 유력자였다. 그래서 산벡 해적들은 그 배를 안 건드린 모양이었다.
“대체 어느 놈이 이런 준비를 해줬지? 여기 있는 해적들의 소속은 물론이고 그 뒷배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니…… 선장들이 할 일은 아닌데?”
정보를 모으고 분석할 능력이 있는 거물. 수송선단 제독은 식은땀을 흘렸다.
“나도 모르오! 상회는 그저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지도와 깃발은 내 방에 놓여 있었소! 진짜요!”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방법으로도 연관성은 충분히 부정된다. 그게 골치였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이제나저제나 선장들이 다 똑같은 소릴 하네. 자기는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고 연락할 방법이 마땅찮았다고. 고문할까?”
“소용없어. 흑막은 몇 중으로 연막을 쳐놨을 거야. 이 선장들은 자백할 게 없거나, 자백했다간 죽는 것보다 끔찍한 일을 겪을 테니 입을 다문 거겠지.”
“그 정도 능력이 있으면 이런 괴상한 짓을 안 해도 상회를 잘 이끌어나갈 것 같은데.”
“상인으로서의 재능과 사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비슷해 보여도 다른 법이지…… 그나저나 에드? 이 리자드맨 장군이 전혀 설득이 안 되는데?”
“리자드맨은 법리가 통하는 애들이 아니잖아. 전사 대 전사로 말해주면 통할지도?”
“내 탓이란 거니?”
“그렇게 들렸나?”
“알았어. 잠깐만.”
베로니카는 선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기름등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에드워드의 정수리에 부었다.
“야, 설마…….”
베로니카는 설명 없이 불을 댕겼다.
화르르륵!
에드워드의 머리는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었고 리자드맨들은 입을 쩍 벌렸다.
“자, 이제 네가 말해.”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그녀가 못 들을 크기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고스트 라이더냐, 로스트 소울이냐…….”
불타는 머리통이 리자드맨 장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자드맨들은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배들은 가져가겠소.”
리자드맨 장군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가 된 세트렛인들의 처분은 기묘했다. 그게 전사건 노잡이건. 빛의 진영은 개종하지 않는 세트렛인 전사들을 노예로 쓰기 꺼렸다. 악마의 이름을 빌어 주인을 저주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니까.
돛대에 거꾸로 매달린 리안나는 그 기호를 두고 신랄히 논평했다.
“주인이 가혹하면 빛의 노예도 밤마다 악마 찾을걸요!”
“시끄러! 주인 죽으라고 뱀을 응원한 노예가 뭘 잘했다고 떠드냐!”
에드워드가 맞받아쳤다. 하지만 밴시는 계속 입을 놀렸다.
“그만큼 기사님이 악독했잖아요! 안 죽었으면 됐지! 혀 한번 놀렸다고 이렇게 처벌하는 게 어딨어요? 불공평해요!”
“사회에서 공평보다 중요한 게 뭐게?”
“뭔데요?”
“계급이다!”
“기득권!”
거인족 같은 몇 안 되는 예외를 빼면, 종족과 성별보다 우선시되는 게 사회적 계급. 인간 평민은 엘프 귀족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고, 엘프 평민은 인간 귀족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돛대 아래 앉은 카치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가 잘못하면 응징해야지.”
“전 억울하게 노예가 됐잖아요!”
“난 네가 어떻게 노예가 됐는지 몰라. 그게 중요한가? 누가 그걸 일일이 들어주겠어? 네가 지금 노예란 게 중요하지.”
“잔인해! 인간은 잔혹해!”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포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세트렛인의 배에서 해방된 노잡이들. 적은 수지만 개종을 거부하는 노잡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해방된 자로 빛의 영역에 풀어놓을 수 없었다.
리자드맨들은 그걸 잘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 몫의 포로들 중, 빛으로 개종한 자들을 두고 기사단과 거래를 시도했다.
“빛 하나에 어둠 셋!”
“안 돼! 빛 셋에 어둠 하나!”
“폭리야!”
“그쪽이야말로!”
흥정하는 사람들을 보고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이 거래는 리자드맨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들이야 거래가 불발되어도 남는 건 어둠 노예 하나지만, 기사단은 죽일 시체만 하나 더 늘어나니.
“이번엔 우리 편이 살짝 불리한 거래군. 선악이 명확히 나뉘면 이런 일도 생긴단 말이지.”
식량 수송선들은 화물을 약간 축내긴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배와 화물을 통째로 갖고 도망치려던 자들로 재판에 넘겨진다고 했다. 선원들은 내막도 잘 모르는지라, 해적질에 가담한 것만 아니면 대개는 극형까지 안 간다.
문제는 선장들.
에드워드는 다시 멀미로 고생하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흑막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의 계획을 우리가 꽤 망쳐놨는데.”
“그래서? 새삼 겁나?”
“선장들도 뱃사람이야. 때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과 마주하잖아. 그런 그들조차 입을 닫게 만들 힘이 있는 흑막이라면 경계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일단, 복수는 걱정하지 마.”
“왜?”
“그 작자들은 사태를 수습하고 다음 기획을 짜느라 더 바쁠 테니까. 복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걸.”
베로니카는 다 죽어가는 듯한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바다를 가리켰다. 육지 방향.
“그리고 선장들은 바다보다 무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야. 그 바다가 아닌 곳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거야.”
“약점을 잡았다?”
“다양하지…… 올란디니는 상인들이니까, 먼저 돈놀음을 할 거야. 학비와 생활비와 빚 같은 것.”
베로니카는 인상을 쓰면서 벽에 머리를 기댔다.
“입을 다물면 약속을 지키겠다. 못해도 절반은 챙겨주겠다…… 그럴싸하지? 입을 다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 정말로 구체적으로 지시받은 건 ‘아직’ 없을 테니까. 고문해도 소용없어.”
“절반이라. 그 약속을 어떻게 믿지?”
“안 믿으면, 방법이 있겠니? 올란디니는 처음부터 궁지에 몰린 선장들만 골랐어. 멀쩡하던 사람한테 접촉한 게 아니라. 배도 계획에 맞는 걸로 처음부터 준비했겠지. 악당들이야.”
원래 사기꾼이 하수인을 잘라내는 방법이란 게 다 그렇다. 볼모를 잡거나, 전모를 모르는 채 희생양으로 삼거나.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올란디니가 곤란해지긴 하겠네. 화물 운송은 지연되었고, 기사단한테는 의심받고, 소문도 조금씩 퍼지겠지. 보험회사의 블랙리스트에도 오를 테고.”
“마지막은 센 건가?”
“글쎄? 장담 못 해. 사기꾼들은 항상 방법을 찾잖아. 걔들이 우리한테 복수 같은 거 안 한다고 예측하는 이유도 그거야. 이번이 실패해도, 그다음이 있다는 거지.”
그 말에 에드워드는 투덜거렸다.
“소 새끼와 뱀 새끼가 더 상대하기 편하군.”
“나머지 수사와 응징은 주교님과 기사단과 보험회사에 맡겨야지. 우리 일은 끝났어.”
그때 선실에서 몇몇 아이들이 걸어 나왔다. 에드워드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봤다. 옷감과 함께 털렸다던, 올란디니 무역선의 노예 상품들. 기사단이 기어이 구출해낸 모양이었다.
“저기, 기사님?”
“왜?”
아이들은 쭈뼛쭈뼛하다 허리를 숙였다.
“기사님이 괴물들을 쓰러뜨려 주신 덕택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일 앞에 선 꼬맹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고는 손사래를 쳤다.
“너네 구출한 건 기사단원들이잖아.”
“물론 그분들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일 먼저요.”
“알았다. 가라. 낯 간지럽다.”
“기사님이 그런 업적을 이루지 못하셨다면, 저희는 몰렉의 제물이 되어서…….”
“알았으니까 가라고.”
에드워드는 다시 손짓을 해 보였다. 아이들은 에드워드와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다시 선실로 돌아갔다.
“애들한테는 좀 상냥하게 못 하니? 리안나도 그렇고…….”
베로니카가 힐난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애면 그렇게 해볼게. 같이 도전해볼까?”“내가 멀미 중만 아니었으면 등짝을 확…….”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14척의 수송선 중 11척을 찾았다. 나머지 3척은 어디 흩어져 숨었는지 찾기 어려울 듯했다. 기사단에서 더 이상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워, 결국 에드워드 일행은 귀항을 결정했다.
폴라 시로 돌아오자 일이 바쁘게 돌아갔다. 무수히 많은 포로와 해방 노예들을 풀어놓는 것도 일이었다. 집이 있는 자들은 귀환길에 올랐지만, 대개는 빛에서나 어둠에서나 노예 처지. 인신 공양 제물이 안 되는 것이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리안나는 기사단이 구출했던 소년, 소녀들도 ‘분실되었다 되찾은 상품’으로 올란디니 상회 사람한테 맡겨지는 것에 기겁했다.
“쟤들은 결국 노예 신세예요?”
“올란디니 상회의 상품이잖아. 어둠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해서 그런 신분이 바뀌진 않아.”
“그럼 쟤들은 자기 것도 아닌 목숨을 구해줬다고 기사님께 감사드린 거예요? 세상이 왜 이래?”
“자기 것이 아니긴 무슨.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텐데. 몰렉의 손아귀에서 돌아왔으면 쟤들한테도 다행인 거지.”
그게 에드워드의 평소 입장이긴 했다. 뭘 해도 죽는 것보단 낫다.
식량의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선물 계약과 보험 계약 모두 아직은 태동기. 미비하거나 이상하거나 탐욕스러운 계약들에 얽힌 화물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겨우 육상 수송로에 올랐다. 그것도 서류상으로만. 기사단은 에드워드 일행과 연이 닿은 페르난도의 창고에 그 식량을 맡겼고, 올란디니 상회는 서류상으로 이를 수령했다.
상회 직원은 에드워드 일행한테 화물을 찾아준 데 대한 감사 인사를 건넸는데, 영업용 미소였지만 적대적이거나 위선적이지도 않았다. 상회 대표의 감사장, 그리고 약간의 사례금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수령을 거부했지만, 나머지 일행은 다들 돈을 받았다.
흑막이 상회 대표라면, 그는 분명 철저한 사기꾼일 것이다.
“이미 만티코어를 처치한 걸로 명성이 자자한 기사 에드워드 경께서, 세트렛인들의 악마가 보낸 미노타우로스와 시서펜트까지 처단하였다는 소식에 올란디니 상회의 모두가 놀랐습니다. 빛의 인도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저희를 곤경서 구하게 하셨군요. 불행히도 상회의 재정 상황이 나빠, 위업에 비해 보잘것없는 사례만 드리는 것을 사과드립니다.”
말단은 아무것도 모른다. 에드워드와 상회 직원은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만티코어 처치라. 거리가 멀어지니 슬슬 희미해져 가는 명성이던데, 상회 사람들은 아는군.”“상인들이야 소식이 중요할 테니.”
“저 친구는 진짜 중요한 소식은 모를 말단이겠지만. 그래도 월급 받겠지?”
“상회가 텅 비고 대표가 사라지고 피해자들과 수사관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베로니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에드워드를 살펴보던 검은 머리 소년 하나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말을 붙였다.
“저기, 실례지만 얼핏 들었는데…… 앵글리아의 에드워드 경이십니까?”
일행의 시선이 그 소년에게 박혔다. 천을 몇 겹 겹쳐 만든 누비 갑옷을 입고, 코등이가 달린 고깔 투구를 분실 방지용 끈에 엮어 목에 걸고, 허리엔 검을 하나 찼다. 어느 기사의 종자나 하인쯤 되는 듯했다.
“그래, 왜? 무슨 볼일이냐?”
소년은 황급히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를 당신의 부하로 거둬주십사 합니다!”
에드워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