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빨래 시대
밴시 리안나는 사내들의 눈치를 살피다 에드워드의 뒤에 숨었다.
“세탁소를 철거하시오.”
사내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그쪽 신분과 권한을 밝혀라. 그게 순서다.” 기사 에드워드가 대꾸했다.
“우리는 세탁부요.” 남자가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는 남자들을 향해 똑바로 섰다.
“나는 에드워드 드 클레어다. 앵글리아의 정당한 지배자인 로버트 폐하의 명령으로 성지 순례 중이지.”
“그럼, 가던 길 계속 가시오.”
“깜빡했네. 특별 사법관을 호위하고 있지.”
“데리고 가시오.”
어쨌든 가라는 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으름장을 놓았다.
“이 세탁소는 교회 특별 사법관 명령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신들은 허가받지 않았소.”
“재난 상황으로 인한 시청의 특별 허가를 받았다. 부족한가?”
“세탁소 길드의 동의가 없었소.”
“너는 세탁소의 장인(匠人)인가?”
“도제(徒弟)요.”
장인이 되길 원해 그 밑에서 일하며 훈련을 받는 자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장인을 데려와라. 도제 따위와 논할 이야기가 아니다.”
“장인들은 다 도망쳤거나 죽었소.”
“그럼, 세탁소 길드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군.”
“그래서 우리 세탁소 도제 길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소.”
에드워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사내의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도제 길드 따위는 들어 본 적 없다. 언제 생긴 건가?”
“오늘 생겼소.”
“시의 허가는 받았나?”
“못 받았소.”
“앞으로도 못 받겠지. 세탁소 장인들이 그런 걸 허용할 리가 없다.”
“비상사태잖소.”
“그 핑계를 대고 싶다면 너희는 이미 세탁소를 열었어야 했다. 이제까지 뭘 했나? 어제는 왜 안 나왔나? 귀한 옷의 얼룩을 빼는 건 해도, 환자의 피고름과 똥오줌이 묻은 요를 빨기는 두렵던가? 세탁소 길드의 자리는 차지하고 싶던가? 이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것들아.”
밴시 리안나는 경외하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기사답게’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기사님, 진짜 기사님이었네요?”
“그럼, 뭔 줄 알았냐?”
“베로니카님이 종마랬어요.”
“너 나중에 나랑 상담 좀 하자.”
세탁소 도제들은 둘의 만담을 계속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대장은 최후통첩을 꺼냈다.
“우리 실수와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며, 지금까지 그대들이 거둔 수익 또한 인정하겠소. 그러나 우리 역시 이 재난과 고난 속에 놓여 있었으니, 그대의 비난을 온전히 수용하기는 어렵고 부당하오. 철거하시오. 더는 용납할 수 없소.”
대장은 나름 경력과 연륜이 있는지, 말이 길고 정중했다. 봐줄 테니 꺼져라. 에드워드는 거기 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열쇠검을 뽑아 들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탁소는 열려야 한다. 하지만 너희는 일을 하지 않겠지. 그런 놈들에게 일을 줄 수는 없다. 역병과 죽음이 신의 뜻이라면, 너희가 세탁소 장인 자리를 차지할지도 그분께 여쭤보자.”
도제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도제 열여섯 명 대 완전무장한 기사 한 명. 밴시는 논외. 그들은 잠시 쑥덕거렸다. 그 내용은 에드워드에게도 온전히 들렸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한테는 기회가 없어.”
옳은 말이다. 장인의 자리는 제한되어 있고, 도제들이 올라갈 기회는 많지 않다. 뻔했다. 도망간 장인들이 돌아오기 전에 시와 협상하여 입지를 다진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굳혔다. 대장이 소리쳤다.
“조져!”
도제들은 괴성을 지르며 에드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리안나에게 명령했다.
“베로니카한테 가라.”
리안나가 잽싸게 달려가는 순간, 에드워드는 선두의 도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퍼억.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울리며 피가 쏟아졌다.
“포위해! 등 뒤에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대장이 소리쳤다.
물론, 에드워드는 그렇게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광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조대와 세탁물의 숲’으로 숨었다. 도제들이 펄럭거리는 세탁물 사이로 뒤따라 들어갔지만, 곧 대가를 치렀다. 퍽! 서걱! 칼이 살과 뼈를 써는 소리에 이어 비명이 들렸다.
“아파! 베였어!”
“어디야? 놈은 어디 있는 거야?”
“멍청아, 발을 봐! 밑을 봐!”
“옆줄로 가 봐!”
도제들끼리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그들을 비웃었다.
“충고 고맙다.”
퍽! 에드워드는 옆줄에 선 한 도제의 발등을 칼로 찍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순간 에드워드는 다시 줄을 옮겼다.
그 줄에 있던 한 도제가 그를 발견하자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에드워드는 그의 몽둥이를 왼손으로, 저주받은 그 손으로 받아 냈다. 몽둥이는 그의 손에 붙들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손에 힘을 주자 몽둥이는 걸레처럼 찌그러지더니 곧 부서져 버렸다.
“이런 거 처음 보지?”
그 도제는 전의를 상실하고 냅다 도망쳐 버렸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전투를 계속했다.
사실, 전투라고 불러 주기도 어려웠다. 그건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그가 줄을 옮기면서 세탁부들을 차례대로 상대할 때마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세탁물을 더럽혔다. 공포 속에서 고립된 세탁부들은 더 이상 맞설 생각을 못 하고 도망쳤다.
부상자들마저 서로 부축하거나 깽깽이 발로 도망친 뒤, 에드워드는 세탁물 아래에 널브러진 시체의 숫자를 대강 세어 보았다. 끽해야 절반이다.
“왜 안 쫓으시는지요?”
여자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한 피투성이 세탁물을 젖히고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하의 모두 검은색의 옷, 파란색과 하얀색의 체크 무늬 숄, 겨우 목까지 내려오는 부스스한 보라색 머리, 검은색 펠트 모자, 흰색 마스크, 짙은 다크서클, 앞머리에 살짝 가려진 보라색 눈동자. 무기는 없었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검을 내렸다.
“쫓아가 봤자 하나 죽이는 사이에 나머지는 도망갈 텐데 뭐하러.”
“보복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저딴 것들은 두 배가 더 몰려와도 안 무서워. 넌 뭐냐?”
여자는 마스크를 내렸다. 피부는 창백하고 거칠었지만, 미인상이었다.
“미아 루이스, 연금술사입니다.”
에드워드는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그녀가 갑자기 부잣집 아가씨로 변하지는 않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판단을 유지했다. 미인상이나 돈 안 됨.
“자기 할 말만 짧게 하는 여자군. 하긴 말이 너무 많아도 좋을 것은 없지만. 용무를 말해라.”
“기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 잡는 일이라면 안 해. 그건 명분이 있을 때만 하거든.”
“그 반대입니다. 절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도시 밖에 나갈 거라면 포기하고 다른 사람 찾아라. 나도 이 도시를 언제 나갈지 모른다.”
“그 반대입니다. 저는 도시의 더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갈 겁니다.”
“실례지만, 귀한 집 따님은 아닌 것 같은데.”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연금술사입니다.”
“그런데, 왜 호위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것도 방금 도제들과 원수진 기사한테?”
미아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곧 그 이유를 밝혔다.
“기사의 무력과 이단심문관의 권위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 적은 암브로즈 시 당국과 의회입니다.”
에드워드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등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가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베로니카, 리안나. 그 뒤에는 도시 경비병들, 공무원들, 사제가 뒤따랐다.
“이 도시가 당신의 적이란 말이지?”
에드워드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연금술사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광장에는 세탁물만 펄럭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허탈하게 웃었다. 당장 사람들에게 설명할 골칫거리는 없어졌지만,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그는 알 수 없었다.
* * *
“도시를 적대하는 연금술사?”
객관 안, 결산의 때. 베로니카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무슨 악의 형제단 같은 거야?”
“악의 형제단이 이단심문관과 그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겠냐?”
“내가 악당이 되면 말이 되긴 하겠네. 앵글리아 이단심문관은 아무도 예상 못 하지!”
“그러지 말자. 무섭다.”
둘의 만담을 지켜보던 밴시 리안나는 혼란에 빠졌다.
“여기서 이단 재판을 시작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냐.”
에드워드가 밴시의 우려를 차단했다. 베로니카는 깔깔 웃은 다음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걔 다시 만나면 조용히 데려와. 어쩌면 이 전염병과 관계있을지도 몰라.”
“그냥 재산 싸움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그것도 흥미로울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래.”
에드워드가 동의했다.
베로니카는 자기 몫의 돈과 리안나를 챙긴 다음 방을 나갔다. 에드워드는 잠깐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촛불을 들어 다른 양초에도 불을 붙였다. 방이 양초 하나만큼 더 밝아지는 순간 에드워드의 옆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흥미를 보이실 줄 알았습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 깜짝이야!”
에드워드는 기겁해서 소리쳤다. 기사의 체면이고 뭐고 모두 집어던진 목소리였다.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 여기 있는 거 아시고 불을 밝힌 거 아니었나요?”
“아냐! 내가 무슨 전설 속 ‘13번의 암살자’야? 뒤에 누가 섰는지 다 알아차리게? 기척 좀 내고 다녀! 아니, 그보다 언제 어떻게 들어온 거야?”
루이스는 에드워드의 눈치를 보다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이단심문관께서 나가실 때요. 더 일찍 들어오고 싶었는데, 자물쇠를 산으로 녹이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녹여? 무서운 여자구만. 이 객관에 항의해야겠어. 대체 경비는 뭘 한 거야?”
“소용없습니다. 제가 녹인 건 정문에 있는 자물쇠가 아니니까요. 저는 미리 이 방에 들어와 있던 게 아니잖습니까?”
그 말대로였다. 미아는 방금 들어왔다고 했다. 에드워드의 생각은 한 단어에 멈췄다.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있나?”
“객관 곳곳에 있습니다. 시의회의 비밀 손님들은 여기를 통해 다른 건물로 빠져나갔죠. 저도 원래 그중 하나였습니다.”
에드워드는 미아를 만난 뒤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머리를 내미는 생쥐를 발견한, 사냥개의 웃음이었다.
“연금술사들 말이군.”
“그렇습니다.”
“시의회는 그들을 불러서 뭘 했지?”
에드워드의 적극적인 태도에 미아 루이스는 겨우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꺽다리왕 로버트가 반년 전 화폐 주조에 대한 여러 칙령을 발표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니.”
단호하고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미아는 다시 당황했다. 에드워드는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웅변하는, 아주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긴, 순례자가 신경 쓸 내용은 아니지요.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국왕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칙령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시장에서 화폐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시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상인들은 이 사태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꺽다리 로버트의 조치를 거스르는 건 현명한 짓이 아니죠.”
“폐하께서 정하신 일이라면야.”
에드워드는 짐짓 점잖은 척을 시작했다. 미아는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상인들은 시장에 더 많은 금과 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죠. 광산 개발입니다. 하지만 근래 광맥을 찾으려는 시도는 지지부진했고, 상인들은 결국 연금술사들을 찾았습니다.”
“금을 만들라고?”
“그렇습니다. 금을 숙성시키는 대지의 시간을 인간이 따라잡겠다니, 성실하지 못한 발상이었죠.”
“뭐, 그게 연금술사들의 본업이지.”
그 순간, 미아의 몸이 딱 굳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그 연구에 참여한 이유도 알 것 같네. 연구비가 궁했지? 젊은 여성 학자는 인기 없으니까,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상인들의 주문대로 금을 만들든, 다른 것을 만들든 성과가 필요했겠지.”
미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제야 에드워드는 그녀의 이상을 알아차렸으나, 딱히 배려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말을 멈추지 않고 기어이 쐐기를 박았다.
“하기야 연금술사도, 상인도 금에 환장한…….”
“나의 연금술은 그렇지 않아!”
미아 루이스는 버럭 소리를 질러 대고 말았다. 당황한 에드워드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려다 자신의 손이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황급히 손의 궤도를 바꿔 벽을 쳤다. 쿵! 벽이 파이면서 방이 살짝 흔들렸다. 만약 그의 손바닥으로 사람의 입을 틀어막았다간, 재수 없는 경우 턱이 뜯겨 나갈 것이었다. 하지만 미아 루이스는 멈추지 않았다.
“금은 가장 오래 숙성되고 가장 안정된 물질이지만, 단지 ‘한 단계 위’에 대한 증거일 뿐이에요! 연금술의 진정한 목적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끄는 것이죠! 그런데 온갖 욕심쟁이들이 원래 목적은 잊고 한낱 증거에만 매달려서…….”
굉장히 빠른 말이었다. 너무 빨라서 몇몇 발음은 뭉개졌고, 그 내용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에드워드는 말의 홍수 속에서 침착하게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좀 조용히 해. 뭐 하러 몰래 들어왔는지 잊은 거야? 들키고 싶어?”
“어이, 망나니. 무슨 일이야?” 베로니카의 목소리였다.
늦었다.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