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굴 사냥 (2)
옛 아드가스 왕국은 폴라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에는 폴라보다 더 번성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강물이 마르고 물길이 바뀌면서 수운이 끊기자 바로 몰락했고, 도시째 버려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설마다 다 달랐다.
어쨌든 아드가스는 아름다운 폐허였다. 폐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덧입혀진 색채들을 오래전에 잃은 노란색 기둥들, 닳아서 둥글둥글해진 석상들, 새 건물의 자재로 재활용되지도 못한 채 시간만 맞는 석재와 벽돌들, 곳곳에 널브러진 녹슨 쇳가루들.
에드워드는 그 폐허를 걸으면서 말했다.
“옛날에 말이야. 앵글리아에 어떤 학자가 있었어. 그가 젊었을 때는 예술도 했지. 주로 그림을 그렸는데, 솜씨가 영 별로였어. 정확히 말하면, 엄청 이상한 그림만 그렸지.”
마테오가 물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십니까?”
“한번은 그 양반 그림 옆에 잘 팔리는 화가가 자기 그림을 전시해버렸지.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그 양반 작품이 찢어지고 부서졌다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썼지 뭐야.”
“와. 속상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어떤 학문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
“어떤 겁니까?”
“몰라. 난 내 작품이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게 작살나 본 적 없어. 그래도 그 양반의 말 하나는 기억나더라.”
“뭡니까?”
에드워드는 한껏 무게를 잡은 다음 말했다.
“지구는 인류의 것이다!”
마테오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ㄲㆍ? 대체 결론이 왜?”
“몰라. 서로의 작품 주제였을지도. 내가 그걸 알면 학자 하지, 기사 하겠냐? 어쨌든 좋은 말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고블린과 오크와 늑대가 오면 그렇게 외쳐보자고.”
“그걸 말입니까?”
“싸울 땐 뭐라도 외쳐야 좋잖아.”
에드워드는 화살 맞고 죽은 고블린의 목을 짓밟으며 말했다. 오크들은 경계병 숫자를 늘리지 않았다. 그리고 좀 전에 오크 하나가 고블린들이 경비 잘 서는지 확인하고 들어갔다.
두 고블린과 작은 바르그 하나는 카치운과 리베르타한테 저격당해 침묵했다. 에드워드는 시체를 걷어찬 다음, 반쯤 묻힌 왕궁 본관의 입구 앞에 섰다. 본래는 크고 장엄했을 본관 입구가, 흙과 모래가 들이차고 천장이 무너져 동굴과 별다를 게 없었다. 위로는 좁고, 옆으로 널찍한 출입구였다.
그는 마테오를 향해 말했다.
“냄새 느껴지냐?”
“아직입니다.”
헬레나가 놈들의 굴뚝에 독초, 유황, 솔방울 따윌 뭉쳐 던져 넣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나프타 수류탄을 들이붓고, 마을에서 산 폐양모를 물에 적셔 굴뚝을 틀어막는다. 제대로만 된다며 엄청난 불꽃과 연기가 놈들의 거처를 덮칠 것이다.
자기들 불꽃에 질식하는 사냥감들. 독특한 굴 사냥이긴 했다.
“소리가 들립니다.”
마테오의 말대로다. 연기보다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빨랐다.
“물 뿌려보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겠지? 슬슬 오겠네. 자, 소년. 함성 일발 장전.”
“진짜 외칩니까?”
“구호 좋잖아. 어둠의 새끼들을 구축하자는 아주 확고한 메시지처럼 들리지 않아?”
“그 학자는 대체 왜 그런 말을 경쟁자와 그 손님들에게 뱉은 건지? 미친 거 아닙니까?”
“끼엑! 껠록! 껠!”
고블린이나 할 법한 기침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에드워드가 주먹으로 자기 왼쪽 팔뚝을 툭툭 치자, 리안나가 재빨리 그의 소매를 걷고 팔찌를 끼웠다. 그는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간투시의 마법 팔지를 쓸 순간이 왔군.”
“몇 마리인지 보여?”
베로니카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이 한가득.”
“좋아. 이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전투나 집중해.”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열쇠검을 겨누었다.
“원래 미치광이 학자의 말은 왜곡해서 쓰라고 있는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가르달이 투덜거렸다.
“인간 말고 드워프도 있는데.”
“엘프도 있는데 말이죠.”
헬레나가 에드워드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착지하며 말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희극배우들과 학자들한테서 떼어내야 돼.”
“그 학자 참 듣도 보도 못한 잡학만 쌓았나 봐요. 명성도 없고. 전 그게 누군지 짐작도 안 가는데요.”
스텔라가 첨언했다.
그 순간 고블린들이 제일 먼저 달려 나왔다. 참을성도 없고 통제도 쉽지 않은 족속들. 에드워드는 선두의 고블린 대가리를 후려쳤다.
“다 죽여버려!”
잠시 뒤 고블린들을 짓밟으며 뛰쳐나온 건 바르그였다. 가르달은 선두의 놈을 방패로 들이받으며 외쳤다.
“이번엔 넘어지지 마라, 꼬마!”
마테오는 성실했다. 그는 에드워드가 가르쳐 준 대로 외치며 온몸에 힘을 넣었다.
“지, 지구는 인류의 것이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목소리가 작다! 더 크게!”
“지구는 인류의 것이다!”
쿠웅! 마테오의 방패에 바르그 대가리가 부딪혔다. 카치운과 리베르타는 고블린에게 낭비하지 않은 화살을 그 짐승들에게 쏟아부었다.
“급소를 노려! 여기서 저지하고, 시체를 방벽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무기를 들고 옆으로 새는 고블린을 죽이거나, 바르그의 대가리를 공격했다. 한 놈은 가르달 위로 도약을 시도하다 카치운의 화살을 맞고 나자빠졌다. 가르달, 그리고 그와 맞서던 바르그는 그 시체를 동시에 얻어맞았다.
“으억?!”
가르달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수습 사제 디나가 그의 뒤를 메웠다.
“드워프님, 미안해요!”
“안 돼! 미안해하지 마!”
디나는 가르달의 비명을 무시하고, 화살 맞은 바르그의 대가리를 못 박힌 몽둥이로 찍어버렸다. 콰직! 붕붕 소리를 내며 연거푸 휘둘러진 몽둥이는 바르그를 쳐죽이는 건 물론, 그 아래 깔린 가르달을 압박하는 데 일조했다.
“밴시도 연기 먹은 고블린은 이긴다!”
리안나는 신나게 납탄과 돌을 던져댔다. 빠악! 옆으로 새던 고블린 하나가 머리에 납탄을 맞고 뻗어버렸다. 하지만 카치운은 부정적이었다.
“화살이나 더 가져와!”
“아, 왜요?! 간만에 밴시도 활약하는데!”
“고블린 따위보다 오크와 바르그가 더 급하잖아!”
카치운이 말하는 순간, 지하 폐허 안쪽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퍼억! 그건 리안나의 이마를 맞췄고 그녀는 뒤로 쓰러졌다.
“리안나?!”
헬레나가 기겁해 외쳤다. 그러나 잠시 뒤, 리안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엔 피 한 방울 없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외쳤다.
“아파!”
헬레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쟤 날붙이에도 안 죽어요? 피부가 강철인 것 아녜요?”
“단단한 게 아니라 질긴 거 아닐까요?”
방랑 학생 빌헬름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오크 궁수 몇 놈이 어둠 속에서 잠깐 고개를 내밀었지만, 곧 되돌아갔다. 싸움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연기가 끊기는 걸 보자 중얼거렸다.
“안에서 진화했나 본데. 아니면 더는 연기를 낼 것 자체가 없거나.”
“그럼 다 질식한 겁니까?”
마테오가 묻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질식할 걸 알면서 가만히 있거나 되돌아가지는 않아. 다른 곳으로 연기를 피한 모양이다. 폐허가 꽤 넓거나 복잡하다는 이야기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바로 들어간다. 매복에 주의하면서. 시간을 주면 재정비를 마칠 거야. 우리가 소수인 것도 알아차릴 거고.”
“지하 공간이 예상보다 넓고 적도 많으면?”
“너 사티로스들의 동굴에서 어떻게 싸웠냐?”
“유리한 곳으로 옮겨서 싸웠습니다.”
“그거면 돼. 좁아지는 곳부터는 네가 앞장서.”
“제가?!”
“네가 방패 들었잖아.”
“설마 그거 시키려고 이 일에 끌어들이신 겁니까?!”
“아님 뭐겠냐? 리안나, 넌 입구에서 대기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쫓아와서 보고해. 지나간 길은 분필 따위로 표시해놓을 테니까.”
“만세! 새 화살받이가 생겼다!”
리안나의 환호에 마테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무시하고 마테오를 앞세웠다. 바르그 밑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가르달도 바로 따라 들어갔다. 나머지 일행은 그 뒤. 헬레나와 디나가 제일 뒤였다.
횃불과 랜턴은 충분히. 에드워드의 마법 팔지는 빛을 증폭시켜 시야를 보여주는 형식이라, 빛이 아예 없으면 소용이 없었다. 물론 빛 한 점 없어도 된다해봤자, 나머지 일행들은 아니므로 불빛은 필수였다.
“함정 같은 거 없을까요?”
리베르타가 불빛에 비친 벽과 바닥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카치운은 그 말에 부정적이었다.
“여긴 왕궁 터야. 왕궁에 함정을 설치하는 왕이 어딨어?”
“오크들이 추가로 설치할 수도 있죠.”
“오크놈들도 자기들이 들락거리는 길에 함정을 깔지는 않을 거다. 그런 거 깔았다간 고블린과 바르그부터 죽을 테니까. 잘 해봐야 허방다리나 간단한 경보장치 정도…… 이런 데서는 함정보다 매복이 골치야.”
일행이 전진하면 할수록 매캐한 냄새가 좀 더 심해졌다.
“역시 환기는 잘 안 됩니다. 괜찮겠습니까?”
마테오가 말했다. 에드워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불과 연기에 안 다치게 해주는 마법 반지를 목에 걸고 있거든?”
“반지를? 왜 손에 안 끼시고?”
“옛날옛날에 어느 악마가 엄청나게 센 마법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설치다 인간이 발악으로 휘두른 칼날에 손가락부터 날아간 일을 생각해서…… 는 농담이야. 손가락에 낄 수도 있긴 한데, 혹시 망가질까 봐 목걸이로 했어. 급할 땐 빼서 남 주기도 편할 테고. 위험할 거 같으면 반지 빌려줄게.”
“지금 주시면 안 됩니까?”
“연기부터 넣은 곳에서는 무심코 일행들보다 앞서갈지도 몰라. 적당히 숨 쉴 수 있는 곳까지만 가봐.”
마테오는 납득하고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들은 많은 기둥. 대부분은 무너지거나 흙에 묻힌 채 위태롭게 지붕을 지탱하고 있었다. 넓어야 했을 공간은 그 흙과 모래 때문에 좁은 길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그사이를 헤매다 말했다.
“이 유적 지도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편리한 지도가 제때 있겠니?”
베로니카가 핀잔을 줬다. 통상 왕궁이나 사원의 구조는 긴 통로를 지나 중앙 홀이 나온다. 홀은 여기보다 더 거대할 것이었다.
방패를 허리띠에 걸고 대신 횃불을 든 빌헬름이 중얼거렸다.
“이런 거 전공은 아닙니다만…… 도굴꾼의 손길도 안 느껴지는군요. 그것마저 사라질 정도로 오래된 유적 같습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자기 투구를 살짝 쳤다. 깡.
“조용히.”
일행은 말없이 전진했다. 계속되는 잔해와 흙더미의 구불길. 에드워드는 문득 기둥의 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행을 향해 손을 들었다. 발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이곳 기둥들이 더 굵은 것 같은데?”
베로니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가 중앙홀이네.”
“천장도 높아집니다. 공간이 꽤 나오는데…….”
에드워드는 빌헬름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럼 여기서 매복하겠네.”
마테오는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입니까? 어디?”
“기둥 뒤나 흙더미 뒤겠지. 어디긴 어디겠어?”
“왜 공격 안 하는 겁니까?”
“놈들도 우리랑 생각하는 건 똑같아. 우리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니까, 최대한 더 끌어들이고 싶은 거지.”
적이 적당한 숫자가 되면 몰아친다. 그게 대부분이라면 다행이고, 일부라 해도 최대한 잘라내는 셈이다.
카치운이 중얼거렸다.
“짐승 냄새가 나는군.”
“그럼 어떻게 하죠? 더 나가면 포위당하는 거 아닌가요?”
마테오의 말에 카치운은 꺼내든 화살을 화살집에 도로 넣고 새 화살을 꺼냈다. 명적이었다. 날아가면서 소리 내는 화살.
“시험해 봐야지.”
그는 화살을 멀고 먼 암흑 속으로 쏘았다. 삐이이이이이이익! 높고 날카로운, 위협적인 소리였다. 그 순간 바르그들이 울부짖었다. 오크들이 당황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 화살, 그렇게 쓰는 방법도 있네.”
명적 소리에 자극받은 바르그들이 기둥 뒤에서 뛰쳐나왔다. 아직 젊은 바르그들이다. 갓 성년이 된. 하지만 저놈들이 나서면 나머지도 나설 수밖에 없다.
“자, 꼬맹이들. 사티로스 소굴에서 해본 거 기억나지?”
에드워드가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다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에드워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 버텼으면 지금도 버틸 수 있는 거야.”
기사들이 종자나 신참을 몰아붙일 때 자주 쓰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