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피라미드 앞 (1)
해륙풍은 밤낮으로 바뀌는 바닷바람을 말한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분다. 그러므로 공포새들이 덤불을 매달고 모래밭을 달리며 먼지구름을 일으켜도, 해안을 끼고 있는 에드워드 일행 아무런 영향이 없다. 낮이라면.
보통은 그렇다.
“쿨럭! 쿨럭!”
리안나가 천으로 입을 막은 채 기침을 했다. 그녀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나쁜 놈들이 우리한테 계속 먼지를 날리는데요!”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잡히기만 하면 특제 미세먼지를 배 터지게 먹여서 죽여주마, 개새끼들.”
문제는 기동성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생존자들과 달리, 세트렛인들은 공포새를 이용한 빠른 기동이 가능했다. 공포새들은 가볍게 질주해 에드워드 일행을 앞질러 간 다음, 앞에서부터 나뭇가지로 먼지를 가득 일으켰다.
“바다 쪽으로 더 붙을까요?”
한 생존자가 에드워드한테 질문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발이 바닷물 먹은 모래를 밟을 거야. 마차는 더 나가지도 못하고. 그건 피해야 돼.”
더 느려지고, 더 피곤해진단 이야기다. 먼지를 뒤집어써도 좀 마르고 단단한 땅을 밟는 게 낫다. 참을성 없는 스텔라는 주문을 외우기 전까지는 먼지를 피해야 한다는 핑계로 마차 안으로 피신해버렸지만, 그래도 연신 쿨럭거렸다.
“이러다 폐 망가지겠어요!”
사람들은 천으로 재주껏 입을 막았지만, 그러고도 먼지를 다 막을 순 없었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났다. 가르달은 웅얼거리는 투로 말했다.
“약은 수를 쓰는군. 태양빛에 먼지구름이라. 겨울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오. 여름이었으면 벌써 뻗었을걸.”
“겨울이어도 문제요. 참을성 없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야, 거기! 물병에서 손 떼!”
에드워드는 한 순례자를 질책했다. 그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었다.
“목구멍을 좀 씻어내야지, 아니면 이 먼지를 어떻게 버팁니까?”
“아직 이틀은 더 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자칭 예술가 자크 타일러도 자기 물병에 입을 대고 있었다.
“젠장. 기사 나리들이 잘나도 먼지구름은 못 벤단 말이지.”
자크가 대놓고 말했다. 평소라면 한 대 치거나 베어 넘겼을 소리다. 그러나 기사들은 체력과 수분을 아끼기 위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먼지가 잦아들고 있소.”
카치운이 말했다. 놈들이 그만 달리고 있단 것이다. 이유야 하나뿐이다. 에드워드는 생존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투 준비! 밀집해!”
첫 전투보다는 느려진 속도로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마차를 중심으로, 틈 하나 없는 방패벽이 곧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제보다 튼튼하진 못할 것이다. 헬레나가 적의 접근을 알렸다.
“뒤에서부터!”
뒤이어 공포새를 탄 투창기병들 수십 명이 달려왔다.
펠리샤와 자무스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버티는 생존자들을 살펴보았다. 자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계속 조금씩 움직이는데.”
“더 가까이 가야겠네요.”
펠리샤가 느긋하게 말을 몰며 말했다. 그때 먼지구름이 대기하고 있던 세트렛인들한테까지 날아왔다. 펠리샤는 소매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전투가 격해지는군요. 먼지구름이 우리 쪽까지 오다니.”
“그럼 가까이 가지 말고 물러서야지.”
표적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당연히 먼지가 일어나는 장소도 바뀐다. 거기다 풍향도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해륙풍. 펠리샤는 하녀를 돌아보았다.
“물 줘.”
“네, 네에.”
아퀴타니아인 하녀는 자리에 앉아 수납함을 열었다. 그녀는 은잔을 꺼내고는 허리춤에 찬 수통의 물을 거기 따랐다. 그 모습을 본 펠리샤는 신경질을 냈다.
“바람을 막으면서 물을 부어야 할 거 아냐! 먼지 다 들어가잖아! 물도 새고!”
“죄, 죄송합…….”
그때였다. 갑자기 전투의 함성이 다급한 소리로 바뀌었다. 펠리샤는 고개를 들었다. 점점 짙어진 먼지구름 사이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부하들이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해답은 생각보다 더 빨리 나타났다. 완전무장한 기사들이 먼지구름에서 뛰쳐나왔다. 그 선두는 붉은 서코트를 걸친 자였다.
“적……!”
자무스는 놀라서 검을 뽑았다. 하지만 기사들이 더 빨랐다. 공포새는 보기보다 가벼운 동물로, 중무장 기사가 올라탄 군마의 돌격을 막을 힘이 없었다. 몇몇 호위병들이 튕겨 나가는 걸로 자무스와 펠리샤는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자무스의 머리통을 향해 열쇠검을 휘둘렀다.
“식목일의 복수다!”
퍼억!
자무스의 두개골이 박살이 나면서 피가 흩뿌려졌다.
세트렛인들의 전술은 단순했다.
[발을 묶고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인다.>에드워드의 대응법도 단순했다.
[왜 그때까지 참냐?>먼지구름의 양과 바람 방향을 살피던 에드워드는 공포새에 탄 투창기병들이 지쳐 물러갈 때쯤을 노렸다. 기병은 카치운을 포함해도 단 여섯 기. 하지만 과감한 돌격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기사와 기병들은 곧바로 말에 올랐다. 그리고 참았던 울분을 폭발시키듯 말을 달렸다. 그들은 수십 기의 공포새 사이를 가로질러, 먼지구름으로 뛰어들어, 미리 봐두었던 적 지휘관을 향해 돌격했다.
적이 예상하지 못한 기병 돌격은 언제나 강력한 법이다.
“자무스 대장이 당했다!”
세트렛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펠리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안 끝났어! 이 멍청이들아, 돌아와!”
그러나 지친 공포새로 적 기사에 맞선다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투창을 던지려다 오히려 따라잡힐 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지휘관 옆에 있던 펠리샤를 놓아줄 타입도 아니었다. 그는 열쇠검을 다시 휘둘렀다. 이번엔 공포새의 머리였다.
“크윽!”
펠리샤는 부리가 깨진 공포새와 함께 옆으로 굴렀다. 공포새의 부리는 정면으로 쪼아댈 때는 비교적 강했지만, 옆에서의 충격엔 약했다.
‘이 기사, 보통 놈이 아니다!’
펠리샤는 바로 몸을 굴려 충격을 최소화한 다음,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더 빨랐다. 그는 말에서 내린 다음, 펠리샤한테 말했다.
“아퀴타니아어를 몰라도 내 말은 알겠지?”
종종 있다. 여자가 상대면 머뭇거리거나 방심하는 기사들. 펠리샤는 마저 일어나려 했지만, 에드워드가 더 빨랐다. 그녀의 팔이 저주받은 손에 붙들리자, 뼈를 부술 것 같은 그 무지막지한 힘에 펠리샤는 경악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깡통 투구가 그녀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 빠아악! 여전사는 쇳덩이와 충돌한 후 널브러져 신음을 흘렸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포기를 모르는 년이네.”
팔뼈가 부러지고 이마에 혹이 생긴 펠리샤는 에드워드의 포로가 되어 무릎 꿇렸다. 나머지 부하들은 죽거나 도망쳤다. 포로로 잡힌 건 그녀를 포함해 소수였다. 헬레나는 세트렛인들의 물로 적신 수건을 꺼낸 다음, 에드워드의 투구를 벗겼다.
“축하해요. 도박이 성공했네요.”
헬레나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자 에드워드는 농을 걸었다.
“어째 대우가 극진한데?”
“사막에서 물을 찾은 자에게는 이 정도 대우가 합당하겠죠.”
덤덤한 투였다. 하지만 내심 갈증을 참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펠리샤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저 포로들은 어쩌죠?”
“심문하고 인질로 써야지. 특히 여자. 고위 전사 같던데. 잘 됐어.”
“여긴 침대 없어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당신은 여자를 묶거나, 육체 대신 적당히 잡을 곳이 있어야겠죠.”
“아니라니까?”
베로니카는 아퀴타니아어를 할 줄 아는 하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젤로, 역시 남부 아퀴타니아 출신이었다. 몇 년 전 해안가에서 해적에게 사로잡혀 노예로 팔려왔다고 했다. 전투 내내 겁에 질려 말발굽을 피하던 그녀는, 사제를 보고도 진정되질 못하는 것 같았다.
“안 되겠네. 아직 약간 제정신이 아니야.”
노예 생활 몇 년이면 정신이 피폐해지기는 충분하다. 그것도 혹독하기로 유명한 세트렛인 영역에서라면. 입장이 역전된 판이지만, 지젤은 아직 펠리샤 쪽에 시선도 못 주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됐어. 안전한 데 둬. 심문은 얘들만 해도 충분하겠지.”
에드워드는 펠리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퀴타니아어 할 줄 아나?”
대답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귀족 공용어로서의 아퀴타니아어는 여기서 끝장난 건가?”
“세트렛 귀족들이 우리와 교류할 일 따위는 없으니까. 차라리 밀수꾼의 아퀴타니아어가 더 유창할걸.”
“이런. 그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지?”
“비텔리아어로 해. 그건 그나마 통하거든.”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펠리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름과 씨족 외에는 밝힐 거 없나? 몸값 제시?”
펠리샤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목숨을 살려주지.”
에드워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 불가. 그는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이 여자네 집안 어르신이 오면, 가정교육과 몸값에 대해서 다시 논해보자고.”
그로부터 이틀은 비교적 편하게 행군했다. 전투도 없고 먼지도 없다. 다만 포로들이 비협조적인 게 안타까웠을 뿐.
에드워드 일행은 펠리샤와 여러가지 방법으로 협상을 시도해봤지만, 그녀는 완강했다. 풀어놓는 정보도 없었다. 다른 세트렛인 부하들도 그녀의 눈치를 보는지, 두려움 속에서 별말이 없었다.
어쨌든 고위 포로는 인질로 가치가 있다. 먼발치에서 에드워드 일행을 감시하기 시작한 세트렛인 정찰병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에드워드는 그걸 확신했다.
“새끼들. 눈치 보네.”
저 뒤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펠리샤의 덜미를 붙잡아 마차 발판 위로 올리곤, 정찰병과 눈을 마주쳤다. 눈이 보인다면 말이지만. 손톱 크기의 얼굴이 잠시 상황을 살피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효과가 있다.
“됐다. 내려가.”
“이따위 수치를 줄 바엔 죽여라!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펠리샤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 갔다가 환생해서 돌아오게? 지옥이 그리 좋냐?”
“난 거기서 더 강력해져 돌아오겠지만, 넌 지옥불에서 불탈 것이다!”
“너도 이미 몇 번 환생했냐?”
“그렇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짧게 질문했다.
“네 전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하냐?”
“환생하는 자는 저승의 강물을 마시고 기억을 잊는다. 그것도 모르나?”
“증거 삼아 몇 가지는 기억한다던데?”
“그렇다. 하지만 네게 이야기해 줘야 할 이유가 어딨지?”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들. 누군가 심었을 가짜 기억일 가능성도 컸다. 설령 진짜라 해도, 그들이 말하는 기억들은 에드워드가 알던 세상의 것이 아니다.
“아X폰 대 갤럭X.”
“뭐?”
“그렇다 치자.”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짓고는 아까 정찰병이 사라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이 몰려오고 있었다. 헬레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엔 더 본격적이군요. 공포새뿐만 아니라 말을 탄 기병 비중도 높아요.”
“알아. 나도 보여. 작정하고 왔나 보다.”
에드워드는 자신들의 진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드가스 왕국 유적보다 더 큰, 거대한 유적지가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반쯤 무너진 성벽들과 건물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피라미드.
“펠리샤, 저 피라미드는 뭐냐?”
“무덤이다.”
“역시 무덤이었냐.”
“그래. 여긴 원래 다른 세트렛인 도시였지. 그들도 우리처럼 부활의 혜택을 입었어. 방법은 달랐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질문에는 답변이 술술 나왔다. 에드워드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어떤 부활인데?”
펠리샤는 오만한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저 안은 수천 년 동안 부활을 기다리는 시체들로 가득하지.”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냐?”
“똑똑한데. 앵글리아인.”
칭찬이었다. 하지만 세트렛인의 칭찬은 기분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펠리샤가 나지막하게 선언했다.
“너희에게 길은 둘뿐이다. 여기서 우리 군대에 포위당해 죽거나, 아니면 저 유적 안에 들어가 잠든 세트렛인들과 마주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