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환생 군단
세트렛인들은 악마를 숭배한다. 그게 신이 아닌 줄 몰라서 섬기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본래 빛의 종족임을 알지만, 그들의 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악마가 승리했기 때문에 숭배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둠의 법칙에 굴종하고 때로는 은덕을, 때로는 저주를 맛보았다.
하지만 사슬에 익숙해진 노예들은 서로 족쇄를 자랑한다는 법칙은, 세트렛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한테는 배신과 암살을, 학대와 인신 공양을 일삼는 자일수록 오히려 더 우수한 엘리트이다.
지배자들마저도 악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전염병과 기근을 방치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악마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아프지 않은 육체를, 더 달콤한 식량을 내려준다. 악마는 그렇게 유혹을 강화하고 사람을 타락시킨다. 결과적으로 악마 숭배자들로만 가득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커다란 몰렉 동상이 등대를 겸하는 세트렛 도시 ‘아브멜렉’의 어느 대저택의 방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빌어봐! 네가 바다 건너로 날아가게 해달라고! 빛에건 어둠에건!”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자신보다 더 꾀죄죄한 여자 노예를 채찍질하며 소리쳤다. 빛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이고, 안 들어준다면 그걸 비웃을 것이다. 어둠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그것도 재밌을 것이다.
“그만해라, 펠리샤. 그러다 죽겠다. 물 길어올 사람은 있어야지.”
한 남자가 말했다. 펠리샤라 불린 여인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 물항아리를 깼잖아요!”
물항아리를 깬 건 하녀의 실수가 아니라 꼬맹이들의 창던지기였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멍청하게 꼬맹이들의 표적이 된 것이 잘못이다. 펠리샤는 칼을 뽑아서 하녀의 머리에 들이댔다.
“훔치든, 몸을 팔든, 이 집 밖에서 항아리 하나 더 구해와. 당장!”
“네, 네에.”
하녀는 후다닥 달려갔다. 펠리샤는 씩씩거리다 말했다.
“멍청한 노예는 제물 외에 쓸 데가 없다니까. 쟤, 다음 제사 때 불에 던져버리죠.”
“그만해라. 그보다 바쁜 일이 많다. 다음 제사보다는 지금 내려진 임무가 더 문제야. 레피림 님의 계시에 따르면…….”
“이 도시를 수호하지도 않는 분이 무슨 낯으로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대요?”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펠리샤, 레피림 님은 몰렉 님만은 못해도 충분히 강한 대악마셔.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야.”
“네, 충분히 강하시죠. 그러니 보답이나 제대로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오라버니들에겐 뭘 주시기로 했죠? 저한테는요?”
“그분은 보상을 먼저 제시하는 법이 없어.”
“그러니 숭배자도 시원찮지. 몰렉 님의 동맹만 아니었으면…….”
“그만하래도.”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는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보고는 말했다.
“붉은 옷의 앵글리아인 기사와 그가 호위하는 여사제…… 보통 인간들은 아닐 것이다. 레피림 님이 바다의 악마들을 사주해 일으킨 폭풍 안에서도 무사했다니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만.”
“그쪽에서 좀 더 똑바로 처리했다면, 우리 항구 앞에 배를 들이밀었을 텐데 말이죠. 아니면 기사단 요새섬으로 도로 밀어 넣거나.”
그때였다. 갑자기 방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탁자 주변의 남녀들이 테라스로 나가보니, 등에 화살을 꽂은 기병 하나가 대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펠리샤와 그의 오빠들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이방인이 나타났습니다! 동쪽 해안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봤느냐?”
기병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란 비단옷을 입고 굽은 활을 사용하는, 건장한 활잡이입니다!”
“붉은 옷이 아닌데요, 자무스 오라버니?”
펠리샤가 오빠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기사는 일행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지. 일단 추적해봐야겠다.”
펠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까 두들겨 맞던 그 하녀가 빈 항아리를 들고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녀의 뒤에서 곡소리가 들려오더니 성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훔친 것이다.
일단 담벼락 안으로 들어온 이상 이 저택의 것. 하지만 펠리샤는 만족하지 않았다.
“물까지 채워와야지, 이 멍청아! 서둘러! 우리부터 출발할 거야!”
카치운이 자신이 잡아온 것을 내동댕이치고, 본 것을 떠들어댈 때쯤. 사람들은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던진 것은 세트렛인들의 쓰는 깃털 장식 모자였다. 그가 본 것은 소머리를 한 악마상 모양의 거대한 등대였다.
“도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소. 손바닥 크기로 보이더군. 하지만 등대는 유별나게 눈에 띄는 크기였소. 엄청난 크기였지. 전설 속의 등대가 그럴 것 같아.”
“아브멜렉이군. 젠장!”
선장이 모래사장을 거칠게 걷어찼다. 그는 빠르게 설명했다.
“기사단 요새섬과 대립하는 세트렛 도시 중 하나요. 해군은 작년 기사단과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지만, 도시는 아직 건재하지.”
“뭐 하는 도시요?”
겨우 남은 물로 입술을 적시던 에드워드가 묻자 선장은 몸서리를 쳤다.
“환생하는 군대를 가졌다고 들었소.”
에드워드는 물병을 입에서 떼고 인상을 썼다.
“환생?”
“그렇소! 놈들의 전사와 마법사는 절대 죽지 않소. 죽어도 죽어도 다시 태어나지. 죽음과 재탄생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거듭 축적한 데다 숫자도 많다오.”
“영혼이 지옥을 다녀오면서 더욱 타락하고 단련된다는 이야기도 있죠!”
“악마들이 직접 수련시켜준답니다요!”
선원들도 뒤이어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저거 진짜야?”
“악마들이라면 뭘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적어도 교리법무성이 검증해 본 적은 없어.”
“그래?”
“그래. 그들의 전생이 어떤 것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까.”
“진짜 환생이려나?”
“교리법무성은 가능성이 낮다고 봐.”
“왜?”
“영혼이 저승으로 간다는 건 명확히 경전에 적혀 있으니까. 새로 태어나는 문제도 마찬가지야. 육체가 어디에 있든, 빛의 영혼은 빛에서 와. 만약 정말로 놈들이 영혼을 헌 수건마냥 반복해 쓴다면, 새 육체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건지 설명이 안 돼.”
에드워드가 성장기 때 이미 앵글리아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다. 교리법무성에서 학식을 더 쌓은 이단심문관도 다른 대답은 못 주는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한동안 잊었던 생각들을 다시 꺼냈다.
‘그럼 난 뭐지? 에이, 알 게 뭐야. 경전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예외일 수도 있고.’
에드워드는 잠깐 떠오른 여러 생각을 집어치웠다.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다.
“환생하는 거라 믿는 군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거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라. 뭐, 끽해야 이단자들 정도겠군.”
“차이점이 없지는 않아. 일단 그렇게 믿는 놈들끼리 숱하게 훈련하고 전투경험을 쌓아온 건 사실이란 거야.”
껄끄러운 적. 에드워드는 대충 마른 옷가지들을 입으며 말했다.
“으, 말라도 차갑군. 여하튼 이제 어떻게 하지?”
“다행히도, 아브멜렉은 세트렛인들의 최전선 도시야.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최소한 중립 부족 국가들이나 교권 국가로 탈출이 가능해. 문제는 거기까지 버틸 수 있냐는 거지.”
“영차!”
그때, 선원들이 작은 단정들을 배에서 내렸다. 선장은 단정의 숫자와 생존자의 숫자를 세어보다 말했다.
“전부 다 태우기는 무리요. 배가 적소.”
구명정이라는 개념도 미비한 시대다. 그걸 사람 숫자에 맞춰 준비해야 된다는 규정도 없다. 에드워드는 심통 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명정 부족이라. 타이타닉호가 생각나는군.”
타이타닉호가 뭔지는 몰라도, 배가 부족하다는 힐난으로 해석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선장은 얼굴을 붉혔다.
“당신이 하자는 대로 그 저주받은 포경선을 따라갔더니 나온 결과요!”
“그 배 안 따라갔으면 바다에 그냥 가라앉았을걸. 그 자식이 우릴 하나도 안 죽이고 여기 올려놓은 거요.”
베로니카가 둘의 말싸움을 중단시켰다.
“둘 다 그만. 그런 걸로 싸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요. 환생 군단은 아브멜렉의 정예병들이고, 우린 춥고 지쳤어요. 어서 대처해야 돼요.”
선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정 중 제일 크고 돛을 달 수 있는 것에 항해사와 선원 둘을 태웠소. 그들이 기사단 요새까지 가서 구조를 요청할 거요. 지원자도 태울 거고…… 하지만 나머지 단정은, 그걸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못 따라간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배도 배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바다를 모른다. 항해사가 탄 배조차도 험한 날씨와 해적들에 시달리다 죽을 확률이 없다고 말 못 한다. 세트렛인 선박을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돛대를 세우는 단정을 보던 에드워드가 말했다.
“베로니카, 저거 타.”
“뭐?”
“넌 헬레나랑 함께 저거 타고 기사단 요새섬까지 돌아가. 지금 상황에선 그게 그나마 낫겠다.”
“무슨 뜻이야?”
“너 여기서 잡히면 나 임무 실패야. 그건 안 되지.”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난 다치지도 않았어. 공주 취급받으려고 사제 된 것 아니야. 사람들을 두고 물러설 수는 없지.”
“호의는 고맙지만, 저도 사양하죠.”
헬레나가 말했다. 그녀는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기서 내빼면 폰티아 엘프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테니까요.”
“그 친구들도 우리 배 탔으면 좋았을 텐데. 젠장.”
에드워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들은 스텔라는 마차 밖으로 고개만 내민 채 입을 삐죽였다.
“기사님, 레이디들만 챙기신다. 저 같은 평민 마법사는 안 챙겨주세요?”
“넌 사제보다 더 대체불가 전력이라 빼고 싶어도 못 빼줘.”
“기뻐해야 되나…….”
스텔라가 툴툴거리는 동안 에드워드는 다시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짧은 옥신각신 끝에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자기가 싸우겠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마는.”
“다른 방법 없어?”
“놈들 해군이 안 따라온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방법이 있어. 약간 도박이야.”
“뭔데?”
에드워드는 단정들을 가리켰다.
“첫 번째로 준비할 것. 식수와 식량, 부상자와 노약자를 저기 싣는다.”
“그리고?”
“파도에 도로 밀려오지는 않을 만큼 거리를 벌려서 해안가를 따라 단정을 움직인다. 어쨌든 걷는 것보다는 편하고, 식수와 식량도 많이 실을 수 있으니까. 나머지 단정들은 줄로 뒤에 잇던가, 옆으로 묶던가 해보자고.”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 준비할 건 뭔데?”
에드워드는 뱃전을 큼직하게 잡아 뜯었다. 와직! 그는 선장에게 나무판을 던져줬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방패를 들고, 단정들과 함께 나란히 해안가를 걷는다. 갑옷이나 방패처럼 쓸 수 있는 거 있으면, 전부 꺼내.”
“해군이 안 온다는 전제하라…… 온다면?”
“아마 안 올 거야. 온다 해도 시간은 있어. 다음 정찰병들이 여기까지 와야 상황을 알 테니까. 그때는 그때 되어서 생각하는 수밖에.”
에드워드는 다음 나무판자를 뜯어냈다. 으직! 가르달도 가열차게 도끼질을 시작했다. 그는 판자를 선원들에게 던져주면서 외쳤다.
“젠장! 이렇게 무겁고 조잡한 방패라니! 시간과 재료만 좀 더 있었어도!”
“어쩌겠수?”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되면, 배 안 탔다고 후회할 자신 있어?”
베로니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뱃멀미보단 싸움이 더 나아.”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내 감동 돌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