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루키 (2)
소년의 이름은 마테오. 혼자가 아니라 4인조 일행의 리더였다. 그러나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서 리더가 된 게 아니라 ‘합류’ 순이었다. 원래 리더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 리더는 마메르티니아 출신의 편력기사로, 창고업자 페르난도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주인이 급사했다고?”
베로니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 경이 연세가 좀 있는 분이셨지만……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신앙의 기적을 쓸 새도 없이.”
“기사 생활을 하면서 얻는 부상 후유증 중에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지.”
베로니카의 시선이 약간 떨어진 탁자에 앉은 마테오네 일행을 향했다. 에드워드 일행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가지각색이었다.
쇠못을 빼곡하게 박은 나무몽둥이를 든, 탁한 금발의 여자 수습 사제. 사제복은 칙칙한 회색, 교단 상징은 검은색. 목에는 수습의 상징인 열쇠 장식물을 매단 긴 철제목걸이 외에도, 가죽 벨트 모양새를 한 ‘속죄의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사제가 그걸 끼는 건 일종의 불명예였다. 나이는 베로니카보다 어려서 이제 막 서품받은 듯했다.
그 옆은 커다란 쇠뇌를 든 단발 붉은 머리 여자. 바지를 입었는데 허리띠에는 부족한 팔 힘을 보충하기 위해 시위를 걸어 당기기 위한 갈고리가 매달려 대롱거렸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칫칫 소리를 낸다. 여자 용병은 흔한 게 아니지만, 베테랑은 아니다. 겉보기로는 마테오와 동갑. 가출했을 확률이 높다.
마지막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접시처럼 생긴 작은 쇠 방패를 검과 함께 찬 방랑 검객. 옷차림도 평상복에 더 가까웠다. 그런 걸 차고 다니는 건 도시의 인물이다. 대개는 대학생이나 건달.
다들 갑옷은 천 갑옷 정도에 불과한 초짜들. 에드워드는 이 자리에 없는 페르난도를 향해 살짝 불만을 흘렸다.
“소개를 빙자한 떠넘기기네. 알선의 모습이 영 안 좋은데? 혹시 필요하시면 데려가라 그 정도잖아.”
“네가 순례 기사니까.”
“적어도 사정을 적은 편지 한 장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널 우습게 보는 게 아니야. 얘들한테 귀띔 이상을 해줄 가치가 없단 뜻이겠지. 페르난도 경한테 사이먼 경의 부하들까지는 필요 없다…… 아마 그 기사는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모양이야.”
베로니카의 말에 마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상속받을 정당한 후손도 없고, 일가친척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압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떻게든 헤쳐나가며 모험과 방랑을 즐기던 기사가 외로이 죽었다. 흔한 이야기다. 보통은 그 전에 싸울 기력을 잃고 수도원 등 어딘가에 의탁하지만.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페르난도는 사이먼 본인 외에는 볼일이 없다 이거군. 사이먼 경이 데리고 다니던 부하는 너희가 전부냐?”
“몇 명 더 있었지만, 인연이 오래되지 않은 자들은 주인의 재산을 처분한 후 다 흩어졌습니다. 남은 건 저희뿐입니다.”
“너희는 왜 아직 뭉쳐 있지?”
“기사를 따라가는 것 외에는 배운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에는 언제 왔냐?”
“사흘 됐습니다. 여비를 더 벌기 위해 잡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잡일?”
“언데드 따위를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 주변에 언데드가 흔한가?”
마테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고대 유적지나…… 전염병 희생자를 묻은 집단 매장지에 가면…….”
“맙소사. 궂은일 중의 궂은일이군.”
돈 없는 전사의 전형적인 돈벌이 겸 수련 상대. 태우기엔 연료비가 너무 많이 들고, 성직자조차 역병을 겁내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간신히 치른 장례식도 그 의식이 닿지 않았던 시체들. 그런 시체들은 재수 없으면 언데드로 일어나 배회하기도 한다. 도시의 역사가 길어 집단 매장지가 곳곳에 있다면, 불행한 언데드 정도는 가끔 볼 수 있다.
노획을 기대할 물건은 없고, 일은 위험하고, 재수 없으면 병이 옮는다. 특히 마지막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피당하는 일이다. 식당이나 주점에 출입이 금지당하는 경우도 있다.
베로니카의 시선이 다시 수습 사제를 향했다.
“그래도 사제가 있으면 할 만한 일이네. 깔끔하게 잘 씻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이도 어린 수습 사제가 왜 ‘속죄의 목걸이’ 따위를 하고 있지?”
수습 사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설명은 마테오가 작은 목소리로 대신했다.
“저 누나는 남부 아퀴타니아 출신인데…… 공부하던 도시가 통째로 이단세력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설마…….”
“예. 이단자한테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교회의 ‘대원칙’까지는 안 건드린 이단자였겠네. 아직도 사제복 입고 다니는 걸 보면.”
“네. 신앙 복귀 후 까다로운 재심사를 겨우 통과했답니다. 그 때문에 속죄 여행의 명령을 받았고.”
“대충 알겠네. 어디 가도 섞이기 힘든 애들이야.”
베로니카가 손사래를 쳤다.
“난 반대.”
에드워드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수습 사제는 크게 움찔했다.
“저 여자가 죄인이라서?”
“아니, 일행에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서. 다들 초짜에, 이질적이고. 비용만 늘어나.”
“합리적이군.”
“다만 돕고는 싶지. 속죄하겠다는 사람에게 일부러 박하게 굴 건 없으니.”
“그거 나 보고 하는 말이면 참 좋겠다.”
“넌 좀 많이 굴러야 돼.”
에드워드는 그 말을 듣고 낄낄거렸다. 그러곤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일단 물주가 안 된다고 하니까 고용은 불가. 하지만 다른 기사들에게 소개장을 써줄 수는 있다.”
“와, 기사님. 떠넘겨 받은 걸 또 떠넘기신다. 로드리고 경이나 조르쥬 경에게 넘기려는 것 맞죠?”
스텔라가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그래서 뭐? 걔들은 기사 아니냐? 게다가 그 둘은 이단의 성채에서 성문을 맡아 대활약했다고. 돈도 뭐…… 나보다야 자유롭게 쓰겠지. 로드리고 경은 페르난도의 조카니 후원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저희는 페르난도 경한테서 에드워드 경의 위업에 대해 듣고 온 것이라, 가능하면 에드워드 경께 봉사하고 싶습니다만…….”
본심인지 의례적인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후자로 생각키로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물주가 부정적이라. 그리고 사실은, 내가 아는 기사들도 쉽게 소개해 줄 수는 없다.”
“예?”
“편지를 써주는 순간 내 신용이 너희한테 달려. 무슨 말인지 알지?”
“어…… 이해했습니다.”
에드워드는 기사단의 게시판을 가리켰다.
“일 한두 개 처리하는 걸로 실력 좀 보자.”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초짜들 부려먹으려 하니?”
“용돈벌이나 하지 뭐. 걱정 마, 얘들 몫도 챙겨줄게.”
마테오는 동료들을 곁눈질하더니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좋아. 리안나, 게시판 가서 은화 20개 이상 일감 하나, 금화 급 일감 하나 물어와.”
“제가 개예요?!”
리안나는 투덜거리면서도 게시판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잠시 뒤 그녀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 그걸 딛고 올라가서는 제일 높이 있는 메모지 둘을 떼어왔다. 제일 인기 없는 의뢰들이라는 뜻이다.
“골라도 저런 것들을 고르네.”
카치운이 중얼거렸다. 그는 눈이 좋아서 무슨 내용인지 이미 알아본 것이었다. 리안나가 가져온 메모지를 읽어본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곤 그 쪽지들을 마테오에게 내밀었다.
“자,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쉬운 거, 하나는 어려운 거.”
마테오는 쪽지를 받은 다음,
“사티로스와…… 바르그?”
에드워드는 질문을 던졌다.
“이 두 가지 의뢰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봐.”
“네?!”
“의뢰 내용을 잘 읽어보면 보일 거다.”
마테오는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며 낑낑거렸다. 그때 방랑대학생이 일어나 그의 어깨너머로 쪽지를 보더니 말했다.
“의뢰주는 시청과 기사단으로 별개지만…… 위치와 거리로 볼 때 이 두 가지 의뢰는 사실 하나로 엮여 있는 듯하군요.”
“그럴 확률이 아주 높지. 이 일행도 인텔리 하나 있구만. 이름이?”
“빌헬름입니다. 알레마니아의 바르미아 출신이죠.”
“어디서 뭘 배웠지?”
“마가도부르크 대학 신학과 출신입니다. 어둠의 종족들이나 몬스터에 대항하는 전술도 약간이지만 배웠죠.”
“그대로 졸업해서 신학자나 성직자로 나가지, 여긴 왜 왔어?”
빌헬름은 쓴웃음을 지었다.
“중간시험을 통과 못 해서요. 그래도 배운 게 아까우니 써 먹어보려고 합니다.”
흔한 이유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수습 사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실 그런 건 신학과보다 사제가 더 밝아야 한다. 하지만 수습 사제는 나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삐딱 기울였다.
“거기 박살 천사 아가씨?”
“네?! 그게 뭐죠?! 그런 천사도 있나요?!”
수습 사제는 화들짝 놀라며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에드워드는 메모지를 팔랑거렸다.
“몬스터끼리 근접해 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 그런 거 이단자들은 안 가르쳐줘?”
“배, 배웠어요!”
“근데 왜 안 나서?”
“그야, 누군가가 이미 말할 테니까…… 저는 함부로 말을 하기도 어렵고…….”
우물쭈물하는 수습 사제를 보고 에드워드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까딱거렸다. 저 성격에 ‘속죄의 목걸이’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안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가 일어난다.
“뭐, 방랑 학생은 잘 배웠네. 그 말대로야. 이 정도 거리면 서로 영역이 겹쳐. 독립적인 사티로스들이 무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르그…… 즉 거대늑대 탓일 확률이 높지.”
“아, 그래서 두 의뢰가 사실상 하나라는 거군요!”
마테오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다음 문제를 꺼냈다.
“어느 쪽을 먼저 해치워야 할까?”
“어……바르그만 해치우면, 위협이 사라진 사티로스들은 다 뿔뿔이 흩어질 테니, 그쪽을 먼저 해치워야 하는 건가요?”
에드워드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 사티로스 의뢰는 사라지지. 설령 아니어도 일일이 쫓아다녀야 되고. 생각을 좀 해라. 네가 전사라고 인텔리한테만 다 맡겨놓을 거야?”
마테오는 아차 했다.
“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수익의 극대화를 생각해야……!”
“이걸 말해줘야 아네. 너 리더 하려면 좀 더 굴러야겠다.”
“하지만, 전 리더가 아니라 기사님의 종자였습니다.”
“기사들도 종자로 굴리려면 똑똑한 애 선호해.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재수가 없어서 아무도 너희를 고용 안 하면, 너흰 계속 이 구성으로 다녀야 돼. 전쟁이나 조금만 더 큰 의뢰라면 병종별로 흩어져서 치르겠지만.”
마테오는 아무런 반박도 못 했다. 에드워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티로스 문제는 너희들만으로 해결하고, 바르그 문제는 우리 일행과 같이 해결한다.”
“저희들 실력을 보기 위해서인가요?”
“그래. 바르그는 오크나 고블린 따위가 부리기도 하는 놈이라서, 추격했더니 워밴드가 기다리더라 해도 이상할 게 없거든. 사티로스도 해결 못 하는 놈들이 가면 죽는다.”
사티로스. 상체는 인간이지만 머리에 뿔이 있고, 하반신이 염소인 이족보행 인간형 생물. 키는 인간보다 약간 작다. 어디까지가 짐승 같고, 어디까지가 인간 같은지는 개체차가 있다. 종족이라기엔 숫자나 사회성이 고블린보다 부족하고, 괴물이라고 하기엔 그리 흉폭하지도 않다.
하지만 도시와 그 주변 마을들의 신경을 안 긁는 존재도 아니다.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의 행동 양식은, 고블린과 비슷한 절도범 내지는 강도.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남녀를 안 가리고 성욕이 매우 높은 걸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 숫자는 확인된 것만 열둘. 남자 사티로스로만 한정해 그 절반만 싸움에 나선다 쳐도, 여자가 포함된 4인 일행이 받기엔 아슬아슬한 난이도다.
에드워드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두 가지 의뢰를 동시에 해결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사티로스 의뢰금은 너희가 전부 가진다. 바르그 의뢰금은 우리가 8, 너희가 2. 혹시 워밴드가 있을 경우 추가 지급한다는 위험수당은 전부 우리가 가진다. 대신 소개장 써주고.”
침묵. 에드워드는 두 일행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관대하지? 불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