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화전 양면
악마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게 같이 연초나 한대 피자는 의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겨눈 채 슬금슬금 물러섰다. 악마 잡기 업적의 대상으로 쓰기엔 너무 크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육신은 여기 갇혔으나, 영혼은 가끔씩 밖에 다녀오니…….”
“내 소식을 들을 정도면 제법 자주 갔다 오는가 보군.”
“그렇소. 망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신세지만.”
모종의 이유로 숭배자를 다 잃고 유폐된 악마. 에드워드는 다쉬사베스의 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상체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그 외에도 단련과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 내성발톱도 단단한 발 보호구를 오래 신어서 생기는 것이니.
에드워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로 약해졌다면, 다짜고짜 대가리 깨기 대결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집주인 앞에서 일행이 다 흩어진 상황. 사제도 없고 마법사도 없다. 상대와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일단 대화 계속.
“말이 통하니 참 다행이네. 아브멜렉의 세트렛인들은 당신을 다짜고짜 사람 잡아먹고 부리는 대악마 취급을 하더라고.”
“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오. 몰렉도 한때는 내 부하였지만, 도망쳤거든. 그놈과 그 족속들을 다 회치고 싶은 게 내 본심이라오.”
아브멜렉한테도 재앙인 악마. 에드워드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몰렉 싫어.”
“공동의 적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이야기지.”
“그럼 나 좀 풀어주쇼. 계속 몰렉 엿 먹이게.”
하지만 다쉬사베스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그 겁쟁이 송아지보다 급한 이야기를 먼저 좀 하리다. 저주받은 기사여. 내가 멀쩡하고 강대했다면 이 피라미드 하나로 만족했겠소? 몰렉의 도시를 내버려 두겠소? 인간과 대화를 하겠소?”
상태 안 좋음. 에드워드는 ‘어떻게 안 좋은지’ 물었다.
“뭐가 부족한가? 이 피라미드와 지하 무덤은 충분히 거대한 것 같은데. 미라는 끝도 없이 기어 나오고.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태운 미라들 다 합쳐도 1할은 되나?”
“그대가 분쇄한 미라의 숫자야 많지는 않소. 하지만 두 번째 피라미드를 짓기는커녕, 이미 만든 피라미드도 간수하기 어렵다오. 통한의 패배 이후 내 숭배자들은 지상에서 사라졌고, 만용을 부려 들어오는 몇몇 얼간이 외에는 더는 새 미라가 만들어지질 않아. 그런데 새로운 골칫거리는 계속 생기니.”
“나?”
“아니, 당신이 들어오기 251년 전부터 생긴 골칫거리요. 뭐, 지하에서는 가장 최근 사건이긴 하지만.”
사람이건 악마건 대개 원하는 게 있으니 남에게 말을 걸기 마련이다. 다쉬사베스는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마침 어떤 남자의 이야기가 들려오더군. 포경선 선장 아시오? 아는 것 같군. 하긴 그가 당신을 여기로 보냈으니.”
“그 양반, 대체 정체와 목적이 뭔데?”
“사정이야 악마와 악령 모두 각자 다 다르니 내게 묻지 마시구려. 당신 허리띠에 있는 불쌍한 영혼도 그렇잖소.”
캐슬린은 반응하지 않았다. 악마 앞에서 몸을 사리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관심 있는 악마들은 다들 당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지. 성자 유스타스의 뜻에 따라 오랫동안 왕실의 보물고에 처박혀 있던 검을 들고 세상에 나와서…… 모험을 하는 기사가 있다고.”
“왜 중간에 말을 흐려? 뭔데?”
“천박한 말이라, 안 듣는 게 나을 거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욕을 바가지로 한단 말인가? 열쇠검이 세상에 나오면 악마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나?”
“글쎄. 그걸 걱정하는 악마들도 있긴 했소. 하지만 도구는 쓰기 나름이지…… 희극에서 사람들이 흔히 ‘기계신’이나 ‘사기템’이라 부르는 것들이라 해도 말이오. 세상에는 보검도 그저 쇠몽둥이에 불과한 사람이 더 흔하지.”
짜잔 하고 나타나서 모든 걸 해결하는 장치, 또는 결정타를 날려줄 마법 아이템. 그리고 희극 속 배우와는 다르게, 그것마저도 제대로 못 쓰는 현실의 인간. 에드워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 말인가?”
“손아귀의 저주받은 힘도, 부러지지 않는 검도 다 거짓말이거든. 하지만 경은 그 비밀을 알아차리기 전에 죽을 테니, 의미가 없겠지.”
“무슨 말이냐? 지금 싸워보자고?”
악마는 껄껄 웃으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니, 나 말고. 시간한테.”
그게 무덤 안의 이야기인지, 밖의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혹시 이 열쇠검이 댁을 크게 다치게 했다는 그 성검 아뇨?”
“당신, 희극 좋아하지?”
“좋아 죽지.”
“문제 옆에 마침 해결책이 있더라는 전개는 흔하지.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풀리는 일은 없소. 내가 어떻게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은데, 시험해보시겠나? 마침 내 엄지발톱이 말썽인데, 그것 좀 뽑아주면 좋겠소.”
다쉬사베스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열쇠검은 정체가 뭐든 그냥 쇠막대기라는 뜻이다. 성검이든, 다른 용도와 역사의 명검이든. 에드워드는 미련을 버렸다. 그에게 열쇠검은 둘도 없는 무기지만, 저주를 풀 때까지만 쓰는 임시방편의 무기이기도 했다.
“손아귀의 저주를 풀면, 이 검은 도로 어디 처박아둬 주지. 그러니 나 좀 내보내 주시겠나?”
“당신을 여기 묶어놔도 그건 달성되오. 그런 불량채권을 거래하려 하시다니, 기사가 너무 악랄하시군.”
당연하지만, 안 통한다. 하지만 대화를 열어갈 농담으로는 쓸모가 있다.
“왕실 보검도 걱정 안 해, 내 손아귀 힘도 걱정 안 해, 그 둘이 세상에 풀려나는 것도 걱정 안 하는군. 그럼 그만 헤어져서 각자 갈 길 가면 되나?”
급한 티를 내면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에드워드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다행히 악마는 그 허세에 넘어가 줬다.
“당연히 그러자고 말을 건 것은 아니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악마의 부탁이라.”
“내 부탁을 들어주면, 당신을 포함한 모든 일행을 자유롭게 보내주지.”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
“아니, 왜?”
“나가는 것 정도야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잖아.”
“거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내가 못하는 걸 해결해 주겠다고 해. 그러면 생각해 보지.”
악마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는 말했다.
“보물은 어떤가?”
“나 예금 꽤 남았는데.”
“여자를 주지. 아주 멋진 여자.”
“지금 여기 있는 것만 둘인데. 그리고 네가 줄 수 있는 여자가 내가 잃어버린 일행들 레벨은 되냐? 특히 이단심문관.”
일부러 사제를 지목해서 말해봤다. 악마는 피식 웃어버렸다.
“눈이 높구만. 그래, 그 사제 같은 여자는 내가 마련해 줄 수가 없지.”
에드워드는 아무 여자나 달라고 했다간 미라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긴 미라밖에 없으니까. 그는 그걸 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유폐된 악마한테, 남은 건 광채 잃은 보물과 말라비틀어진 미라밖에 안 보여.”
악마는 웃어버렸다.
“뭘 원하시오?”
결국 그 질문이 악마한테서 먼저 나왔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기울였다.
“나가는 건 좋은데, 세부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수?”
“물론이오. 하지만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일 텐데. 내 골칫거리가 당신의 공주님을 만나는 건 시간문제거든.”
만만치 않은 반격. 하지만 에드워드는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당신하고 협상 안 하고 바로 구조해서 나갈게.”
“길을 모르시잖소? 길은 듣고 가야지?”
“그래. 그러니 빨리 안 알려주면 결국 그 골칫거리 해결 못 할걸. 나야 뭐 베로니카를 만나든 말든,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만만치 않으시구만…….”
악마와 기사는 서로를 향해 이를 갈았다.
펠리샤는 물벼락을 맞고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을 끼얹은 게 지젤임을 깨닫고 분노했다.
“네가 감히!”
“닥쳐. 나 지금 너한테 친절하게 대해줄 여유 없어.”
해방 노예가 옛 주인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그 꼴을 본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버렸다.
“해방 노예의 원한은 살벌하군. 밴시 꼬맹이도 해방시켰다간 무섭겠네.”
“여긴 어디냐?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지?”
펠리샤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짧게 말했다.
“요약하자면, 이곳 주인한테서 청부살인을 의뢰받았어.”
“뭐?”
“너 기절한 새에 이곳 주인이랑 만났거든.”
“뭐?”
“아주아주 오래전에 인간 왕이 든 성검에 크게 다치고 이 피라미드를 안으로 숨은 악마였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어쨌든 그가 휴식하는 사이에, 부하 악마가 찬탈을 시도한 모양이야. 피라미드 중간층을 이미 지배하고 있대.”
“다쉬사베스? 다쉬사베스를 만났다고? 정말 대악마였나?”
“그래. 너네 악마 몰렉이 배신 때린 옛 상관이라던데. 들은 거 없나?”
펠리샤는 하얗게 질렸다.
“난 몰라! 그런 놈을 만났는데 어떻게 우리가 살아있어?”
“아, 젠장. 정보가 희박하네. 여하튼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왜 매번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상황이 휙휙 바뀌는 거지?!”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벤트 스토리 스킵한 놈과 탐독한 놈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는 법이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 하지 마! 다쉬사베스를 만난 것도 모자라 그의 명령을 받다니!”
“명령 아니야. 협정이지. 살다 살다 악마의 의뢰를 받는 날도 다 오네 싶긴 하다만.”
“다쉬사베스는 네놈을 농락하다 죽일 거다!”
“보험사 약관보다 더 시시콜콜하게 조건 걸어놨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나중엔 그 새퀴가 날 밟을까 말까 고민하더라고.”
“보험사 약관?!”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최초 계약 만기 후 3년마다 갱신되는 자동 갱신 적용 상품으로 갱신을 통해 최대 85세까지 보장되며 갱신 시 피보험자의 나이 및 보험료율에 따라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습니다. 기존 보험계약 해지 후 타 계약 체결 시 보험 인수 거절 또는 보험료 인상, 보장내용이 달라질 수 있…….”
펠리샤와 지젤은 둘 다 입을 쩍 벌렸다. 그녀들은 빠르게 튀어나오는 그 문구들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주둥아리에 기름칠을 해놨나……!”
“기사님 어디 아프세요?”
에드워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야, 무슨 거대석상 사이즈의 최종 보스급 악마랑 맞대결하거나, 말라죽을 팔자를 내 이 세 치 혀로 타파해서 중간 보스급 악마 잡기로 대폭 낮췄는데 겨우 그 정도 말밖에 못 해주냐? 에이, 됐다. 물이나 마셔.”
그제야 펠리샤는 자신이 수도관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젤이 물을 아낌없이 그녀의 얼굴 위로 부은 데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펠리샤는 정신없이 물을 마신 다음,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실컷 마시고 나서 꺼내자니 떨떠름한 이야기지만, 혹시 다쉬사베스가 이 물에 장난을 쳐놓은 건?”
“그러니까 너한테 먼저 마셔보게 한 건데.”
“이 나쁜 놈아!”
펠리샤는 에드워드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세트렛 여전사의 비난에 기사는 낄낄 웃었다.
“사실, 물도 서로 상호합의 끝냈다. 이상한 게 흘러나오는 장소면 그 자식이 내 앞에서 개고기 전골로 변신하기로.”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세상 두 번 살면서 야바위 깨친 놈.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려다 말았다. 그는 펠리샤의 옆에 놓인 검 무더기를 가리켰다. 아직 녹슬지 않은 고대 무기들이었다.
“검 집어. 너도 싸워야 돼. 협정대로면 중간보스를 물리쳐야 나갈 수 있거든.”
펠리샤는 바로 검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나간다라…… 네놈의 혀에 신세 지는 건 참 싫지만 어쩔 수 없군.”
“나도 나가자마자 내 등을 찌를 년한테 검 주긴 싫은데 어쩔 수가 없다.”
에드워드는 지젤에게 새로 만든 횃불을 넘겼다.
“자, 일단 다쉬사베스가 알려준 대로 가보자고.”
에드워드는 걸으면서 악마 다쉬사베스의 생각을 계속 가늠해 보았다.
어디까지가 그의 계획인가?
그가 다쉬사베스 앞에 떨어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다쉬사베스는 마치 당연히 올 줄 알았다는 듯이 굴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던 레버를 찾아 조작하던, 예술가 자크가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버렸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못 한다.
다쉬사베스가 펠리샤와 그 패거리를 계산에 넣은 건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를 풀어줘도, 일행은 세트렛인에게 포위당한 채 죽을 판이니까. 다쉬사베스는 바깥의 세트렛인들까지 통제하지 못하며, 그들을 사주한 악마들과도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유도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에드워드는 몇 가지 더 생각해보다가 관뒀다. 그는 문 앞에 섰다.
“난 망토 걸친 채 140만 개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마법사가 아니니, 악마건 나발이건 내 방식대로 한다.”
“어떻게요?”
지젤이 물었다. 에드워드는 문에 손을 댔다.
“일단 제일 밝은 곳을 찾을 거야. 그게 제일 찾기 쉽겠지.”
“무슨 이유로요?”
“거기에 가르달이 있을 거라서.”
에드워드는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쿠르릉 소리와 함께 문이 내려가 열렸다. 다행히 찾던 것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불타는 미라들이 걷고 뛰다가 쓰러지는 광경. 수많은 미라가 비명을 지르며 불똥을 흩날렸다.
지젤과 펠리샤는 다시 입을 떡 벌렸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우리 못 말리는 드워프 친구.”